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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뮌헨 가스타이그 필하모닉 홀 / 98분>
=== 프로덕션 노트 ===
이 DVD는 Arkadi Zenziper가 라흐마니노프의 걸작, 피아노 협주곡 2번 c minor op.18을 긴장되고 힘찬 그러나 시적인 정서가 풍부하게 연주한다. 그리고 이어서 성 페테르부르크 스테이트 오케스트라(구,레닌그라드 오케스트라)가 러시아적인 깊은 울림으로 차이코프스키 심포니 5번 e minor op.64의 연주로 그 뒤를 따른다. 체르넨센코의 명지휘가 러시아 본토의 연주로 두 곡을 더욱 빛내고 있다.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협주곡 No.2 in c minor
차이콥스키 / 교향곡 No.5 in e minor
피아노 : Arkadi Zenziper
St.Petersburg State Orchestra / conductor : Vladislav Tschernunschenko
=== 작품 해설 === <2014년 11월 7월 네이버캐스트 / 황장원 글>
명곡 명연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제2번 c단조, Op.18
자전적인 드라마로 구성된 라흐마니노프의 최고 인기작이자 대표작
1900년에서 1901년 사이에 작곡되어 1901년 11월 9일 모스크바에서 초연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에 작품을 남겼지만, 그의 진가가 최고조로 발현한 장르는 역시 협주곡을 포함한 피아노 음악이었다. 그는 탁월한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였기에 피아노라는 악기가 지닌 가능성을 극대화한 음악들을 작곡하고 나아가 직접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피아노 협주곡 제2번 c단조]는 그중에서도 지명도와 인기도 양면에서 단연 첫 손에 꼽히는 작품이다.
이 협주곡의 극적 흐름은 이른바 ‘베토벤적인 구도’에 아주 잘 들어맞는다. 물론 그 호흡과 표현은 지극히 ‘라흐마니노프적’이지만.
첫 악장은 마치 절망의 심연으로부터 서서히 떠오르는 것처럼 시작되어, 무겁고 두꺼운 어둠의 장막을 헤치고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며 점차 열기와 강도를 더해가는 투쟁을 연상시킨다. 그 투쟁은 끈질기고 장엄하다. 느린 악장에서는 탄식과 고뇌, 절망과 희망이 교차한다. 그 지독한 서정성! 애절하지만 감미롭고, 화려하지만 진솔하다. 마지막 악장은 춤곡이자 행진곡이다. 역동적인 리듬과 정열적인 어조로 마침내 광명과 승리를 쟁취해내고야 만다. ‘고난을 극복하고 환희로!’
그런데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런 흐름에는 라흐마니노프 생애의 단면이 투영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이 협주곡은 작곡가가 경력 초기에 겪었던 좌절, 그로 인한 실의와 고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분투의 과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협주곡을 통해서 그는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나 환희를 향해 나아갔다.
야심작의 실패와 침체기
라흐마니노프의 나이 25세 되던 해인 1897년 3월 28일, 그의 [교향곡 제1번 d단조(Op.13)]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되었다. 5년 전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한 이래 촉망받는 젊은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로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던 그는 이 열의 충만한 대작이 자신의 경력에 한 획을 긋는 회심의 역작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그 초연은 재앙에 가까운 참담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일단 연주가 전혀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일설에 따르면 지휘를 맡은 글라주노프가 술에 취해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모스크바 음악원 출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을 가진 것이 패착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연히 혹평이 쏟아졌고, 그중 ‘5인조’의 일원인 세자르 큐이는 “‘애굽의 재앙’에 관한 교향곡 같다”며 비아냥거렸다. 젊은 작곡가는 절망의 나락으로 내동댕이쳐졌고, 실의에 빠진 나머지 신경쇠약에까지 걸렸다. 무엇보다 작곡에 자신감을 잃은 그는 그로부터 3년간 거의 아무 곡도 쓰지 못했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부러져버렸다. 여러 시간 스스로 질문하고 또 회의해본 결과, 나는 작곡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뿌리 깊은 무감각이 날 점령해 버렸다. 나는 낮 시간의 절반 이상을 침대에 누워 파괴되어 버린 내 생애를 한탄하면서 보내고 있다.”
