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열 세번째로 혼자 야구장을 찾았습니다. 제 주변엔 저만한 야구광이 없군요.
야구에 야 도 모르는 친구 데리고 한 번 갔던 게임은 지난 주 화요일 현대전이었네요.
아무튼 오늘 경기는 승패를 떠나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까운 경기였습니다. 여러 모로 의미 깊은 게임이었다고 생각해 처음으로 관전기를 써 봅니다.
1. 관중 수와 응원의 절대 우위
언론에서 모처럼 주중 더비 3연전을 대서특필(우리의 열세에 초점이 놓였지만)해 준 효과와, 양 팀이 상승세와 하향세의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중요한 시점이라는 점, 이번 시리즈 며칠 전부터 음으로 양으로 팬들간 벌어진 신경전 등 호재가 겹쳐 오늘 관중은 제가 찾은 화요일 경기 중 가장 많은 듯 했습니다.(15,362명이었군요)
육안으로 가늠할 수 있는 관중 수와 응원의 열기에서 오늘은 정말 우리가 압도적이었네요. 남 단장님도 모처럼 늘어지는 설교는 가능한한 자제하시고 분위기 몰이에 힘쓰시는 모습 좋았습니다. 어쨌든 이런 저런 이유로 초반부터 위축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계속 자리가 들어차는 걸 보니 선수들이 응원의 힘을 받는 게 몸으로 느껴져 정말 기뻤습니다.
2. 지나친 부담감
일전에 트윈스명문관에서 남재호 님의 글 중 5/4일 두산전 관전기, "봉중근은 야구 혼을 외친 것이다" 부분을 읽었습니다. 저 또한 팬의 입장에서 당장에 처한 우리 팀의 상황을 먼저 생각해야 하기에, 봉 선수의 행동을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높이 평가했었습니다. 아쉽게도 그 이후 짧지 않은 슬럼프를 겪었지만 점점 회복되는 추세였기에 오늘이야말로 그가 "결자해지"하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일찍 뽑은 선취점을 지켜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앞섰는지 2회 2사 후에 너무 뼈아픈 한 방을 허용했네요. 하필 우리가 경기 전에 혼내주리라고 별렀던 고영민 선수. 아무튼 오늘 그는 정말 얄밉게 잘 했습니다.
위기 뒤에 찬스라는 진부한 진리를 잔인하게 보여준 이닝이었습니다. 오늘 얼마나 심기일전하고 나왔을지를 생각하니 강판 당하는 봉중근 선수가 너무나 안쓰럽더군요. 개인적으론 안경현 선수와의 맞대결은 매조지하고 이닝을 마무리하며 교체되길 바랬습니다만, 코칭스탭도 초반 대량 실점을 막으려는 의미에서 과감하게 내린 결단이니 부디 마음 잘 추스려 주길 바랄 뿐입니다.
3. 한 점의 야구
하일성 전 해설위원의 단골 멘트 중 "한 점을 소중히 여기는 야구를 하라" 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한 점을 낼 줄 아는 야구, 한 점을 지키는 야구를 해야 한단 거겠죠. 오늘처럼 박빙의 승부에서는 그 한 점의 중요성이 여실히 드러났네요.
1회말, 초반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는 흐름, 1사 3루에서 3루 땅볼로 물러난 최동수 선수의- 잡아당긴 타격은 두고 두고 아쉽습니다. 바로 다음 회 1사 2,3루에서 이대수 선수는 가볍게 밀어서 희생플라이로 타점을 올렸네요.
생각하기도 싫은 9회초의 1점도 발빠른 선두타자의 2루타 - 번트 - 희생플라이라는 아주 간단한 공식으로 만들어진 한 점이었습니다. 우리의 신바람 야구는 그 어감 자체가 "짜내는 한 점" 보다는 "몰아치기 대량득점" 쪽인데요. ^^
한 점 승부에 강한 팀이 진정한 강팀이라는 말, 기본은 뭐니뭐니해도 팀배팅 마인드입니다.
