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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수도 공주 부여를 찾아서
백제의 마지막 의자왕은 과연 삼천 궁녀를 거느렸을까요? 삼천 궁녀는 절개를 지키기 위해 망국의 한을 가슴에 안은 채 낙화암에서 꽃잎처럼 그렇게 난분분 떨어져 죽어갔을까요? 여러분은 그 삼천 궁녀가 빠져 죽었다는 낙화암의 진실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 낙화암 아래 도도히 흐르는 백마강 ♪
그리고 우리는 왜 그런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게 되었는지 의문을 가져 본 적은 없나요. 굴렁쇠 아저씨와 함께 떠나는 역사 기행 이번에는 고구려, 신라, 가야와 더불어 우리 한반도에 문화의 꽃을 피우고 일본에까지 문화를 수출 했던 백제... 그 화려했던 문화의 땅 부여. 공주를 찾아 떠납니다.
♪ 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 ♪
얼마 전 경주 불국사를 다녀왔는데 거짓말 쬐금 보태서 정말 사람들 틈에 끼여서 터져 죽는 줄 알았슴다. 왜냐구요? 고놈의 수학여행단들 때문이지요. 우리나라 아이들 수학여행은 죄다 경주 불국사로 오는 모양입니다. 그처럼 예전에 우리 부모님들 학창 시절 수학여행 일정 중에 빠지면 큰일이 나는 곳이 있었지요. 바로 부여. 공주랍니다.
굴렁쇠 아저씨 부여 공주 첫 입성도 당근 그때였지요. 수학여행 간다고 시골에서 부모님들 졸라 기지바지 하나씩 내려 입고 눈뜨자마자 새벽이슬 맞으며 백마강 기슭을 어슬렁거렸던 기억 가지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요.^^
부여 공주는 실제로 가보면 교과서에 오르내리는 유명세에 비해 그다지 볼거리가 많은 곳이 아니랍니다. 천년 고도 신라의 수도 경주를 돌아보고 부여 공주를 가면 실망감이 더하죠. 스포츠와 전쟁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농담이 있듯이 싸움에서 지면 남는 게 없습니다. 신라에게 망한 뒤 백제는 그야 말로 폐허가 됩니다.
그에 비해 신라는 큰 손실없이 그대로 보존이 되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죠. 그리고 차이가 나는 또 한가지 이유! 현대에 와서 문화재 복원 과정에서 신라의 수도 경주보다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 공주가 소외되었던 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구요...
♪ 공주 공산성 ♪
2000년에 들어와 공주, 부여에도 백제문화재 발굴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먹고 살만하면 여행이나 여가 생활에 관심을 가지듯이 나라가 발전하게 되면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지는 게 역사와 문화입니다. 곳곳에 가보면 박물관이 예전에 비해 수준이 높아졌고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그만큼 잘 먹고 잘 살 사는 나라가 되었다는 뜻이겠죠.^^ 백제 역사문화관, 정림사지 박물관이 들어서서 이곳도 이제 한층 볼거리가 많아졌답니다.
그러면 우리가 1박 2일 동안 돌아보게 될 일정을 간단하게 소개할게요. 첫날은 백제의 수도 위례성에서 고구려 군에 밀려 내려왔던 공주 공산성과 무령왕릉 전시관, 공주 박물관,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님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마곡사를 둘러봅니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중국과 일본과의 교류를 원활히 하고 보다 넓은 땅을 찾아 옮긴 부여. 부소산성과 궁남지, 고란사, 백제역사문화관, 부여박물관을 찾아 갑니다.
공주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찾게 되는 곳은 공산성입니다.~ 백제의 수도 한성에서 고구려 군에 맞서 싸우다 개로왕이 죽게 되죠. 그리고 남으로 쫓겨 내려와 자리 잡은 곳이 바로 곰나루 웅진, 공주입니다.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 금강이 흘러 적들이 섣불리 쳐들어오지 못할 자연적인 조건이 뛰어난 요새가 바로 공산성입니다.
