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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이야기/ 정희 8 (完)
https://youtu.be/DNouyWhng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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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없는 죄수가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입원을 하고부터 정희는 말수가 부쩍 줄어 들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그녀는 불안해 하였다.
나는 그녀의 곁에 항상 붙어있지 않으면 안되었다.
" 너무 염려 말아요"
정희의 손에 에메랄드빛 낡은 묵주를 쥐어 주었다 .
"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은 언제나 우리를 지켜주실 테니까요"
여러가지 소소하고, 까다로운 검사들은 그녀를 더욱 지치게 하였다
그때마다 나는 정희의 보호자로, 남편으로 정희의 두려움을 막아주고 지켜주었다
" 혈액검사는 너무 아프고 무서워 "
수도 없이 바늘이 그녀를 찔렀건만 그때마다 매번 진저리를 치며 울상을 지었다
병실은 언제 보아도 우울하고 창백한 얼굴로 아내를 가둬두고 있었다
아내의 안색도 병실의 처럼 창백하게 변하고 있었다 .
그러나, 내일이면 이곳을 나갈 것이다
" 정희씨 . 고생했어요 . 이제 내일 MRI 촬영 한번만 더 하면 다시 양구로 갈 수 있어요 "
그녀는 나의 품에 머리를 묻었다
" 결과가 좋게 나오면 정말 좋겠어요 "
그녀는 아주 근심스럽게 나를 보았다.
" 걱정하지 말아요. 어떤 결과도 두려워하지
말아요. 어제도 그랬듯이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사랑하며 살면 될 뿐이예요.
당신에게는 내가 있잖아요 "
아내는 , 검진결과 보다 내일이면 병원을 탈출한다는 기대감에 더 기분이 부풀어지고 있었다
" 오 정현씨 . 아내 되시는 분이 체력적인 것은 많이 좋아졌지만 종양의 활동은 확실한 징후가 나타나지 않고 있어요.
특이하게도 이런 경우는 별로 없었어요
챠트에 나타나는 암세포는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았어요. 악성으로 발전될 만큼 의심되는 부분이 나타나요 .
여기 보이죠 !
이런 작은 점들 말이예요.
사진에는 좁쌀만한 점들이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기에 방사선치료를 할 수있는 상황도 아니구요.
확실치 않은 조직에 무조건 암치료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예요."
전신에 퍼져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미세한 조직을 일일이 검사를 할 수도 없다는 말이었다.
더우기 그것들을 제거한다는 것은 수술시 환자의 생명을 보장하지 못한다 하였다
지금으로는 조금 더 지켜보는게 좋겠다고 닥터 최는 차분하게 설명을 하여 주었다.
이 년이라는 시간을 넘도록 버틸수 있었던 이유가 암세포가 아니었다고 한다면 더 바랄나위가 없지만 , 암으로 변해서 갑자기 활동을 재개하면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고 하였다.
더 체력을 키우면서 면역을 높이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하는 소견을 말했다
나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아내의 몸속의 아직 변한것이 없다라는 것에 적잖히 실망을 하였지만 또한 포기할 이유도 없었다
더 열심히 아내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뿐.
기적같은 일이 우리에게 분명 오리라는 희망으로 살아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오 정현씨 . 처음 정현씨를 보고 두분이 깊이 사랑하는구나 한눈에 알수 있었어요.
뭐 느낌이랄까 ?
그런 사랑이 아직까지 정희씨의 생명을 끈을 이어주고 있었나 봐요 .
두 분의 이야기는 수연이에게 들었어요 .
감동적인 사랑의 모습을 말이예요.
저도 최선을 다해서 두분의 사랑을 지켜주고 싶어요 "
여의사는 의자에 앉아 애잔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의사라는 직업을 떠나서 그런 말을 해주는 닥터 최의 마음 씀씀이에 고마울 뿐이었다
" 혹시라도 정희씨에게 이상증세가 생기면 지체없이 병원으로 오세요. 그리고 통증이 심해지면 처방된 약을 투약하세요 "
처방전의약들을 한 품목. 한 품목에 동그라미를 그려넣고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 이건 일종의 마약이니까 통증을 완화시켜 줄 거예요 "
간절하게 바랬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녀를 더 아껴주고 지켜주라는 하늘의 뜻으로 생각했다.
🍀
병원을 나오면서 그녀는 마치 지옥이라도 벗어난냥 즐거워 하였다
" 여보 , 이제 날아갈 것만 같아요 . 호호호 "
정희는 마치 비늘을 반짝이며 퍼득거리는 새벽의 수산시장의 싱싱한 바다생선 같았다
꾀병을 부리고 그 댓가로 사탕하나를 얻어 먹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 정희씨 . 모처럼 서울에 왔는데 가보고 싶은 곳 없어요 ?"
금방 퇴원해서 지쳐있을 법한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었지만 기분을 알기에 무엇이라도 해 주고 싶었다.
환경이 주는 무력감에서 벗어날 때의 기분은
평소보다 그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 나 미술관 가고 싶어 "
나는 얼른 인터넷을 뒤졌다.
아내의 새끈거리는 숨결이 귓가에서 살아 맴돌았다.
