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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獨聖)
스승 없이 스스로 깨침을 열어 성자가 된 자들, 즉 혼자서 십이인연법을 관하여 연기법(緣起法)
과 세상 모든 것의 무상(無常)함을 깨친 무리를 독성(獨聖) 독수성(獨修聖) 독각(獨覺) 연각
(緣覺) 벽지불(壁支佛) 등이라 부른다.
전통적 해석으로는 이들은 부처님 없는 세상에 태어나서 고요한 숲에서 선정(禪定)을 닦으면서
비화낙엽(飛花落葉)하는 천지자연의 변화를 보고 스승 없이 홀로 깨친(無師獨覺) 성스러운 수행자들이다.
독각은 때로는 스승 없이 홀로 깨친 후 아직 설법을 결심하지 않았을 때의 부처님을 가리키기도 하며,
천태산에서 독수선정(獨修禪定)하여 진리를 깨치고 미륵불이 출연하는 용화세계를 기다리고 있는
나반존자(那般尊者, 또는 18나한의 한 분인 빈두로존자)를 지칭하기도 한다.
특히 나반존자는 우리나라의 토속신앙과 결부되어 새로운 신앙으로 수용됨으로써
사찰의 독성각(獨聖閣)에 따로 봉안되어 예배 신앙되었다.
조선시대에 불교가 핍박받게 되고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말법 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는 나반존자에 대한 신앙이 널리 행해졌다.
독각은 홀로 깨닫기는 하였으나 독거수행자(獨居修行者)일 뿐 적극적으로 타인을 설법 교화하지 않고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수행의 모습에 머문다. 하여 대승불교권에서는 성문승(聲聞乘)을 소승,
스스로 개달은 독각승을 중승(中乘), 이타(利他)의 보살승(菩薩乘)을 대승으로 나누고,
이들 모두는 오직 깨달음 하나만을 위한 방편일 뿐이라고 하여 독각을 주체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성문승과 같이 깨달은 자를 철저하게 믿고 그 사람을 본받아서 열심히 수행하겠다고 결심하여
온갖 탐욕과 무지를 극복하고 노력하는 수행자나, 천지인연의 이법을 궁구하여 자연이나 인생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깨달아 진리를 발견해 보고자 하는 자기수행자는 오늘날의 다양한 수행풍토에서
주체적 적극적으로 수용되어야 할 것이다.
나반존자(那畔尊者)와 독성각(獨聖閣)
절 경내의 본당 뒤쪽으로 돌아가면 독성각(獨聖閣)이라 일컫는 작은 전각을 두고 있는 절이 흔한데,
청도 운문사 사리암의 예와 같이 그 '독성각'에다 나반존자(那畔尊者)의 신상을 봉안하기도 하나
대부분의 절에서는 탱화로 그려 봉안하고 있다.
이 '독성각'의 '나반존자'는 '16나한' 중 하나인 '빈두로존자'가 따로 이름만 바뀌어 신앙의 대상 으로
승격된 것이므로 불교 경전에서 연원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주지하는 대로 인도는 물론 중국,
일본 어디에서고 봉안된 예가 없고, 우리 나라에만 있으며, 그것도 '산신, 칠성, 용왕' 들과 나란히
신봉되는 것을 보아 우리 토속 신양의 고유신이 불교적인 색깔을 띤 불, 보살로 변형 되어
절에서까지 모셔진 것으로 보이는데, 그 형상만은 중국의 불교에서 독립 신앙 대상이 된
'빈두로존자'의 모습을 적절히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기이하게도 부처의 '10대제자'나 '16나한, 500나한' 등 그 어디에도 '나반존자'라는 이름은 발견되지 아니하며
불경 속에서도 그 이름과 '독성'이 곧 '나반존자'라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이 '나반존자'에 관한 신앙이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고, 오직 한국의 불교에서만
독특한 것을 파악했던 최남선(崔南善)은 그 '나반존자'가 전통 불교와는 무관한 것으로 민족 고유의 신앙
대상이던 것이 불교에 흡수된 것이라 하고, 그가 곧 단군(檀君)일 것이라 하였다.
그 '나반존자'의 다른 이름을 독수성(獨修聖) 혹은 독성(獨聖)이라고도 하며, 불교에서 그 독성
'나반존자'를 '16나한' 중의 우두머리인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인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는데,
'빈두로존자'는 달리 '빈도라발라타사(賓度羅跋라墮도), 빈두로파라타(賓頭盧頗羅墮)' 등으로 일컫는다.
이 존자는 세상이 말세가 되었을 때 중생을 제도하는 복밭(福田)이라 신앙되는 나한중 하나이며,
중국에서부터 그 모습이 머리카락은 희고 눈섭이 길다란 형상으로 그려진 바 있는데,
우리 불교의 나반존자 탱화 역시 비슷한 모습이다.
'빈두로존자'는 주세아라한(住世阿羅漢), 부동이근(不動利根)이라 번역한다.
원래 인도 발차국(跋蹉國) 구사미성 보상(輔相)의 아들이었는데, 어렷을 적에 불교에 귀의,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아라한(阿羅漢)이 되었으며, 후에 여러 곳으로 다니며 전도하였다.
