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 시 - 이정모
세상에 자기 몸에 시 쓰지 않는 존재는 없습니다
햇살과 비와 천둥의 긴 진술을
짧은 문장으로 음각하는 바위와
이별을 준비하라는 하늘의 소리에는
아직 놓지 못한 시간이 부끄러운 붉새와
하염없는 침묵을 차갑게 얼리어
그리운 이름인 양 부수어 뿌리는 눈송이
그리고
하고픈 말들이 너무 많아
우수수
바람결에 날려 보내는 나뭇잎의 전율들
이 모든 것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詩는
어머니, 당신이 웃으며 서있는 하얀 찔레꽃,
그 언덕이 내게로 와 지친 몸에 쓰는 시입니다
그러면 저는 이내 그리움 아득하여
고향의 자운영 꽃밭 위를 지나는 바람이 됩니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차곡차곡 묶어
행간의 숨은 뜻을 알 필요도 없는 몸 시집을 만들고
찔레꽃 향기가 깊숙이 몸속을 찔러오도록
그냥 두고 봅니다
마음은 제 몸에 세월을 새기지 않는 신비한 시입니다
< 이정모시집 > - 허공의 신발 - 중에서
- * -
* 야외 수업 - 장철문
얘들아, 저 도라지꽃만큼만 당당하자
아침 열시 무렵의
도라지꽃처럼만 꽃대를 세우고
당당하게 꽃봉을 열자
저 가지만큼만 막 꽃을 떨군
자줏빛 가지만큼만 의기양양하자
얘들아, 옮겨 심은 저 파만큼만
밭고랑에 퍼드러져 시르죽은 파만큼만
신열을 앓자
꼭 그만큼만
죽을 것 같은 시간을 위장으로 보내자
얘들아, 저 뱀딸기만큼만
붉은 뱀딸기만큼만 꿈틀거리자
흔들리는 저 개망초꽃만큼만
햇살에 나서자
이 햇살만큼만 어깨를 펴고 쏘다니자
저 찔레덤불만큼만
가시덤불만큼만
설레는 꽃 무더기 흰 무더기를 햇살에 바치자
< 장철문시집 > - 비유의 바깥 -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