♪ 공산성 입구에 서 있는 선정비. 백성을 위해 정치를 한 사람들의 선정비 일까? ♪
♪ 투구를 쓴 군인 모습을한 장승 ♪
사후에 다시 왕으로 태어나리라는 강한 소망을 담아 만든 왕릉과 송산리 고분이 이 공산성과 더불어 공주 유적의 한 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산성 주차장에서 나오면 무령왕릉 무덤 모양을 본떠 만든 아치형 문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내면이 중요하다고 강조를 하지만 사실 외형에 상당히 현혹되는 경향이 많지요. 종교를 믿을 때도 신의 존재보다는 불상이나 신전의 웅장한 건물 이미지에서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느끼는 게 인간의 심리라고 하네요. 그처럼 아치형 모양의 문으로 통과 하다보면 기분이 아주 묘해져요. 마치 백제 무령왕 시대로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 무령왕 전시관 입구에 있는 놀이 마당. 굴렁쇠 굴리기 ♪
아치형 문을 지나면 송산리 고분이 나옵니다. 역사 기행을 다니면서 느끼게 되는 안까타움 중에 하나가 대부분 무덤 속에 유물들이 온전히 보존되지 못하고 도굴꾼들에 의해 훼손 되었다는 겁니다. 지금도 회수되지 않고 이국땅에서 떠도는 훌륭한 문화재들이 수도 없이 많다고 하니... 그런데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채 천년이 넘게 고이고이 잠들어 있던 무령왕릉은, 물길을 내던 인부 아저씨의 삽 끝에 무덤의 돌이 감지되어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그것도 100% 처녀 무덤으로... 오! 무령왕이 보호하사~ 발굴 과정을 담은 자세한 자료는 공주 박물관 1층 영상 자료에 고스란히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발굴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긴 역사적인 자료로 말입니다.
♪ 공주 송산리 고분 들어 갈수 있을까! ♪
무령왕릉의 특징은 벽돌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왕 표지석은 물론 무덤을 지키는 뿔이 달린 똥돼지 같이 생긴 짐승도 돌로 만들어졌지요.
♪ 공부 박물관. 무령왕릉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 ♪
등잔, 중국돈, 귀금속, 일본 소나무로 만든 관, 일본에서 들여온 나무로 만든 관, 등등 백제 문화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많은 유물이 그야말로 우루루 쏟아졌어요.
♪ 무령왕릉 전시관 무령왕릉 모형 안에서 열공 ♪
무령왕릉에서 나온 유물은 무령왕릉 전시관과 공주박물관에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공주박물관과 무령왕릉은 한 세트라고 보면 됩니다. 공주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무령왕릉의 생애를 더듬어 보면 한층 흥미롭답니다.
♪ 국립 공주 박물관. 야외 전시물도 볼만 하다 ♪
공주 박물관에서 차로 삼십분 쯤 달리면 태화산 자락에 마곡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산 좋고 물 좋은 명당은 절이 다 자리 잡고 있다고 하죠. 마곡사 가는 길도 겁나게 아름답습니다. 여름에는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겨울에는 얼음판에서 놀다 가면 딱 입니다. 천왕문 지나서 다리가 하나 있는데 그 밑에는 금붕어들이 놀고 있습니다.
♪ 마곡사 해탈문. 아이들이 해탈 하면은 ? ♪
부처님은 서운하시겠지만 아이들에게는 부처님 보다는 이 금붕어가 훨~ 인기가 좋답니다.
♪ 마곡사에서 물 한모금 하고 ♪
설마 마곡사 금붕어 때문에 이절이 그렇게 유명하다구요? 크크 그건 아니랍니다.^^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님이 머물렀던 곳이라 더 유명해진 절이지요. 명성황후가 일본 칼잡이에게 죽음을 당하고 난 뒤, 조선 사람을 괴롭히던 일본 장교를 죽이고 김구 선생님은 이곳 마곡사에 피신을 왔다고 합니다. 절은 종교적인 장소이기 이전에 살아 숨 쉬는 우리 문화와 역사의 장이기도 합니다.
♪ 마곡사 석탑. 원나라 영향을 받아 꼭대기(상륜부)가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
임진왜란, 6.25 등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절은 중요한 역할을 해 왔지요. 그래서 절 공부는 참 중요하다고 굴렁쇠아저씨는 늘 강조를 합니다. 마곡사에 오시면 해방이 되고 난 뒤 김구 선생님이 이곳에 들러 손수 심었다는 향나무를 꼭 한번 찾아보세요.
♪ 마곡사 향나무. 김구 선생님이 심은 향나무 ♪
부여 공주에는 시내에 유스호텔이 있습니다. 와~ 근사하겠다구요? 글쎄, 이름처럼 그렇게 근사한 건 아니구요,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할 때는 이런 유스호텔이 시내 한복판에 있는 곳이 흔하지 않기 때문에 부여 공주에 오면 아주 유용하게 잘 이용을 하고 있지요.
팬션이나 민박시설은 사실 경치 좋은 외곽 지역에 자리잡고 있어서 사용하기가 그렇게 쉽지가 않거든요, 유스호텔 조리 아줌마가 만드는 음식은 옛날 시골밥상 그대로입니다. 국 끓이고 나물 무치고 무엇보다 화학조미료가 적게 들어서 최고입니다.