다만 그동안 다른 방면의 활동까지 위축된 것은 아니었다. 유력한 철도 기업가이자 예술 후원자인 사파 마몬토프가 그에게 자신의 사설 오페라단의 부지휘자 자리를 제안했고, 그는 거기서 평생 친구로 지낼 베이스 가수 표도르 샬리아핀을 만나기도 했다. 또 1899년에는 런던의 퀸즈홀에서 성공적인 영국 데뷔 공연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창작력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혹시 격려를 받을 수 있을까 싶어 평소 존경했던 톨스토이를 찾아갔지만, 대문호는 오히려 그가 샬리아핀과 함께 들려준 가곡(베토벤의 교향곡에서 착안한 ‘운명’이라는 곡으로, 그가 ‘교향곡 제1번’의 실패 이후 가까스로 써낸 몇 안 되는 소품 중 하나)에 비판을 가했다. 또 사촌이자 동료 피아니스트였던 나탈리아 사티나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려 했지만, 러시아 정교회와 그녀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시름을 더했다.
달 박사의 치료와 재기
결국 그는 수소문 끝에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 박사를 찾아갔다. 달 박사의 처방은 일종의 ‘자기암시 요법’이었는데, 환자에게 가벼운 최면을 걸어놓고 그 귓가에서 필요한 말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라흐마니노프의 경우에는 “당신은 새로운 협주곡을 씁니다. 그 협주곡은 성공을 거둡니다”라고 읊조리는 식이었다. 이 치료를 3개월 정도 지속하자 효과가 나타났다.
자신감을 되찾은 라흐마니노프는 새로운 대작에 도전했다. 그의 두 번째 피아노 협주곡이 된 이 작품은 1900년 가을에서 1901년 4월 사이에 작곡되었다. 먼저 제2악장과 제3악장이 완성되어 1900년 12월 2일에 작곡가 자신의 독주로 시연되었고, 제1악장은 그 후에 완성되었다. 그 음악에 그가 겪었던 상처, 회한, 몸부림의 환영이 드리운 건 당연한 수순이 아니었을까? 나아가 그는 자신의 화려한 피아니즘과 장대한 관현악 서법, 풍부한 상상력을 한껏 투입하여 새 희망을 향한 갈망과 의지를 힘차게 노래했다.
1901년 11월 9일, 마침내 [피아노 협주곡 제2번 c단조]가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피아노, 알렉산더 질로티가 지휘한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정식 초연되었다. 결과는 대성공!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으로 다시 한 번 ‘글린카 상’을 수상함으로써 명예를 회복했고, 자신의 재기에 결정적 도움을 준 니콜라이 달 박사에게 작품을 헌정했다. 아울러 그의 재기는 장차 러시아 낭만주의의 대미를 장식하게 될 거인의 나래가 비로소 활짝 펼쳐진 사건이기도 했다.
제1악장 : 모데라토, 2/2박자, c단조
이 드라마틱한 악장은 묵직한 피아노 독주로 출발한다. 낮고 어두운 화음과 깊숙한 베이스 음이 교대로 울려 퍼지는 이 장면에서 떠오르는 심상은 라흐마니노프 음악의 주요 아이콘인 ‘종소리’이다. 점점 크게 들려오는 그 종소리는 마치 재기를 향한 각성과 의지를 촉구하는 신호처럼 들리기도 한다.
일련의 종소리가 정점에 도달한 다음 순간에 현악 파트에서 제1주제가 터져 나온다. 공간을 폭넓게 휩쓸어가는 듯한 이 러시아 풍 선율이 음울하게 흐르는 동안 피아노는 그에 대응하는 장식적인 음들을 연주하는데, 이는 러시아 협주곡의 전통 가운데 하나인 장식 변주의 일환이다. 이 장면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효과적인 통합으로 창출되는 긴밀한 앙상블과 강렬한 이미지는 실로 인상 깊다.
이 음울하고 강렬한 흐름이 일단락되면 피아노가 제2주제를 등장시킨다. 이 Eb장조 선율은 음계를 보다 빠르게 오르내리며, 현악 파트의 선율과 어우러져 작품에 서정적 이미지를 더한다. 이어서 장엄한 금관의 화음 연주와 함께 발전부로 진입하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는 한층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한 흐름을 타고 격렬한 드라마를 구축해 보인다.
재현부 이후의 흐름은 더욱 흥미로운데, 제1주제는 행진곡 풍으로 재등장하고, 제2주제는 길게 늘어져 호른의 나직한 소리로 노래된다. 카덴차는 생략되어 있으며, 종결부는 이완된 분위기에서 출발하여 수수께끼처럼 흐르다가 다시 힘을 모아 강력한 울림으로 막을 내린다.
