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이나 대지의 면적 단위를 ‘평’에서 ‘㎡’로 바꾼 지 10년도 넘었습니다만, 아직도 ‘평’을 선호하시고, 즐겨 쓰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랜 관습, 습관을 버리기가 쉽지 않은 게지요. 고기 중량 단위가 ‘g, kg’으로 바뀐 지도 참 오래 되었는데 아직 ‘근’이 더 친근하고 편하고, 가늠이 쉽게 되기도 합니다. 이제는 묶음 단위가 많이 바뀌어 흔히 쓰는 말은 아니게 되었지만, 우리말 세는 단위는 참 다양했습니다. 축(마른 오징어 20마리), 쾌(북어 20마리), 죽(옷, 신, 그릇 따위 10개), 접(과일이나 채소 100개), 쌈(바늘 24개), 담불(벼 100섬), 고리(소주 10사발), 우리(기와 2000장) 등 이제는 접하기 힘드나 익숙했던 단위들이었습니다. 아직도 통용되는 치, 척과 같은 길이 단위, 되, 말과 같은 부피 단위, 근, 관과도 같은 무게 단위도 친숙합니다. 그와는 달리, 크기를 재는 단위도 최근에 알게 된 게 여럿 있습니다. 제주도 낚시꾼이 된 IT기업 임원 출신 친구가 잡아준 갈치로 인해 알게 된 3지, 5지란 단위가 그렇습니다. 손가락 세 개 너비 정도의 너비이면 3지가 되는 거지요. TV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것도 있습니다. 동태는 3통, 7통으로 크기를 얘기한답니다. 한 상자에 3마리로 가득차면 3통이랍니다. 그러니까 갈치는 숫자가 커야 큰 건데 동태는 숫자가 작아야 큰 거지요. 그냥 가로길이 몇 cm, 무게 몇 kg 하면 될 터이지만, 5지, 3통, 이런 게 확 와 닿기도 합니다. 이런 단위는 제가 예시한 것 말고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도량형 통일이 효율성 측면에서는 바람직하겠지만, 아직도 익숙한 단위가 주는 직관적 도(길이), 량(부피), 형(무게)의 감성도 좋습니다. 저는.
하지만 익숙하고, 아직까지 통용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버려야 할 것도 꽤 있습니다. 토목, 건설 쪽에서 주로 쓰이는 루베, 헤베 따위입니다. ㎡ 혹은 평방미터로 하면 될 것을, 아직도 헤베라 합니다.(건축용어는 아직까지도 일본말 일색입니다) ‘헤베’는 일본말 ‘へいべい[平米]’에서 왔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잔재이기도 하거니와, 근, 평, 척, 말과 달리 칭량 단위가 ㎡ 와 똑 같기에 이를 쓸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본어 잔재만이 아닙니다. 한국말로 표현을 하고는 굳이 똑같은 단어 의미를 영어로 덧붙이는 좋지 않은 습관이 요즘 TV를 보면 해설가, 평론가, 출연자, 패널을 넘어서 아나운서에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KBS 같은 공영방송에서부터 간접광고 줄이고 ‘바른 우리말 알리기’ 같은 프로그램을 강화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60여 년 전, 부산대학교 국문과 교수로서 부산시내의 잘못 표현된 한글간판을 사다리 가지고 다니며 수정하셨던 조부와 같은 이가 많아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다시금 관심을 가지고, 비속어 퇴치, 외국어 절제, 줄임말 줄이기, 일상용어에서의 일제 잔재 청산 등 우리말 사랑 실천을 나부터 해야겠습니다. 마음을 다하면, 통합니다.
자연사랑도 실천하면 행복해지는, 참 보람 있는 삶의 한 줄기입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280992022
봉사도 나눔이지만, 우리말 사랑은 더 큰 나눔입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281900225
마음껏(모셔온 글)=========
나는 마음껏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짧고 간결하지만 모든 내어줄 수 있을 것 같은
단단함이 느껴져서.
필기구를 챙기지 못해 안절부절못했던 소심한 열여덟의 나. 처음 간 동아리방에서 내내 눈치만 살피던 중, 한 선배의 필통에서 볼펜 몇 자루를 발견하고는 큰 용기를 내어 말을 건넨 기억이 있다.“선배님 정말 죄송한데, 볼펜 한 자루만 빌려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그 선배는 흔쾌히 말했다. “아, 볼펜? 마음껏.”
완전하고도 완벽한 허락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나는 여전히 마음껏, 이 말을 쓰려고 노력한다. 말을 건넨 후 상대가 느끼는 무한 신뢰와 단단함을 느낄 수 있어서, 소심한 열여덟의 내가 느낀 추억을 더듬을 수 있어서.
우리의 관계 안에서도 마음껏이라는 말이 자주 쓰였으면 좋겠다. 가끔 불안하고 흔들릴 때마다 서로를 잡아줄 수 있는 단단한 말이 필요하니까. 서로에게 조금 더 기대더라도 쓰러지지 않을 거라는믿음이 필요하니까.
내가 너의 어깨를 빌려도 될까.
나 잠시 울어도 될까.
마음껏.
-----소윤의 <작은 별이지만 빛나고 있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