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부대의 추억(#4) 8) 대관령 참호 속에서 바둑을 배우다 그런데 연일 사단 병력들이 가상 인민군으로 침투한 우리를 찾으려고 수색하는 행동이 나의 쌍안경을 통하여 확연히 보여지고 있어서 혹 우리 부대원들이 적에게 발각 되지 않을까 걱정을 했으나 1주일이 지나도록 우리 부대원은 한 명도 적(사단 병력)에게 발견 되지 않았다. 나는 젊은 병사들이 어떻게 토굴 속에서 얌전히 박혀 있을 수 있는가 의아심이 들었다. 짐승사냥 시간을 제외하고는 밖으로는 얼씬도 안 하고 너무도 조용히 지내는 우리 병사들이 고맙고 대견 하여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각 제대의 지휘관들을 나의 지휘소(물론 땅속의 참호)로 소집 하여 작전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나는“부대원들이 어떻게 좁은 토굴 안에서 꼼작 안 하고 견디느냐? 나는 다리도 못 펴고 허리도 아프고 좀이 쑤시는데 부대원들이 참 기특 하구려!”라고 했더니 한 중대장이 말하기를 “부대원들이 얌전히 지내는 묘법이 따로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자기를 따라 오라는 것 이였다. 그러면서“그 묘법은 다름 아닌 <바둑> 두는 것인데 단장님이 그것을 보시고 꾸중 하시면 안됩니다” 나는 그 소리에 이 산중 땅속의 토굴에서 무슨 바둑을 둘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 그 중대장의 안내로 여러 개의 참호마다 들여다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부대에서 항상 강조하기를 젊은 사나이가 바둑을 두거나 화투를 하거나 낚시터에 앉아 소일 해서는 안 된다고 내 주관 만 가지고 강조 해왔기에 그 중대장은 나에게 참호 속 에서 바둑 두는 부대원 들을 보시더라도 나물하지 말라고 미리 침을 놓은 것이었다.
과연 어둑 컴컴한 각 토굴 속에서 호롱 불을 켜놓고 서넛이 둘러 앉은 채 단장인 내가 순시 온 줄 도 모르고 “아타리! 아타리!”하며 정신 없이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살펴 보니 바둑판은 사격훈련용 두터운 표적판으로 만들어졌고 바둑알의 흑 돌 이라는 것은 까만 맥주병을 깨어서 만들고 백 돌은 사이다 병을 깨어서 갈아 가지고 만들었으니 부대가 대관령 침투작전에 떠난다는 계획을 알게 된 장병들이 치밀하게 준비를 해 가지고 온 것이었다. 나는 지휘관들에게 그 바둑 이라는 것이 저토록 혈기 왕성한 젊은이 들을 얌전케 할 수 있는 묘약이 될 수 있는가 하고 물었더니 한 중대장이 그 바둑판을 가지고 나의 땅굴숙소로 와서 “단장님 저들 젊은 놈들이 적군에게 발견도 안되고 붙잡히지도 않게끔 참호 속에 틀어 박혀 있게 한 것이 바로 이 바둑 입니다. 그러니 단장님도 무료 하실 터이니 바둑 두는 것을 배워 보세요” 하기에 바둑 두는 부대원을 비난 하던 내가 바둑판을 마주하여 그로부터 바둑 두는 것을 전수 받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9) 하루 밤 사이에 백을 쥐었다 그는 나에게 화점이 여기 저기 네 군데 있으며 집을 많이 가진 사람이 이기고 상대의 돌을 많이 따 먹은 사람이 이긴다고 초보적 상식 에서부터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어느 정도 기초적 교육을 하고 나더니 그 중대장은 자기는 12급이니 숙맥인 나더러 흑돌 9개를 깔고 시합 하자고 하였다. 그때 대관령의 일몰시간은 꽤나 빨라서 1주일 동안에 그 중대장은 나에게 4점을 놓고 두게 되였으니 나 같은 초심자를 가르쳐주던 고수의 자존심을 내가 구겨 주어서 대마를 따 먹을 때 마다 미안 한 마음이 들었다.
기동연습을 마치고 용산 육군본부에 돌아와서 참모총장에게 귀대 신고를 하자마자 나는 근처의 기원으로 달려갔다. 그 곳 원장이 몇 급이냐고 묻기에 차마 몇 급 이라는 얘기는 못하고 12급 두는 사람과 호선 한다고 겸손히 말 했더니 “아! 저분이 12급이니 흑을 잡고 두어 보라”고 하여 대국 했는데 나는 초전박살로 대패 했다. 그 원장의 말이 12급 한테 배워서 그 사람의 얕은 수만 알게 된 것이니 책도 보고 여러 사람과 대국을 해보면 빨리 발전 할 것이라고 일러 주더라.
어찌 했던 부대에 돌아와서도 그 중대장은 나에게 4,5점을 놓고 두게 되니 약이 올라서 끊임 없이 도전해오니 바둑 배척론자인 내가 틈만 나면 그와 바둑 싸움을 벌렸는데 나는 은근히 ‘묘수 풀이’ 책이나 바둑잡지를 보고 공부한 덕에 그 중대장에게 6점을 깔게 하는 데에 까지 승승장구 했고 그 중대장은 감히 나에게 도전을 못하는 것 이였다.(정말 교제바둑이 아니었다.
아마 그 뒤에 계속 바둑에 열중 할 수 있는 환경이었더면 혹 유단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아무튼 그 험난한 대관령 산악지대의 토굴 속에서 뜻 하지 않게 바둑을 배웠으니 사람은 환경에 순응 하기 마련인가? 하고 혼자 웃을 때가 있다. |
출처: 불암산장 원문보기 글쓴이: 봉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