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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푹!
유난히도 차가운 빛을 발하는 금침이 죽은 듯 미동도 없는 사내의 거궐혈에 깊숙히 박혀들고 있었다. 또 하나의 금침이 세월의 잔상이 그어진 주름진 손길에 의해 인체의 사혈을 일정한 간격 속에서 파고들고 있었다.
금침은 계속해서 사내의 주요 혈도에 박혀들고 있었다.
한약 냄새가 매캐하게 풍겨 오는 것으로 보아 환자를 치료하는 진료실이 분명한데, 그 진료실 중앙에 놓여 있는 하얀 침상 위에는 지금 한 사람이 길게 누워 있었다.
전신을 알몸 그대로 내놓은 채 숨결조차 이미 박동을 멈춰버린 듯한 고요 속에 왠지 모르게 죽음의 기운까지 느껴졌다.
전신의 어느 한 구석도 성한 곳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처참하게 찢겨있는 인영은 바로 자천릉이었다.
신비의 고수 꽃바람과의 결투에서 회생불능의 중상을 입은 그가 이곳에 시신처럼 누워있는 것이다.
푹!
또 하나의 금침은 서슴없이 자천릉의 사혈에 박혀들고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창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자륭극. 이 친구야! 그대가 이리도 우매한 사람이였던가? 노부가 이 아이를 맨 처음 보았을 때 그토록 당부를 했건만."
한 방울의 땀방울이 노인의 손등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 아이에게 내공을 쌓게하여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도대체 어떤 일에 이 아이의 힘이 그토록 절실하게 필요했단 말인가?"
말을 이으면서도 쉴새없이 자천릉의 몸에 금침을 꽂고 있는 노인의 음성에는 고뇌에 가득차 있었다.
헤질 대로 헤져 색깔을 구분할 수 없으리만큼 허름한 장삼을 걸치고 있었다. 그러나 용모만은 선비처럼 청수하고 깨끗한 팔순노인이었다.
헌데 이 노인의 신분이 무엇이기에 천년관부의 제일고수라는 휘호를 가슴에 안았던 자륭극을 친구라 부르는가?
거대한 금합에 들어있던 금침들이 계속해서 자천릉의 전신에 옮겨지며 그의 삼백육십대혈에 박혀들고 있었다.
헌데 그때 노인의 손에서 자천릉의 몸에 꽂히던 금침하나가 벼락처럼 퉁겨나오는가 싶더니 연달아 지금까지 꽂아놓은 금침들이 모조리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노인의 전신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허헛! 이 아이의 몸 안에 얼마나 많은 내공과 염력이 잠재되어 있기에 천치금침(天治金針)들이 모조리 튀어나오는 것일까?'
잠시 자천릉의 전신을 면밀하게 살펴보던 노인의 눈에 순간적으로 결연한 그 무엇이 스쳐가며 천천히 쌍장을 모았다.
"하는 수 없구나. 내 스스로 정한 금기(禁忌)를 깨뜨리는 수밖에. 그 길만이 이 아이를 살릴 수 있는 길이다."
노인의 가지런히 모아져 있던 쌍수가 천천히 자천릉을 향해 쭈욱 뻗어졌다.
파파팟!
그의 손 안에서 수많은 금침들이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여섯 자 공간 사이를 완전히 메우고 비수처럼 날던 금침들은 일제히 자천릉의 전신대혈에 박혀들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노인의 얼굴에 한 가닥 미소가 서서히 피어올랐다.
"이제야 천치금침이 들어가는군. 그럼 그렇지. 헛, 이럴 수가?"
노인의 청수한 얼굴에 드리워졌던 미소는 급격히 사라지고 자천릉을 응시하고 있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자천릉의 전신대혈에 박혀있던 금침들이 또다시 무형의 기운에 의해 서서히 밀려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믿을 수 없다. 이 아이의 내력과 염력이 육갑자에 달하는 나의 십이 성의 공력을 밀어 내버리다니!"
그는 처음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오랜 시간을 두고 자천릉의 전신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문득 자천릉의 전신대혈을 살핀 노인의 얼굴에 한 가닥의 확신이 굳어졌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이 아이의 몸에 잠재되어 있는 더 이상 증진될 수 없으리 만큼 강한 염력과 무궁무진한 내공이 한 순간의 충격에 의해 폭발은 했으나 지금 외부의 물질의 힘이 들어오자 내공과 염력이 합해지며 외부로 튕겨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눈에 기쁨의 빛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 이 천치금침을 팔만사천모공에 박아넣어 천치초정금침대법(天治超靜金針大法)을 펼친다면 두 가지 기운을 하나로 합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노인이 자천릉의 석 자 앞에서 천천히 가부좌를 틀었다. 뒤이어 나직한 음성을 흘러냈다.
