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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수난 보는 성모 맘 저미는 아픔 속에 하염없이 우시네(‘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부속가).>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고통의 성모 신심
그때에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요한 19,25-27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이날은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함께하신 성모님의 고통을 기억하는 날이다. 일찍이 시메온은 성모님의 고통을 예언하였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하고 기억하는 신심은 오래전부터 널리 퍼져 있었으며, 1688년 인노첸시오 11세 교황이 이 기념일을 정하였다. 1908년 성 비오 10세 교황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 날인 9월 15일로 이 기념일을 옮기고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연결하여 기억하게 하였다.(오늘의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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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형이 집행되고 있던 골고타 언덕의 상황은 차마 눈뜨고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습니다. 예수님뿐만 아니라 또 다른 두 명의 사형수들이 흘린 피로 사방이 피비린내로 가득했습니다. 사형수들이 극도의 고통으로 인해 내지르는 비명과 신음 소리가 골짜기 전체에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
백인대장의 감독 아래 사형을 집행한 로마 군대 소속 병사들은 총 4명이었습니다. 그들은 사형수들의 목숨이 떨어질 때 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사형수들이 빨리 죽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겠지요. 그래야 사형 집행에 대한 수고비조로 죄수들이 입고 있던 옷을 일당으로 받아들고 퇴근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는 무심한 얼굴로 옷의 분배에만 골몰하고 있던 네 명의 병사들뿐만 아니라, 또 다른 네 명의 여인이 서 있었습니다. 병사들과는 대조적으로 슬픔으로 가득한 네 명의 여인, 그리고 그분이 사랑하시는 애제자가 서 있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했던 이 사람들, 특히 성모님께서는, 극심한 내적인 고통을 겨우겨우 참아내며 끝까지, 용감하게 십자가 아래 서 있었습니다. 차라리 내가 대신 저 십자가에 매달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지금 겪고 계시는 고통에 영적으로 긴밀히 참여하며,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한 가지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마지막 단말마의 고통을 겪는 순간, 숨이 떨어져가는 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아래 서 있는 어머니,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 남겨질 교회와 양떼인 우리를 걱정하십니다.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 감당하기도 힘겨우실텐데, 자신에게 휘몰아쳐오는 광풍과도 같은 괴로움에 대해서는 일말의 표현도 하지 않으시고, 그저 자신이 떠나신 후 남겨질 사랑하는 사람들을 염려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복음 19장 26~27절)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를 새로운 모자 관계로 연결시켜주셨습니다. 남겨질 신앙 공동체를 위해 성모님은 중개자 역할, 즉 교회의 어머니로서 역할을 지속해나가실 것입니다.
이제부터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넘어서서, 사랑하는 제자의 어머니,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 더 나아가서 교회 공동체의 어머니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은혜롭게도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그분의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로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과 성모님의 존재로 인해 모두 한 형제요 한 자매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신앙 안에서, 예수님과 그분의 어머니 안에서 새로운 영적 가족으로 재탄생한 것입니다.(매일미사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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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하느님은 남성? 여성?」
언젠가 어떤 청년으로부터 성경은 너무나 남성 중심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꼭 남성이어야 하느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표현 때문에 남성이라고 생각한 것일까요? 그러나 성경 안에서 하느님은 반드시 남성으로 묘사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 “하느님은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라고 나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하느님은 히브리 원어로 ‘엘로힘’입니다. 이 단어가 구약성경에 2,500회 이상을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엘로힘은 ‘엘’이라는 남성 신과 ‘엘로아’라는 여성 신이 합쳐진 복수형입니다. 이는 하느님 안에 남성성과 여성성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을 표현하는 ‘엘 샤다이’ 역시 ‘젖을 먹이는 하느님’으로 직역할 수 있는데, 이는 어머니의 여성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밖에도 성경 안에는 하느님의 남성성과 여성성이 함께 드러납니다. 즉, 하느님은 성을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편협된 생각이 하느님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간섭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좀 더 하느님을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이유가 거부하는 이유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이다(데이비드 소로).>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요한 19,25-27)
イエスの十字架のそばには、
その母と母の姉妹、
クロパの妻マリアとマグダラのマリアとが
立っていた。
(ヨハネ19・25-27)
Standing by the cross of Jesus were his mother
and his mother’s sister, Mary the wife of Clopas,
and Mary Magdalene.
(John 19:25-27)
悲しみの聖母の記念日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イエスニメ シッチャガ キョテヌン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クブネ オモニワ イモ、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クロパスエ アネ マリアワ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マリア マグダルレナガ ソ イッオッタ。
(요한 19,25-27)
イエスの十字架のそばには、
이에스노 주우지카노 소바니와
その母と母の姉妹、
소노 하하토 하하노 시마이
クロパの妻マリアとマグダラのマリアとが
쿠로파노 츠마 마리아토 마구다라노 마리아토가
立っていた。
탓테이타
(ヨハネ19・25-27)
Standing by the cross of Jesus were his mother
and his mother’s sister, Mary the wife of Clopas,
and Mary Magdalene.
(John 19:25-27)
Memorial of Our Lady of Sorrows
John 19:25-27
Standing by the cross of Jesus were his mother
and his mother’s sister, Mary the wife of Clopas,
and Mary Magdalene.
When Jesus saw his mother and the disciple there whom he loved
he said to his mother, “Woman, behold, your son.”
Then he said to the disciple,
“Behold, your mother.”
And from that hour the disciple took her into his home.