제2악장 :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4/4박자, c단조 - E장조
이 중간 악장은 여러모로 라흐마니노프의 멘토였던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Bb장조]를 연상시킨다. 일단 시작 부분에서 오케스트라에 의한 짧은 경과구가 나타나 앞선 악장의 조성(c단조)에서 본 악장의 조성(E장조)으로 이행하는 수법이 그렇고, 그 다음에 주제를 꺼내놓는 플루트 및 클라리넷 솔로가 나타나는 부분도 그러하다. 아울러 악장 중간에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스케르초 풍 섹션이 삽입된 점도 마찬가지이다.
이 악장의 느린 부분은 몽환적인 기운으로 가득하여 마치 최면 상태에 빠진 라흐마니노프의 의식의 흐름을 그린 듯하다. 그 흐름 속에서 갖가지 환영들이 스쳐 지나가고, 의식은 때로 그 수면 아래 잠겨 헤매기도, 솟구치려 몸부림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 모든 아픔과 고뇌를 뒤로 하고 밝은 세계를 향하여 뚜벅뚜벅 나아가는 주인공의 의연한 모습이 떠오르는 듯하다.
제3악장 : 알레그로 스케르찬도, 2/2박자, E장조 – c단조 - C장조
먼저 다소 경박한 춤곡 풍 리듬 위에서 진행되는 오케스트라의 전주가 나오는데, 여기서도 화성은 앞선 악장의 E장조에서 본 악장의 c단조로 움직인다. 계속해서 피아노가 현란한 연결구를 연주한 다음 격앙된 제1주제를 펼쳐 놓고, 그로 인한 흐름이 일단락되면 제2주제가 오보에와 비올라에서 매우 인상적으로 등장한다. 이 러시아 풍 선율은 제1악장의 제2주제와 연계되어 있다.
발전부와 재현부를 대단히 긴박하고도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 후에, 마지막 절정부에서 라흐마니노프는 오케스트라의 격앙된 합주로 제2주제를 커다랗게 부각시킨다. 흡사 승리의 함성 또는 선언처럼 들리는 이 희열 넘치는 클라이맥스를 기점으로 음악은 환한 C장조로 완전히 전환되고, 그 기세를 그대로 몰고 나가 강한 긍정과 확신을 나타내는 C장조 으뜸화음을 장쾌하게 울리면서 마무리된다.
추천음반
[CD] 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피아노)/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스타니스와프 비슬로츠키(지휘) <DG>
[CD]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피아노)/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앙드레 프레빈(지휘) <Decca>
[CD]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피아노)/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안토니오 파파노(지휘) <Warner/EMI>
[CD] 크리스티안 치메르만(피아노)/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세이지 오자와(지휘) <DG>
[DVD] 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피아노)/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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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12월 7일 네이버캐스트 / 황진규 글>
명곡 명연주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5번 in e minor op.64
풍부한 선율미, 제3악장에서 왈츠를 사용하는 파격적인 구성
1888년 8월에 완성해 같은 해 11월에 초연
차이콥스키가 [교향곡 5번]에 착수했던 1888년은 그가 [4번]을 쓴 지 11년이 되는 해였다. 그해 3월에 작곡가는 오랜 서유럽 생활을 청산하고 모스크바 북쪽 근교의 프롤로프스코예라는 마을(훗날 작곡가가 마지막으로 정착한 클린 시 근방)로 이사했다. 그는 숲에 둘러싸인 이 한적한 마을에서 묵은 피로를 풀면서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5월 말에 동생 모데스트에게 보낸 편지에는 ‘새 교향곡의 소재를 조금씩 모으려 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6월에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교향곡을 새로 쓸 생각이라고 말씀드렸던가요? 시작은 힘들었지만, 이제는 영감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어쨌든 두고 볼 일입니다.’라고 되어 있어 차이콥스키가 작곡에 본격적으로 손대기 시작한 것은 이 사이의 일로 보인다.
8월 초에 보낸 편지에 ‘대략 절반쯤 오케스트레이션했습니다. 그리 늙지도 않았는데 나이가 느껴지기 시작하는군요. 무척 피곤합니다. 예전처럼 앉아서 피아노를 칠 수도, 밤에 책을 읽을 수도 없을 정도로요’라고 쓸 정도로 작업에 몰두한 끝에, 이 곡은 8월 26일에 완성되었다.
대중음악에까지 영향을 미친 풍부한 선율미
초연은 같은 해 11월 17일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 협회의 연주회에서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대중적으로는 적잖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비평가들의 평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연주가 그리 좋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차이콥스키는 아무리 좋게 보아도 일류 지휘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작곡가 자신부터가 이 곡을 좋아하지 않았으니 꼭 비평가들만 탓할 일도 아니다.
