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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금액
도치씨는 도암을 불러 놓고 머뭇거렸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 도움을 준다 해도 금전이 왔다 갔다 하면 주는 쪽이나 도움 받는 쪽이나 부담이 없을 수 없다.
“그게 그게 좀.”
도암은 뻔히 알면서 능청을 떨었다.
“돈인가?”
“아 아닙니다. 돈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시간이 좀.”
도암이 혀를 끌끌 찼다.
“허허! 막막 모래밭이군. 그렇게도 내 말을 못 알아들을까? 옥황상제님이 이놈저년 누구한테나 재가하나? 자네니까 간신히 재가를 받았거늘. 그러면 못쓰네. 천벌 받아! 인간의 주제에 옥황상제를 돈 때문에 능욕하는 것은 능지처참 당하고도 남는 죄야! 금전으로 야박하게 구는 것은 옥황상제가 탓하지 않지만 요랬다조랬다 하는 것은 옥황상제가 용납하지 않아! 옥황상제 쯤 되면 돈이 없겠어? 권세가 없겠어? 뭐하나 부족함이 없을 진대, 도치씨처럼 고렇게 갈팡질팡하면 진짜 진노햐! 알아듣는가?”
“아, 아 아니고요. 그게 아니고요.”
“그럼 뭐야? 다된 밥 퍼서 남 줄 거야?”
“아 아 안돼요! 그럴 순 없습니다.”
“그럼 뭐냐니까?”
하루에 수십 명 인생상담 하러 오는 사람들을 대해 이골이 난 도암은 도치씨를 세차게 몰아 붙였다.
그래도 도치씨는 잠시 골똘히 생각했다.
도암의 사무실에 발을 들여 놓은 순간 이미 자신의 모든 의중을 다 알고 있는 도암 앞에서 추호도 거짓부렁이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또 거짓을 해봤자 바람피운 아내의 부정에 분노하고 쓰리며 답답한 속마음은 물론이고, 자신의 모든 신상을 샅샅이 꿰뚫고 있는데 무슨 소용이랴 싶었다.
잠시 고민하는 도치씨의 모습을 힐끔거리며 도암은 늘 하는 버릇대로 갑자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상담비가 거론될 때 망설이는 손님 앞에서 짐짓 하는 연기다. 백만 원 을 넘어가는 경우에도 쭈뼛쭈뼛하는데 오천이란,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일억이라는데 안 망설이고 선뜻 결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암이 20여년 이 운명상담소를 운영해오면서 딱 두 사람 시원시원하고 화끈한 사람을 보기는 했다.
두 사람 모두 여자였다. 남편의 바람기를 막아달라는 의뢰에 상대여자에게 급살이라는 부제를 붙여 일억을 때렸는데, 도암이 말을 꺼내기 무섭게 아르메스 악어등가죽핸드백을 열고 수표열장을 마치 만 원짜리 헤아리듯 꺼내 주는 여자와 또 한 여자.
30대를 막 넘었을까?
아니면 지속적인 수리관리비로 30대의 젊음을 유지해서인지 모르지만 이리송한 젊음을 유지한 여자였는데.
변심한 60대남편의 마음이 돌아오게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손가락 하나로 도암의 계좌에 폰뱅킹으로 착수금을 단 3초 만에 입금시켜주는 여자 손님에게 도치씨는 옥황상제의 이름을 팔아 이마에 노란바탕의 붉은 부적을 써서 붙여주었다, 10분 후 떼어 내며 말했다.
“당장 돌아오기는 틀렸고 옥황상제가 석 달 안에 돌려보낸다는군.”
“석 달이라도 좋으니 꼭 돌아오게만 해주세요. 성공하면 상담비 외에 성공사례비 300% 더 드릴께요.”
도암이 남은 일억을 받았는지 성공사례비 6억을 받았는지, 결과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니 알 길은 없었지만 하여튼 대단한 사건이었다. 아니 도암으로 서는 대박에 대박을 덮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해괴한, 도저히 인간의 능력이나 상식이 통하지 않을 건엔 건당기본이 일억이다.
허지만. 오늘 도암이 도치씨에게 좀 끈질기게 가격을 흥정하는 것은 예외다. 배가 고프면 썩은 고기라도 뜯는 하이에나와 같은 입장이 된 건, 요즈음은 건이 없어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간판을 사주관상작명이라 붙여 찾아오는 손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허지만 도암에겐 이제 그런 손님은 허드렛거래다. 자동차를 올려 타면 곧장 죽어도 내려 타지 못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줄 창 기다려도 오지 않는 큰손님들 기다리기 지쳐, 시작한 것이 도암의 유일한 소일거리 낚시다. 도암이 세 번째 낚시를 가서 우연찮게 만난 도치씨가 도암에겐 꿩 먹고 알 먹고 다.
