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ko.wikipedia.org/wiki/%ED%97%88%EB%A0%88%EC%9D%B4%EC%8B%9C%EC%98%A4_%EB%84%AC%EC%8A%A8 "오른쪽 눈의 시력과 오른눈썹의 반을 잃었다" "오른팔 전체를 절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탄환은 넬슨의 왼쪽 어깨에 적중하여 폐를 관통하고 척추에 박혔다" ...
4패중 3패까진 알겠는데(아스페르-에슬랑 전투, 라이프치히 전투, 워털루 전투) 나머지 하나는 모르겠군요. 이탈리아 전역에서 한번 진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나폴레옹이 직접 지휘한 해전은 존재하지 않으니 해전의 패배는 안들어갑니다. 무승부... 도 딱히 떠오르는 게 아일리우 전투 하나정도? 뭐, 전신수준의 전적을 올린 게 맞죠. 라이프치히 전투도 동맹군이 10만 이상을 더 동원해 물량으로 몰아친거고, 아스페르-에슬랑 전투는 도하전에다가 오스트리아군의 센스가 돋보인 전투(풍차까지 강으로 흘려보내 다리를 기여코 끊어버릴 줄은 천하의 나폴레옹이라도 생각하기가 좀...) 워털루 전투정도가 나폴레옹 자신의 실수때문.
그루시에게 병력을 주어 분산시킨 실수, 네의 기병대가 고지를 점령했으나 지원을 보내지 않은 실수...정도 일겁니다...뭐 또 사람에 따라서 근위대를 진격시키는 타이밍을 놓쳤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구요...사실 나폴레옹의 실수라면 전투에서보다...그의 가족들을 너무 믿었다는 것과 베르나도트를 숙청하지 않은(못한) 것이 더 클겁니다...결정적으로 패착이 된 전쟁은 스페인 반도전쟁이구요...
사실 그루시에게 병력을 준 것은 실수라고까지 하긴 힘들거든요...같은 전법으로 드제가 맹활약해서 이긴적도 있으니까요...다만 그루시가 돌아오지 않은 것이 문제죠...근데 또 그루시에게 왜 병력을 맡겼는가? 계속 된 전쟁으로 전사, 배신 등의 누수로 워털루 당시 나폴레옹에게 믿고맞길만한 인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뭐 근데 사실 워털루에서 설사 이겼다고 해도...나폴레옹은 2차대전 독일처럼 언젠간 지게 되있었습니다...스페인과 러시아에서 패퇴한 순간 이미 대세는 기울었죠...
러시아원정 실패도 크긴 하지만 이후의 독일해방전쟁때 전황을 생각해 보면 독일 각지의 수비대를 계속 유지하려 한 것과 이전 2차 오스트리아 전쟁때 오스트리아 제국을 프러시아처럼 찢어놓지 않은 것도 상당히 큰 패인이죠. 그때 오스트리아를 제대로 찣어놨다면 라이프치히에서 물량에 밀려버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참전 이전까진 동원 전력 양에서 크게 밀리지 않았고, 전황도 괜찮았죠. 뤼첸 전투, 바우첸 전투에서 질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연거푸 동맹군을 털어댔고.
오스트리아를 제때 찢어놨다면 오스트리아 참전으로 병력차가 1:2 이상 벌어지는 일은 없었고, 라이프치히에서 10만 이상의 병력 열세가 나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라이프치히에서 나폴레옹이 이겼다면? 베를린 재진격도 가능했고(실제로 이전에 네 원수가 베를린으로 진격하다 베르나도트에게 막힌 적 있습니다. 만약 나폴레옹이 라이프치히에서 이긴다음 베를린으로 진격한다면, 못막죠.) 이후 1,2년정도 전황을 추스리면 상황이 어찌될지는 모를 일입니다. 러시아에서 대육군 40만 다 날려먹고도 1년만에 20만 이상을 추가동원해 독일전선에 배치한 동원력을 생각하면 말이죠.