"비아야. 너는 지금부터 최대의 공력을 돋우어 이 사부의 명문혈로 주입시켜라."
그 순간 노인의 등 뒤로부터 아주 거북하고 탁한 음성이 들려왔다.
"훗, 사부님. 오늘은 이 흑나비가 몰랐던 일들을 많이 알게 되는군요. 사부님께서 흥분을 다하시고... 남을 탓하시는가 하면... 더욱이 사부님의 금기까지 스스로 깨뜨리며 그 사내를 구하시려 하다니."
노인의 뒤에는 언제부터인가 창가에서 한 명의 흑포철립인이 조심스럽게 자그만한 화병에 꽃을 꽂고 있었다.
약간 헐렁하게 느껴지는 흑포에 턱 밑까지 내려 온 철립을 무겁게 눌러쓰고 있으며 드러난 손과 목에는 흰 천이 감겨져 있어 왠지 모를 섬뜩한 사기가 드리워진 인물.
그의 전신에서는 늪지에서 먹이를 노려 보고 있는 한 마리 굶주린 독사같은 비정한 살기가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거기에 한 여름에 정열적으로 피어나는 한 송이의 붉디 붉은 장미화가 그의 가슴에 반듯하게 꽂혀있어 지독히도 특이한 내음을 풍기고 있었다. 무엇 때문일까? 그의 가슴에 꽂혀 있는 그 화사하고 아름다운 장미화가 붉은 피를 연상케 하는 것은....
그는 하나의 옥병에 꽃꽂이를 하며 양철 긁는 소리를 무심하게 토해냈다.
"대체 사부님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시는 그 자의 정체가 몹시도 궁금하군요."
노인의 고매한 얼굴 위로 한 가닥의 노기가 떠올랐다.
"비아야. 시간이 없다! 어서 내공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이 사부에게 주입토록 해라. 이 아이는 이 드넓은 천하에 단 하나뿐인 나의 생사지기의 아들. 이 아이가 노부를 찾은 이상, 더욱이 상처를 지닌 채 나를 찾아온 이상 그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이 아이 만큼은 살려내야 한다. 설사 나의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대체 이 노인의 신분이 무엇이기에 자천릉에게 친구의 아들이라 칭하며 염력과 내공이 체내에서 부닥쳐 결코 회생할 수 없는 자천릉을 살리겠다고 하는가?
노인이 다시 무겁게 입을 열었다.
"비아야. 너는 모른다. 이 사부와 자륭극 그 친구와의 관계를. 그는 노부 사공역을 한 번 죽음 직전에서 구해 준 적이 있다."
- 천치의성 사공역.
천하에 그가 못 고치는 병은 있을 수 없고 죽어서 입관하는 송장이라도 그의 앞에 내려놓으면 다음날 아침에 버젓이 밥상 앞에서 볼 수 있다는 천하제일의 의성.
모든 보장된 권세와 영화의 호사스러움을 헌신짝처럼 내동댕이 치고 나환자들의 섬인 부나비도로 뛰어들어 나병환자들을 치료하는 어둠 속의 성자로 또한 의원으로서 천하칠패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아득한 옛날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자륭극이 핏덩이의 자천릉을 그의 앞에 데려 왔을 때 무공을 익혀서는 안된다고 극구 당부를 했던 장본인이기도 했다.
허면 자천릉이 누워있는 이곳은 부나비도란 말인가?
흑나비라는 철립인은 지극히 사이한 기운을 풍기며 천천히 사공역의 뒤로 다가왔다.
"이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습니다. 천하에 누가 있어 사부님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으며, 또 사부님보다 무학이 고강한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까?"
"......."
"제가 아는 사부님은 최소한 곤오풍우나 자륭극에 비해 결코 하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제자를 기른 것은 바로 사부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의미가 함축된 흑나비의 말이었다. 사공역은 앉은 자세 그대로 무엇인가를 감추려는 듯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이제 그만 됐다. 지금 중요한 것은 네가 이 사부의 몸에 내력을 주입시키는 것이지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알겠습니다."
지독히도 비정한 한이 스물거리는 음성과 함께 흑나비는 사공역의 명문혈에 붕대로 칭칭 감겨진 손을 올려 놓았다.
"이 제자는 오늘 정말 굉장한 부자(父子)의 이야기를 듣게 된 셈입니다. 아버지는 사부님을 구했고 그의 아들은 내공이 너무 강해 사부님과 이 제자가 합공을 해야만이 겨우 천치초정금침대법을 펼칠 수가 있으니 말입니다."