" 그래, 아직 고흐전을 전시하고 있어요 . 어서 가 봅시다 .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마시구요 "
정희는 언제 병실에서 곤욕을 치루던 사람일까 싶게 즐거워하였다.
나는 운전대를 꺽고 서초동을 향해 힘차게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
산골로 돌아 온 후 닥터 최에게 연락이 왔다
다시 병원을 찾아 가야했지만 의사는 우리에게 최대한의 배려를 해주었다
" 여보 , 뭐래요 ?"
정희는 얼굴을 내게 바짝 붙히고 물었다.
" 응 . 많이 좋아졌대요 . 더 나쁜 균들이 활동하지 못하게 잘먹고 편안하게 지내래요 "
" 완전히 나은건 아니구 ?"
" 항암 치료를 해도 오년은 지나야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는데 당신은 아직 확실하게 진단결과가 안 나온대요 "
" 뭐 그런게 어디있어 ? . 요즘 의학이 얼마나 발달됐는데 "
" 응 그러니까 그 놈들 정체가 음성인지 아니면 숨어있는 양성 세포인지 확실하지가 않은가봐요.
지난번 수술때 암세포는 거의 제거했지만 그래도 아주 작은 녀석들이 남아 있대요. 그것들도 악성세포라 생각하고 치료를 포기했거든 .만일 그것까지 일일이 제거를 하려했다면 당신의 몸이 견디지 못했을거예요 "
" 도대체 모르겠어 . 내 몸안에서 벌어지는 알 수없는 전쟁에 주인인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 지금은 차분하게 지내면서 당신이 건강한 몸으로 바뀌면 그것들도 사라질거예요. "
" 무섭고 두려워 "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정희의 메마른 머릿카락을 쓰다듬으며
안아주었다
" 정희씨. 지금까지 우리 잘 해왔잖아요.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가요. "
아내는 나의 가슴을 더 파고 들었다 .
다시 겨울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었다.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산중 생활에 익숙해졌다는 것뿐이다
캐온 약초를 인터넷과 약초도감을 뒤지며 구별해 낸다든지 하는 일은 이제는 쉬운 일이 되었고 ,
발길에 채이는 풀들의 숨소리까지 느낄 만큼 되었다
하루는 혼자 산을 오르다 미끌어지는 통에 숲이 우거진 곳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곳은 최전방이 가까워서 누구도 접근하기 어려운 험난한 지역이었다
소문에 범이 출몰한다는 말도 들었지만 인적이 없는 깊은 곳을 가보고 싶었다
다행히 아무곳도 다치지 않았지만 놀라운 일은 내가 떨어진 주위가 산삼밭이었다 .
산삼의 알싸한 향기가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믿을 수 없을 상황이었지만 하늘이 나에게 베풀어 주신 선물이라 생각했다.
굴러 떨어질 때의 아픔도 잊은채 한뿌리 한 뿌리 정성을 기울여 캐는 손은 크게 떨리고 있었다
얼마나 캤는지 대략 서른 뿌리는 넘는것 같았다
산삼은 큰 배낭에 가득 차고도 넘쳤다
족히 40 ~ 50 년은 넘어보이는 산삼이었다 .
흥분이 되어 그 가파른 산길을 어떻게 내려왔는지 알수 없었다
" 여보 . 여보 . 이것 좀 보세요 "
거실 바닥에 우르르 쏟아지는 삼을 보고 아내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이게 웬거예요 ?"
자초지종을 말하자 그녀는 울먹거렸다
" 당신 다친데는 없어요 ?"
" 한군데도 없어요 "
나는 손을 가로 저었다
" 이건 하늘이 당신에게 보내는 선물이예요 ."
" 그래도 난 당신이 걱정되요. 처음부터 당신이 혼자 산에를 가면 늘 불안하기만 했어요. 이젠 그런 곳에 가지 말아요. "
" 괜찮아요 . 이젠 아주 익숙해졌거든요 "
" 당신 없으면 난 어떻게 해요 . 그러니 난 이런거 안 먹어도 좋으니 무리하기 없기예요 "
몇번이나 다시는 이런 행동을 않하기로 약조를 하고 아내를 달랠수가 있었다 .
그런데 아내는 그 산삼을 먹지않고 단골 손님에게 팔고 말았다 .
적지 않은 금액을 부르고 몇가지 귀한 버섯을 덤으로 주면서꺼지 팔고 말았다.
이곳까지 단숨에 달려온 중년의 사내였다
반평생을 자신을 위해 살아온 아내가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하였다.
비슷한 입장의 남자였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수 없었다
섭섭하기 이루 말할수 없었지만 다음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가 직접 다려서라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
입금된 통장을 보여주며 ' 당신 옷이라도 사야겠어요 ' 하며 생긋 웃는 모습에 부화가 나기는 커녕 속에서 울컥 슬픔이 솟구쳤다
나는 그 돈의 일부를 그녀의 어머니께 부치고 말았다.
" 산에서 사는 놈이 무슨 양복이람 쯧쯧 "
" 흥 . 고까짓꺼 팔았다고 삐지긴 "
산삼 사건은 서로를 더 알아가고 아껴주는
마음을 확인해 주었다
뜯어 온 산나물은 삶아서 말리고 . 약초는 약초대로 , 열매나 산과일은 효소를 만들어 낸다든지 산골에서의 일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다행이랄까 아내에게도 알맞는 일이 생겼다.
