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통영출생
계간 『현대시조』 신인상(2004 겨울호)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이사
경남문인협회시조분과이사
경남시조시인협회부회장, 통영문협회장(역)
현대시조 좋은작품상
경남문협 우수작품집상
제27회경남시조문학상 (23.10)
제12회한국 꽃문학상(24.6)
제10회한국문학인상(24.7)
제7회영축문학상 작가상(25.10)
저서(시조집) 『작약이 핀다』,
『낯선곳에서 길을 묻다』,
『라바콘 주의보』
시인의 말
바람이 숨어 사는 바다가 웅성인다
파도의 알갱이가 엄습해 올지라도
사내는 바다를 향해 한 생애를 걷고있다
뜨거운 여름을 보낸 댓가로
물빛은 푸르고 하늘은 높아졌다
아까운 순간 순간을 모아
또다시
세상 밖으로
보낸 편지가
푸른 근육으로 태어나길...
2025. 가을
저자 김승봉
라바콘 주의보
후진과 전진사이 너는 항상 망설인다
여기는 안 됩니다 저기도 못 가고요
접근과 통제 사이에 눈빛으로 삼킨 말
단단한 작은 고깔 흙먼지 둘러쓰고
뜨겁게 달아오른 주홍빛 햇살들이
반사된 백미러 안에 위험으로 다가오다
찬 서리 내린 밤에 굴절된 발걸음을
아스라이 마주치던 그 눈빛이 따뜻하다
잠깐도 망설이지 말고 저만 믿고 오시길
바다 경전
썰물과 밀물 사이 견고하고 너른 품들
하루에 딱 두 번씩 열고 닫는 절호의 찰나
썰물 땐 제 몸 말리며 망둥이 판 요란하네
썰물의 밑바닥은 아늑하나 위험천만
아낙의 영토마다 에둘러서 경계한다
뚝심 센 과묵한 어부 개펄 속을 물어 대네
밀물 땐 활동 영역 돌팍 틈에서 두런두런
뒤척이던 몸부림에 사설도 덮어 놓고
미물들 분주한 한때 속내들만 드러내네
광대풀꽃
서릿발 섞인 바람 낮은 대로 몰려든다
파랑새도 떠나버린 텅 빈 텃밭에는
바람에 날아든 풀씨 그 흔적을 숨기고
잡초라는 이름으로 버림받은 타인의 손길
눈물샘 깊은 뿌리 한 생의 가장자리
언 땅을 부둥켜안고 춤을 추는 광대쟁이
켜켜이 불 밝히는 선홍빛 꽃의 행렬
신열 오른 잎 잔치에 자신을 사랑했던
광대풀 슬픈 생애가 야생화로 피었나니
부모은중경을 읽다
백팔 마디 뼛속 깊이 새겨놓은 그리움은
화를 만나 선을 배워 시대를 헤아리며
가슴에 금등金을 품고 그 새벽을 지켰다
죄인의 아들일지언정 사도의 아들이리
멀어져간 천륜의 간극 예원을 꿈꾸었던가
못 이룬 사도의 꿈을 수원화성에 펼쳐놓고
혜경궁 뜨락에서 바라본 사도의 강
어머니 손을 잡고 찾아가던 수원성
한맺힌 부모은중경 등허리가 시리다
오비도鳥飛島
남해 바다 한가운데 새들이 날고 있다
태생의 검은 빛깔 온갖 소문 뼈에 새겨
휘몰이 바람의 몸짓 날개 속에 묻는다
뭍으로 떠나가는 새끼들의 서툰 날개
나는 법 사냥술도 따뜻하게 일러주던
어미는 정성을 모아 바다를 지켰다
바람의 시간 들이 쌓아 올린 벼랑들
풍화로 남은 땅에 어미 새는 떠났는데
자라난 어린 새들이 고향이라 찾아 든다
해설
섭리(理)를 지켜내는 모성(母性)의 시학
정용국(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환경을 바탕으로 성장하며 자아의 완성을 향하여 진력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지는 환경은 자기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주어지지만, 인간은 열성을 다하여 환경에 적응하고 극복하며 긴 삶의 여정을 걸어간다. 여러 환경 중에서도 본인이 태어난 지역은 개인의 성장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체로 자기소개서나 약력 등을 기재할 때 누구나 출생지를 적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는 인간이 운명 앞에 나약한 존재이므로 특정 지역에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교육, 언어, 성격, 직업 등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김승봉 시인은 경남 통영 지역이 고향이고 아직도 그곳에서 살고 있다. 통영은 해안과 접하고 있으며 많은 섬으로 구성된 지역이다.
그는 지금도 고향에서 바다와 관련한 사업을 영위하며 시조 창작에도 뜨거운 열정을 펼치고 문학단체의 일도 맡고 있다. 바다에서 삶을 꾸려나간다는 것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항상 재해에 대비해야 하고 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섭리를 잘 숙지해야 한다. 이러한 삶의 방편들은 시조 창작에 막대한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그가 의지하고 믿는 강건한 배경이 되기도 한다.
자연은 인간에게 무한한 자원과 적합한 환경을 마련해주지만 때로는 감당하기 어렵고 처절한 재해를 유발하는 경외의 대상이기도 하다. 산업혁명으로 유발된 내연기관의 발명은 엄청난 편리성과 재화를 구축하는 결과를 창출했지만 지구 환경에는 최악의 상황을 야기하는 과오를 저지르고 말았다. 약 백여 년 전부터 악화되기 시작한 지구의 온난화는 더 이상 지구를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바다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시인은 수온이 상승하고 적조가 몰려오는 상황이야말로 가장 큰 걱정이며 난관이 아닐 수 없겠는데 이러한 현실은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로 다가왔다.
