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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의 이야기⓻ -----------------------------
아하시야
2400915낮 (왕상22:51-53/왕하1:1-17)
(왕상22:51-53)<51)유다의 여호사밧 왕 제십칠년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52)그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의 길과 그의 어머니의 길과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53)바알을 섬겨 그에게 예배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기를 그의 아버지의 온갖 행위 같이 하였더라>아멘
(왕하1:1-17)<1)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2)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3)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5)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하니 6)그들이 말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 7)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8)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9)이에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 본즉 산 꼭대기에 앉아 있는지라 그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10)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11)왕이 다시 다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니 그가 엘리야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하니 12)엘리야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하나님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13)왕이 세 번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보낸지라 셋째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 앞에 이르러 그의 무릎을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하건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명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14)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전번의 오십부장 둘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거니와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하매 15)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내려가라 하신지라 엘리야가 곧 일어나 그와 함께 내려와 왕에게 이르러 16)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사자를 보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그의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안 계심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니라 17)왕이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그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둘째 해였더라>아멘
북이스라엘 아합왕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아람과의 3차 전쟁(길르앗 라못)에서 죽고 난후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이어서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남유다의 아하시야; 아합의 외손주
북쪽의 아하시야; 아합의 아들
삼촌과 조카관계..
*남북왕조표 참조
오늘은 북이스라엘 아합왕에 이어 왕이 된 그의 아들 아하시야(8대)왕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큰 은혜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북이스라엘의 아하시야는 자기 아버지 아합의 악행을 그대로 본받아 우상숭배하고, 여호와 앞에 불순종했습니다.
왕상22:51-53절을 읽겠습니다.
<51)유다의 여호사밧 왕 제십칠년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52)그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의 길과 그의 어머니의 길과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53)바알을 섬겨 그에게 예배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기를 그의 아버지의 온갖 행위 같이 하였더라>
좋은 일을 따라 해도 모자랄 판에 나쁜 본보기를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고, 가장 저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아버지 아합이 그러더니 아들 아하시야도 하는 짓 마다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켰습니다.
보고 자란 것이 그것 밖에 없어서 그렇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의 삶은 자식의 무의식 속에 깊이 박히는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칩니다. 이렇게 때문에 좋은 영적인 환경에서 자식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제주도/섬이다 보니 보고 듣는 것이 한정되어 있어서 신앙생활의 좋은 모델을 찾기 힘들다.
서울서 목회하는 친구목사님// )
장로님, 권사님들...직분자들은 성도들에게 좋은 본의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2. 모압의 배반
아합이 죽고 아하시야가 왕이 되자마자 직면한 문제는 모압의 배반이었습니다.
왕하1:1절입니다.
<1)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이것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던 북왕국 이스라엘이 본격적으로 쇠락하기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하면 사람들이 우리를 거칠게 대하기 시작합니다. 반역하고 배신 합니다. 하나님의 보호막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3. 사고로 병들게 된 아하시야
왕하1:2절입니다.
<2)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엎친데 덥친격으로 아하시야는 뜻밖의 사고로 부상을 입게 됩니다. 사마리아에 있는 다락 난간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모압이 배반했죠...이 문제를 해결하기도 전에 사고로 병이나 눕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보통 심란해지고 나약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회복되어 살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에그론의 바알세붑에게 사람을 보내게 됩니다.
바알세붑은 파리왕이라는 뜻으로 학자들은 이것이 파리형상의 우상이거나 파리가 전염시키는 질병에서 보호해준다고 믿은 우상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참으로 기가 찰 일입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아픈 와중에 왕은 자신의 생사여부를 알기 위해 우상 신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사하시야가 얼마나 우상에 빠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의 황폐한 영적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제 생겼을 때,,,,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인생에 폭풍이 닥쳤을 때 어디로 달려가느냐가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힘들 때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점을 쳐보고 부적을 붙여주고, 주변 사람들한테 전화 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평소에 자기의 영적상태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아하시야의 치명적인 실수는 실수로 다락위에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진짜 치명적인 실수는 자기가 살 것인지... 죽을 것인지 자기 병세를 알아보려고 우상 신들에게 신하를 보낸 것입니다. 어려움이 닥친 게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 하려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셨습니다. 우상 신전으로 가는 아하시야왕의 사신에게 엘리야를 통해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셨습니다.