내가 만들어 놓은 물건들은 정희가 인터넷을 통해서 판매하였다
간병을 해주었던 그녀의 고객이 여기서도 고객이 되어 주었지만, 고객의 입소문으로
알음알음으로 이어지고, 재판매가 되면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큰 매출을 올렸다
그녀는 익숙하게 손님들을 대하고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즐겁게 일을 할때 사람은 건강해진다
그러면서도 간혹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조마조마한 근심의 꼬투리는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 오늘은 여기까지예요. 그만 "
아내가 지나치게 일에 몰두할라치면 나는 야박한 심정으로 가로 막지 않을 수 없었다.
우체국으로 상품을 보내고 돌아 오던 날 그녀는 개선장군이 되었다.
" 여보 ~ . 이것 봐요 "
통장을 전리품처럼 치켜들고 자랑스럽게 흔들어댔다
통장의 숫자가 부풀어 가면서 그녀의 희망도 부풀어 가기만 하였다 .
" 예전에 병원에서 일할때는 정말 지겨웠어요.
노인네들 짜증 받으며 똥오줌 갈아 주는게 사랑갖고만 안될 때 어디론가 가고 싶었는데,
이런 생활이 내게는 먼 남의 나라 이야기 같았는데 지금 자연 속에서 욕심없이 살아가게 된게 꿈만 같아요."
" 그래요 나도 이렇게 될지 생각도 못했지만 당신과 이렇게 지낼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 하지만 무리하는 건 안돼요, 절대 ."
병에 대한 위험으로 내게는 늘 조바심이
떠날 수 없었다
그렇게 약조를 받고서도 마음 안에는 늘 살얼음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내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매일 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 사랑해요 "
나는 운전석에 앉은채로 그녀를 끌어안고 키스를 하였다 .
" 어머 . 누가 봐요 "
그러면서 아내의 손은 나의 목을 파르르 감았다.
언제나 그렇듯 시장을 한바퀴 돌면서 필요한 것들을 사가지고 돌아오고 하였다 .
어느새 우리는 이미 읍내의 시장에서 금슬좋은 부부로 소문이 나고 있었다
산골로 이사온지도 사 년이란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
스스럼없이 마음을 열어 주는 그녀의 변화는 우리를 진정한 부부로 만들어 주었다 .
비록 아직 온전치 못한 그녀의 건강 상태였지만 우리는 자연 속에서 태초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고 있었다.
자연은 한 평생을 함께 살아온 부부의 모습처럼 변하게 만들어 주었고, 잃어 버렸던 그녀의 밝고 순수한 모습으로 , 예전의 아픔없던 시절로 되돌아 오고 있었다
겨울이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이른 첫눈이 내렸다.
주위는 온통 눈으로 덮혀 있었다 .
눈길 때문에 혼자 읍내로 내려가 탁송을 시키고 돌아왔다 .
자동차 타이어에 체인을 풀면서 집안을 바라보아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 . 정희씨 "
그러나 집안은 정적안에 멈춰서 있었다
" 정희씨 ~~."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날카롭게 스쳤다 .
침실로 뛰어 들어갔다.
어둠속에서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아내는 가느다란 숨결을 몰아쉬며 침대에 누워있었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 여 ~보 "
겨우 새어나오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 나 다녀왔어요 . 왜 그래요 ? "
깨끗한 수건에 차가운 물을 적셔 그녀의 이마에 올려 놓았다 .
손과 발도 차갑게 식혀 주었고, 온몸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약초 다린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몇 시간이 흐른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 미안해요 ."
" 그것봐 . 어젯밤 그만하라 할 때 그만 하지 "
나는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 말았다
" 어떻게 당신 혼자 일을 시켜요 "
아내는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았다.
화도 났지만 아내의 표정을 보니 애절한 그 마음에 속으로 울음을 삼킬수 밖에 없었다 "
" 앞으로는 무리하지 말아요 .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 "
벽난로 위에 덥혀둔 죽으로 겨우 저녁을 먹이고도 놀란 가슴은 가라앉지 않았다.
" 당신 울었어요 ?"
아직 미열이 남아 운신도 자유롭지못한 사람이
천연덕스레 물어 보고 있었다.
" 그래 . 울었다."
며칠동안 주문이 밀려서 쉬지않고 무리하게 배송작업에 매달린 여파가 그녀에게
밀어 닥친 것이었다.
자책감이 밀려왔다 .
" 다시는 . 다시는 . 아 . 바보같으니 "
아내에게 일을 시키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
골방의 촛불이 어둠 속에서 곧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버지를 여읜 어린 시절부터
삶은 그녀에게 고된 가시밭길이었고 .
사랑이라고 믿었던 남자에게 받은
깊은 상처에 헤어나지 못했던
절망과 나락의 날들과
여성의 상징.
어머니사랑의 원천인 가슴을
모두 내어주고 그것도 모자라
죽음 앞에서 떨고있는 여자.
그 여인이 제 아내입니다 .
