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업적과 실정
[세종대왕 업적]
1. 훈민정음(한글) 1446년 9월 3일(양력 10월 9일)반포되었음
2. 최초의 공중 해시계 앙부일구(보물 845호)
3. 측우기 (세계 최초의 우량계)
4. 물시계 (자격루, 옥루 등)
5. 일성정시의(별이 자리를 옮기는데 따라서 밤 시각도 알게 만든 시계)
6. 4군6진 개척,
7. 군사제도 개편,
8. 조선통보 주조
9. 박연에게 아악을 정리하게 하였으며, 악기를 개조하였고, 음악을 발달시켰음
10. 구리로 된 『 갑인자 』라는 활자를 주조하게 하여, 많은 책을 남겼음
11.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농업에 관한책 '농사직설' 편찬
12. 우리 나라 최초의 지리책 '팔도지리지' 편찬
13. 1445년 '치평요람'완성
14. 훈민정음으로 '용비어천가'를 지었음
15.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16. ‘정간보’세종 대왕이 만든 동양 최초의 악보로 '우물 정(井)'자 모양의 간 안에 율명을 적어 넣은 악보이다
이 밖에도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훈민정음의 창제 하나만으로도 세종에 대한 칭송과 경배는 후천까지도 자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교총화에서도 조선시대에는 세종이후에 성인(성군)이 나오지 않았다라고 까지 세종을 칭송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시대든 명암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세종시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종의 실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수령고소금지법’이었다.
이는 백성의 큰 반발을 샀다.
애민 군주로 알려진 세종이 왜 이런 법을 고수했 던 것일까?
그것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세종실록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근래 정신들이 다 말하기를 ‘지금 부민들이 수령을 기탄없이 고소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하는데 예전에 태종께서 낙천정에 행차하셨을 때 허판서가 이 계책을 진술하자 태종께서 아름답다고 칭찬하기를 마지아니하셨는데 나 역시 이 뜻을 심히 아름답게 여겨 이민들이 다시는 수령을 고소하지 못하게 하였다 [세종실록 5년 6월 23일]
어떤 뜻으로 든 간에 이 법의 실행은 여러 불만들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그런 불만들이 있을 때 백성 중 일부는 세종이 아닌 다른 왕을 꿈꾸기도 했다.
“만약 다른 분이 왕이라면....“
세종 6년(1424년) 3월 청주 호장 박광이 “양녕대군께서 즉위하셨으면 백성이 덕을 입을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다른 호장 곽절도 “양녕대군께서 즉위하셨으면 덕을 입을 수 있었을 터인데 즉위하지 못하셔서 덕을 입지 못한다”고 말한 사건들이 이를 말해준다.
양녕대군의 즉위를 바라는 듯한 발언이 잇따른 이유는 세종이 법제화한 수령고소금지법도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역모 외에는 어떠한 불법행위가 있어도 백성이 수령을 고소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었으니까 말이다. 지금의 현실로 대비해도 백성과의 소통이 어려운 잘못된 법인 것만은 확실하다.
세종은 어사 등을 파견해 수령의 불법행위를 경계하면 된다고 했지만 피해자의 고소권을 박탈한 악법은 백성을 괴롭혔다. 물의가 계속되자 세종 13년(1431) 의정부와 육조에서 수령고소금지법을 개정하자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세종은 “억울하고 원통한 것을 펴주지 않는 것이 어찌 정치하는 도리가 되겠는가”라며 “수령과 백성은 군신의 의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개정에 동의하였다. 한가지의 예를 통한 경우이지만 세종은 실정에 대해서 고쳐나갔으며 그의 수많은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하지만
세종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실정이 있다고 해서 그를 내리고 양녕대군이 통치했다면 어떠했을까?
그러면 우리가 한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고 백성은 우민이 되었을 것이며 지금 현재 우리는 IT강국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글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우리에게 적용해본다면 어떨까?
*우리에게 도전이 없다면 어떻게 진법과 난법을 가려낼 수 있을까? 상제님과 태모님의 말씀과 행적을 우리는 어디에서 알 수 있을까? (지금 다시 대순전경 등 과거 경전의 내용을 들어서 도전을 왜곡하는 무리들이 있다. 우숩지도 않다.)
*우리에게 환단고기가 없다면 어떻게 우리민족의 뿌리를 되찾을 수 있으며 개벽후 전 세계 인류에게 올라른 선천역사를 알리고 상제님이 수천년년 만년 함께 역사하셨음을 증거할 수 있을까? (상제님께서 약국을 여실 때 역사서인 통감을 두신 이유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10여년간 이어져 오고 있는 7개국어 이상의 외국어 도전 작업을 통해서 세계화를 이루어내는 작업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태사부님,사부님의 강력한 추진과 전국 신도의 혈성과 열정적인 활동으로 이루어진 방송국 송출이 없었다면 우리는 개벽기에 전국에 알릴 수 있는 네트워크 망 하나 없이.. 그에 대한 기술력이 없이 어떻게 많은 사람들을 통제하고 살릴 수 있을 것인가?
*평생을 태사부님 곁을 떠나본 적이 없는 분이 태사부님의 십법과 남기신 가르침을 받들 수 있지 그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는가?
우리들의 지도자님께서도 물론 실정을 하실 수 있다. 인사를 잘못해서 잘못뽑은 책임자로 인해 도장이 발전되지 않고 퇴보한 곳도 있을 수 있다. 잘못된 정책으로 돈을 허공에 날려버렸을 수도 있다. 잘못된 책임자가 나와서 방만하게 운영할 수 도 있다. 도문 사이트도 잘못 고쳐져서 소통이 불통되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 우리는 누구도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종통속에서 내부 개혁과 혁신(Innovation)을 통해서 풀어나가면 되는 것이다. 거백옥이 50년에 49년동안의 그름을 깨닫고 60년에 59년동안의 그릇됨을 깨닫고 매년 고쳐나가듯이 상제님 도수 그대로 그렇게 거듭거듭 고쳐나가면 되는 것이다.
상제님은 세운을 바둑판 씨름판에 도운을 노름판에 붙이셨다. 그 노름판이 무엇인가?
노름은 잃을때가 있고 딸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상제님께서는 도수로써 돈을 잃고 또 잃고 또 잃고 계속 잃게 하신 것 아닌가?
이번 판에도 잃고 다음 판에도 잃고 조금 땄다가 확 다 잃어버리고 .. 그리고 나중에 개평을 얻어서 회복하는 것 아닌가?
개평을 얻기 전어 회복하기 직전에 판을 떠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빈털터리 아닌가?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 아닌가?
천지성공의 목전에 거꾸러지는 사람들이 있다.
있을 수도 없는 사탕발림에 놀아나서 말이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첫댓글 짱이에요
와우~ 읽을수록 지당하신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