2024. 5. 11. 토요일
임은미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같은 목적 그러나 다른 기도의 방법!" 에스라 8장
사람들은 "고통"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한다.
"왜 하나님이 선하시다면서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느냐?"라는 질문을 우리는 자주 듣지 않는가?
고통의 원인이 하나님인가?
나는 10년은 된 것 같은데 허리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허리에 악성 종양이 발견되어서 그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난 수술 받으면 그다음 날 집에 걸어서 오는 줄 알았다. ㅎㅎ
그때 10일을 병원에 입원해 있었어야 했다.
입원하는 동안 병실 아래층에 가서 재활하는 시간을 따로 가졌어야 했는데 재활실 내려가 보니.. 세상에나 내가 아픈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머리에 붕대를 칭칭 매고 온 사람, 휠체어 타고 온 사람..
재활 운동하면서 이곳저곳에서 비명이 막 터져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나도 아픈 사람으로 재활 운동하러 그 장소에 가 있었지만 비명 지르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주님 도와 주십사 저절로 기도가 나왔다.
그때 이 모든 사람들의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가? 생각을 좀 심각하게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술을 마신다.
술 마시면서 내가 혼자 집에서 마시니 이런 것이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야한 동영상을 본다. 포르노 중독이 있다고 한다. 혼자 야한 동영상 보니 이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있다.
성적으로 음란한 죄들도 이 땅에는 많이 있다.
이러한 "죄지음"이 이 땅에 일어나는 고통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까?
우리가 핸드폰을 사용하는데 배터리가 다 사용 되어지면 방전된 핸드폰을 재충전해야 한다.
이 땅에는 마귀도 있고 천사도 있다.
마귀가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다.
천사가 하는 일은 사람들이 어려울 때 도와주는 일을 한다.
마귀는 언제 재충전을 받을까?
사탄 숭배자로 있다가 예수님 믿고 변화 받은 어느 청년의 간증문을 읽은 적이 있다.
세상에 돌아다니는 악한 영들이 힘을 얻을 때가 있는데 그때가 언제인가?
그 간증문의 일부분을 옮겨온다.
***
어떻게 그들이 충전을 받는가?
그것은 사람들의 제사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악령을 부르며 주문을
외우는 제사,
낙태를 포함한 피를 흘리게
하는 모든 것, 전쟁, 사람의 제사,
동물의 제사, 또한 모든 종류의
성적 부정행위들이 그것입니다.
이런 너무나 많은 종류의
악한 행위들이 그 영들을
강하게 하고 재충전하는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
이 간증을 그대로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에 접목하게 된다면
우리가 죄를 짓는 순간순간 우리들은 악한 영들을 더 활발하게 이 땅에서 운동하게 하는 재충전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집에 혼자 앉아서 술에 만취할 때 나는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것 같아도
나의 음주하는 시간은
나의 포르노 보는 시간은
마귀에게 힘을 실어 주게 되고 그 힘을 받게 되는 마귀들은
길 가는 행인이 그냥 음주한 어느 운전자에게 치여서 큰 부상을 입게 하기도 하고 죽게도 하고
길을 가는 어느 여자가 낯선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도록 음란의 영들에게 힘을 실어 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땅에 고통이 왜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대는 왜 죄를 지으면서 살고 있는가? 에 대한 질문 역시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하나님의 잘못으로 치부하지 않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지은 죄가 이 땅에 고통을 가져다주는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고통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보다 더 올바른 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죄짓지 않도록 하자!
세상 살면서 죄 안 지을 수 없겠지만
우리가 죄인 줄 알고 짓는 "고범죄"는 우리가 피해 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병원에서 재활 운동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퇴원하고 밖에 나가면 절대로 죄를 지으면 안 되겠다! 이 많은 사람들의 고통의 원인이 되는 죄를 내가 지으면 안 되겠다!" 그런 작정을 한 기억이 난다.
우리가 화를 내는 시간들
시기
질투하는 시간들
이 모든 시간들이 악한 영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느을 명심해야겠다.