가장 결정적인 패전이라면 라이프치히죠. 나폴레옹 자신이 단일 전투에서 입은 피해 중 최대 피해를 입었고(그중 절반은 공병대의 삽질이라는 게 또... 철수때 다리를 너무 성급히 폭파시켜서 4만 이상의 병력과 원수 둘을 포함한 수십명의 장수들을 추가상실...) 라인강 동부일대의 동맹국들이 모두 떨어져 나간데다 라인강 동안에 대한 영향력을 모두 상실해 버리면서 여기저기 점점히 흩어져 있던 프랑스군 수비대도 모조리 상실해 전체 전력의 2/3~3/4 가까이가 홀라당 날라가서 가용병력이 10만 이하로 급감했죠. 라이프치히 이전의 나폴레옹은 가능성이 아직 충분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이상한게 병력의 우위가 아닌 초반기에는 엄청나게 전술적인 모습을 보여주다가 그후 나폴레옹의 승전으로 인해 프랑스가 강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병력에 우위가 있기 시작하자 나폴레옹은 그냥 힘으로 밀어 붙이는 전투를 하기 시작하죠;;; 보로디노 전투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그냥 힘으로 밀어 붙인 케이스... 전투는 이겼지만 피해 상황보면 이긴겄도 아니었죠...
제가 볼때는 러시아원정이 너무 큰 타격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원정군 대부분이 나폴레옹군의 중부유럽전투에서 경험이 풍부한 정예군이었는데 그걸 다 잃어버렸으니... 라이프치히때는 이미 병력자체에서 연합군에게 밀리는 상황에다가 지정학적으로도 불리한 상태여서 가망이 없었죠...
첫댓글 대략 10여차례의 교전과 전초전, 포위공격을 제외하고 대략 55회의 중요하고 의미있는 전역을 치뤘다고 패전분석에 나옵니다....-_-;; 뭐 그걸 인용하여 보자면 55회의 전역중 48승 3무 4패가 되더군요.
4패가 결정적이었나 보군요.
일단 그 4패 중 하나가 워털루 전투 였을테니까요.
워털루가 제일 결정적이었군....ㄷㄷ
삭제된 댓글 입니다.
명예로운 승리의 댓가로 신체가...;;; 마지막 전설적인 승리에는 목숨이...;;; 무시무시하군요 등가교환의 법칙...;;
넬슨을 죽게만든것은 간지나는 옷때문었다던데
그 시대 옷은 당연 간지가 풀풀나는 [ 프랑스 흉갑기병이나 친위대 보면 멋있다고 느끼는 ] 더군다나 넬슨이 장군급이였으니 더 화려하게 차려입었겠지요
그리고 시체는 술독에 담궜는데. 도착할때즈음, 선원들이 다 마셔버렸다능.
쩝....시체를 술독에 담다니....
또한 넬슨의 주색은 유명하죠...대단한 장군이긴하지만 딱히 본받을 만한 사생활은 아니었습니다...그 점도 몸을 망가뜨린 원인이 될 것입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D%97%88%EB%A0%88%EC%9D%B4%EC%8B%9C%EC%98%A4_%EB%84%AC%EC%8A%A8
"오른쪽 눈의 시력과 오른눈썹의 반을 잃었다" "오른팔 전체를 절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탄환은 넬슨의 왼쪽 어깨에 적중하여 폐를 관통하고 척추에 박혔다" ...
4패가 이집트해전 트라팔가 해전 라이프찌히전투 워털루 전투 인듯?
4패중 3패까진 알겠는데(아스페르-에슬랑 전투, 라이프치히 전투, 워털루 전투) 나머지 하나는 모르겠군요.
이탈리아 전역에서 한번 진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나폴레옹이 직접 지휘한 해전은 존재하지 않으니 해전의 패배는 안들어갑니다. 무승부... 도 딱히 떠오르는 게 아일리우 전투 하나정도?
뭐, 전신수준의 전적을 올린 게 맞죠. 라이프치히 전투도 동맹군이 10만 이상을 더 동원해 물량으로 몰아친거고, 아스페르-에슬랑 전투는 도하전에다가 오스트리아군의 센스가 돋보인 전투(풍차까지 강으로 흘려보내 다리를 기여코 끊어버릴 줄은 천하의 나폴레옹이라도 생각하기가 좀...) 워털루 전투정도가 나폴레옹 자신의 실수때문.
몸상태가 그리도 안좋은데도 거기까지 전투지휘가 가능했다는 게 오히려 놀라울 따름입니다.
어떤 실수를 저질렀나요? 궁금....
그루시에게 병력을 주어 분산시킨 실수, 네의 기병대가 고지를 점령했으나 지원을 보내지 않은 실수...정도 일겁니다...뭐 또 사람에 따라서 근위대를 진격시키는 타이밍을 놓쳤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구요...사실 나폴레옹의 실수라면 전투에서보다...그의 가족들을 너무 믿었다는 것과 베르나도트를 숙청하지 않은(못한) 것이 더 클겁니다...결정적으로 패착이 된 전쟁은 스페인 반도전쟁이구요...