‘지나치게 꾸며낸 색채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조잡한 불성실함이 있다.’ 어지간히 비판적인 비평가라도 함부로 입 밖에 낼 것 같지 않은 이런 냉혹한 평가를 내린 사람이 바로 차이콥스키 자신이었다. 그러나 그 뒤의 공연에서도 계속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결국 그도 자신감을 회복했다. 차이콥스키의 작품은 풍부한 선율미 때문인지 클래식 작곡가의 음악치고는 유난히 다른 장르의 음악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교향곡 5번]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가장 뚜렷한 예를 제공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민혜경의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라는 노래의 첫 구절 ‘그대를 만날 때면 이렇게 포근한데….’ 대목은 바로 1악장의 서주 주제 선율을 따온 것이며(민혜경의 노래는 장조이므로 4악장이라고 하는 쪽이 나을지 모르겠지만), 애니 해슬럼(Annie Haslam)의 ‘Forever Bound’라는 곡은 반주가 2악장 코다 부분을 격하게 연주한 뒤 가수가 2악장 주선율을 토대로 노래하게 되어 있다. 정말이지 누군가가 말했듯이 ‘대중음악계 종사자들은 차이콥스키에게 기념비라도 세워주어야 할’ 판이다. 아마 아래에 적힌 각 악장의 해설을 읽으면서 곡을 듣다 보면, 이외에도 이런저런 선율을 들었던 듯한 기분이 기억의 저편에서 가물거리며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악장 안단테 - 알레그로 콘 아니마
서주가 붙은 소나타 형식. ‘콘 아니마’는 직역하면 ‘영혼을 담아서’라는 뜻이다. 보통 ‘활기차게’ 정도로 해석되지만 악상 전개를 들어보면 여기서만큼은 달리 파악될 여지가 많기 때문에 그냥 직역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E단조 4/4박자의 서주 첫머리에 등장하는 어두운 클라리넷 선율은 교향곡 전체를 지배하는 핵심 악상이다. 이것을 ‘운명의 동기’라고도 부르는데, 굳이 추상적인 것을 꼭 주관적인 개념을 틀에 맞춰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이런 식의 고착화된 해석은 주로 일본 쪽에서 넘어온 것으로, 개인적으로는 그냥 되돌려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서주 악상이 별다른 발전없이 몇 차례 반복된 후 주부로 들어가면 6/8박자로 변한다. 클라리넷과 바순이 옥타브로 연주하는 1주제는 서주 악상과 마찬가지로 어둡지만 한층 생동감이 있으며, 이 주제가 여러 가지로 변화해 등장한 뒤 B단조의 유려한 경과구 주제를 거친 뒤 D장조의 온화한 제2주제로 넘어간다. 발전부는 주로 1주제에 기초하고 있는데, 대부분 전개라기보다는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재현부에서는 경과구 주제가 C샤프단조, 2주제가 E장조로 등장한다. 코다는 강렬한 1주제 동기로 클라이맥스를 구축한 뒤 조용히 끝난다.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 콘 알쿠나 리첸차
괴상한 암호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악장의 악상지시어는 ‘안단테로 노래하듯이, 다소 자유롭게’라는 뜻이다. 박자 역시 악상지시까지는 아니더라도 특이한 편이어서 12/8박자이다. 조성(D장조)과 형식(세도막 형식)은 상대적으로 평이하다(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현의 간단한 도입에 이어 호른이 주선율을 노래한다. 매우 달콤하면서도 그리움에 찬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선율은 앞서 말했듯이 대중음악에 차용되었을 정도로 유명하다. 얼마 후 오보에가 연주하는 F샤프장조의 부주제가 부드럽고 밝은 표정을 띠고 나타난다. 이 주제는 확대되어 정점에 이른 뒤 가라앉고, 이어 F샤프단조 4/4박자의 중간부로 넘어가면 클라리넷이 새로운 악상을 연주한다. 이것이 점차 고양되어 악상이 다시 정점에 이르면 서주 악상이 강렬하게 덮어 씌우듯이 연주되며, 여기서 중간부가 끝난다. 세 번째 섹션은 첫 번째와 거의 동일하지만 오케스트레이션 등에 약간의 변화가 있다. 코다에서 서주 악상이 다시 한 번 활약한 뒤 조용하게 끝난다.