이제 삶의 작은 기쁨 하나 겨우 찾아
초라한 촛불을 켰는데 .
죽음의 그림자
장막처럼 드리워진
이 어둠을 비껴가게 할 수는 없나요 !
하느님 .
두려운 시간을 조금만 뒤로 미루어 주소서.
당신의 축복
꽃잎 한 점으로 다가와
저희 사랑의 시간 안에서
오래오래 머무르게 하소서.
나는 안다 .
그분이 하시는 일들은 그 뜻을 알기에 인간의 생각으로는 부족하기만 하다는 것을 .....
정희가 먼저 떠난다해도 그 순간까지 사랑해야 하는 것이 나의 길이며 소명인 것을 .
🍀
늦은 여름 하늘엔 별들이 조용히 떠 있었다
아내는 잠들지 못하고 있다 .
지난 겨울, 그 일이 있고난 후
우리는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다시 봄이 오고 마당에 옥잠화 잎파리가 속살을 비추며 기지개를 피고 있었다
살구꽃이 다 떨어지고 햇살이 이마의 땀방울을 송글송글 맺게 하던 초여름부터
아내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때도 있었다.
" 여보, 괜찮아요 ?"
나의 근심스러운 표정을 보고는 정희는 힘없이 머리를 저었다 .
체온은 뜨겁지 않았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자동차에 며칠 묵을 옷과 필요한 여행물품을 챙겨 가방에 담았다 .
급히 끓인 죽으로 요기를 시키고 오그려 누워있는 아내를 안았다
아내의 맥박이 가느다랗게 전해져왔다
" 어디 가려구 ?"
" 응 . 서울 "
" 가지마 . 나 곧 일어날거 같아 "
" 아냐 . 지금 아니면 안될 것 같아"
" 여보 !"
아내는 마른 가지같은 손이 나의 얼굴로 향했다
" 여보 . 나 마지막 부탁이 있어요 "
숨소리보다 더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 나 여기서 있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
꺼져가는 눈빛은 남자의 가슴을 흔들고 있었다
" 다시는 서울로 가자는 말을 하지 말아요 .
제발 ..... "
간절한 부탁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평온한 눈빛으로 내게 전해주고 있었다
' 그래, 당신의 뜻이 무언지 알고 있어요.
평안하게 쉬어요.
나 당신 곁에 있으니 아무 염려 말아요 '
터져나오는 슬픔과 절망감에 나 역시 가라앉고 있었다.
우리의 사랑을 질투하듯이 암 세포는 다시 날카롭고 음험한 발톱으로 정희의 연약한 몸을 긁어대기 시작하였다 .
더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해야 한다
아내는 진통제의 약효보다 자신의 정신으로 스스로를 버텨 내고 있었다.
흔들 의자에 앉혀 종일 음악을 듣고 .
그 곁에서 책을 읽어 주거나 .
시를 들려주었다
저녁이면 따듯한 물에
아내의 발을 담그고 정성껏 만져주었다
앙상하게 뼈가 비춰보이는 발.
자라난 발톱을 깍아 주었다
" 몸은 자꾸 스러질 것 같은데 웬 발톱은 그렇게 자라는지 ...."
정희는 아주 작은 소리로 내게 말했다
" 살려고 하는 거야 "
물끄러니 나를 바라보는 정희의 얼굴에는
잔잔한 평화의 빛이 서리고 있었다 .
나는 아내의 발가락에 키쓰를 하였다.
여윈 발목을 잡고 내 얼굴에 스며들듯 비벼대었다
아내는 긴 숨과 함께 편안한 잠에 빠졌다
" 그래. 염려 말아요 .다시는 병원에 가지 않을거예요 "
입맛이 없다는 아내에게 끼니만은 거르지 말자고 달랬다.
아침에 곰국을 끓였다
아내는 마지못해 몇 숟가락을 떴다.
보는 사람이 더 괴로웠다.
산골 선배에게 부탁을 하여 속초에서 생선을 구해 왔다 .
이런 나의 정성을 알아 주기나 한 것처럼
아내는 한결 밝아진 모습으로 차려주는 그릇들을 용케 비워주었다
" 고마워요. 여보."
아내는 나의 정성을 알아주기나 한듯 조금씩 자신의 몸을 가누기 시작하였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의 기도가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
끓어 오르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겨울날 같이 않 게 따듯한 날이었다
햇살이 길게 거실을 파고 들어 왔다
마룻 바닥에 환하게 햇살이 자기의 영역인냥 자리했다.
언제나처럼 안락의자에 두툼한 요를 깔았다
" 아니야 . 여보 ! 나 걷고 싶어 . 흙을 밟아 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
아내에게 두터운 외투를 입히고 우리는 개울물이 얼어있는 개울가로 내려 갔다.
" 어머 . 이것 보세요 . 얼음사이로 개울물이 흘러요. 흐르는 소리가 나나요 ?"
" 조그맣게 나는 것도 같고 "
아내의 가벼워진 몸이 휘청거렸다
팔을 둘러 겨드랑이 사이로 끼어주었다
밋밋한 가슴이 손에 닫았다.
