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는 문학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뒤에 캄차카를 찾아올 사람들을 위하여 가이드가 될만한 내용으로 작성되어져야하기 때문에 여행시 주의사항과 정보 위주로 작성 하도록 하겠다.
이번 2003년 청소년 오지탐사대 캄차카 탐사대는 혜초 여행사의 기본 계획부터 형편없이 잘못된 정보에 의해 여러차례의 죽음을 담보로한 탐사로 이어지면서 수없이 많은 위험고비를 맞이하면서도 신의가호로 다행히 무사히 귀국하게 된 것이다. 만일에 혜초 여행사에서 재공해준 정보를 우리가 사전에 정확히만 알았었다면 절대 그런 탐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지에 가서 확인해본 결과 혜초여행사에서 현지 운행계획에 대해서 조금만 더 성의있게 세심한 관심을 갖고 정보수집을 했었다면 도저히 이런 계획은 나올 수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자기에게 한마디 질문도 하지 않았다고 함)
처음부터 기본계획이 잘못되어 오지탐사가 마치 오지탐험대의 성격을 띄면서 목숨을 걸고 진행을 해야 했다는데 대하여 분노의 마음을 삭힐 수가 없다. 일단 진정하고 지금부터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하겠다.
·태초의 땅
캄차카를 학자들은 태초의 땅이라 한다. 태초의 땅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지구가 최초로 형성되면서 화산 폭발 이후에 최초로 식물의 생성과정을 볼 수 있는 곳이 이곳 캄차카가 아닌가 싶다. 아마 이곳에 지질학자와 지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이 연구하기 위하여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캄차카라고 한다.
·나무와 새
그리고 이곳 캄차카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기 때문에 (평균 적설량이 3∼4m) 수종이 위로 쭉쭉 뻗는 나무는 거의 보기가 힘들고 자작나무와 버드나무 종류의 나무와 2m가 채 되지 않는 나무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무자체가 오래된 수령의 나무는 거의 찾아볼 볼 수가 없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지가 부러지고 가지가 모두 옆으로 휘어져 있으며 거의 나뭇가지가 지면과 가깝게 옆으로 퍼져 있는 나무들이 많이 있다. 산과 같은 고지대의 나무는 위로 뻗은 나무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모두 2m도 채 되지 않는 땅에 붙어 있는 나무들 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조류(새)는 이상할 정도로 보기 드물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 우는 소리를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다. 땅은 비옥하여 잡목과 잡초가 엄청나게 우거져 있다. 그리고 논 농사는 한곳도 보지 못했지만 집 주변 밭에 감자는 많이 심어진 것을 보았다.
·모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모기때였다. 운행때나 밥먹을 때나 배변을 할때나 아무튼 시도때도 없이 가미가재 특공대를 방불케하는 모기들의 공습 도저히 잊혀지지가 않는다. 호흡기를 통해 입으로 들어오고 밥 먹을 때 수저를 따라 입으로 들어오고 모기를 쫒지않고 잠시라도 동작을 멈추고 있으면 이마, 얼굴, 눈, 입굴, 목, 옷 위 장소를 가리지 않고 흡혈귀 처럼 달려든다. 배변을 보기 위해 잠시 바지를 내린 순간 수십마리가 순식간에 히프와 허벅지를 무차별 공습을 한다.
이 모기는 6월 초에 나와서 7월 중순부터 8월 초 까지 극성을 부리다 9월 초가 되어야 비로소 사라진다고 한다.
지금도 모기만 생각하면 귓전에 모기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모기가 가장 많은 곳은 주로 숲이 많은 곳과 물이 있는 곳은 특별히 많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모기가 서식하는 것은 종족 보존 본능에 의하여 짧은 번식기간 동안에 종족 보존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모기들이 이 시기에 최고로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 꼭 당부 하고픈 예기는 7월부터 8월 초순 까지 캄차카를 여행할때는 모기에 대한 철저한 대비(전자 모기향과 모기향은 전혀 효과가 없으니, 바르는 모기약, 뿌리는 모기약, 얼굴을 가릴 수 있는 방충망, 모기 물린데 바르는 약, 물 파스 등) 를 철저하게 준비 하는게 캄차카 여행을 하는데 첫째가는 지혜일 것이다.
·일출, 일몰 시간
탐사 기간 동안의 일출, 일몰시간은 밤 11시까지는 활동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밝다. 그리고 새벽 4시면 여명이 밝아온다. 그래서 어두운 밤은 약 5시간 정도 되는 것 같다.
·시차
시차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하바로프스크가 2시간 하바로프스크에서 캄차카까지 2시간 그래서 한국에서 캄차카 까지의 시차는 4시간이다.
·일교차
탐사기간 동안의 기온은 주간에는 25∼30℃까지 올라가지만 저녁에는 10℃ 이하로 떨어져 일교차가 매우 심한 편이므로 감기에 각별히 주의해야 될 것 같다.
야영을 할 계획이면 동계 침낭을 가지고 가는 것이 현명 할 것 같다.
