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가서 10년 넘게 공부했지만 하필이면 마르크스를 전공하는 바람에 한국에 돌아와서 10년 넘게 직장을 잡지 못한 K선생이 마침내 논술(論述) 강사로 나섰다. 처음에는 내가 사는 곳에서 짬짬이 수험생 한두 명을 가르치다가 작년부터는 작정을 하고 서울 강남의 논술시장으로 진출했다. 거기서 자리를 좀 잡았는지 지난 설에는 만난 지 10년 만에 와인 한 병을 선물로 보내 왔다. 그는 인간관계에 서툴러 자기가 웃고 싶을 때만 웃는 사람이지만 그의 변함없는 호학(好學)은 나를 늘 부끄럽게 한다.
초창기 논술시장에는 운동권 출신들이 많았다. 남들이 취업공부에 매진하고 있을 때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책들만 주구장창 읽어댔던 사람들이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나라와 세계와 우주의 미래를 걱정하고 자빠졌던 저 허황한 지적 낭인들이 한 살 두 살 나이 먹고 장가들고 아이 낳은 후에야, 그제야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겨우 깨닫고 하나 둘 논술시장으로 흘러들었다. 그들에 의해 개척된 논술시장은 이제 연봉 수억 원의 고소득자를 배출하면서 까칠한 운동권 출신들을 자본주의적으로 순화시키고 있다. 거기서 날마다 호명되는 지하의 마르크스도 기쁠 것이다.
논술을 잘 쓰려면 운동권의 자질을 가져야 한다. 말 많은 게 공산당이라고, 아주 당연한 세상만사에 대해 자꾸 따지고 덤비는 것이 운동권이고 논술이다.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지 웬 말이 그리 많으냐고 눈을 부릅뜨는 사람은 논술과 거리가 멀다. 어느 정도 먹고 살아야 잘 먹고 잘 사는 것인지, 그렇게 먹고 살아도 되는 것인지 물어보고 시비를 가릴 때 논술이 시작된다. 그렇게 따지고 들어가야 대입논술이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인생관의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그딴 것 모를수록 인생이 편했지만 이제부터는 인생관을 모르면 인생이 피곤해진다. 좋은 대학에 못 갈 테니까.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다독(多讀) 다사(多思) 다작(多作)해야 한다는데 이 3다(三多) 중에서 다사는 빼도 된다. 다독하고 다작하면 다사는 저절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 아는 것이 많아야 한다는 것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다만 독서가 버릇이 되고 읽기 훈련이 어느 정도 진전된 후에는 아무 책이나 덮어놓고 읽지 말고, 꼭 읽어야 할 책들을 선정하는데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책을 읽을 때도 심취하기 보다는 내용을 곱씹어가면서 비판적으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에서 지정한 추천도서목록이나 시중에 나와 있는 독서법 관련 서적들을 참고하면 된다.
논술은 결국 작문이기 때문에 평소에 글을 많이 써봐야 한다. 다작(多作)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마치 콩이 깍지부터 익는 것처럼 글도 알맹이를 채우기 전에 글의 틀부터 먼저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전달하려는 내용이면 무엇이든 하나하나 정확하게 표현해 낼 수 있는 논리구조를 먼저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구조는 과외공부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부단히 글을 써야 갖출 수 있다. 어려서는 일기를 쓰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일기는 솔직히 너무 짜증나는 방법이다. 내 생각으로는 편지와 같은 단문(短文) 과제를 주고, 잘 썼건 못 썼건 아이가 우쭐한 기분이 되도록 후한 칭찬과 상을 내려서 글에 재미를 붙이도록 하는 편이 더 좋을 듯 하다.
그러나 다독이니 다작이니 하는 말은 맞기는 하지만 너무 한가한 소리다. 이 칼럼의 제목을 보고 논술 잘 하는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나 해서 클릭하고 들어온 독자들은 지금쯤 상당히 실망했을 것이다. 특히 대입수험생들과 학부형들이 논술에 눈을 돌리는 것은 수능이 끝난 다음이기 때문에 이런 장기적인 논술 플랜은 들으나마나 한 소리다. 옳지는 않으나 현실이 그러므로, 실전적인 충고를 한 마디 하겠다. 소극적 전술로 나가라. 잘 쓸라고 하지 말고, 감점 당하지 않도록 써라. 논술 준비하는 두 달 동안 헤겔같은 소리는 다 접어놓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부터 마스터하라. 한 번도 접해 보지 않는 아주 황당한 문제가 출제된다고 가정하고 거기에 대처하는 마음자세부터 가다듬어라. 시험에 임해서는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다 동원해서 주어진 분량은 반드시 채워라.
왜 소극적 전술로 나가야 하느냐. 지금까지 논술과 담을 쌓고 살던 수험생이 한두 달 안에 훌륭한 논문을 쓴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고, 채점자들도, 만일 그들이 양심적이라면, 소극적으로밖에 채점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요즘 나오는 논술을 잘 쓸 자신이 없다. 모범답안을 참고한다고 해도 그 많은 논술답안을 정확하게 채점하는 것은 나로서는 불감당이다. 따라서 내용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다음 문제고 누구도 시비 걸 수 없는 확실한 과오부터 잡아내게 될 것이니 일단 거기에 걸리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의 대입논술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시행되었다. 지금 출제되고 있는 수준의 문제에 제대로 답안을 쓰기 위해서는, 그리고 대학입시에서 논술이 차지하는 비중에 상응하기 위해서는 초중고교의 교육과정이 전면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더구나 지금처럼 논술을 사교육시장에 맡기지 않고 공교육체계 내에서 소화해 내려면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0년 쯤 지난 다음에나 가능하겠지만 만일 논술이 정착되면 교육의 개념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너무 이르게 도입된 대입논술을 내가 지지하는 이유는 논술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보다 논리적이고 세련된 사회, 토론이 가능한 민주사회로 나아가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억지가 통하고, 목청 큰 놈이 이기고, 강경파가 득세하는 지금의 논의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설령 1인당 국민소득 5만 불을 달성한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문명사회에서 살지 못한다. 지난 50년의 근대화 과정에서 ‘하면 된다’ 따위의 의지(意志)에 눌려서 숨도 한 번 제대로 못 쉰 우리의 이성(理性)이 논술을 통해서라도 해방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