" 정말 이곳에 오기를 잘했어요. 지금 내 몸이 마구 살아나는것 같아요 . 이제 봄이오면 푸른 잎새처럼 나도 다시 일어날 것 같아요"
" 그래요.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어요"
" 이번 봄에는 바닷가도 가보고 싶어요.
우리가 예전에 갔던 곳 호호 "
" 그럴께요. 그때보다 바다가 더 잘 보이는 방을 구해 놓을께요 "
" 고마워요 . 여보 "
개울가 햇살 고운 곳에 버들 강아지가 숨어 피어나고 있었다
아직 겨울은 멀었는데 이른 봄을 보여 주었다
햇살이 따듯해도 겨울은 겨울이었다
아내를 업었다 .
내 목을 감은 아내의 숨소리가 따듯했다
묵은 낙엽들이 밟히며 바스락거렸다.
아내는 등에 업혀 두둥실 하늘을 날고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아내에게는 보일 수 없었다.
작은 새보다 더 가벼운 아내의 무게였다.
아내는 잠깐의 산책조차 힘에 부쳤는지 돌아오자 이내 다시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내의 가느다란 숨소리가 평화로웠다
거실의 컴퓨터를 켰다.
한동안 닫혀 있던 홈페이지에 고객들이 보내온 쾌유를 빌어주는 격려의 글들이 줄을 이었다.
두 해가 넘도록 성원해 준 고객에게 정성껏 감사의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아내가 나아질 때까지 홈페이지를
닫을 수 밖에 없음을 고하였다
그들은 고객이 아닌 형제 자매 그리고 벗들이었다
고마운 마음을 어찌 다 전할 수 있을까만
진심 행복을 기원하는 인사를 남겼다
아내의 블러그를 열었다
틈틈이 올려 놓은 글들을 살펴 보았다
이곳으로 온 후 산골 생활을 일기 형식으로 적어 온 수필이었다
아니 수필이기 보다 시로 쓴 일기였다.
삶에 대한 조용한 열망과 자연 속에서 느낀 경외와 삶을 영위하게 해준 감사와 기쁨.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노동의 잔잔한 즐거움 . 이곳 사람들과의 따듯하고 정다운 일들을 그녀의 성품대로 차분하게 그려 놓았다.
남편이 되어버린 정현에 대한 진솔한 사랑.
어머니와 딸 . 그리고 용서를 청해야 할 아들에게 대한 편지와 자신의 아픔을 피맺힌 지난날의 고백도 있었다
한 편 한 편 프린터기로 인쇄를 했다.
편집을 하면 될 것 같았다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긴 겨울밤이 물러가고 알싸한 공기를 헤치며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제서야 피곤이 몰려 왔다
장작 몇개를 던져 넣고 아내가 잠든 침대로 들어갔다
아내는 잠결에도 나의 품을 파고 들었다.
" 당신은 나의 어떤 면이 좋았어요 ?"
" 간단히 말할게요 . 정희씨의 영혼이 맑아 보였어요. 맑은 사람을 만나면 내 마음도 정화되는 걸 느껴요. "
" 그게 다예요"
" 네. 그리고 솔직히 무조건 좋았어요.
당신과 함께하면 행복할 것 같았고 또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어요 "
" 피 ~ 거짓말 "
" 첫번째 데이트 신청할때 기억해요 ?
뮤지컬인가 티켓을 예매하고 난 후 당신에게 거절 당했을때 말이예요 "
" 호호 그랬나요 ?"
" 얼마나 놀랐는지 ! 의견도 안 묻고 일방적으로 하는 것에 실망했다고 카톡이며 전화까지 차단 시킨다는 말에 얼마나 놀랐는지 바로 통화를 했지요 ."
" 호호 그랬었나요 ? 기억이 안나요 호호호"
조금씩 차도가 나아진 아내는 웃고 떠들만큼 기운을 회복했다
그러면서 지나온 옛일을 이야기 해 주었다.
결혼 전부터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남편.
그 여자는 자기의 가장 친했던 친구였고
그런 관계를 자신만 몰랐다는 자괴감.
배신이 주는 분노. 상실 그리고 아들까지 데리고 가버린 아픔.
아빠를 안 따라가겠다고 울부짓던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 하루도 떠나지 않았던 날들
얼마 안되는 위자료로 시작한 장사.
결국 그마저 사기로 모두 날리고 빚까지 얹게 되었던 암흑같은 순간과
수연을 오빠네로 맡기고 갈 곳이 없어서
병원의 간병일을 하면서 지냈던 밤을 지냈고
남은 빚을 갚기위해서 쉴틈없이 일을 해야했던
날들.
한 푼 두 푼 모아서 작은 집이나 장만했던 날
모녀는 꺼이꺼이 울었다 했다.
그러나 가슴에 응어리진 과거는 풀어낼 수 없었다.
용서할 수 없는 인간이었지만 매일 눈에 밟히는 아이가 생각났고, 세월에 삭아가는 자신에게 이제 희망이란 것은 없다고 살아갈 때 거기서 만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노라고 이야기를 맺었다.
이만큼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임을 그녀는 처음부터 알아 보았다.
