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미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 뛰어난 자 되기 원합니다!" 느헤미야 7장
어제는 얼마 전 출소한 "담장 안 식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교회를 가고 싶은데 어떤 교회를 가야 할지..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아마 그 형제님은 담장 안에 있을 때 예수님을 만나서 영접한 형제인 것 같다. 다니던 교회가 없는 것을 보니 말이다.
일단 그 형제 사는 동네가 어디인지 물어보고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를 좀 알아보았다. 감사하게도 내가 교회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분이 아주 빠르게 교회를 알아봐 주고 그리고 이 형제님을 안내해 줄 교역자 연락처도 알아봐 주었다.
그래서 그 형제님은 주일날 안내 받은 교회로 갈 수 있었고 교회에서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시간을 가졌다고 나에게 교회에서 찍은 사진도 보내 주었다.
직장이 있냐고 물어 보니 없다고 해서 프리즌 리바이벌 대표님과도 연결을 시켜 드렸다.
"담장 안"에서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 출소를 하고 이 사회로 나오게 되었을 때 어떻게 "사회생활"에 적응을 할 수 있는지는 도전적인 일이 아닐 수 없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 형제님은 이전에 조폭 출신이었다고 나에게 말해 주었다. 이제 다시는 담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게 될 터인데 이 형제님의 새로운 삶과 살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기도를 하게 된다. 이 형제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많은 "담장 안의 내 묵상 식구"들이 출소를 하게 될 것이다.
내 담장 안 식구들 중에는 무기수들과 사형수들도 있지만 그래도 10년 안에 징역을 마치고 사회로 나올 "담장 안 식구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 이들이 담장 밖으로 나오고 난 다음 사회 생활의 새로운 적응에 대해서도 미리 중보기하시는 분들이 기도를 많이 심어놓아야 할 부분이구나..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누구라도 하나님 눈에 소중하지 않은 하나님의 자녀가 있을까?
어제는 수원에 있는 "제자로교회"에서 부흥 집회 첫날 설교를 했는데 내가 이렇게 내 묵상에 내가 집회 하는 교회의 이름을 올려서인지 나의 "최고의 날 묵상" 읽는 식구들이 내가 설교하는 곳에 오시는 분들이 종 종 있다.
어제도 그렇게 오신 "묵상 식구"들이 있어 한 분 한 분 모두 다 기도 해 드렸다.
"제자로 교회" 교인들도 기도 받고 싶다고 해서 한 사람 사람 계속 기도 해 드렸는데 담임목사님이 계속 나에게 미안해하신다. 내가 피곤하다고 생각하셔서인 것 같다. 내가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다.
집회 다닐 때 설교만 딱 하고 집에 돌아가면 나의 육체가 편한 것은 사실이나.. 내가 조금 더 피곤해도 기도 한 사람이라도 더 해주면 그 기도 받는 사람은 큰 힘과 위로를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제도 기도 받은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울기에 마음이 아프고 눌린 사람들이 참 많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나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은 내가 이런 글을 묵상에 안 올리기를 원하는 것 같다. 이런 글 올리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피곤(?) 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 때문인 것 같다. 내 카톡 아이디는 내 묵상 읽는 모든 분들에게 이미 공개되어 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시도 때도 없이 문자를 넣을는지 많은 사람들은 이미 알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충언(?)을 지금까지 한두 번 들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을 짧게라도 상담해 주고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을 기도 해 준다.
그야말로 일면식 없는 사람들의 부탁을 한두 번 들어 주었겠는가?
나도 안다. 내가 이렇게 살면 얼마나 피곤한 삶인가.. 하는 것을..
그러나? 이러한 시간들이 나로서는 단지 조금 더 피곤하고 힘든 시간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시간이 생사를 결정하는 시간일 때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조금 더 피곤하고 조금 더 힘든 것을 감수해 낸다.
그리고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죽을 것 같이 힘들고 피곤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사람들의 이런저런 부탁을 다 들어주는 사람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나의 한계이다. 그리고 그 한계점은 주님이 알려 주신다.
하여튼 어제는 아침부터 설교도 열심히 하고 상담도 하고 기도 사역도 잘 마쳤다.
