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플러
이서하
“…성실한 사람의 일상이 꽂혀 있다
최후의 일이라는 듯
철은 그것들을 지나 산책한다.”
1.
공원을 배회하는 것은 누구의 환영인가
천변을 건너면 공장이 있고
다 자란 아이들이 있고
세계의 식탁에는 아침과 빵이 있지
접시 위로 잠든 부모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나의 미래는 평평한가?
개는 평화롭게 잠든 주인의 손등을 핥는다
2.
물의 섬에는 작은 바다가 살고
파도에 쓸린 해안 절벽은
애인의 등처럼 세계에서 유린된 것
여기서 떨어져도 죽지 않아
수면 위로 미끄러지던 검은 눈동자는
물의 형상을 닮아 파란 멍이 들었다
3.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의 오랜 투석과
지켜보는 자의 슬픔은 스스로의 것이고
우리는 서로의 증오심을 이해할 수 없기에 견딜 수 있다
내일을 기다리는 죽음의 연계는 살기 위해 필요한 의사의 처방만큼 간단한 것이었다
희망은 언제나 가장 단편적인 이미지로 남았다 한 사람이 두 사람의 소원을 모아 세 사람의 생활을 대신하던 상상은 미래에 대한 환멸로 각자에게 주어졌고
그 이미지 속에서 자신을 찾던 우리는 서로 틀리지 않았다
4.
오래된 식사보다 권태로운 사랑을
지켜보는 동안 접시를 비웠다
유리잔이 강물처럼 넘치고 있어
입 안에 네 몸을 가지런히 두었다 우리의 피가 흐른다
역사에도 가정이 있다면
나의 말은 곧 네게로 향할 것이고 네 말에 답하는 이것은 사랑인가 사랑의 폭력인가
5.
실로 우리를 엮고 있는 것 또한 우리의 살이고
—이것은 철의 일이기도 하다
철은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지극히 어느 한 점에서
바늘의 방식으로
작은 쇳덩이가 온몸을 찍어 누르는 상상의 고통에서 깨어나 그들은 소중하고 소중한 사랑에 대해 지성에 대해* 어느 날의 젊음과 신념을 이야기하며 공장으로 향하는 이 길은 어제도 걸어온 길이고, 옆을 돌아보면 진실로 어제와는 다른 우리의 모습이 걸어가고
* 사뮈엘 베케트『이름 붙일 수 없는 자』
—《시사사》2017년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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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하 / 1992년 경기도 양주 출생. 한양여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6년 〈한국경제〉청년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