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짧아지지 않았다
주일 오후에 원내동에 볼일이 있어 다녀오다 다세대 주택 앞에 사다리차를
세워놓고 짐을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분이 비가 오고 날도 저무는
시간에 이사를 할까? 궁금한 마음으로 살펴보다가 옆에 세워둔 트럭에
교회용 장의자가 실려있어 마음이 덜컥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산 넘어
성북동에 있던 ㅇㅇ교회가 몇 년 전에 와서 간판을 달았었는데어디로
옮기는지 이삿짐을 나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대로 지나칠 수 없어길가에
차를 세우고 가서 인사를 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건물 주인이 사정이 있으니 내일까지 건물을 비워달라고해서 부랴부랴
성북동으로 다시 옮기기로 했답니다. 정식 건물도 아닌 밭으로 옮긴다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서 지갑을 털어 봉투에 담지도 못한 채 저녁식사라도
하시라고 주머니에 넣어드렸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가 어찌 이렇게
대접받아야 하는지 마음이 저렸습니다.
금요일 아침, 새벽기도회 설교를 하던 중 교회 앞으로 자동차가 들어오는
것이 창을 통해 보입니다. 새벽기도 나올 사람은 다 왔는데 누굴까 생각하는
사이 교회 문을 열고 남자 한 사람이 들어옵니다. 마스크로 얼굴을 반이나
가려 바로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이내 우리 교회로 나오다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장ㅇㅇ 형제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기도회 인도를 마치고 내려
가서 반갑게 손을 잡고 인사를 했습니다. 깻잎 주산지인 금산 추부면에서
들깨 농사를 짓는데 첫 수확을 해서 가져왔다면서 두 상자를 내려놓았습니다.
상자를 열어보니 30장씩 비닐에 포장된 깨끗한 들깻잎이 가득 담겨있는 것이
대형 마트에서나 살 수 있을 만큼 고급스럽게보였습니다. 앞으로 농사일하는
사이 시간을 내서 자주 오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새벽마다 묵상 말씀을 보내고 기도를 했지만, 불쑥 찾아와서 깻잎을 주고 간
것은 정말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여전히 짧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선물 같았습니다.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고 있지만 성도들의 가정과 사업장에,
그리고 우리 교회에도 주님은 능력의 손길로 보살피고 계심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