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글로벌 경제위기의 역풍을 뚫고 계속 뻗어가려면 대기업과 더불어 중견·중소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꺾이지 않는 도전 정신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 한국 경제의 제2 도약을 이끄는 중견·중소기업들을 시리즈로 찾아간다.
두 개의 링이 있다. 한 곳에는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 서 있고, 다른 곳은 고만고만한 기량의 선수들이 싸우는 마이너리그. 신인선수라면 어디에서 데뷔전을 치르는 게 좋을까?
"준비만 철저히 한다면 챔피언과 맞서야지요. 상대는 저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오히려 유리한 점도 있습니다. 마이너리그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메이저리그에서의 실패가 더 많은 걸 가져다준다고 생각해요."
창업 7년 만에 세계 LCD용 광학필름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한 미래나노텍 김철영(45) 사장은 처음부터 세계 챔피언을 겨냥했다. 2002년 김 사장이 창업할 당시 LCD용 광학필름은 3M이라는 거대 글로벌 기업이 세계 시장을 100% 장악하고 있었다.
삼성SDI 종합연구소 연구원 출신인 김 사장이
3M에 도전장을 던지기 위해 사표를 던지자 집안이 뒤집혔다. 부인은 "사업하려거든 이혼 도장부터 찍어라"고 압박했다. "창업을 결심하자 다른 일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아내 앞에서 싹싹 빌었지요.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못할 것 같다고."
적금과 퇴직금, 친지들에게 빌린 돈을 합쳐 3억원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창업 초기 직원은 모두 8명. SDI 종합연구소에서 근무했던 동료와 화학공학 관련 석·박사 출신 위주로 회사를 꾸렸다.
승부의 관건은 광학필름 표면을 미세한 삼각형 산(山) 모양 돌기로 만든 3M의 특허 기술을 피해서 제품을 개발하는 것. 김 사장은 "연구원들과 하루 4~5시간밖에 자지 않고 꼬박 6개월을 매달렸다"고 했다. 결국 카메라 렌즈의 원리를 응용해 광학필름 표면의 돌기를 둥그스름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3M과 차별화하는 데 성공했다. 금속 대신 플라스틱 틀로 생산원가를 대폭 낮추는 생산공정도 개발했다.
성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머리카락 굵기의 3분의 1 수준인 4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돌기를 정밀하게 새길 수 있는 재료를 개발하는 게 쉽지 않았다. 김 사장은 "시제품을 개발하면서 수백만원짜리 필름 뭉치를 폐기처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서울대 공대 이홍희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디스플레이 관련 소재 분야의 권위자인 이 교수는 난공불락의 3M을 공략해 부품 국산화를 이루는 길에 김 사장과 의기투합했다. 두 사람은 유연하면서도 형태가 잘 마모되지 않는 PET 플라스틱 재질을 찾아냈다. 양산(量産)에 성공하면 제조원가를 10분의 1로 낮출 수 있는 획기적인 공정이었다.
그러나 산 넘어 산이었다. 제품 양산을 위한 설비투자가 문제였다. 개발 단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액의 자금이 필요했다. 그는 국내 굴지의 화학 대기업들을 찾아다니며 합작을 제안했다. 하지만 모두 외면당했다. 대기업들조차 모두 실패한 제품을 무명의 중소기업이 개발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어떤 기업은 납품 대신 기술 매각을 제안하기도 했다.
"흔들렸지요. 50억원이면 편하게 먹고 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사업을 시작한 목적이 돈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LG전자. LG전자는 김 사장의 제품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나서 합작에 동의했다. 양산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5년간 수익을 나누는 조건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LG전자와 공동으로 제품을 양산해 LG디스플레이에 납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