♪ 부여 삼정 유스호텔. 호텔앞 조각 공원도 볼만 하다 ♪
저녁 시간이면 숙소에서 열공을 합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힘들었을 건데 그냥 푹 쉬면되지 무슨 공부냐구요? 사실 공부하는 게 훨씬 편하거든요.^^ 아이들에게 ‘자유 시간이다’ 그러면 어떨까요? 그건 상상에 맞기겠습니다요... 상금과 맛있는 과자를 걸고 열공하는 게 최고라는 걸 다년간 경험으로 터득을 했지요. 공부 내용은 음 ~ 모둠별로 백제 신문 만들어 발표하기 내일 돌아볼 장소에 대한 문제를 퀴즈로 풀어보기입니다. 일석이조라는 말은 이럴 때 쓰면 딱 맞지요.
♪ 유스호텔 방에서 백제신문 만들기 ♪
궁남지는 말 그대로 궁궐 남쪽에 있는 연못이라 뚯 입니다.
♪ 부여 궁남지. 여름에는 연못 둘레 버드나무와 연꽃이 아름답다 ♪
궁남지는 경주 안압지는 물론이고 훗날 창덕궁 후원, 경복궁 경회루, 수원 방화수류정의 모델이 되기도 합니다. 6시 반에 일어나 산책을 하듯이 궁남지와 유스호텔 근처에 있는 조각 공원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허걱 6시 반이라구요?
굴렁쇠 친구들은 그 정도야 기본이죠...
♪ 궁남지 겨울 풍경.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슴프레하다 ♪
♪ 궁남지 수차. 물을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리는 기구 ♪
공주는 무령왕, 부여는 성왕을 대표적인 왕으로 꼽지요. 부여에서 한참 힘을 키우던 성왕이 신라와 맞서 싸우러 간 아들을 지원하러 가다가 이 정보를 미리 알아챈 신라군에게 포위당해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그의 명성에 비해 다소 허무한 성왕의 죽음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요. 그게 뭐냐구요? 정보죠. 정보는 이제 능력이고 권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보를 습득할 여력이 없으면 늘 다른 사람에게 지게 되지요. 그것은 개인의 삶에서나 정치에서나 다를 게 없답니다. 부여읍 로타리에 묵묵히 앉아 있는 성왕 동상은 그래서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 백제 성왕 동상 ♪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너무나 귀에 익은 노래가사지요. 아참! 요즘 아이들은 그게 무슨 노랜데? 그러겠네요. 어른들 사이에서는 아주 유명한 노래랍니다. 금강과 백마강은 같은 강이지요. 그런데 왜 금강을 백마강이라고 하는지는 구드래 나루터에서 고란사까지 가는 배를 타고 가다보면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낭랑한 아가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잘 알 수 있답니다.
♪ 백마강 유람선. 구드래 나루터에서 고란사 나루터 까지 간다 ♪
예나 지금이나 나라 잃은 설움은 참 무섭습니다. 개인의 행복은 나라의 안녕이 없으면 보장될 수가 없죠.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지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요. 꺼져가는 국운을 되살리기 위해 계백장군이 자신의 가족을 죽이면서까지 적과 맞섰지만 백제는 결국 나당 연합군에 의해 망하게 됩니다. 굴렁쇠 친구들이 만약 계백장군과 같은 처지였다면 사랑하는 가족들을 과연 자기 손으로 죽일 수 있었을까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비극적인 일이지요.
♪ 부여 궁남지에 있는 오천 결사대 출정상 ♪
폐망한 나라 백성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겠지요. 다시 나라를 되찾아 보려는 패자부활전도 물거품이 되고, 백제인들은 결국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의자왕을 비롯한 한 무리는 당나라로 끌려가고, 또 한 무리는 신라로 끌려가고, 또 다른 무리는 이 구드래 선착장을 통해 일본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일본에서 최고의 제품으로 인정받는 '구다라 나이' 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백제 구드래 나루터를 통해 일본으로 도망을 간 백제 기술자들이 만든 제품이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구드래가 구다라 즉 백제라는 뜻입니다.
♪ 부여 구드래 나루터 ♪
공주는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 부여는 부소산성과 능산리 고분 이렇게 한 세트로 보면 됩니다. 백제 삼천 궁녀가 부소산성 높은 바위에서 떨어져 죽었다 하여 붙인 이름이 타사암입니다. 조선시대에 와서 타사암을 낙화암이라고 이름을 붙였답니다. 그런데 과연 삼천 궁녀가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었을까요? 우리 역사 교과서에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것들이 많지요. 일본 사람들은 되도록 우리 역사를 무시하려고 애를 썼어요. ‘삼천 궁녀나 거느리며 나라를 망하게 한 왕이 너희 조상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다’ 뭐 그런 식으로 우리를 깔아뭉개지 못해 안달을 했으니까요. 말과 역사를 제대로 지키는 것은 그래서 참 중요하답니다.