왕하1:3-4절입니다.
<3)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왕이 되자마자 악행을 일삼은 아하시야가 사고를 당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는...하나님을 찾으라는 하나님의 초대였습니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어리석게도 그 하나님의 숨겨진 메시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고작 한다는 것이 신하들을 우상 신전에 보내서 바알세붑에게 자기 병세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위기 앞에서 이방신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무시하는 행동인 것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자기 자식이 부모 놔두고 다른 이를 찾아가서 도움을 구하면 부모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인생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가서 매달릴 때, 하나님은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시16:4)
이 다짐이 우리의 다짐이 되어야 합니다.
아하시야는 그 수많은 악행에 더하여 우상 신에게 자신의 병세를 묻기까지 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비참하게 스스로 끝내버린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아하시야의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으로써 아하시야의 생명을 거두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사고를 당하게 하셨는데 그 의도를 모르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바알세붑을 찾은 아하시야에게 진짜 분노하셨습니다.
죽음으로써 아하시야는 자신이 의지했던 바알세붑의 헛된 실체를 깨달았을 것이고, 자신이 무시한 하나님이야말로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시고 생명을 주관하시는 전능자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죽고 나서 지옥 불에 떨어질 때서야 깨닫게 되는 인생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없습니다.(예: 거지 나사로와 부자이야기)
살아있는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내가 살아있음은 하나님께서 살려주시기 때문이요, 살려두시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거룩한 목적이 있어서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 살기를 거부한다면 더 이상 살아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사명이 끝나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옮겨가실 것입니다.
아하시야의 죽음을 신하들을 통해서 전한 하나님의 종은 엘리야선지자였습니다.
4. 아하시야는 회개하는 대신 분노를 택합니다.
회개하는 대신 분노한 아하시야는 무장한 친위군을 엘리야에게 보냅니다. 오십부장과 그 부하들은 아하시야의 명령을 받아 엘리야를 잡으러 가니 엘리야는 산꼭대기에 앉아 있습니다.
오십부장은 오만하게 엘리야에게 외칩니다.
왕하1:9절입니다.
<9)이에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 본즉 산 꼭대기에 앉아 있는지라 그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여러분! 이 말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말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러놓고는 정작 왕의 명령을 받들어 내려오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보다 왕의 권위를 더 높이 세우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왕이 직접 와서 그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깍듯한 예우로써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밑에서 왕의 명령이니 내려오라고 소리칠 것이 아니라...
이 때...엘리야는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오십인을 사를찌로다”(왕하1:10)
엘리야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까 오십부장의 말에는 “네가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냐?”는 식의 조롱이 섞인 말투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지휘관은 왕의 권세를 등에 업고 엘리야선지자에게 오만방자하게 하나님의 종을 조롱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야선지자가 “네 말대로 내가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 너와 너의 50명의 부하들을 사를 것이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순간 정말 하늘에서 불이 나와 오십부장과 부하들이 불에 타죽고 맙니다.
아하시야 왕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엘리야를 체포하기 위해 오십부장과 그 부하들을 또 보냈습니다. 이 오십부장도 앞선 불에 타 죽은 오십부장처럼 선지자를 조롱하며 교만한태도로 속히 내려오라고 재촉하다 똑같이 불에 타 죽고 맙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좋은 분이시지만 우리가 함부로 대해도 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놀리는 자세, 조롱하는 자세로 대하면 큰일 납니다.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주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갈 때에는 겸허하게 나아가야합니다.