·백야
캄차카 는 백야라 할 수 없지만 가 보지는 않았지만 캄차카 북부 팔라나 지역은 해가지지 않는 땅 백야지역이라고 한다.
·개화기
보통 6월 중순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7월 초에서 10일간이 가장 많은 꽃들이 화려하게 핀다고 한다. 우리가 캄차카를 탐사하는 기간인 7월 24일∼8월 9일 까지도 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꽃을 촬영하기 위해서 캄차카를 여행하고픈 사람들은 7월 초에 여행하는 것이 최고의 적기 라 한다.
·캄차카인의 성격
백 러시아 사람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 같고 동양계 사람은 보기 드물었으며 성격이 옵시 온화하고 다정 다감한 성격이며 이방인들에 대한 경계심이 약간은 있는것 같았다.
·캄차카 여성과 남성의 복장
남자들은 주로 복장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소탈하게 입는 반면에 여자들은 몸매에 자신이 있는 여성들은 자신이 있는 부위를 최대한 노출시켜, 뭇 남성들의 시야를 자극하여 발길을 멈추게 만들 정도로 아름답다. 갈색, 흰색 등의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내려오게 하여 바람에 찰랑 하도록하고 인형처럼 예쁜 눈과 속눈썹, 오똑 솟은 콧날, 얍실한 입술, 쭉쭉빵빵 히프와 쫘아악 뻣은 색시한 다리 각선미, 세계 최고의 미인들은 하바로프스크와 캄차카에 다 모여있는 듯하다.
·구 소련의 전성기 유물
러시아 어디를 가더라도 주요 광장에는 어김없이 있는 것은 레닌 동상이다. 구소련은 붕괴되었지만 현재 주요광장에는 아직도 레닌 동상이 버티고 서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옛 전성기 소련의 향수를 달래기 위해 밤이면 레닌 동상 주변으로 모여든다.
·러시아에서의 식수
러시아에서 식수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탄산음료고 또 하나는 일반물 이다. 식수를 가게나 식당에서 마실때는 잘보고 선택을 해야 한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가스가 들어 있는 탄산수를 마시면 몹시 역겨울 수가 있다.
·맥주의 종류
맥주는 제법 맛이 좋은 편이며 알코올 도수가 3.5도부터 11.5도 까지 매우 다양하게 생산되기 때문에 취향에 맞춰서 다양한 맥주를 맛볼수 있으며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보드카
보드카의 알코올 도수는 일정하게 40도로 되어 있으며 제조 공장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아마 주정방법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 것 같다. 구입은 용이하며 많이 마셔도 머리가 아프지 않고 뒤가 깨끗한게 특징이라 하겠다.
·재래 시장과 마트
재래 시장과 대형마트가 있는데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다 있다. 주류를 비롯하여 과일, 채소, 과자, 통조림 종류, 꿀, 스넥, 고기, 생선, 연어알 통조림 등 우리나라 대형 마트를 연상하면 된다. 우리나라 제품도 라면 종류를 비롯하여 몇가지 제품을 접할수 있다. 과일처럼 무게를 달수 있는 모든 물건은 저울로 무게를 달아서 판매한다.
·교통
캄차카 주 의 수도인 페트로파블로스키 캄차카를 비롯한 대도시의 교통은 주로 자가용과 버스를 이용 하지만 택시는 많이 보이지 않음. 특기 할만한 것은 어느 나라든 철도가 없는 나라가 거의 없는데 이곳 캄차카는 주로 산악 지대로 구성 되어 있어서 인지 유일하게 철도가 없는 나라다. 특히 날리체보 국립공원에서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도보와 헬리콥터 두가지 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페트로파블르스키 캄차카에서 시내버스는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 굴러다니던 중고 시내버스 및 좌석버스(주로 대우자동차에서 만든 버스)가 굴러 다니고 있어 얼마나 반가 웠는지 모른다. 참으로 우리나라 사람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 오지 중의 오지 그리고 개방된지 10년정도 밖에 안된 나라에 중고차를 팔아먹을 정도의 위대한 민족이 우리 민족인 것같다. 참으로 자랑스럽다.
·호텔
캄차카 시내에서 가장 좋은 호텔은 페트로파블로스키 호텔이다. 우리나라 장급 수준밖에 안되는데 무궁화 3개 짜리라고 자랑을 한다. 호텔은 만족 할 만한 시설을 갖춘 호텔다운 호텔은 볼 수가 없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입구 문은 두사람이 들어가고 나오고 밖에 할 수 있을 정도로 좁으며 내부도 두사람만 타도 내부가 꽉 찬다. 너무 답답할 정도로 비좁다.
·관공서의 서비스정신
관공서 근무는 5일재 근무다. 민원을 요청하기 위해서 관에 전화를 하면 전화받는 사람이 없다. 전화통화로 문의 하느니 차라리 찾아가는 편이 훨신 편리할 것이며 시간도 단축될 것이다. 공무원들은 써비스가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는 사람들 인것 같이 보였다.
