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하게 악을 쓴다거나 화려한 변화, 혹은 지나치게 파워를 내세운다거나 하지 않고 곡 구성의 타이트함과 리프가 가진 매력만으로 깔끔하게 곡을 끌고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분명한 록의 이미지 속에서 이 곡은 세심한 사운드 배치로 곡의 완성도를 높인다. 'Sunny-side up'이 곡에 따라 지나칠 정도로 많은 사운드를 만들어낸 반면 이 곡에서의 사운드들은 철저하게 기타리프의 폭발성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한다. 기타리프가 한번 지나가면 그 사이에 스크래치가 들어가면서 사운드의 리듬을 보다 강하게 만들면서 이승환의 보컬에까지 이어져 곡의 스트레이트함을 이어주고, 메인 기타리프 뒤에는 조금씩 기타연주가 첨가되면서 타이트한 느낌을 만들어내 곡의 힘을 배가시킨다. 또한 '어떻게든 너는 날..' 부분에서는 코러스가 들어가지만 그것은 강한 사운드에 묻혀 보컬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동기 정도로만 사용된다. 하나씩 뜯어보면 꽤나 정교한 계산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록의 에너지를 향해 응집되어있는 곡이라고 해야할까. 이승환다운 세련됨과 '로커 이승환'다운 힘이 매우 이상적으로 조합되었다. 경쾌한 분위기 속에서 심플하게 끝나기에 아주 깊은 감동을 주지는 않지만 매우 신나게 흘러가면서 앨범은 물론이고 콘서트의 오프닝에 딱 맞는 완성도를 보여준다.(실제로는 '동지'가 오프닝이고 이 곡은 중간에 끼어있긴 했지만)'
<왜>에서 강명석의 해석은 명쾌하다. <왜>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강명석의 말마따나 '스트레이트함(직선적인 깔끔함)'이라고 할 수 있다. 기타리프를 주로 하여 직선적인 조합을 보이는 이 곡은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과격하거나 타이트하지는 않다. 보컬 역시 마찬가지다. 록에서의 이승환 보컬의 표준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유있는 세련됨과 힘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래도 조금 이 곡이 부담되는 사람들에겐 이승환은 곡 중간에 쉬어 갈 자리를 내어 준다 '/어떻게든 너는 날.../'에서부터 시작되어 기타연주가 있고 나서 '/왜 자꾸 물어보는데.../'에서 가늘고 엷게 변하는 그의 보컬은 매우 인상적이다. 격렬한 운동 뒤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는 느낌이랄까? 이승환이 이 곡을 오버이지의 첫 트랙으로 올린 이유를 충분히 수긍하겠다. 그야말로 록의 기본에 충실히 따른 정통파적인 곡이 바로 <왜>이기 때문이다.
◆ <위험한 낙원>
이승환, 이규호의 놀라운 비약
이승환은 이 곡에서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놀라운 비약을 보여주었다. 그는 처음으로 시도한 록 오페라란 생소한 장르에서 그의 앨범 전체를 통틀어 <너의 나라>와 <나의 영웅>에 비견될 만한 명곡을 만들었다. 이것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 하다. 강명석도 말했듯이 이 곡의 초반부에선 이 곡이 어떻게 진행될 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록 오페라 장르는 뭐니뭐니해도 Queen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 위험한 낙원>은 퀸 초기작 중 명곡으로 꼽히는 'Sheer Heart Attack'앨범의 <The march of the black queen>을 떠올리게 한다. 일반적으로 록 오페라 장르에 생소한 분들은 다소 복잡해 보이는 구성과 예측 못할 코러스라인 구성에 적응하기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위험한 낙원>은 멜로디와 코러스라인의 강약을 적절히 조절함으로서 상당한 대중적 흡입력을 갖고 있다. 이승환은 Over easy의 음악이 지나치게 난해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고심했다고 하나 <위험한 낙원>으로서 그 시름은 충분히 상쇄되리라 생각한다.