흑나비의 의문 어린 음성에도 불구하고 사공역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는 이미 전신의 내력을 극한으로 끌어 올린 채 평생 자신의 금기로 삼아왔던 천치초정금침대법을 펼치기 위해 한 곳으로 정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하늘이라도 고칠 수 있다는 사공역의 비기가 드디어 자천릉을 향해 펼쳐지려는 순간이었다.
선천적으로 초상감각을 타고난 염력의 힘과 무궁무진한 후천적인 힘이라는 내공을 하나로 합일하려는 대역사의 시작은 바로 부나비도의 어느 의축(醫築)의 실내에서 행해지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자천릉은 여전히 의축내의 침상에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한약내음이 물컹하게 풍기는 방 안에 지금 두 사람만이 침상 위의 자천릉을 긴장감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자천릉의 파리하던 안색에는 이 순간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오랜 가사상태에서 깨어나고 있는 듯 화색이 몸 전체로 번지며 오랜 산고를 겪은 산모처럼 내재된 힘이 하나로 융합되는 고통을 겪고 있는 듯했다.
그때 사공역은 더없이 인자한 모습으로 자천릉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자애스러운 음성을 흘러냈다.
"허허헛, 그놈. 지아비를 닮아 용모가 수려하구나."
미소를 드리운 얼굴로 사랑스러운 손자를 대하듯이 사공역은 자천릉의 몸을 툭툭 매만졌다.
"자, 이제 어서 눈을 떠라. 네가 눈을 뜨는 순간부터 다시는 네 몸에 흠집 따위가 생겨 이 사공역을 찾는 날은 없을 것이다."
사공역의 얼굴에는 미소가 드리워진 채 꺼져들 줄을 몰랐다.
"허헛, 왜냐하면 너는 이 사공역이 평생의 의술을 다해 이제껏 그 누구도 이룩할 수 없었던 초상감각, 그 신비의 힘이라는 염력과 후천적으로 길러진 너의 무궁무진한 내력을 일치시켜 너의 내공이 어느 정도이며, 그 힘이 얼마만한 위력을 함유하고 있는지는 노부조차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허나 단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사공역의 따뜻한 손길은 자천릉의 몸에 흐르는 땀방울을 씻어내고 있었다.
"이제 하늘이라도 너의 죽음을 넘보지 못할 정도로 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과연 전설로만 존재해 온 만황의 신화가 신화가 아닌 현실이 될지는 노부도 모른다. 허허헛!"
자천릉은 드디어 무한한 시공을 초월하여 완성된 것인가?
중원무림사상 무수한 영웅과 호걸들이 이 만황이라는 칭호를 놓고 뼈를 깎아내리는 고련을 거쳤으되 그 누구도 완성할 수 없었던 만황의 경지를 바로 자천릉이 해냈단 말인가?
"허허헛. 릉아야, 너는 모르겠지만 천릉이라는 이름은 기실 노부가 지은 것이란다."
사공역은 쉬지 않고 자천릉의 전신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말이다. 얼마 전에 이 노부가 의문스럽게 여겼던 단점들은 이제와 생각하니 틀린 것이었다. 분명 그는 나를 알고 있기에 자식의 생명을 걸고 이런 어려운 도박을 한 것이다."
담담하게 흘러나오는 사공역의 독백에는 기실 놀라운 의미가 깃들어 있었다. 분명 오 년 전 해란주에서 자륭극은 자천릉의 몸에 염력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천릉이 내공을 익히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일 터, 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천릉이 이방십칠인에게 내공을 배우는 것을 알면서도 방관만 하고 있었다.
그는 왜 자천릉의 목숨이 걸린 중대사조차도 외면을 했으며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죽었으되 많은 의문을 남겨 놓았을까?
그때 자천릉의 눈꺼풀이 천년거암이 밀려가듯 무겁게 뜨여지며 현요로운 광채를 발산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자천릉을 응시하며 사공역은 만면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릉아야. 노부를 알아 보겠느냐?"
자천릉은 의아스러운 듯 검미를 모으며 사공역을 응시했다.
"그대는?"
"허허헛, 너는 노부가 누구인가를 밝혀도 모를 것이다. 네가 꼭 세 살 되던 해에 나를 만났단다. 노부는 그때 만난 너의 부친의 친구인 천치라고 한단다."
"천치? 그렇다면... 이곳은 부나비도!"
자천릉의 눈에 순간적으로 경악의 빛이 스쳐갔다.
"허허헛, 그렇단다. 너는 하늘의 운을 타고난 아이다. 너는 누군가와 무서운 사투를 벌여 전신에 성한 곳이라고는 단 한군데도 없이 나룻배에 실려 이곳에 도착했더구나. 정신을 잃은 채."