3악장 왈츠. 알레그로 모데라토
A장조, 3/4박자. 보통 교향곡의 3악장에는 미뉴에트(고전파 교향곡)이나 스케르초(낭만파 이후)가 오지만 차이콥스키는 왈츠를 사용하는 파격을 감행했다(이 시도는 당시 꽤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유려하고 몽환적인 느낌의 왈츠 섹션과 민활하게 움직이는 무궁동풍의 악상을 지닌 중간부가 멋진 대비를 선보인 뒤 다시 왈츠 섹션으로 돌아간다. 말미에 서주 악상이 다시 등장하는데, 바순으로 연주되어 음색 면에서 원 악상과 상당히 이질적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알아차리기 힘들다. ‘북방의 왈츠 왕’으로 불리기도 했던 차이콥스키의 왈츠 가운데서도 손꼽을 정도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곡이다.
4악장 피날레. 안단테 마에스토로 - 알레그로 비바체
‘알레그로 마에스토소’(알레그로로 장엄하게)로 지정된 긴 서주(악장 전체의 1/3 가량을 차지한다)는 E장조, 4/4박자이며 론도의 요소가 가미된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는 서주 악상이 장조로 바뀌어 처음에는 현악 합주로, 그 다음에는 현이 반주하는 관악 합주로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갑자기 팀파니와 더불어 현악기군이 강렬하게 질주하기 시작하는 1주제가 주부의 첫머리를 장식하며, 이를 받는 8분음표+점4분음표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오보에 독주가 경과구를 형성해 잠시 전개된 뒤 목관이 연주하는 희망에 찬 느낌의 2주제가 연주된 뒤 금관이 서주 악상을 다소 거칠게 연주하면서 발전부에 접어든다.
여기서는 1주제와 2주제 모두 발전하며, 재현부 말미의 강렬한 팀파니 연타 뒤 전 관현악이 잠시 침묵에 빠졌다가(여기서 박수를 치는 것은 공연장 예절을 이야기할 때 실수로 흔히 거론되는, 아주 ‘고전적’인 예이다) 다시 트럼펫이 서주 악상을 당당하게 연주하면서 코다로 접어드는데 여기서부터는 일종의 행진곡으로 볼 수 있다. 악상은 점차 고조되어 잠시 프레스토로 휘몰아친 다음 1악장 1주제가 6/4박자로 변형된 채 당당하게 연주되면서 끝난다.
브람스는 이 곡의 연주를 듣고 나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지만, 피날레에 대해서만큼은 뭔가 부족한 것 같다면서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사실 이 마지막 악장은 듣기에 따라서는 베토벤 이래 교향곡의 역사에서 빠지는 일이 없었던 ‘암흑에서 광명으로’라는 모토에 충실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일종의 허장성세에 불과한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허세가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감추고자 할 때 부리게 되는 것임을 감안하면, 당시 작곡가의 내면에서 어떤 생각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을지 대체 누가 알겠는가. 차이콥스키는 이 곡이 초연된 지 거의 정확히 5년 뒤, 저 유명한 [비창 교향곡]을 초연한 지 불과 아흐레만에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추천음반
모노 시대까지 합치면 녹음이 100가지를 가뿐히 넘어서는지라 조심스럽게 골라볼 수 밖에 없지만, 이 가운데서 가장 망설임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음반을 고르라면 단연 예프게니 므라빈스키/레닌그라드 필하모닉(현재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의 1960년 녹음(DG)이 정답일 것이다. 무시무시한 추진력과 노도와도 같은 다이내믹, 철통같은 앙상블과 일말의 감상도 용납지 않는 단호한 표정 등, 차이콥스키를 ‘달콤한’ 작곡가라고만 알고 있었다면 실로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연주이다.
만약 이 연주가 너무 강렬하게 느껴진다면, 카라얀/베를린 필의 1975년 녹음(DG)도 좋은 선택일 것이다. 카라얀은 누가 뭐래도 차이콥스키 전문가 중 하나이며, 이 녹음 역시 화려하고 매끄러운 선율미를 잘 살려냈다. 1984년 녹음(DG)도 훌륭하긴 한데 여기서는 다소 지나치게 탐미적인 경향이 있다.
이보다 불과 2년 뒤인 1986년에 젊은 얀손스가 오슬로 필하모닉과 남긴 녹음(Chandos)은 나무랄 데 없이 깔끔한 리듬과 명쾌하고 균형감 있는 템포 운용, 세련되고 풍부한 표정 등 조형미라는 측면에서 거의 최상의 수준을 보여준다.
스베틀라노프/소련 국립 교향악단의 1990년 녹음(Pony Canyon)은 므라빈스키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저돌적이다. 질풍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최상급의 녹음과 어우러진 음반이라 할 수 있다.
이밖에 스토코프스키(Decca), 번스타인(DG), 게르기예프(Philips) 등의 녹음도 기회가 되면 들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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