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35분.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면서 혼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렸다.
구포역에서 7시 43분발이니까 아직 8분이나 남았다.
걸어서 대략 12~13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니까 뛰어 가면 이 시간이면 충분하다.
사실 나는 동작이 느린 편이면서도 기차에 늦지 않게 타는 데는 자신이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고3 때만 빼고 5년 동안 거의 다 기차통학했다.
그 5년 동안 아침 통학차를 놓친 적이 없다.
단 한번. 구세약방(지금의 구세약국)까지 빗물이 무릎 높이만큼이나 차서
도저히 뛸 수 없었던 날을 제외하고는...
초광역에서 기차가 출발하는 소리가 들릴 때 아침 밥을 먹기 시작해도
한 그릇 다 먹고 집을 나선다.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정토산을 돌아오는 소리가 들릴 때쯤에는
밥상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겨들고 신태인역을 향해 죽으라고 뛴다.
기차가 신태인역을 출발하여 움직이기 시작할 즈음이면
나비처럼 가볍게 기차에 올라탄다.
매일 매일 놓칠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기차를 탔지만
그래도 놓친 적이 없었다.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리웠다.
어슴푸레한 이른 새벽, 상점들도 문 열지 않고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는 거리를
가방을 옆에 끼고 오직 기차를 타기 위한 일념으로 달린다.
새벽바람을 맞으며 입김을 훅훅 쏟아내며 쏜살같이 달려서
떠나는 기차를 아슬아슬하게 올라탄다.
이 과정에서 겪게 되는 조바심과 희열 그리고 안도.
나 같은 추억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맛을 모른다.
오늘 친구 모친 장례식으로 서울에 가야 해서 일부러 새벽 기차를 택했다.
이 나이에 채신머리없이 새벽거리를 달려 볼 수는 없지만
어릴 적 새벽에 통학기차 타던 즐거움을 누려 보려는 속셈이 저으기 있었다.
아내가 아예 편하게 택시를 타고 가라는 것을 뿌리치고 차를 몰고 나왔다.
콧노래를 부르며 여유 있게 운전하고 와서
구포역에서 꽤 떨어진 공영주차장에 파킹했다.
휴대폰의 시계를 보니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았다.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릴 적 그 시절처럼 뛸 수밖에 없었다.
예약한 표를 지갑에서 빼내 와이셔츠 포켓에 끼워 넣고
장갑을 끼고 가방을 들고 뛸 채비를 차렸다.
새벽바람을 만끽하면서 아무도 없는 어슴푸레한 골목길을 뛰기 시작했다.
볼에 다가오는 새벽 찬 바람, 훅훅 뿜어 나오는 입김,
후끈후끈 해져 오는 온 몸의 열기, 명쾌하게 퍼져나가는 내 신발 소리...
어릴 적 그 느낌이 되살아 왔다.
아~ 이 맛. 이 상쾌함.
즐거웠다.
1분 정도나 달렸을까?
너무 숨이 차서 더 달릴 수가 없었다.
이제 그 시절 같지 않네.
할 수 없이 뛰다가 걷다가 하면서 옛날의 그 기분을 만끽했다.
구포역 앞에 거의 다 왔다.
시간이 궁금하여 휴대폰을 보니 아뿔사 2분정도밖에 안 남았다.
이 거 이렇게 되면 안 되는데...
젖 먹던 힘까지 내어서 죽으라고 뛰었다.
대합실로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
앉아 있던 사람들이 휘둥그레 쳐다본다.
나잇살이나 들은 것이. 아이구 창피해.
개찰구를 뛰어서 급히 통과하려는데 역무원이 늦어서 안 된다고 한다.
옛날 기차통학하던 우리들은 역무원이 늦었다고 기차를 못 타게 붙잡으면
개찰대를 휙 뛰어넘어 플랫폼으로 달려가서 떠나는 기차에 올라탔었다.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역무원을 뒤로했다.
플랫폼으로 향하는 육교 위로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아~
이 허탈감.
나는 골인 지점에 들어온 마라톤 선수처럼 숨을 거세게 몰아쉬면서
그냥 육교위에 서 버렸다.
열차가 점잖게 움직이고 있었다.
차표를 물리고 돈을 더 주고 다음 열차표를 샀다.
휴대폰이 울린다.
아내가 차는 잘 탔는지 묻는다.
응, 그래.
지금 차 잘 타고 편안하게 가고 있어. 당신도 출근할 준비 해야지...
이 날이 김영복목사님의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서울로 기차 타고 간 날이다.
그날 부끄럽기도 해서 아무에게도 이 얘기를 못했다.
내 아내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