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불 후 7일 보리수 아래에서 명상
범천의 간청으로 진리 전파를 결심
사성제-팔정도로 깨달음의 길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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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법륜지 사르나트 녹야원의 다메크수투파. 부처님이 성도하신 후 다섯 비구에게 첫 설법을 했던 장소다. |
부처님은 성불 후 7일간 (혹은 28일간, 혹은 49일간) 보리수 아래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자기의 깨침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가르칠까 말까 망설였는데, 망설이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사람들이 하루하루 먹고살기에 바쁘거나 세상 쾌락에 빠져 있거나 탐욕과 노여움이 불타고 있어 그런 진리에 관심을 가질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자기가 깨달은 진리가 ‘세상의 흐름에 역행’할 정도로 너무나도 심오하고 정교해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보아도 그들이 깨닫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깨달은 자의 실존적 고독’이다. 노자님도 모든 사람 즐거워하는데 자기 홀로 멍청한 사람 같다고 하고, 공자님도 자기의 가르침이 그렇게 단순한데 사람들이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고 하고, 예수님도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예루살렘을 향해 울었다고 했다.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진리를 앞서서 깨달은 ‘선각자’들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홀로됨의 느낌이라 할 수 있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에 의하면, 고대 영웅 신화에 나타나는 영웅들이 그들의 목적을 이룬 다음 다시 사람들 속으로 되돌아가기를 주저하는 것도 그들의 이야기 속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라고 한다. 이른바 ‘돌아감의 거절(refusal to return)’이다. 이들이 왜 사람들에게 돌아가 가르치기를 거절했을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진리란 의사전달의 대상이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 파악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던 것이 아닐까? 영어로 표현하여, 진리는 “to be caught, not be taught”라는 것이다. 스스로 체득해야 할 것이지 남이 가르쳐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부처님의 경우, 결국 사람들에게 가서 가르치기로 했다. 옛날 자기가 사람들을 돕겠다고 했던 서원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천상에 있던 브라마 신(梵天)이 내려와서 부처님에게 제발 그 깨달은 바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쳐달라고 간청하였다. 부처님 자신도 연못에 있는 연꽃들 중에 세 종류가 있음을 보았다. 첫째는 아주 흙탕물 밑에 있는 것들, 둘째는 흙탕물 표면에서 나왔다가 잠겼다 하는 것들, 셋째는 흙탕물 위에서 아름답게 핀 것들. 사람들도 이 세 종류의 연꽃들과 마찬가지로, 속세에 완전히 빠져 자유니 뭐니 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 속세에서 자유하려고 애쓰는 사람들, 그리고 속세에서 이미 자유로운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보고, 사람들 중 중간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가르침으로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보았다. 이들을 위한 자비심에서 나가 가르치리라 결심한 것이다.
누구에게 가서 가르칠까? 우선 자기가 처음에 모시던 두 스승들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불안(佛眼)을 통해 처음 스승은 이레 전, 둘째 스승은 바로 전날 밤에 죽어 둘 다 천상에 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다음으로 생각한 것이 그와 함께 고행하던 다섯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자기를 떠나 베나레스(Benares),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 외각 사르나트(Sarnath)에 있는 녹야원(鹿野苑)이라는 공원에서 고행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처님은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이들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약 200 킬로 정도의 거리였다.
녹야원에 이르렀을 때, 다섯 친구들은 멀리서 부처님이 자기들에게 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고행을 견디지 못하고 타락했던 고타마가 자기들에게 오더라도 모두 모른 척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가 가까이 올수록 그에게서 저항할 수 없는 어떤 힘이 발산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들도 모르게 모두 일어나 공손히 인사를 하고, 발을 씻으러 물을 떠오는 등, 그를 따뜻이 맞아 가장 윗자리에 모셨다. 영적으로 어느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영적으로 눈이 뜨인 사람들이 알아 볼 수 있는 에너지를 발산하는지도 모른다.