사실 그루시에게 병력을 준 것은 실수라고까지 하긴 힘들거든요...같은 전법으로 드제가 맹활약해서 이긴적도 있으니까요...다만 그루시가 돌아오지 않은 것이 문제죠...근데 또 그루시에게 왜 병력을 맡겼는가? 계속 된 전쟁으로 전사, 배신 등의 누수로 워털루 당시 나폴레옹에게 믿고맞길만한 인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뭐 근데 사실 워털루에서 설사 이겼다고 해도...나폴레옹은 2차대전 독일처럼 언젠간 지게 되있었습니다...스페인과 러시아에서 패퇴한 순간 이미 대세는 기울었죠...
이전엔 보이지도 않던 잔실수가 좀 보입니다. 인선부터 시작해서... 리즈시절 나폴레옹이였다면 솔직히 말해 프러시아군이 접근하기 전에 영국군을 실신시켜도 이상하지 않죠. 휘하 장수들 통제부터 제대로 안된 느낌이 팍팍 듭니다.
러시아원정 실패도 크긴 하지만 이후의 독일해방전쟁때 전황을 생각해 보면 독일 각지의 수비대를 계속 유지하려 한 것과 이전 2차 오스트리아 전쟁때 오스트리아 제국을 프러시아처럼 찢어놓지 않은 것도 상당히 큰 패인이죠. 그때 오스트리아를 제대로 찣어놨다면 라이프치히에서 물량에 밀려버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참전 이전까진 동원 전력 양에서 크게 밀리지 않았고, 전황도 괜찮았죠. 뤼첸 전투, 바우첸 전투에서 질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연거푸 동맹군을 털어댔고.
오스트리아를 제때 찢어놨다면 오스트리아 참전으로 병력차가 1:2 이상 벌어지는 일은 없었고, 라이프치히에서 10만 이상의 병력 열세가 나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라이프치히에서 나폴레옹이 이겼다면? 베를린 재진격도 가능했고(실제로 이전에 네 원수가 베를린으로 진격하다 베르나도트에게 막힌 적 있습니다. 만약 나폴레옹이 라이프치히에서 이긴다음 베를린으로 진격한다면, 못막죠.) 이후 1,2년정도 전황을 추스리면 상황이 어찌될지는 모를 일입니다. 러시아에서 대육군 40만 다 날려먹고도 1년만에 20만 이상을 추가동원해 독일전선에 배치한 동원력을 생각하면 말이죠.
아 그렇군요...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La Rothiere 라 로씨에르 인가요?? 1814년전투 황제의 좌에서 내려온 전투말입니다. -_-;;;
이순신정도는 아니더라도 전적 엄청나는듯. 승률이 90이 넘는..
얼마안되는 그 패배가 결정적이네요...
가장 결정적인 패전이라면 라이프치히죠. 나폴레옹 자신이 단일 전투에서 입은 피해 중 최대 피해를 입었고(그중 절반은 공병대의 삽질이라는 게 또... 철수때 다리를 너무 성급히 폭파시켜서 4만 이상의 병력과 원수 둘을 포함한 수십명의 장수들을 추가상실...) 라인강 동부일대의 동맹국들이 모두 떨어져 나간데다 라인강 동안에 대한 영향력을 모두 상실해 버리면서 여기저기 점점히 흩어져 있던 프랑스군 수비대도 모조리 상실해 전체 전력의 2/3~3/4 가까이가 홀라당 날라가서 가용병력이 10만 이하로 급감했죠. 라이프치히 이전의 나폴레옹은 가능성이 아직 충분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이상한게 병력의 우위가 아닌 초반기에는 엄청나게 전술적인 모습을 보여주다가 그후 나폴레옹의 승전으로 인해 프랑스가 강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병력에 우위가 있기 시작하자 나폴레옹은 그냥 힘으로 밀어 붙이는 전투를 하기 시작하죠;;; 보로디노 전투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그냥 힘으로 밀어 붙인 케이스... 전투는 이겼지만 피해 상황보면 이긴겄도 아니었죠...
제가 볼때는 러시아원정이 너무 큰 타격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원정군 대부분이 나폴레옹군의 중부유럽전투에서 경험이 풍부한 정예군이었는데 그걸 다 잃어버렸으니... 라이프치히때는 이미 병력자체에서 연합군에게 밀리는 상황에다가 지정학적으로도 불리한 상태여서 가망이 없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