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에 30년 후를 생각하며 신학을 공부했고 목회를 시작했다.
부모와 형제들은 미국에 이미 이민을 갔었고
나도 미국으로 들어오라고 했었다.
미국에 와서 신학공부를 하라고.
그러나 나는 신학교에 입학을 했고 재활원에서 생할을 했다.
그리고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후배목사가 휴가를 떠나면서
교회를 떠나 있는 동안
새벽기도 인도와 예배 설교를 부탁했다.
오랫만에 교회에 머물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첫 날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기도를 하면서
지난 세월들을 생각하게 된다.
손가락을 꼽으면서 섬겼던 교회들을 생각했다.
인천미문장애인교회 개척, 온양온천중앙교회 분쟁중 설교, 이화감리교회,
대전보문감리교회 교육전도사 부목사, 대전미문선교회 설립, 동강감리교회,
진남제일감리교회, 성린재활원 원목, 대전미문장애인교회 개척,
인천보육원 원목, 벌교원동감리교회, 성프란시스교회, 엘림감리교회,
빈들감리교회, 뚤루즈예사랑교회, 개봉감리교회 분쟁중 설교,
몽펠리에한인교회
내가 섬겼던 교회와 기관들을 기억하며 위해서 기도를 했다.
새벽에 기도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목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목회를 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마음에 가득했다.
교회개혁의 당위성은 있으나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목회였다.
기도하고 설교하고 심방하면서 교회를 세우고 교인들을 돌보는 일,
교회가 지역사회를 섬겨 세상의 빛이되고 소금이 되게 하는 일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후배목사가 섬기는 교회를 잠시 돌보면서 기도할 수 있으니 좋다.
재단 앞에 꿇어 엎드려 기도하니 좋았다.
재단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길을 물었다.
고향에 돌아가서 목회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프랑스에서 인천으로 왔다.
그러나 7개월이 지났으나 길이 보이지 않는다.
30년 후 목회를 생각하며 30년을 살아 왔는데 길이 보이지 않으니...
교회를 위해 할 일이 참 많이 보이는데
그러나 막상 교회를 위해 일을 할 수 없으니...
30년 전에 30년 후에 목회를 꿈꾸었었다.
그래서 30년동안 무소유의 삶을 살아왔다.
지금은 집도 없고 섬길 교회도 없다.
딸아이들이 아직 공부를 하고 있는데 도울 방법도 없다.
아내는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써늘하다고 했다.
그래도 기도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기도하는 행복을 누리니 얼마나 좋은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여서 좋다.
사람들을 사랑하다 죽으면 족하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는 것이 슬프기는 하겠지만
그 날이 오늘이라도...
후배 목사가 휴가를 떠나면서 목사님이 계시니 든든하다고 했다.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예수님이 길이시니 예수님을 따라 길을 간다.
내 눈에는 길이 보이지 않지만 길이 되시는 예수님을 따라 오늘을 간다.
내일 일을 알 수 없지만 오늘 주님이 계시니 함께 길을 걷는다.
30년 전에 나는 30년 후의 일을 몰랐다.
그리고 지금도 모른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는 것이다.
오늘도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 기도를 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길을 오늘도 걷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삼십년 전에는 몰랐어도 지금은 압니다. '새 일, 은비한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