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전셋집을 알아보겠다는 세입자의 말을 굳게 믿고 실거주 용도로 집을 샀는데 계약 이후 세입자가 갑자기 말을 바꾸면 새 집주인이 집에 들어가 살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8월 겪었던 '홍남기 케이스'가 이번에 하급심 판례로 새로 나온 것이다. 지난해 개정 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매수한 집주인의 거주권과 기존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중 어느 것을 우선해야 하는지 논란이 돼왔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세입자의 손을 들어줬다. 이는 지난해 7월 새로운 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계약갱신청구권과 관련해 처음 나온 판결이다.
2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 민사2단독 유현정 판사는 지난 11일 경기 수원의 임대인 김 모씨가 임차인 박 모씨를 상대로 제기한 건물인도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원고인 김씨는 지난해 8월 실거주 목적으로 경기 용인의 한 주택에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이 집의 세입자는 기존 집 주인 최 모씨와 2019년 2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전세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매매계약 당시 최씨는 박씨에게 새 집주인의 실거주 의사를 통보했고, 박씨 역시 새 집을 알아보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매수자 김씨는 실거주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계약 체결 한 달 뒤인 지난해 9월 임차인 박씨는 기존 집주인에게 새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전세계약을 연장하겠다며 퇴거를 거부했다. 김씨는 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3개월이 지나서야 잔금을 치르고, 11월에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쳤다. 세입자가 퇴거 요청에 응하지 않자 김씨는 소송을 진행했다.
법원은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이 우선한다는 판단을 내놨다. 재판부는 "개정 법의 도입 취지, 계약갱신요구권의 법적 성질, 실제 거주 사유라는 거절 사유의 특성 등을 볼 때 실제 거주를 이유로 한 갱신 거절 가능 여부는 임차인이 계약갱신을 요구할 당시의 임대인을 기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박씨는 김씨가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기 전에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했고, 종전 임대인이었던 집주인이 실제로 거주하는 것이 아니므로 김씨는 실제 거주를 이유로 박씨의 계약갱신요구권을 거절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