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부천 모습은 이게 아니다"
< 2002-08-29 오전 11:31:00 박예준/이혜준 기자>
사령탑 무너진 부천 SK 홈 경기 현장을 가다
28일 부천SK 구장, 부천 대 성남전. 최윤겸 감독(39) 경질 결정 이후 처음 갖는 부천의 홈 경기는 한 마디로 썰렁했다. 관중 수와 경기 내용 최윤겸 감독(39)의 표정까지. 하지만 부천 서포터스 `헤르메스`는 어김없이 경기장을 찾아 최 감독과 선수들을 응원했다.
28일 부천구장, 부천대성남전 최윤겸 감독 경질 이후 처음갖는 홈경기에서 부천 서포터스 `헤르메스`가 응원하는 모습. 이 날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11000여명으로 평소보다 훨씬 적었다 ⓒ 스포츠피플21 이혜준
7시 25분 선수들이 입장하자 300여명의 서포터스는 "You`ll never walk alone"이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가자, 가자, 희망을 갖고. 당신은 결코 혼자 가는 게 아니니, 당신은 결코 혼자 가는 게 아니니" 노래 소리가 경기장에 넓게 퍼진다.
경기 시작 6분. 성남의 골이 터졌다. 하지만 최 감독의 표정엔 변화가 없다. 하늘색 셔츠를 입고 팔짱을 낀 채 선 최 감독은 선수들에게 특별히 소리를 지르거나 지시하는 일이 없다. 하지만 부천 선수들의 움직임은 이전 같지 않다. 우선 부천 특유의 짧은 패스를 찾아보기 힘들고 무엇보다 경기에서 이기겠다는 의지가 약해 보였다. 시즌 중 감독 경질과 고참 선수 정리 발표 등 구단의 비상식적 운영이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 때문일까. 결국 전반은 2대1로 성남에 한 골을 내준 채 끝났다.
후반전. 최 감독의 얼굴엔 여전히 표정이 없다. 부천의 프리킥 기회. 노골이다. 전광판에 최 감독의 얼굴이 스친다. 무표정. 아쉬움 또는 다른 어떤 감정도 그의 얼굴에서 읽을 수 없다.
`필승, SK 최윤겸 파이팅` 벤치 정면 관중석에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가까이서 보니 최 감독의 출신 고인 `홍주고 6회 동문회 일동`이라고 적혀있다. 카드 바로 앞에 앉은 최병훈 씨(42)는 응원 카드가 "8월 15일 이후부터 계속 걸려있었다"고 귀띔해준다. 부천에서 살고 있어 홈 경기 때마다 경기장을 찾는다는 그도 오늘 경기는 다소 못마땅한 눈치. "최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 경기가 활기 찬 편이었는데. 오늘은 선수들이 죄다 시무룩한 거 같네" 말을 마친 후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인다.
3대2 성남의 승리로 경기가 종료됐다. 확실히 오늘 경기는 지루했다. 심판을 본 정순기 대기심은 "부천 선수들의 의욕이 없는 게 눈에 보였다"며 "최 감독 경질이 결정된 이후 팀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다"고 말했다.
부천에 주어진 프리킥 기회, 골로 연결되진 못했다 ⓒ 스포츠피플21 이혜준
텅빈 그라운드를 최 감독 혼자 빠져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경기에서 졌는데 아무래도 감독 경질이며 노장선수 정리 발표등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허탈하게 미소를 지으며)"선수들 경기 모습을 봐라. 원래 부천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빨리 정상적 팀 분위기로 돌아와야 한다. 이유야 어쨌든 계속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 거니까. 이번 일에 대해 누구보다 나한테 책임이 가장 크지만 선수들도 책임의식을 느끼고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전체적 분위기가 좋지 않다"
-벤치에서 보니 얼굴 표정에 변화가 전혀 없던데
"그렇지 뭐. 해임된 감독이 여기 앉아 있는 게 우습기도 하고 내 마음을 헤아려 줄 사람이 누가 있겠나"
-감독 경질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말이 없나?
"어차피 결정 난 거고 얘기해 봤자 상황을 더 나쁜 쪽으로 몰고 갈 수 있으니까 더 말할 이유가 없다. 번복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구단이 인정한 사람이 왔는데 어쩌겠나"
-9월 1일 마지막 경기 이후에 기자회견을 갖고 그 동안 구단의 잘못된 운영 방식에 대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하던데?
"아직 확실하지 않다. 가기 전에 구단과 잘 이야기가 된다면 발표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경기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벤치를 지키던 부천 최윤겸 감독, 17년간 뛰던 부천을 떠나게 된 그는 "무척 아쉽지만 부천으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스포츠피플21 이혜준
-부천에 17년이나 있었던 사람으로 떠나는 마음이 남다를 거 같은데
"전임 감독님도 16년 있다가 안 좋게 나갔는데 나도 안 좋은 모습으로 가는 게 너무 아쉽다. 처음 감독이 됐을 땐 그 동안 배워왔고 추구했던 나만의 스타일을 펼치려 했는데 그러기에 너무 시간이 짧았다. 사실 경험도 짧았다. 더 열심히 해서 SK 구단에 다시 돌아오고 싶다. 욕심 같지만 잘 할 수 있었는데 너무 아쉽고 그렇다. 다 내 능력이 부족한 탓인가 보다"
-앞으로의 계획은?
"구단이 제안했던 대로 터키를 갈 생각은 없다. 내년쯤 되서 언어 공부를 하고 싶다. 지금 유학 간다는 것도 그렇고. 쉬고 싶은 것도 조금 있다. 여기 있는 거 자체가 애들(선수)한테 힘들다. 오늘 보니까 팬들도 많이 안 온 거 같은데 다 내가 부족해서 생긴 일인 거 같다. 좋은 경기 끝까지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전체적 분위기가 단합되는 게 힘들다. 마음은 얼추 추스렸는데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되는게 사실이다"
-9월 1일 마지막 경기가 남았는데
"마지막 날은 정말 기분이 묘할 거 같다. 하지만 감독이나 선수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지않나. 마지막 모습까지 최선을 다하는 SK원이 되겠다"
-끝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죄송할 뿐이다. `헤르메스` 분들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할 지 모르겠다. 정말 죄송하다. 사실 해임 소식을 들은 이후 계속 잠을 제대로 못 잤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까지 팬들이 기다려준다면 꼭 좋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겠다"
허탈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최 감독. 잠시 왼편을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텅빈 관중석. 그가 올려다 본 자리는 방금 전까지 선수와 감독에게 `함께 가겠다`는 응원가를 부르던 서포터스가 지키고 있었다.
"Walk on, Walk on, With hope in your heart, And you will never walk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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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경기후에 구단버스 타는곳에서 최윤겸감독님을 보았는대 일일이
악수를 해주시며 "경기에 져서 정말 미안합니다" 라구 씁쓸하게 말씀 하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