'이 곡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이승환의 보컬만큼이나 곡을 이끄는 코러스라인이다. 이 코러스는 단지 이승환의 보컬을 받쳐준다거나 스케일을 크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곡 전체의 흐름을 예측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하는데, 처음 무대에 등장해 독백하듯 부드럽게 흘러가는 이승환의 보컬을 받쳐주면서 이승환의 보컬에 별다른 변화가 없이도 분위기를 고조시켜나가면서 점차 스케일을 키워나가고, 잠시 공백을 가지며 긴장감을 주었다가 '파라다이스...'부분에서부터 높아지는 이승환의 보컬에 맞춰서 서서히 소리를 키워나가다가 결국 이승환의 보컬은 빠진 채 먼저 터뜨려주면서 곡의 반전을 이뤄낸다. 물론 이승환의 보컬도 매우 힘차고 강렬하게 나가지만 진정으로 곡의 스케일을 키워나가면서 곡의 변화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코러스라인인 것이다. 곡 후반부에서 이승환 혼자 부르는 부분과 코러스가 들어있는 부분을 비교해 보라. 이승환은 오히려 전체적인 멜로디라인의 흐름을 제시하는 기준선에 가깝다.' - 강명석의 글 인용 -
그렇다. 강명석의 위의 글처럼 록 오페라에서의, 위험한 낙원에서의 포인트는 바로 코러스다. 이승환이 처음 록 오페라 스타일에 손을 대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준 데에는 코러스의 힘이 매우 크다. 이는 이승환이 그동안 코러스라인을 중시하며 발전시켜 온 노하우가 이 곡에 그대로 투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코러스라인은 복잡한 사운드 구성과 함께 라이브에서의 실연(實演)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록 오페라의 거두인 퀸마저도 정밀한 스튜디오 작업으로 곡을 만든 한계 때문에 라이브에서는 보헤미안 랩소디같은 록 오페라의 진수를 마음껏 보여주지 못했다. 가령 복잡한 구성의 코러스라인은 녹음된 테잎으로 대체를 해야 했고 다양한 사운드의 일부는 생략되기도 했다. <위험한 낙원>의 구성은 아주 복잡하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역시 상당히 까다로운 것만은 사실이다. 나는 이 곡을 들으면서 이승환이 라이브에서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음악이 라이브에서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 하는 점을 염두에 둔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 곡에서는 어떤 구상이 서 있는지 무척 궁금해진다. 이승환은 <위험한 낙원>을 통해서 자신이 서 있는 정점에서 다시 한 발자욱 내딛는 큰 성과를 거뒀고 더불어 이규호라는 인물까지 얻게 되었다. 나로서는 라이브에서 <위험한 낙원>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하는 혼자만의 '위험한' 상상을 마음껏 즐기고 싶은 지금이다.
◆ <Waiting for payback time>
정석원의 이유있는 고질병?
나에게는 이번 앨범을 통틀어 강명석의 문제제기를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였다고 말할 수 있는 곡이 바로 <Waiting for payback time>이다. 강명석은 이 곡에 대해서 '최고의 퀄리티가 반드시 최고의 '음악'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라고 말하며 '이승환의 사운드에 대한 집착이 이번에는 정석원에게 나타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며 보컬과 사운드의 주객이 전도되었음을 매섭게 질타한다.
'이가희의 앨범에서도 그랬지만, 'Waiting for payback time'은 멜로디를 거의 '리프'삼아 종래의 멜로디와 사운드의 관계를 뒤바꾸고 있는데, 멜로디는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데 비해 그 멜로디와 멜로디 사이의 여백에서 수많은 사운드가 얽혀 돌아가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전개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젠 다 니네는 죽었어..'부터 '... 내 바꿔주겠다'까지에는 도입부부터 진행되던 이펙트 걸린 리듬부터 통화중 울리는 전화소리, 또다른 전자음으로 만들어낸 리듬프로그래밍, 트립합 분위기의 리듬프로그래밍까지 정말 복잡한 사운드가 서로의 리듬을 쪼개고 들어가고, 동시에 이승환의 멜로디라인을 쪼개면서 들어가고 있다... 즉, 이 곡은 멜로디라인이 연결되어있지 않고 세 파트로 끊어져 있으면서 반대로 그 안에 들어있는 사운드들이 복잡하게 연결되면서 하나의 곡을 이루고 있다. 정말 이런 각자 다른 리듬에 각자 다른 톤을 하나의 멜로디 안에 집어넣고, 나름의 연결까지도 보여주는 정석원의 그 '노가다'에 가까운 사운드 메이킹은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고, 적어도 이런 사운드 메이킹에 한해서는 정석원이 최고라는 것을 인정 안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다고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난 아직은 믿고 있어...'에서 건반 밑으로 쉴새없이 깔리는 리듬 프로그래밍은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그 '노가다'와 각 리듬을 만들어낸 창조성에 대한 대단함이지 곡 자체의 완성도에 대한 대단함은 아니다. 완성도를 위해서는 차라리 그 복잡한 사운드를 걷어내고 심플하게 멜로디와 건반연주만 남겨놓으면서 차츰 사운드를 쌓아나가는 방법이 그 전후의 멜로디에서 보다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강명석의 글 인용 -
이 곡에서 강명석의 문제의식은 매우 예리하다. 이승환과 정석원의 사운드에 대한 집착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개별 곡에서 이처럼 구체적으로 기술적인 측면을 파헤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운드에 먼저 주눅들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기술적 퀄리티'상으로 최고의 경지에 다다른 곡에 대해서 곡의 완성도와 결부시켜 말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실 이번 경우엔 이승환은 정석원 때문에 도맷금으로 취급당한 면이 있긴 하다. 이가희의 앨범에서 보는 것과 같이 그만큼 정석원의 사운드에 대한 집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다.