꿀벌들 떼죽음이 속보로 보도되고
고엽제를 앓고 있던 작은형이 입원했다
어머니 멀건 대낮에 그들을 제가 죽였어요
텃밭의 푸른 고추 가지마다 하얀 꽃잎
투잡에 열중하는 꿀벌들의 노동 현장
독이 된 다이옥신이 꿀벌들을 저격했다
지구가 뒤뚱댄다 추락하는 날개들
하늘 같은 천사 꿀벌 보살피지 못한 죄
언젠가 불똥이 되어 된서리를 치르리
- 「미안하다, 꿀벌」 전문
"된서리를 치르리"라는 독백은 이미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게 지구의 현실이다.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하며 섬나라가 잠식되는가 하면 수온이 높아져서 어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뉴스는 상식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어디 바다뿐이랴 "꿀벌들 떼죽음"을 넘어 "지구가 뒤뚱댄다"는 말이 실감 나는 현실이다. "어머니 멀건 대낮에 그들을 제가 죽였어요"라는 첫 수 종장은 영국의 전설적인 록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가 불러서 공전의 히트 기록을 남긴 강렬한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의 첫 구절 "엄마 내가 사람을 죽였어요!"라는 외침을 생각나게 한다. 다소 난해한 가사여서 다양한 심리분석이 나왔던 노래인데 김승봉도 꿀벌의 떼죽음과 작은형의 아픔도 자기 때문이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은 자못 인상적이다. 마치 인간이 파괴한 여러 자연환경과 화학물질로 오염된 대기는 사람들의 저지른 일이라고 고발하는 듯 소리치고 있다. 이렇게 자연현상으로 유발된 사태와 우연하게 벌어진 사고를 자신의 잘못이라
고 주장하는 기저에는 사랑과 포용이라는 광역의 책임 의식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할 수 있다. 만약에 꿀벌들이 없어진다면 식물의 수정은 누가 해줄 것이며 "다이옥신"에 찌든 세상은 얼마나 더 "독이 되어" 지구와 생물을 파괴시킬 것인가. 「미안하다, 꿀벌」 에서는 머큐리의 외마디 소리처럼 안타까운 비명이 길게 메아리치고 있다.
거제도 앞바다에 소녀상이 생겨났다
단발머리 어린것이 바다에 떠밀리며
암흑을 응시하는 눈에 핏빛 가득 서려있다
옹이로 남아있는 세월의 멍 자국도
소용돌이 이는 태풍 자신을 지켜내는
시린 손
아픈 소녀야
두 주먹을 쥐고 가자
비워둔 옆자리는 더 넓은 바다 품고
섬에서 갇혔어도 그 뿌리는 깊이 내려
바람꽃 동백이 피어 동박새가 날아든다
- 「지심 소녀에게」 전문
김승봉 시인이 「지심 소녀에게」 보내는 말에는 질책보다는 포용이 절규보다는 희망이 담겨있다. 소용돌이치고 지나간 운명도 "넓은 바다 품고" 가듯 작지만 다부지게 "두 주먹을 쥐고 가자"고 일러준다. "핏빛 가득 서려있"는 눈을 맞추며 "옹이로 남아있는 세월의 멍 자국도" 쓰다듬어 주고 있다. '소녀상'을 앞세워 일본을 비판하고 지난 상처를 드러내어 흥분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차분하고 품위 있는 어조로 구성한 작품에 서기가 느껴진다. 지심도 에 있어도 "그 뿌리는 깊이 내려" 깊고 깊은 바다 밑바닥에 이르게 하여 마치 동백나무의 뿌리처럼 살아나 꽃으로 피어나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그리하여 동백꽃 향기가 퍼져나가면 육지의 동박새는 물론이고 먼 바다 건너 대마도의 동박새까지도 향기를 찾아 날아와 소녀에게 사과의 인사를 건넬 것이다. 비록 인간이 거부한 사과 대신 대마도 동박새가 들려주는 인사는 얼마나 신선하고 아름다운 노래일지 눈을 감고 그런 장면을 그려보면 평화의 눈물이 흐를 것만 같다. 그래서 '지심 소녀상'은 다른 어느 곳에 있는 것보다도 더 융숭 깊고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는 의젓한 소녀상이 되었다.
김승봉 시인의 새 시집 『라바콘 주의보』는 제목이 암시하는 현장성 만큼이나 바다와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운명이 투사된 생활인의 진한 분위기를 강하게 전하고 있다. "푸르디푸른 꿈이 돋아나는 모천 「썰물 마중」"을 중심으로 하여 "싹틔워 기쁜 날은 너볏한 달이 뜨고/ 힘겹고 지친 날에 샘물처럼 솟구치는/ 따뜻한 마음을 담은 옛 친구의 손 편지 「막걸리」"처럼 긍정과 포용의 마음을 담은 모성으로 치열하다. 아마도 바다가 시인에 전해준 것은 삶의 터전에서 끌어올리는 재화보다도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시선과 불행조차 달게 받아들이는 마음을 준 것이 훨씬 더큰 보배라고 생각한다. "폭우도 아랑곳 않고 짓밟혀도 상관없어 「바랭이풀」"늘 평상심을 지키려고 온 정성을 들인다. 바쁘고 벅찬 일상에서도 "벼랑에 뿌리를 박고 나이테도 지웠습니다 「동백꽃 2」" 라며 고동주 선생을 추모하고 "생각도 단풍들면 신선이 되셨겠지요 「산으로 떠난 시인」" 되묻는 시인의 마음에는 서우승 선생을 높이 기리는 생각도 잊지 않으며 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지순한 소견인가. 새 시집에 차려놓은 폭넓고 사려 깊은 김승봉의 생각은 바다를 닮아 더 깊어지고 짙푸른 색으로 우렁차게 일렁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