역으로 꼭 필요한 한 점을 만들어내는 응집력이 두산이 강팀은 강팀이라는 사실을 보여줬네요.
4. 정재복의 호투
라이벌전일수록 "기싸움"의 시간이 길수록 묘미가 살아납니다. 초반에 너무 일방적으로 승부가 기울어버리면 라이벌전 답지 않다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겠죠. 유난히 이번 시즌 두산에게 "대패"가 많은데, 초반 대량 실점으로 분위기를 다시 끌어오지 못한 경기가 많았죠.
우리가 건진 2승 중 1승이 1회 7점을 냈던 경기에서 나왔었고...
그래서 경기 중반 이후까지 팽팽한 줄다리기가 가능하려면 5회 이전에 추가점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인성 선수가 그야말로 대포를 날려줬네요.
그가 서서 쏘면 얼마나 멀리 날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방이었습니다. ^^
오늘 리오스의 구위는 평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고, 좀 더 흠씬 두들겨주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쉽네요.
아무튼 오늘 정재복 선수의 역투는 눈부셨습니다. 어느 쪽이 먼저 추가점을 내느냐가 사실상 오늘의 승부를 가를 수 있는 포인트였는데, 위기 때마다 정재복 선수의 관리능력과 이대형, 이종열의 호수비까지 곁들여지면서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네요.
제가 선정한 오늘의 수훈선수는 단연 정재복입니다. 모처럼 많은 팬들의 뇌리에 남을 피칭을 해 줘서 인터뷰까지 기대했는데, 구원승을 놓친 게 정말 애석합니다.
5. 남은 두 경기
시리즈 첫 경기였고 양쪽 다 투수진 소모가 많았습니다. 정규이닝 이후에 규민 선수 말고 3이닝 정도 롱 릴리프를 맡아줄 선수가 없나 했는데 경헌호 선수가 있었네요. 연장전에 들어가자 옆에 계시던 아저씨께서 "우리가 밀리네" 라고 하시던데, 확실히 김승회-임태훈-정재훈으로 이어지는 오늘 계투는 나름 위력적이었지만 그 셋을 다 불러냈다는 데서 의미를 찾아야 겠죠. ^^
분위기상 깔끔하게, 그것도 한 점차로 잡고 갈 수 있는 경기를 뒷심부족으로 놓쳤네요. 어렵게 3연전 중 첫 게임을 잡은 팀은 여세를 몰아 스윕을 노리는 것이 정석인데, 되려 남은 경기에서 맥빠진 모습을 보이진 않을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극심한 소모전 이후에 오는 피로를 주의하며 "대패"를 경계해야겠죠.
6월 첫 주 3연전에서는 9-3 승리 후 0-1. 0-9 패, 5월 22일 6-5 연장전 신승 후 1-15로 대패...
그런 의미에서 노심초사... 내일 하리 선수가 퀄리티 만이라도 찍어주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내일 경기가 정말 중요해졌네요.
6. 두산이라는 팀
정말 1승 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비록 끝내기 안타, 승리타점의 주인공은 오늘 보지 못했지만 오늘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 경기에 임하는 자세는 여느 때와 분명히 달랐고, 팬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내내 같이 뛰는 듯한 기분이었네요. 이런 느낌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어쨌든 오늘 우리는 라이벌 팀의 에이스를 맞아 열세인 게임에서 선전했고, 그들도 끝까지 "두산답게" 싸웠습니다.
첫댓글 태클은 아니지만 9회에 2루타후 번트 안되고 땅볼로 굴렷습니다..-.- 그것외엔 거의다 동감가는 글입니다.. 정재복 선수의 호투가어떻게 본다면 무승부 혹은 승리까지 바라볼수 있도록 만들었죠.. 그러나 두산전은 진짜 승리하기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