내 이웃이 고통을 당하는 것이 내가 짓는 죄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면 우리는 훨씬 더 죄를 짓지 않으려고 조심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말 성경 에스라 8장
21. 그때 나는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낮춰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모든 재산을 위해 안전한 여정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22. 우리는 이전에 왕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에게는 우리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그 위에 있고 하나님을 버리는 모든 사람에게는 그의 능력과 진노가 그를 대적하십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서 왕에게 차마 우리를 여행길에서 적으로부터 지켜 줄 보병과 마병을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이 기도문에 대한 반대 기도문을 느헤미야서를 묵상할 때 또 한 번 할 것 같다.
에스라도 바벨론에서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느헤미야 역시 동시대 사람으로 백성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리더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여정길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오늘 내 성경 구절 묵상에는 에스라의 기도문이 나와 있다.
"우리는 이전에 왕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에게는 우리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그 위에 있고 하나님을 버리는 모든 사람에게는 그의 능력과 진노가 그를 대적하십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서 왕에게 차마 우리를 여행길에서 적으로부터 지켜 줄 보병과 마병을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왕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을 도와 줄 보병과 마병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에 금식하고 하나님께 그들의 여정을 보호해 달라고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다른 기도를 한다.
우리말 성경 느헤미야 2장
7. 내가 다시 왕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왕께서 기뻐하신다면 제가 유다에 도착할 때까지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유프라테스강 건너 총독들에게 보여 줄 친서를 써 주시겠습니까?
8. 그리고 왕의 산림 감독 아삽에게 친서를 내리셔서 성전 옆 성문과 성벽과 제가 살게 될 집의 들보 재목을 내주도록 해 주십시오.” 왕은 내게 허락해 주었습니다. 내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내 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
느헤미야, 에스라 동시대 사람들이다.
그 둘 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새 성전을 건축할 사명을 맡았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의 방법은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둘이 가야 하는 여정길에
한 사람은 왕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만을 구한다고 했고
한 사람은 왕의 도움을 받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했다.
두 사람의 기도 모두 하나님은 응답하셨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아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의 진심이 되는 동기를 아십니다.
우리의 기도의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진심이 주님에게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마음의 모든 묵상과 나의 입술의 모든 고백이 주님 보시기에 정직하기를 기도 드립니다.
매일 매시간 매초의 삶이
"코람데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의 깨끗한 삶이 되기를 기도 드립니다.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저는 "만남 사역"을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함이 함께 하는 시간 되기를 기도 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
외울 말씀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편 19편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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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그대여 💕
2024. 5. 11.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셔야죠?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하나님께서 오늘도 그대를
이렇게 불러주십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
사랑하는 내 딸~
사랑하는 그대여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이렇게
안부를 물어준다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창조주,
우리는 피조물.
그런데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너 오늘 어때?
사랑하는 ( ) 야~"
라고 불러주신다는 것.
그 음성이 들려올 수 있어야 합니다.
육성이 아닌 거 알고 계시죠?
그대의 느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대의 믿음입니다.
믿음의 귀를 열고
하나님께서 그대의 이름을 부르시고,
"사랑하는 내 딸!"
"사랑하는 내 아들!"
"내가 너의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겼단다.
나는 내 손바닥을 매일같이 보고 있지.
나는 너를 보고 있단다.
너의 기도 듣고 있단다.
너가 어느 곳에 가든지
나의 선한 눈길이 너를 쫓아다니고 있단다.
너의 평생에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너를 쫓아다니게 될 거야."
이러한 성경구절 말씀들이
그대에게 들려오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코람데오!"
코람데오라는 뜻은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 임재 앞에서"
그러한 뜻이 된다고 하죠.
하나님 앞에서 오늘도
그대는 걷고 있습니다.
즉슨 하나님께서 그대를 보고 계신다는 것이고
그대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다는 것에 대해서
확신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은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대의 오늘 하루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