부하들이 이렇게 죽어나가면 아하시야는 이때라도 놀라 엘리야를 잡는 것을 포기하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아하시야는 세 번째로 또 다른 오십부장을 또 보냅니다. 참으로 우매하고 강퍅한 지도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 열 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릴 때까지 계속 강퍅했던 바로왕을 연상케 합니다.
엘리야 선지자에 대한 아하시야의 이런 적개심과 분노는 하나님께 대한 대적행위입니다. 우매한 자는 실패에서 배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잠27:22절입니다.
<22)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아니하느니라>
그런데 다행히 세 번째로 왕의 명령을 받고 엘리야를 잡으러 간 오십부장은 대단히 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산 위에 있는 엘리야에게까지 가서 그 앞에 꿇어 엎드려 겸손하고 간절하게 애원합니다.
왕상1:13절입니다.
<13)왕이 세 번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보낸지라 셋째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 앞에 이르러 그의 무릎을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하건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명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세 번째 오십 부장은 앞선 두 오십 부장과는 달랐습니다. 왕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오긴 했지만, 이전의 두 오십 부장의 오만함과는 달리 공손한 태도로 엘리야에게 자비를 호소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보낸 왕보다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더 두려워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세 번째 지휘관 오십 부장에게서 우리는 세상 속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왕의 명령이기 때문이 어쩔 수 없었다.? 나찌가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 했을 때..독일군 장교들이 우리는 히틀러가 시켜서 군인으로 복종했을 뿐이라고 핑계될 수 있겠습니까? 직장상사가 시켜서 어쩔 수 없다. 회사의 방침이 그래서 그랬다... 단체생활에서 어쩔 수 없었다... ???
우리는 모든 행위에 대한 최종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사람의 권위 사이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잘 판단해야 합니다. 아하시야가 보낸 세 번째 오십 부장처럼 비록 왕의 명령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모든 권위에 우선하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존경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한가운데서 쉽지 않은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는 늘 기도하고 잘 판단하여 처신해야 합니다. 우리 위에 세우신 세상의 권위를 하나님의 뜻으로 알아 순종해야하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기준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영적분별력을 가지고 판단해서 행해야 합니다.
세 번째 지휘관 오십 부장의 겸손한 간구가 있은 후 하나님의 사자는 엘리야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그와 함께 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엘리야는 왕의 명령에 호출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반응하여 왕에게 간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아무리 제왕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NO!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엘리야가 왕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반응한 것처럼...우리도 환경에 반응하고, 사람에 반응하고, 인정에 반응하고, 권력에 반응하고, 욕심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왕 앞에 간 엘리야는 신하들을 통해서 전했던 예언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재 확인시켜 줍니다. 왕은 하나님을 외면하고 바알세붑 우상에게 자신이 살 건지 죽을 건지를 물으러 신하들을 보낸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 누운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져 아하시야는 즉위 2년 만에 침상에서 죽고 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토록 정학하게 이루어집니다.
왕하1:17절입니다.
<17)왕이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그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둘째 해였더라>
사랑하는 여러분!
왕들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씀으로 여겨지십니까? 여기의 이 악한 왕들은 오늘날 저와 여러분일 수 있습니다. 즉, 내 삶에 하나님 없이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자기가 왕입니다. 주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지 못하고, 자기가 주인 되어 산다면 그는 왕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내 고집과 경험과 내 주관으로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면 그분은 왕입니다. 그것도 선한 왕이 아니라 여로보암, 아합, 아하시야처럼 악한 왕입니다.
악한왕 아합의 피를 이어받은 아하시야왕은 부모의 악행을 그대로 이어받아 행하므로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고, 그 결과 2년 만에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어 죽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나쁜 부모의 영향력이 그토록 파괴적입니다. 자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거듭되는 하나님의 경고 메세지에도 회개하지 않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하시야는 하나님이 기회주실 때 회개하지 않으면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자에게 하나님은 ‘무자비(無慈悲) 하시다’ 라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