그래서 이 시간 도암도 도치씨를 놓치면 안 될 절실함이 있고, 도치씨도 아내를 죽이기 위해 도암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도암은 계속 기도주문을 외웠다.
거래가 지지부진할 때 이런 주문을 읊으면 분위기의 어색함도 털어내고 손님에게 자가최면을 거는 효과가 있다.
“수리수리마하수리. 옴메니반메흠 나아미타아불. 천상옥상황제시여. 불쌍한 중생이 지금 고민하고 있사옵고, 인간 세상에는 돈이 필요하지 옥황상제국에서는 돈이 무슨 소용이겠사옵니까? 부디 고통 받고 갈길 몰라 허둥대는 중생을 가엽이 여겨 진노를 거두시고 대금을 좀 더 낮춰주시면 백골난망이옵니다. 아미타아불.”
도암은 주문을 외우며 실눈으로 시시각각 도치씨의 반응을 더 세밀히 살피고 있었다.
도치씨는 자신을 위해 혼신의 힘과 정성을 다하는 도암에게 너무나 황공해서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도치씨는 결심했다.
도치씨는 다시 나지막하게 도암을 불렀다.
“도, 암 도사님.”
도치씨의 결심이 완결되었는데도 도암은 여전히 주문만 외웠다. 도치씨가 재차 불러도 대답 없었다. 완전히 주문 속에 빠져 있는 듯했다.
“수리수리마하수리 사이다사이사이 코라코라 마오타이행화죽엽청주 강도치강도지 시갈비토리죠니워커바이라스가라사대 아디다스나이기바바리구찌 강도치강도지 오, 메가루비토옹샤넬이라 수리수리마하수리.”
어찌나 절실하고 빠르게 주문을 외는지 도치씨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간간히 어디서 들었던 것 같기도 한 단어와 자신의 이름을 주문 속에서 해독할 수 있을 뿐이었다. 도치씨는 도암이 옥황상제와 만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덩달아 마음이 붕 떠올랐다. 체면에 걸린 형태였다.
한참 주문을 외우던 도암이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깜짝 놀란 도치씨가 걱정스럽게 도암을 지켜봤다.
도암이 진노한 가성假聲으로 호령했다.
“강도치, 네 이놈! 희망금액이 얼마야? 사내대장부가 쫀쫀하게 그게 뭐냐? 나 옥황상제가 도암도사 체면을 봐서 네 희망가격대로 해주겠노라! 얼른 이실직고하지 못할까?”
전혀 예견하지 못한 옥황상제의 목소리에 도치씨는 명치끝까지 놀랬다. 마치 SF전자음 같은 질타에 도치씨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옥황상제의 인정머리 있는 호통이었기 때문이다.
“아 아닙니다. 다 내겠습니다. 오천 다요!”
아주 짧은 침묵이 흘렀다.
“언제?”
“내일까지요!”
“몇시까지?”
“은행마감시간까지요.”
“하늘에서는 땅의 인간들 수표는 안통한다.”
“현금으로 가져 오겠습니다.”
“5만원권이 좋다!”
“네 알겠습니다.”
“내가 바쁜 옥황상제니라.”
“일초도 안 어깁니다!”
“도암도사!”
도암이 도암의 목소리로 말했다.
“네에이, 옥황상제님 대령했사옵니다.”
“강도치인지 바다도치인지 모르지만 저 놈 믿어도 되겠구나. 그러니 증표를 받아 두거라!”
“네에이, 옥황상제님 분부 받들겠사옵니다.”
도암이 고개를 절레절레 세차게 흔들며 주문 속에서 깨어났다. 몹시 지쳐 있는 도암의 모습을 본 도치씨는 도암이 안쓰러웠다.
도치씨가 도암을 조심스레 불렀다.
“도암도사님.”
첫댓글 요즈음은 많은 불경기와선거바람에 많이들 썰렁합니다
다른때같으면 선거유세장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다니기도하였던것같은데..........선거날도 관심없는 분들도 계심에여러가지염려도됩니다
어서 서민들 생활이좋아져야할텐데.................. 좋은 날보내십시요
네 스님 이제 완연한 봄이네요.
또 한해가 절반을 향해 갑니다
건상하시고 평안하세요
선거이야기 나오니 꼭 제 이야기같아 찔금합니다.
멋진 주말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