지금은 새벽 1시.. 아직도 잠 안 자고 있다 ㅎㅎㅎ 커피 잘 안 마시는데 커피 좀 마셨더니 이 새벽 말똥말똥 잠이 안 온다. ㅎㅎ
그래서 일찌감치 묵상하고 있다. 이러면 오늘은 새벽 4시에 안 일어나도 된다. 잠 좀 더 자려고 한다. ^^ 오우!!~ 이 유도리 있는 나의 생활 패턴 감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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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느헤미야 7장
2.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
I put in charge of Jerusalem my brother Hanani, along with Hananiah the commander of the citadel, because he was a man of integrity and feared God more than most people do.
하나냐라는 사람의 성경적인 묘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그는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한다. 한국말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나와 있는데 영어로는 "a man of integrity" 라고 나와 있다.
여기에 integrity라는 단어의 정의가 생각난다.
한국말로는 "고결, 성결, 흠 없음" 이렇게 설명되어 있기도 한 단어이다.
영어로 된 정의를 보면 "Who are you when no one looks at you? What do you watch when no one looks at you? What do you think when no one looks at you?"
한국말로 이 말을 번역한다면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당신은 무엇을 봅니까?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아무도 보지 않을 때의 나 자신을 영어로는 integrity라는 말의 정의라고 설명을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코람데오"가 아닌가 한다. "하나님 앞에서의 삶! 코람데오!"
하나냐라는 사람은 그러니 겉이나 속이나 똑같은 사람이었고 위선이 없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고 신실한 자의 삶의 본보기로 하나냐라는 사람이 인정 받았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인가?
하나냐는 그렇게 코람데오를 살아가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 뛰어난 자라는 인정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리"라 함은 많은 사람을 뜻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해도 그 무리 가운데 더더욱 뛰어나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받는 인정! 우와! 엄청 멋진 인정이라고 생각된다.
나도 주님이 "유니스야 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고 나를 경외한다 하지만 그 많은 무리들 보다 너는 나를 더 사랑하고 더 경외하는 것을 내가 알지!" 이렇게 말씀하시면? ㅎㅎㅎㅎ
행복 자체이겠지요? 할렐루야!
주님 저를 이렇게 여겨 주시면 저는 정말 좋겠어요! 아직 그렇게 인정 받지 못했다면? 더 열심히 주님 사랑하기를 힘쓰고 싶어요 ^^
율법에 매여서 힘씀이 아니라 사랑에 매인 자로서 힘쓰기를 소원합니다.
오늘은 "제자로교회" 이틀째 부흥회 설교입니다.
"십자가의 신앙과 부활의 신앙"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할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부활 승리"의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성령님 저를 도와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
외울 말씀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 (느헤미야 7장 2절 b)
작정서 점수: 주일은 쉽니다 ^^
💕 사랑하는 그대여 💕 2024. 5. 20.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셔야죠?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오늘도 하나님께서 그대를 이렇게 불러주십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 ( ) 야!" "사랑하는 내 딸 ( ) 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거 다 알고 있는데요. 누가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 우리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의 소원이 "하나님~ 사랑 많이 받고 싶어요." 이것만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 나는 하나님을 정말로 많이 많이 사랑하고 싶어요. 다른 무리들보다 뛰어나게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싶어요."
그런 마음속의 소원 그런 기도는 없을까요?
저는 그런 소원 그런 기도 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면 더 사랑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어떻게 .... 또 울~컥하네요. 주님을 더 기쁘게 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지만 나는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면 정말 좋겠다 그런 생각도 하고요.
제가 이전에 축구 선수 항상 그 이름은 까먹지만... 또 까먹었다 그죠? 축구 선수 있습니다. 그 축구 선수한테 "어떻게 그렇게 축구를 잘하냐?"고 했더니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나는 둘이 있으면 축구 이야기를 하고 혼자 있으면 축구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을까? 제가 그 축구 선수의 고백을 생각해 보면
"둘이 있으면 하나님 이야기를 하고 혼자 있으면 하나님 생각을 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오늘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하나님 생각하고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둘이 있을 때 하나님이 이야기하는 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