시내 산에서 신과 만나고 내려온 모세를 보고도 사람들은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보았다고 하고, 변화산에서 예수님도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그의 옷은 빛과 같이 희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스도교 성화(聖畵)에 보면 예수님의 머리 주변으로 후광이 그려져 있고, 많은 불상에서 부처님의 주위에 불꽃이 함께 있는 것도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따뜻한 영접을 받은 부처님은 그들에게 자기를 더 이상 ‘가오타마’나 친구라 부르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는 이제 ‘여래’(如來, Tathāgata)요, 참으로 ‘깨친 자’라고 했다. ‘여래’란 ‘이렇게 온 이’ 혹은 ‘이렇게 간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산스크리트어로 ‘gam’에 ‘깨닫다’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깨달으신 이’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렇게 따뜻한 만남이 이루어진 다음, 부처님은 다섯 수도승을 위해 처음으로 설법을 했는데, 이를 두고 제1차 ‘진리의 바퀴를 굴리심’(轉法輪, dharmacakrapravarta)이라고 한다. 팔리어 경전에 따라 그 가르침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그는 다섯 수도승들에게 우선 지나친 쾌락과 지나친 고행이라는 두 가지 극단을 피하고 ‘중도’(中道)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그 중도의 내용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팔정도’(八正道) 곧 ‘여덟 겹의 바른 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팔정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 바탕이 되는 ‘사제’(四諦) 혹은 ‘사성제’(四聖諦), 곧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는 것을 가르쳤다. ‘사성제’를 간단히 ‘고(苦)·집(集)·멸(滅)·도(道)’라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한 가지 미리 알아두면 좋은 것은 사성제가 의학(醫學) 용어로 이해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첫째 고제와 둘째 집제는 ‘진단(診斷)’에 해당된다. 아프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아픔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다. 셋째 멸제와 넷째 도제는 ‘처방(處方)’에 해당된다. 아프지만 걱정하지 말라. 나을 수 있다. 낫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이런저런 지시를 따라 실천하라는 식이다. 이제 네 가지를 하나씩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고제(苦諦): ‘괴로움’(duḥkha)에 관한 진리[諦]이다. 삶이 그대로 괴로움이라는 진리를 터득하라는 것이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生老病死)이 괴로움이요, 싫어하는 사람이나 사물을 대해야 하는 괴로움(怨憎會苦),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물과 헤어지는 괴로움(愛別離苦),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求不得苦), 존재 자체의 괴로움(五蘊盛苦)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사고’(四苦) ‘팔고’(八苦)이다. 결국 이런 괴로움은 개별적으로 겪는 육체적이나 심리적 고통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구나 겪지 않을 수 없는 불완전함, 불안정함, 제한됨, 모자람, 불만족스러움 같은 ‘인간의 조건’ 자체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고’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두카’(duḥkha)라는 낱말은 수레바퀴 축에 기름이 쳐져서 부드럽게 돌아가야 할 곳에 모래가 들어가 삐걱거린다는 뜻이다. 이를 현대어로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까? 학자들 중에는 이 말을 ‘괴로움’(suffering), ‘아픔’(pain), ‘스트레스’(stress), ‘근심’(disress), ‘불만족’(dissatisfaction) 등으로 옮기기도 하고, 심지어는 좀 거창한 말을 써서, ‘비극적 얽힘’(tragic entanglement), ‘끊임없는 좌절’(perpetual frustration), ‘인간으로서의 곤혹’(human predicament) 등으로 풀어 보기도 한다.
근래에 1·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생겨난 실존주의 철학에서도 인간의 실존적 모습을 분석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이데거, 야스퍼스, 사르트르, 까뮈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자주 쓰는 용어로 불안, 절망, 출구 없음, 구토, 이방인 됨, 실향(失鄕)성, 무의미, 실낙원, 소외 등등도 우리 삶의 현실적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는 말들이라 할 수 있다.
불교가 이렇게 삶을 괴로움이나 고통으로 보았다고 하여 불교를 ‘비관적(pessimistic)’ 종교라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이것은 비관적이냐 낙관적이냐 하고 따질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realistic)인 관찰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의사가 환자를 보고 병이 있다고 진단할 경우 우리는 그 의사를 보고 왜 모든 것을 비관적으로만 보느냐고 따질 수가 없다. 사실 거의 모든 종교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적 삶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에게 병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 병을 고치려는 노력의 시발점인 것처럼, 인간의 조건, 혹은 고통에 대한 자각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괴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하나의 특권이라 할 수 있다. 같은 티끌이라도 그것이 손바닥에 있을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지만, 눈에 들어갈 때 괴로움으로 아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 감수성이 예민할 때만 삶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도 괴로움을 보는 사람이라야 나머지 세 가지 진리도 볼 수 있다고 했다.
한 가지 생각해본다. 예수님이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했을 때, 여기서 우리는 그가 ‘괴로움’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라 볼 수 없을까? 여기서 예수님은 “만약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거든...”하는 가정법을 쓰고 있지 않다.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이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을 직설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직시하고 그 해결책을 얻기 위해 그에게 오라는 말씀이라 보면 지나친 일일까? 신학자 폴 틸리히에 의하면 예수님이 자기에 오라고 초청한 것은 또 새로운 종교로 초청한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로부터 자유함을 얻으라는 초청이었다고 한다.
부처님은 어떤가? 부처님도 분명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 중요한 것이지 자기가 특정 종교를 세우고 그 교세를 늘이는 것 자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타조처럼 머리를 모래 속에 쑤셔 박고 현실을 도피하는 데서 안위를 찾으려 할 것이 아니라 독수리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봄으로 거기서 해방의 길을 모색하는 태도를 가짐이 마땅함을 일깨우는 분들이 아닌가 여겨진다. 〈계속〉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1068호 [2010년 10월 19일 1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