·항공기 상태와 기내 서비스
항공기 상태는 지금까지 타본 비행기중에 최악이었다. 고철덩어리가 하늘을 날아 다니는 줄 알았다. 에어콘이 중앙통로 천정에선 나오질 않나, 유리창 사이로 나오질 않나, 의자는 쇄붙이에 걸래를 씌워 놓은 것 같은 분위기, 국내선 승무원의 기내 방송은 러시아말 외에 다른 어떤 나라 방송도 하지 않는다. 정말 최상의 서비스를 해야할 항공 서비스가 이정도 라면 러시아의 서비스정신은 어느정도라는 것은 미리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생각된다.
·캄차카 까지의 입국사항
하바로프스키 공항에서의 입국신고와 외환신고와 귀중품 신고는 혜초 여행사에서 알려준 정보 와는 달리, 입국 신고서만 작성하고 외환신고나 귀중품 신고는 하지않고 바로 입국하였으며 하바로프스크에서 캄차카까지 가는 비행기 수속은 국내선 이기 때문에 다른 절차는 없고 카고백 무게와 핸디케리 무게를 합산하여 무게를 측량했다. 무게 측량만 끝나면 카고백과 핸디케리를 들고 비행기 타는 곳으로 옳겨야 하기 때문에 무게를 측량하기 전에 카고백이나 케리백에 있는 무게가 많이 나갈만한 물건을 빼놓고 무게를 측량하는 요령과 민첩성이 요구된다. 무료로 탑승할수 있는 무게가 20㎏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요령껏 무게가 20㎏ 이하가 되게 하여 무게를 달면 된다. 돌아 올때는 캄차카에서 하바로프스키 공항까지는 핸디케리는 무게를 측량하지 않고 카고백만 측량하고 측량이 끝나면 카고백은 바로 비행기로 옮겨 진다. 핸디 케리만 들고 탑승하면된다. 그리고 하바로프스크에서 인천 공항에 올때도 국내선과 똑같은 절차를 밟았다. 혜초 여행사에서 정보를 준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외사과에서 산행 증명이나 호텔 숙박 증명을 요구하지도 보자고도 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잘못된 탐사계획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하바로프스크에 도착하여 2일간을 하바로프스크에서 관광을 하고 3일째 캄차카로 들어가게 되는데 캄차카에서 모든 탐사를 마치고 귀국할 때 캄차카에서 하바로프스크 공항에 도착하여 인천으로 오는 비행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하였다. 국제선 연결시간이 2시간밖에 여유가 없었다. 캄차카에서 출발할 때 20분 늦게 출발한데다 하바로프스크 공항에서 1시간이 넘도록 카고백이 나오지 않아 얼마나 초조 불안 했는지 모른다. 카고백을 찾아 국내선에서 국제선으로 옮겨가서 국제선을 타기 위해 짐을 다시 붙이고 출국 수속을 다시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탐사 계획을 처음에 캄차카에 들어갈 때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하바로프스크 공항에 내려 바로 캄차카로 들어가 모든 탐사를 마치고 귀국할 때 하바로프스크에서 하루내지 이틀 관광을 하고 귀국을 했더라면 마음의 여유도 있고 시간적 여유도 있었을 것이다. 어린 목숨을 담보로한 잘못된 계획을 세워 탐사 활동을 하게한 운행중에 있었던 모든 사항은 무책임한 혜초 여행사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
청소년 오지 탐사대가 한 여행사의 잘못된 정보에 의해 모두 조난을 당할 위기와 목숨을 걸어야할 정도로 위험한 운행을 해야 한다면 탐사가 아닌 탐험을 해도 이렇게 무의미한 탐험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의미는 하나도 없고 위험하기만 하다면 그런 탐험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난 지금도 박훈규 대장님의 말씀이 귓전을 때린다.
나르자네에서 아반첸스키 캠프로 운행하는 도중에 얼마나 힘드셨는지 "난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죽어도 상관없으니까 우리 대원들을 빨리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주세요." 라며 울먹이면서 말씀 하시는 것을 난 정말 절대 잊을수가 없다. 지금도 혜초 여행사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잊어서도 안되고 잊을 수도 없다. 이런자들에서 또 다시 오지탐사는 물론 원정대를 맡긴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 인가를 일깨워 주었다.
캄차카 현지 정보에 대해 혜초여행사와 미팅 할때 자세히 알아 보기위하여 대원들이 의심나는 여러 가지 질문들을 하면 그렇게도 당당하고 당돌하게 "여러분은 일반 여행객 들처럼 여행을 가는 것이아니라 오지를 탐사하러 가는 것입니다" 라며 자존심 상하게 면박을 줘놓고 이런 형편없이 잘못된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하여 죽음을 넘나드는 운행을 하게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지 산악 가이드 (쎄리게이 씨)를 잘 만난 덕분에 사고 없이 무사히 2003년청소년 오지탐사를 마치게 되었다. 다시한번 쎄르게이 씨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8월 20일부터 광주일보에서 기획 특집으로 매주 수요일에 약 8회에 거쳐 이번 2003년 청소년 오지탐사대 보도 지도위원으로 함께 참가하신 이창수 부장의 사진과 글을 연재 하고 있습니다. 색다른 정보를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광주일보를 참고 하시면 많은 새로운 정보를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