하지만 그 사랑을 받아 드릴 수는 없었다
희망이라든지 삶의 설계라든지 하는 것은 애초에 없었기 때문에 나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두렵고 죄를 짓는 것 같았다고 했다
한때는 약이 없으면 잠을 이룰 수 없었고
눈을 감고 잠이들면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랬던 때도 있었다
영원히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것이 유일하고 간절한 바람이었다고 했다
우울하고 눅눅한 나의 삶에 이 남자를 받아 드릴수는 없었다
나로 인해 남자가 불행해지지 않기를 바랬다.
여자에게는 그것이 남자에게 줄수 있는 유일한 사랑이라 생각했다.
" 여보 . 나 부탁 하나 들어줄 수 있어요 ?"
" 무슨 부탁인데요 "
" 으음 ~ 만일 내가 죽게되면 다시 서울로 돌아 가세요. 그리고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
아내는 차분하게 담담하게 냉정한 말투로 말했다.
" 진심 그렇게 해 주기를 바래요 ?"
여자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이었다
" 이 나이가 되도록 지금처럼 행복해 본 적이 없어요.
처음, 당신 만나고 세상에 이런 바보같은 남자도 있었나 싶었어요 .
내게는 벅차고 미안한 사람이었어요.
당신에게 무엇하나 해 줄 수가 없어서 더 달아나고 싶었어요
나로 인해 불행해질 것 같아서요"
" 그러나 나는 당신이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당신은 내게 큰 기쁨이예요 ."
" 당신에게 이제 그 기쁨을 더 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사랑은 집착도 아니지만 인연이 바람처럼 사라지면 그 의미도 알아야 해요.
부탁해요 . 내가 먼저 가면 당신은 당신의 길을 찾아가 주길 바래요 ."
" 아직 우리 삶은 끝나지도 않았고 오랫동안 함께 할 거예요 "
" 아니요 . 난 나의 운명을 알고 있어요.
나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예요.
지금껏 우리는 마음으로 대화하며 살았잖아요
당신은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 주었어요.
그것은 한치도 거짓이 없는 순수한 마음인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젠 이 인연의 끝을 담담하게 받아드릴 준비를 해 주세요."
" ...... "
" 그래야 가는 제 마음도 매이지않고 편안하게 갈 수 있을거예요 "
" 여보 , 그래도 ....."
"다만 가는 길이 두려울지 몰라요 .
내가 어떤 고통 속에서 가더라도 당신은 끝까지 지켜줄 것을 믿어요.
그래서 행복해요 .
마지막 순간까지 배웅해 줄 이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며 가슴벅찬 행복인지 몰라요
정말 고마웠어요 .
사랑해요 . 여보 "
그녀의 마른 가슴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눈물이 얼굴을 뜨겁게 적시고 있었다.
" 여보 . 난 당신의 길에 함께 할 거예요 .
두려워 말아요 . 나에겐 오직 당신 뿐인걸요 "
https://youtu.be/HR_NEwTxxQ8
윤 종신 / 배웅
나는 아내의 마음을 알고 있다
역시 아내도 내 마음을 알고 있다
자신의 내일이 어떻게 다가올지를 ....
내가 아침을 준비 한다던지 잠깐 집 주위를 들러 보는 짧은 시간이면 아내는 자신의 주변을 하나 하나 정리 하였다.
그것이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
다시 계절은 바뀌고 있었다
속살을 비치던 나뭇닢들이 부끄러움을 감추고
장대비 화단을 두드리는 여름날이었다
외출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아내는 먼저 성당을 찾았다
둘은 아무런 말없이 제대 뒤에 걸린 십자가만 바라 보았다.
색유리 창을 통과하는 오묘한 빛이 아내의 어깨위에 내려 앉는다.
아무런 말도 해 줄수 없었다.
장날이 아니어서 그런지 장터는 한산했다
아내는 전처럼 읍내 장을 돌아보지 못했다
흥미롭게 물어보거나 골동품이라도 발견하면 눈빛을 빛내며 한참을 만져보고 상인이 귀찮을 정도로 묻곤 하던 그녀였다 .
문방구 좌판에 벌려놓은 몇 권 안되는 신간들의 제목도 모두 확인을 하고 나에게 " 저건 어떤 책이지 ? .인터넷 검색을 해봐야겠어요 " 하며 종알거리던 모습도 없었다
음식점 골목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시장을 벗어나 한참을 걷다가 아내가 말했다
" 여보 . 나 메밀전병이 먹고 싶어. 왜 그거 신김치 썰어 넣은거 있잖아 "
우리는 메밀 전병을 봉투에 담아 오면서 양지 두근과 눈여겨 보았던 마른 생선 몇 마리를 샀다.
" 뭐라도 먹었어야 했는데 ....."
" 아침 먹은게 내려가지 않았나 봐요 "
차안에서 아내는 여름인데도 담요를 두르고 기대어 앉았다
건너편 산등성이에서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읍내를 다녀온 이후부터 정희의 병후는 더없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진통제 주사를 놓는 나도 그 고통 속으로 함께 빠져들고 있었다.
사실 나의 고통은 아내에게 비하면 아무런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잡을 수 없는 구명줄을 던지고, 아내는 잡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수렁같은 일상이 밤마다 이어지고 있었다.
병마의 날카로운 손톱이 난리를 치며 흟고 지나가면 아내는 황량한 벌판에서 날개꺽인 새처럼 기진맥진한채 널부러져 있었다 .
