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
이제 우리는 어떻게 모험을 시작할 것인가? 리쿠르고스와 나폴레옹이 오랜 학습과 연구의 과정을 거쳤듯이, ‘홀로서기’를 이룩한 인간----주체성을 이룩한 인간----은 ‘타자성의 완성(세계 영역의 확대= 영원한 제국)을 위하여 그의 생사의 운명을 걸고 어떤 모험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험은 끊임없이 위험하게 사는 것이며, 모든 문화적 영웅들의 생명이다. 또한 모험은 그 주체자의 붉디 붉은 피이며, 거대한 남근이고, 날이면 날마다 일용해야 될 양식이다. 내가 그토록 끊임없이 지혜, 용기, 성실을 주장한 바가 있지만, 따지고 보면 지혜가 모든 것이고, 나머지는 아무 것도 아닐는지도 모른다. 오랜 학습과 연구 과정을 통하여 지혜를 획득하게 되면 삶의 목표----그것이 ‘영원한 제국’이든지, ‘사상의 신전’이든지 간에----는 저절로 주어지게 되고, 삶의 목표가 주어지게 되면 그것을 추구하는 수단으로써의 용기와 성실함 역시도 저절로 주어지게 된다. 아니, 어쩌면 지혜를 습득하는 과정에도 용기와 성실함이 필요하고, 지혜와 용기와 성실함은 이미 내가 역설한 바와 같이, 따로따로 분리할 수 없는 어떤 것(‘삼위일체’)일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모험을 시작할 것인가?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삶의 목표를 정하고 자기 자신의 생사를 걸만큼의 무거운 짐을 스스로, 자발적으로 짊어기만 하면 된다. 자, 출발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기 위해서는 또한, 모든 인간 관계를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내도, 형님도, 동생도, 어린 자식들도, 친구들도, 민족도, 국가도, 도덕도, 법도, 질서도,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기독교도, 불교도, 힌두교도, 이슬람교도, 자이나교도, 회의론도, 도덕부정론도, 고전주의도, 낭만주의도, 현실주의도, 초현실주의도, 구조주의도, 탈 구조주의도, 그리고 그 모든 것들도, 모두가 다같이 ‘네 에미 씹’일 뿐이다.
더욱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기 위해서 모든 인간 관계들을 청산하게 되면, 이제는 삶의 목표보다도 모험만이 더욱더 소중해 지고, 모험 자체가 삶의 목표가 되어주게 될는지도 모른다.
하늘도 넓어지고, 지평선도 넓어지고, 그 주체자의 가슴도 넓어진다. 넓어지는 지평선은 신성모독의 지평선이며, 낙천주의자의 지평선이다.
----반경환, [넓어지는 지평선]({행복의 깊이 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