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5:1~15)
‘I am like a moth to Ephraim,
like rot to the people of Judah.’(12)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에게는 좀같고 유다 백성에게는 부패물 같을 것이다. |
‘For I will be like a lion to Ephraim,
like a great lion to Judah.
I will tear them to pieces and go away;
I will carry them off, with no one to rescue them.
Then I will go back to my place
until they admit their guilt.
And they will seek my face; in their misery
they will earnestly seek me.’(14~15)
내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을 사자처럼 공격하겠다. 내가 그들을 찢고 움켜가도 그들을 구출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들이 자기들의 죄를 인정하고 나를 찾을 때까지 내 처소로 돌아가 있겠다. 그들이 고통을 당하면 나를 간절히 찾을 것이다. |
오늘은 본문 자체가 묵상처럼 설명한다.
이제 하나님 존재가 이스라엘과 유대 사람들에게는
좀이나 부패물처럼 전락했다.
교만과 연결된 음행, 우상의 죄가
하나님의 존재를 점점 작게 만든다.
우상과 탐욕의 존재감이 그들의 인생을 장악한다.
그렇게 되면 종국에는
하나님께서 필요한 때에
무서운 사자처럼 징계하시고 공격하신다.
이어지는 수순은
모든 것들이 부서지고 없어지자
허상들이 자취를 감추고
비로소 내게 필요했던 것들이 떠오른다.
다시 하나님, 진리, 사랑을 찾는다.
이런 어리석은 사이클을 돌 가능성이
인간에게, 내게 늘 있다.
복싱의 12라운드 매치처럼
아직 12라운드가 되지 않았다면
녹다운이 되는, 치명타를 맞아도 여전히
회복할 가능성이 있지만
12라운드가 모두 끝나고 나면
이제는 판정을 번복할 수 없이
‘확정’된다.
복싱처럼 몇 번이고 할 수 있는 매치이면
다행이겠지만,
‘On the day of reckoning(=Judgment day)’
심판의 날은 영원한 생명을 얻든지 못 얻는지가
결정되는 절대적인 것,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내 인생이 하나님께 붙들림 되어 있는 것이 감사하다.
하지만 결코 안주할 수 없다.
사실 불안한 요소가 많다.
타락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한, 낙관의 삶을 살겠다.
타락의 가능성에 매몰되거나 강박감에 쌓여 살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경계 의식을 가지며 살겠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기도, 성경, 환경, 교회)에
귀 기울이며 살겠다.
<오늘의 명언>
‘지도자의 불순종은 백성에게 고통과 굶주림을 가져다주고,
지도자의 순종은 백성의 생명을 살린다.’
-레이먼드 딜라드-
“하나님, 몸이 잘 회복되지 않네요.
내일 화요일은 보훈처 행사를 가야 하고
목요일에는 단국대 공공인재 대학 체육대회에 참관하고
이어서 강의를 해야 되며,
밤에는 제자훈련에 참가해야 합니다.
수요일에는 일본에서 온 정민이와
아들과 조카들의 여친, 남친들이 모두 모이는
가족 모임이 있습니다.
강의 준비와 제자 훈련 과제를 해야 합니다.
예전과 전혀 다른 회복력의 미진함 속에서
이 모든 일을 한다는 것이
엄청난 부담감으로 밀려옵니다.
교회의 모든 모임으로부터 벗어나
공식적 집회만 참가하고 싶다는
유혹이 강하게 밀려옵니다.
나쁜 속삭임인가요?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