어느날은 독한 진통제조차도 아내의 고통을 막아주지 못했다.
물 적신 가제 손수건을 메마른 아내의 입술 사이에 밀어넣어 주지 않았다면 아내의 입술과 치아는 모두 망가졌을 것이다 .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들고 창밖으로 한풀 꺽인 초가을 햇살이 더듬거리면 그때야 남자는 아내의 손을 잡고 새벽기도를 드리다
쪼그린채로 잠이 들었다.
침대 머리맡에는 아내가 아끼는 물건들이 가지런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전화기와 작은 손지갑 . 그리고 습작 노트와 돋보기안경등 화장대 위에는 몇가지의 화장품병들이 보자기에 쌓여 있었다
나는 수연에게 전화를 했다
수연은 내 전화에 놀랐는지 울먹이기부터 했다
빠른 시일내에 이곳을 다녀가라 했다
아내는 침상에서 일어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한낮에야 겨우 남자의 몸을 빌어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아 해바라기를 할 수 있었다.
가을 햇살은 아내의 메마르고 핏기없는 얼굴을 애처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짧은 한낮의 마당에서 아내는 산등성이 너머 하늘만 바라보며 있었다.
남편은 아내의 얼굴을 씻겨 주었다.
양치를 하는 일도 힘겨워하는 그녀였다.
곱게 머리도 빗겨주었다 .
해질녘이면 마른 쑥을 끓여서 아내의 발을 씻겨주고 바싹 말라버린 아내의 종아리를 쑥물로 어루만져 주었다.
" 여보 . 쑥내가 너무 좋다 "
" 그렇지 ?. 내일은 당귀랑 민들레도 같이 끓여볼까 ?"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내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아내는 표정마저 조금씩 잃어버리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어둠의 그림자가 아내의 주위를 덮어 오고 있었다
그녀를 괴롭히는 병마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 나는 알고 있다.
아내가 그 처절한 아픔을 철저하게 참고 감추고 있음도 알고 있다.
잠들기 전에 아내에게 마우스피스를 끼어 주었다.
아내는 사양하지 않았다
말라버린 눈물샘에서 다이아몬드같은 눈물이 흘러 내렸다
숨소리가 점점 가빠진다
어둠의 깊이만큼 고통은 깊이를 더하고, 영혼까지 탐하며 연약한 몸을 발기발기 찢어놓고 새벽과 함께 사라진다
내가 할수있는 일은 그녀의 손을 잡고 고통을 모두 내게로 돌려 받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되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아내의 손아귀의 힘도 야위어 간다
촛불의 마지막 펄럭임처럼 흔들린다.
사랑의 힘이 크다한들 나 역시 절망 속으로 미끌어지고 있었다
아내에게 고통을 이겨낼 힘을 달라고, 조금만 더 함께 하고 싶다는 간원도 바람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희망은 어디에 있나 ? 돌아 볼 여지도 없었다.
아침 나절, 수연으로부터 혼자 서울을 출발했다는 연락이 왔다.
어미 앞에서 먼저 먼길 가는 모양을 보여주기 싫어하였다.
아내는 담담하게 수연을 맞고 또 담담히 보낼
것이다
무심한 바람이 잎새들을 날리고 있었다
산골의 가을은 일찍 찾아온다.
온산이 붉게 물들더니 잎새들은 어느새 바스락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 나쁜 새끼 , 너. 나 살려준고 했잖아 "
단말마같은 쇳소리를 내며 허약한 손아귀의 힘으로 나를 끌어 잡아았다.
마치 지옥의 고통에서 구해달라는 마지막 절규의 손길이었다
그 고통에서 구해낼 수없는 나 자신의 유한한 사랑에 심히 부끄러울 뿐이었다
" 미안해 . 여보 "
" 나쁜 새끼 ....."
" 여보 나 살고 싶어. 조금만 더 ..... "
아내를 품에 안고 오열하는 밤이 이어졌다
밤의 고통이 햇살에 쫒겨 사라지면 아내는
죽은듯 널부러진다
떨어지는 낙옆에도 힘들어 할 만큼 쇠잔한
모습으로 짧은 평화의 시간을 맞이한다.
저녁이면 아내의 팔에 모르핀을 놓았다.
주사 바늘이 꽂혀도 아파하지 않는다.
마른 눈물이 가느다란 선을 그으며 떨어졌다
" 여보 . 나 아무것도 원망하지 않을거야
세상에서 느꼈던 짧은 행복들을 추억으로 곱게 담아서 가고 싶어 .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있어서 정말 행복해.
고마워요.
고마웠어요 "
아내의 말라버린 입술이 바스락거리고 있었다
" 당신 사랑 모든 것 . 다 안고 가니 슬퍼하지말고 힘들어 하지 말아요
그래야 내 가는 길도 편할거에요
정말 고마웠고 즐거웠어요
마지막 부탁이예요
나와의 인연 . 나와의 사랑은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하고 나를 잊어요."
모진 가을비가 내렸다
굵은 빗줄기가 지붕을 두드리고 멀리 검은 하늘엔 천둥이 비명을 질렀다
이 비가 내리고 나면 곧 겨울로 들어 설것이다
" 여보 . 나 세수좀 시켜줘요."