기술적 '퀄리티'와 완성도와의 구체적 상관성
하지만 강명석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하면서도 나에게도 떠오르는 강명석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다. 분명 강명석의 말마따나 정석원이 사운드에 집착한 '증거'는 무수히 포착된다. 하지만 사운드에 집착했다고 해서 곡의 완성도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으로 치닫는다는 것은 다소 성급한 것이 아닐까? 정석원이 사운드에 집착한 결과 '퀄리티'면에선 최고가 되었음은 강명석 스스로도 인정한다. 그런데 바로 뒤에 사운드에만 집착했다는 무수한 증거들만을 내어놓은 채 강명석은 곡 전체의 완성도에 문제가 있다고 결론내린다. 즉 기술적 퀄리티에만 집착함으로서 발생한 결과물과 곡 전체 완성도와의 그 어떤 구체적인 상관관계도 내어놓지는 않은 채 바로 완성도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으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혹시 강명석은 정석원이 사운드에만 집착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곡 전체의 완성도에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강명석이 퀄리티와 곡의 완성도와의 구체적 상관성을 밝히는 게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견해로는 보컬과 사운드의 관계에 있어서 반드시 보컬이 리드해야 곡의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Waiting for payback time>에서처럼 사운드에 집착하여 상대적으로 보컬이 가려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 장르상, 개별 곡의 성격상 보컬과 사운드의 관계는 여러 가지로 형성되는 것이지 보컬이 주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낡은 것이 아닌가? '보컬'이 그동안 수고해 준 '사운드'를 위해서 들러리를 좀 서 주면 안 되는 것일까? 사운드와 곡의 완성도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보컬까지 거론해서 좀 복잡하게 되었지만 핵심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교과서적인 말이긴 하지만 문제는 곡의 완성도이며 음악의 구성 요소들은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관계를 맺으며 곡의 완성도를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 <同志>
13년을 기다려온 곡
'동지'의 가사대로 고집불통, 늘 자기 하고 싶었던 대로 살았던 이승환이 나름의 자아를 세운 뒤 팬들에게 드디어 미안함과 고마움의 말을 건네자, 팬들은 'We are the dream factory!'로 화답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다른 누가 이러쿵 저러쿵하기 힘든 감동의 순간이다. 요즘 한국의 록들 중에 이렇게 시원하고 록다운 제대로 된 '멋'을 가진 곡을 좀처럼 듣기 힘들었다고 하면 과찬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팬들의 외침은 이승환이 심혈을 기울인 퀄리티 있는 음악들에서도 가지지 못한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다. 가끔은 철저하게 짜여진 음악보다 이렇게 그냥 크게 외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승환도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지.' - 강명석의 글 인용 -
제목과 가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이 곡은 이승환이 자신의 13년 음악활동 중에 처음으로 팬들과의 대화를 시도했다는 것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곡의 사운드는 정통 록이지만 그는 그리 격렬하지는 않은 그러나 힘이 실린 보컬로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이승환과 팬들과의 교감은 곡의 끝 부분에서 대미를 이루는데, 1300여명이 외치는 'We are the dream factory!'라는 구호는 이승환의 절규하는 보컬이 주는 감동과 비견되는 가슴 시림을 전해 준다. 강명석의 분석처럼 <왜>와 <enemy within>의 통합 버전 업된 느낌인 <동지>는 보컬, 사운드, 코러스 등 이승환 록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무르익어 가고 있음을 하나의 앨범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