2026-09-15「見なさい。あなたの母です。」
+神をたたえよう。神はわたしたちのうちに不思議なわざを行わ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悲しみの聖母の記念日です。
十字架の主・イエス・キリストと悲しみの聖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この日は、イエス様の十字架の道を共に歩まれた聖母マリアの悲しみを心に刻む日です。かつてシメオンは、聖母マリアが受ける苦しみを次のように預言しました。
「この子は、イスラエルの多くの人を倒したり立ち上がらせたりするために、また、反対を受けるしるしとして定められています。あなた自身も剣で心を刺し貫かれます。多くの人の心にある思いがあらわにされるためです」(ルカ2・34-35)。
聖母マリアの悲しみを黙想し、記念する信心は古くから広く受け継がれてきました。1688年、教皇インノケンティウス11世がこの記念日を定めました。1908年、聖ピオ10世教皇はこの記念日を「十字架称賛の祝日」の翌日である9月15日に移し、イエス様の十字架の苦しみと結びつけて記念するようにしました。(『今日の典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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ヨハネによる福音
<見なさい。あなたの母です。>
そのとき、19・25イエスの十字架のそばには、その母と母の姉妹、クロパの妻マリアとマグダラのマリアとが立っていた。26イエスは、母とそのそばにいる愛する弟子とを見て、母に、「婦人よ、御覧なさい。あなたの子です」と言われた。27それから弟子に言われた。「見なさい。あなたの母です。」そのときから、この弟子はイエスの母を自分の家に引き取った。(ヨハネ19・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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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のミサ・「今日の黙想」です。
十字架刑が執行されていたゴルゴタの丘は、目を開けて見ることさえできないほど凄惨な状況でした。イエス様だけでなく、ほかの二人の死刑囚が流した血によって、辺り一帯は血の臭いに満ちていました。極度の苦痛のために死刑囚たちが上げる叫び声とうめき声が、谷全体に響き渡っていました。
百人隊長の監督のもとで死刑を執行したローマ軍の兵士は、全部で四人でした。彼らは、死刑囚たちが息を引き取るまで、その場にとどまってい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おそらく彼らは、死刑囚たちが一刻も早く死ぬことを心の中で待ち望んでいたことでしょう。そうすれば、死刑執行の報酬として囚人たちが着ていた衣服を受け取り、仕事を終えて帰ることができたからです。
このように、イエス様の十字架のもとには、無関心な顔で衣服を分けることだけに心を奪われていた四人の兵士がいました。しかし、そこにはもう一つの「四人」の姿がありました。兵士たちとは対照的に、深い悲しみに満たされた四人の女性と、イエス様が愛された弟子が立っていたのです。
誰よりもイエス様を愛していたこの人々、特に聖母マリアは、激しい心の苦しみに耐えながら、勇気をもって最後まで十字架のもとに立ち続けました。「できることなら、私が代わりにあの十字架にかけられたい」という思いを抱き、イエス様が受けておられる苦しみに霊的に深くあずかりながら、そこに立っておられたのです。
ここに一つの驚くべきことがあります。断末魔の苦しみの中で、息を引き取ろうとするその瞬間にも、イエス様は十字架のもとに立つ母と愛する弟子、そしてご自分が残していかれる教会と、その羊の群れである私たちを心にかけておられます。
ご自分の苦しみに耐えるだけでも限界であったはずなのに、嵐のように押し寄せる苦しみについては何一つ口にされず、ただ、ご自分が去った後に残される愛する人々のことを気遣われたのです。
「婦人よ、御覧なさい。あなたの子です。見なさい。あなたの母です」(ヨハネ19・26-27)。
十字架にかけられたイエス様は、最後の瞬間に、ご自分の母と愛する弟子を新しい母子の絆で結ばれました。残される信仰共同体のために、聖母マリアは取り次ぐ方、すなわち教会の母としての使命を果たし続けられます。
この時から聖母マリアは、イエス様の母であることを超えて、愛する弟子の母、イエス様に従うすべての人の母、さらに教会共同体の母となられました。
恵みによって、私たちすべてのキリスト者は、イエス様を通して、その御母を私たちの母としてお迎え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それゆえ、世界中のすべてのキリスト者は、イエス様と聖母マリアによって、互いに兄弟姉妹となったのです。私たちは皆、信仰のうちに、イエス様とその御母のうちに、新しい霊的な家族として生まれ変わったのです。
悲しみの聖母マリア、苦しみの中でも十字架のもとに立ち続ける信仰と勇気を、私たちにもお与えください。
イエス様、聖母マリアを母として迎え、すべての人を兄弟姉妹として愛する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アーメ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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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の福音を読み、十字架のもとに立ち続けられた聖母マリアと共に、苦しみの中におられる方々に寄り添うことができるよう祈りましょう。聖霊、来てください。

첫댓글
오늘 복음 환호송
동정 성모마리아님 복되시나이다.
주님의 십자가 아래서 죽음없이 순교의 월계관을 받으셨나이다.
십자가 위로 들어 올리셔야 할 아드님의 고통속에
십자가 아래에는
어머님이 계셨습니다.
순교 보다 더 아픈 그 상처를 함께 하시는 어머님ᆢ
"이 분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신이시면서
완전한 인성을 갖추신 분 찬미 받으소서.
예야!
이제는 너의 어머님 이시다.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성령을 보내시고
마지막에는
어머님을 저희에게 주셨습니다.
어머님 그 아픈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저희에게 어머니를 주시고
어머니 손잡고 들어갈
하늘문도 열어주심에 감사합니다.
엄마 없는 다른 믿는이들에게
엄마를 알려야 하는 사명감에
오늘도 주님 상처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