" 그래요."
" 화장품 좀 주세요. 얼굴이 너무 말랐어요"
아내는 화장이 먹지 않을만큼 거칠고 메마른 손으로 로션을 발랐다.
나는 아내의 입술에 립스틱을 그려주었다.
빗소리는 더 요란스럽게 마당과 지붕을 두드렸다.
활활타는 벽난로의 열기는 거실을
훈훈하게 감싸고 있었다.
" 여보, 나 묵주 좀 주세요"
안락의자 깊숙히 몸을 숨긴 아내는 따듯한
훈기에 이내 눈을 감았다.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 여보 . ...
커텐 좀 열어줘요.... "
그 사이 깜빡 졸았나 보다
아내의 작은 음성에 눈을 떴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햇살이 밝아 오고 있었다
햇볕은 마당을 돌아 거실의 넓은 창가를 아내의 발끝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 아 햇볕이 너무 좋아. "
잔잔한 미소가 피어났다
" 이제 겨울이 오려나 봐요 "
화단의 자귀나무 잎새와 말라버린 고투리가 잔바람에 떨고 있었다
" 정희씨 . 저 자귀나무 꽃말이 뭔줄 알아요 ?"
" ....... "
" ....... "
아내의 가느다란 숨소리가 바람을 따라 갔다
아내의 마른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하얀 꽃 한 송이가 떨어졌다.
🍀
낮은 지붕 처마아래 아내는 웃고 있었다.
들국 사태난 작은 언덕에서
꽃무늬 원피스 자락을 펄럭이며....
풀벌레 우는 개울가에서
호롱 졸고있는 탁자 앞에서
까르르 웃으며 손짓하고 있다
그 어디에도 아내는
나를 보고 웃고 있었고
그 어디에도 아내는 없었다.
웃음 소리만 남기고 .....
겨울 하늘은 잿빛으로 세상을 덥고 있다
눈이라도 펑펑 쏟아질 처럼 하늘은 낮게 깔리어 있었다
한 남자가 서성이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하나
" 정희야 ......"
" 정희야 ....."
죽음을 예견한 짐승의 단말마같은 외침이 산골짜기로 사라지고 있었다
" 여보 ......여 ~보 ......"
촛점잃은 시선 끝에는
그가 찾아야 할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가야 할곳도 아무도 몰랐다.
어두워져가는 겨울 산으로 발자국 한 줄이 내리는 눈으로 덮혀 가고 있었다
남자를 보았다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
ㅡ 감사합니다 .
무려 일년이 넘게 탈고하지 못했던 졸문을 이제서야 끝맺음을 합니다
사랑은 바보 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어리석은 자만이 진실한 사랑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교문리 우거에서 峨嵯. 정 주연 이냐시오
2020. 8. 30 .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에릭 시갈의 한국판 러브스토리를 읽었네요.
감사합니다
주말에 뵙기를 청합니다
팽팽한 활력을 보충하는 휴일 되소서 ~^^
ㅎㅎㅎ
사랑은 바보 놀이.
행복한 바보가 되면 좋지요~^^
글재이 오분전님.
대~~단합니데이~
이런 글도 다 쓰시공~^^
부끄럽습니다 ~^^
사랑에 정의를 내리자면 바보가 되는 것이라는 점에는 늘 변함없습니다 ~
편안한 저녁 되세요.
수고하셨습니다 ^^*
내 지난 날을 돌아보고
반성을 조금 해야겠어요...
조금 아니고
많이 하세욧!!
ㅎ
@효주아네스.
아니 방장이 왜 화를
처제도 아니면서~ ㅎ
그리고 넘어진 놈은
다시 밟는거 아니라오 ^^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쉬운 것이 힘든 까닭은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 아닐런지요 ~^^*
@효주아네스. 무서워 !!
이럴 때는 학주같애요 ㅋㅋ
너무나 감사합니다
참 잘 읽었습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건강 하시고 또 다른 작품 기다립니다
행복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활기찬 한 주 맞이하세요 ~^^
저에겐 이별이 있어 안타깝긴 하지만 해피엔딩으로 느껴집니다. 정희와 나의 사랑을 따라가면서 애석하지만 후회할 어떤 것도 남지 않는 사랑의 목격자로 남았으니 말입니다. 오늘 하루도 오분전님의 글을 읽으며 많이 행복했습니다. 이 글이 몇몇 사람의 행복으로 끝나기엔 너무 아까운 것 같아 중편 소설로 출판을 해보시라고 꼭 권하고 싶습니다. 영화로 선보여도 좋을 것 같고요. 삽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우산'도 참 좋았습니다. '삶은 우산을 폇다 접었다 하는 것과 같다. 사랑은 몸 반쪽이 비를 맞으면서도 그 우산을 나누어 쓰는 것이다.' 금쪽 같은 말씀들이 많이 담겨 있었습니다. 5060에서 오분전님을 알게 되어 참 기쁩니다.
글을 읽는 동안 잠시 두 사람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삶을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해주셔서 더 감사드릴 뿐입니다
늘 평화가 노을향님과 함께 머물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