자천릉의 뇌리로 얼마 전에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갔다.
'그래, 꽃바람! 그자의 실체가 보이지 않아 환영술을 깨고 그자의 목을 치는 순간에 뭔가 알 수 없는 엄청난 충격에 의해서 나는 혼절하고 말았었지.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내가 조각배를 잡았다는 것 뿐이었다!'
자천릉이 그렇게 지나간 기억을 새삼스럽게 더듬거리고 있을 때 사공역은 미소를 지은 채 자천릉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허헛, 이제는 모두가 지나간 부질없는 일들이다. 너 또한 병장기를 지닌 것으로 보아 너의 부친과 마찬가지로 무인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 무인은 너무 많은 생각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란다."
자천릉은 문득 기억 속에서 아련한 옛날 그 어느 때의 한 사람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래... 이 음성은 어디선가, 아주 먼 오랜 옛날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자애롭던 그 음성이다. 나를 꼭 안아주며 너털웃음을 짓던... 그 웃음! 헌데 아버님의 친구?'
자천릉은 자륭극의 친구라는 얘기에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아버님을 대신해 자천릉이 사공숙부님께 인사 올립니다."
늙어 가는 사공역의 주름진 얼굴 언저리로 구름을 헤치고 떠오르는 햇살처럼 따뜻한 미소가 드러났다.
"허허헛, 그 놈. 그래, 그래 좋구나. 이 사공역이 십 사 년 전에 헤어졌던 친구의 아들에게 예를 받는다는 것도 기분이 괜찮구나."
문득 깊숙히 예를 취하고 있던 자천릉이 더욱 허리를 꺾으며 슬픔이 스며든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사공숙부. 아버님은... 이미 타계하셨습니다."
사공역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자애로운 미소가 한 순간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의 휩뜨여진 눈에는 경악이 가득하였다.
"무, 무슨 말이냐? 릉아야, 너의 아버지가 타계하셨다니!"
사공역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이였기에 그가 받은 충격 또한 컸으리라. 자천릉은 허리를 숙이고 있는 자세 그대로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아버님께서는...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태대각인 곤오풍우에게 그만."
일순 사공역의 얼굴 가득 의문의 빛이 떠올랐다.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태대각 곤오풍우를 말하는 것이냐?"
"예!"
순간 놀랍게도 사공역의 입술 사이로는 의미심장한 너털웃음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허허허! 됐다. 좋아! 그만한 일이라면 안심을 해도 무방하다. 그자 정도라면 절대로 너의 부친을 죽일 수 없다. 절대로!"
자천릉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사공역의 태도에 의문 어린 시선으로 사공역을 바라보았다.
"허허허, 노부가 아는 너의 부친은 천하에 그 어떠한 고수의 손에 패하여 죽을 사람이 아니다. 그 친구의 무예 정도는 이 천하에서 노부처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부가 지금 너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는 결코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 살아 계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천하에 너의 아버지를 죽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있다면 단 한 사람 바로 자기 자신 뿐이다."
자천릉은 고개를 가볍게 가로 저으며 부정의 빛을 내보였다.
"아버님께서도 사공숙부와 똑같은 말씀을 소자에게 한 적이 있습니다. 허나 저는 곤오풍우 그자의 입에서 직접 들은 말입니다."
백마성에서 있었던 백마회의에서 곤오풍우는 자륭극의 독문병기인 여왕은산을 내보이며 말하지 않았던가?
그때 자천릉은 곤오풍우의 손에 들려있는 여왕은산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릉아야. 너는 너의 아버지의 말보다도 곤오풍우의 말을 더 믿느냐?"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됐다. 너의 아버지 말은 사실이다."
단정하듯이 그런 한 마디의 의미있는 말을 남기고 사공역은 자천릉의 말문을 막았다.
"그리고 너는 일 각 전에 겨우 회복된 환자다. 이 부나비도의 서낭당은 공기가 맑고 경치가 볼만하니 바람이나 쏘이고 오너라."
자천릉은 무엇인가를 감춘 채 미소를 짓고 있는 그에게서 더이상의 말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서서히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문득 저만큼 사라져 가는 자천릉을 바라보는 사공역은 신비한 미소를 머금었다.
'허허헛, 그 친구가 또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 모양이군. 그래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아들에게 모험을 무릅쓰고 도박을 한 것이다.'
무슨 뜻일까? 그는 자륭극의 죽음과 연관된 또 하나의 천하가 모르는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일까?
의문과 만황이 새롭게 탄생된 곳, 여기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문둥이의 섬. 육천마을 중 하나인 부나비도였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즐감
감사함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