석존 성도한 지 6년에 왕사성에서 신통력을 나타냈다가 외도들의 조소를 받았으므로
부처님께서 이 뒤로는 부질없이 신통력을 나타내지 말라 하고, 서구야니주에 가서 교화하게 하였다.
뒤에 다시 돌아오게 되어 부처님의 명을 받아 열반에 들지 않고 남인도의 마리산에 있으면서
부처 열반 후에 중생을 제도하여 말세의 공양을 받아 대복전(大福田)얘 되었으므로 주세(住世)
아라한이라 일컫게 되었다 한다.
후세에 인도 대승절에서 문수(文殊)를 상좌로 함에 대하여 소승 절에서는 '빈두로'를 상좌로 하는 풍습이 생겼다.
중국에서는 동진(東晋)의 도안(道安)이 처음 으로 '빈두로'를 신앙하고, 송(宋) 나라 태초(太初) 말기(471)에 법현,
법정 등이 처음으로 그 형상 을 그려 공양하였고, 우리 나라에서는 그를 독성(獨聖) 나반존자(那畔尊者)라 하여
절마다 독성각 (獨聖閣)에 봉안한다.
'나반존자'에 대한 독성 신앙이 격이 높은 전(殿)이 아니라 각(閣)에 모셔진 점, '산신, 칠성 등'과 함께
이른바 삼성(三聖) 민속 신앙과 인연이 깊은 점을 감안할 경우 나한 중 한 분인 '빈두로존자'
이기보다는 최남선의 말처럼 고유의 신앙 대상일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반존자를 향한 독성각의 예불문 중에 다음처럼 그 존자가 남인도 천태산(天台山) 위에서
선정(禪定)한 분으로 말하고 있으면서 또한 그를 나한이라 말하고 용화세상(龍華世上)을 기다린다 하여
미륵신앙과도 인연이 있어 보여 종잡을 수가 없는데, 혹시는 도교 관련 신앙 대상이 한국 불교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가기도 하나 이 문제는 깊이 있는 탐구를 거쳐야만 결판이 날 것으로 보인다.
南無 天台山上 獨修禪定 那畔尊者 귀의하옵니다. 천태산 위에서 홀로 선정을 닦고 계신 나반존자께.
南無 三明已證 二利圓成 那畔尊者 귀의하옵니다. 삼명을 이미 증득하셨고 자리이타를 원만히
이루오신 나반존자께. 南無 應供福田 待사龍華 那畔尊者 귀의하옵니다. 아라한의 복전 되셔
용화 세계 기다리시는 나반존자께.위는 나반존자를 향해 아침 저녁으로 3번 절을 하면서
외우는 독성각의 예불문인데,이 글에서 보다시피 독성각의 경배 대상은 '나반존자'이고,
이 '나반존자'는 천태산에서 홀로 선정을 닦았기 때문에 독성(獨聖), 독수성(獨修聖)의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삼명(三明)과 이리(二利) 의 능력을 갖춘 성인으로 일컬어졌다. 삼명은 아라한의 지혜를 갖추고 있는 이에게
자재(自在) 하는 오묘한 작용으로 숙명명(宿命明), 천안명(天眼明), 누진명(漏盡明)인데, 숙명명은 전생을
자신과 남의 전생을 꿰뚫어 아는 것이고, 천안명은 자기나 다른 이의 미래를 꿰뚫어 아는 것이고,
누진명은 지금 세상의 고통을 알아 번뇌를 끊는 지혜를 일컬음이었다.
곧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을 남김없이 통달한 분이 나반존자이므로 아울러 자신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능력을 두루 갖춘 바 되었으므로 아라한의 지위에 이르러
복밭이 되어 미륵불이 출현하는 용화세계가 이를 때까지 이 세상에 머물러 중생을 제도하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 독성을 모신 기도 도량으로는 청도 운문사 사리암의 독성각, 합천 해인사의 희랑대(希郞臺) 등이 유명한데,
흔하지 않게 독성각에다가 나반존자상을 모신 곳도 있으나 대개는 수독성탱(修獨聖幀),
나반존자도(那畔尊者圖)라 이름하는 독성탱화(獨聖幀畵)를 봉안한다.
불교 의식집 속의 독성청(獨聖請) 유치(由致)에 나반존자는 "혹시는 층층대 위에 고유히 머물러
선정(禪定)을 즐기거나 또 혹은 낙낙장송 사이를 자유로히 오가며,……
눈처럼 흰 눈섭이 온 눈을덮고 있으면서 공(空)을 관(觀)한다,……
或於層層臺上 靜居安禪 或於落落長松間 往返任意,……
雪眉覆眼而觀空)"라 한 바와 같이 독성탱화는 천태산과 소나무, 구름 등을 배경으로 하여
희고긴 눈썹을 드리운 비구가 오른 손에는 석장(錫杖), 왼손에는 염주 또는 불로초를 들고
반석 위에 정좌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때로는 독성 외에 차를 달이는 동자의 그림을 곁 들인 것이 있는가 하면
동자와 문신(文臣)이 양쪽 협시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한 탱화는 산신탱화의 영향을 받아
후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 독성에 관한 신앙은 현재 우리 나라 대부분의 사찰에서
널리 이루어지고 있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