고란사 뒷편에는 고란정이란 약수가 있습니다.
♪ 부여 고란사 고란정. 약수물 마시는 곳 ♪
이 약숫물을 한 바가지 먹으면 일 년씩 젊어진다는 전설이 있답니다. 욕심 많은 할아버지가 약수를 너무 많이 먹어 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죠.
♪ 고란사 약수물 마시고 재미있게 공부 하자 ♪
요즘 사람들은 무슨 소원을 빌면서 약수를 마실까요? 당연히 ‘부자 되게 해 주세요’ 그러겠죠 만약에 로또복권이 당첨되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물었더니 공부 걷어치우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겠다는 친구가 엄청 많았다고 하네요. 맙소사...게임이나 실컷 하고 싶다는 이야긴지... 늙으나 젊으나 지금 세상은 온통 돈타령입니다. 이제 고란사로 갑니다. 고란초라는 풀이름을 들어보셨는지요.
♪ 고란사 고란정 앞 유리각 안에 들어 있는 고란초 ♪
절 주변에 고란초가 많아 고란사라고 했답니다. 고란사는 아주 조그마한 암자 같은 절입니다. 그런데 그 앞으로 확 터인 백마강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크게 느껴지는 마력이 있는 절이지요. 강바람을 타고 퍼져 나가는 풍경 소리~
♪ 부여 고란사 ♪
거기에다 운 좋으면 들을 수 있는 스님의 애절한 대금 소리~ 백마강이 곁에 있기에 더욱 운치가 있는 절이 바로 고란사랍니다. 고란사에 들리면 강가에서 울리는 풍경소리를 꼭 한 번 들어보세요.
♪ 고란사 멍멍이 보살(?) ♪
짠~ 2010년 드디어 백제문화 엑스포 부여에서 열리다. 경주 문화 엑스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그 엑스포가 부여에서도 열린다네요. 백제역사문화관 뒷편으로 백제문화 재현 단지를 한참 짓고 있는데 왕궁을 비롯해서 규모가 엄청 큽니다. 한번 공부를 하고 엑스포가 열릴 때 다시 오게 되면 머리에 쏙쏙 들어오겠지요. 2010년에 꼭 다시 오기로 해요...
정림사지 5층 석탑을 빼고 백제 문화를 이야기할 수가 없지요.
♪ 부여 정림사지 박물관 ♪
솔직히 눈으로 보기에는 그 탑이 그 탑 같은데 조형미가 뛰어나다고 침을 튀겨가면서 강조를 하면 굴렁쇠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끄덕 하긴 합니다. 뭘 알고 그러는지 모르고 그러는지...^^ “ 탑 몸에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의 뜻을 담은 낙서가 있다.” 그러면 아이들은 일제히 낙서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웁니다. 이렇게 훌륭한 탑에다 누가 감히 무슨 낙서를~ 그 분위기죠. 정림사지 박물관에 가면 무슨 낙서를 했는지 알 수 있느니라...
♪ 정림사지 오층 석탑 ♪
그 말 한마디에 아이들은 또 박물관에 가서 열공을 한답니다. 백제의 흥망성쇠를 안고 있는 정림사를 이제 다시 복원한다고 하네요. 부디 선대에 부끄럽지 않고 후세에 자랑스러운 복원이 되길 바랍니다.
♪ 정림사지 오층탑을 그려보자! ♪
로타리에서 성왕 동상과 백제금동대향로가 부여의 수호신처럼 서 있는 걸 보면 여기가 백제 땅이구나 하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 백제 금동 대향로 ♪
그러면서 부여 백제 기행의 마지막 일정 국립 부여 박물관을 갑니다.
♪국립 부여 박물관 ♪
부여박물관의 대표선수는 당연히 백제금동대향로입니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 잘 보관이 되어있지요. 어디를 가더라도 탁본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인기가 있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부여 박물관 역사 체험실. 탁본 하기 ♪
“1박 2일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지?” 일정을 마치고 정자에 빙 둘러 앉아 느낌 점을 묻습니다. 그러면 각양각색의 대답들이 날아옵니다. 유스호텔에서 밥 먹은 것, 베개 싸움한 것. 상금 받은 것... 정림사지 5층 석탑, 금동 대향로, 낙화암, 무령왕릉... 그런 대답은 별로 없는 것 같군요. 그렇지만 1박 2일 길지 않은 시간동안의 역사 기행이 아이들의 마음 한 구석에 좋은 경험으로 추억으로 새겨질 것이라고 굴렁쇠 아저씨는 믿습니다. 하루를 더하는 일정이라면 전주와 익산을 가봐도 될 것 같습니다. 굴렁쇠 친구들의 즐거운 기행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 일부 사진은 다른 곳에서 옮겨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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