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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따라 빛을 따라
성경본문 : 잠언 2: 1-12
1.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2.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3.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4.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5.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6.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7.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8.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9.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10.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11.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12.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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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 6-14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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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구하라.
오늘 읽어 드린 잠언 말씀에 보면 "아이들아, 내 말을 받아들이고, 내 명령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여라. 지혜에 네 귀를 기울이고, 명철에 네 마음을 두어라. 슬기를 외쳐 부르고,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여라. 은을 구하듯 그것을 구하고, 보화를 찾듯 그것을 찾아라. 그렇게 하면, 너는 주님을 경외하는 길을 깨달을 것이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터득할 것"(2:1-5)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나 명철이나 슬기는 모두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지식 또는 경험을 뜻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지혜란 격동하는 고난의 역사 속에서 생존하면서 신앙을 지키는 방법과 삶의 태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얻는 것은 정금이나 진주를 얻는 것보다 낫고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귀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를 구하라'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만 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과학이 급속도로 발달하는 21세기에 들어서더라도 지혜는 필요한 것입니다. 지혜는 지식과 상관없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지식을 가진 사람보다 지혜를 가진 사람이 더 현명하게 자기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들 가운데 지식은 많으나 지혜가 없으므로 자기의 삶을 파멸로 이끄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지혜를 심어주려고 노력하고 특히 지혜의 책인 <탈무드>를 중요하게 여기며 성경과 더불어 그들의 삶의 표준서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주름잡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지혜를 강조한 역사적 전통을 바탕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오른 것입니다.
대중문화에 노출된 Y세대
이런 유대인들과 비교할 때 우리의 교육은 전혀 지혜를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부모들이나 학교가 모두 지식과 기술만을 가르치지, 지혜를 구하라고 가르쳐 주지 않는 것입니다. 더욱이 현대 가정이 핵가족화 되면서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의 오랜 삶의 경험에서 쌓인 지혜를 자연스럽게 배울 기회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거기에다 우리의 어린 자녀들은 일찍이 저속하고 가벼우며, 인생을 깊이 있게 살도록 이끌어 주는 지혜와는 아무 상관없는 대중문화에 노출(露出)되어 성과 폭력에 눈뜨게 되고 허망한 꿈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은 신문 칼럼에서 본 글입니다.
미국심리학회에 의하면 미국의 어린이는 매주 평균 27시간 텔레비전을 본다. 따라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텔레비전을 통해 8천 건의 살인과 10만 건의 폭력장면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어린이들에게 주는가 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모방적 공격행동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폭력적인 장면을 자주 보는 어린이는 보지 않은 어린이들보다 두 배 가까이나 공격적인 행동을 모방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10대들은 장사꾼들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저들은 10대가 좋아할 만한 대중문화를 만들어 팔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열살짜리가 판을 사야 히트한다"는 말은 가요시장의 요즈음 풍토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쁘장한 남자 고교생 5명으로 구성된 댄스그룹 H.O.T는 지난 96년 말 등장한 뒤 몇달새 1백만 개 가까운 앨범을 팔아치웠다고 합니다. 음반업계에선 절반 이상을 초등학생, 나머지는 중학교 1∼2학년들이 샀다고 합니다. 서울 레코드숍 70여곳을 설문조사 했더니 초등학생 구매 비율이 15∼20%선. 높은 곳은 30%나 된다고 합니다. 국내 연간 음반시장 3천5백억원 중 수백억원이 아이들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셈입니다. 연간 6백억원 규모인 판매용 비디오시장에서 애니메이션과 교육물처럼 어린이를 겨냥한 제품은 50% 안팎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월트디즈니사는 만화영화만으로도 연매출 1백억원을 올렸습니다. {라이온 킹}이 28만장, {토이스토리} 23만장, {백설공주}가 18만장 팔렸다고 합니다.
미국 10대는 3천만 명을 헤아린다.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만 쳐도10대 소비자가 5천7백만 명에 이른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에도 전체인구의 18% 4천2백만 명이 10대다. 유럽에도 5천만 명이 있다. 기업들은 유사이래 이처럼 거대한 단일-동질 시장을 맞은 적이 없다. 이제 세계 기업들이 가장 경배해야 할 소비층은 10대이고, 그 중에서도 주된 타깃은 갈수록 연소화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준환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10대들의 연간 소비규모는 10조~15조원으로 추산된다"면서 "여기에 부모가 지출하는 양육비, 교육비를 포함하면 실제 시장규모는 4~5배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10대를 Y세대라고 부르는데, X세대와 구별되는 세대로 "이들은 합리주의, 다원주의, 개방주의, 개성주의, 감성주의, 경제주의, 여가주의 등 새로운 가치를 추구"한다고 합니다.
대중문화가 안고 있는 문제점
이런 Y세대들을 무차별하게 잡아 끌고 있는 대중문화는 어떤 것인가? 앞서 말한 성과 폭력 이외에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대중문화의 성이나 폭력성보다 그 뒤에 숨어 있는 이데올로기를 경계해야 합니다." '한국대학생 대중문화감시단'을 이끌고 있는 남민우 대표의 말입니다. 지금의 대중가요는 이면에 '허무주의'를 깔고 이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허무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쉽게 포기하게 하고. 자신을 규제하려는 사회에 대한 폭력과 증오를 죄책감 없이 발산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대중문화의 상업성은 또 끊임없이 스타를 만들어 내며 청소년들에게 그릇된 환상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대표는 "타인을 올바른 곳으로 이끄는 원래 의미의 스타문화가 대중매체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며 "엉망으로 살더라도 스타만 되면 모든 것이 정당화될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스타관은 청소년들에게 과정과 노력의 소중함을 잊게 만들고 가치관의 전도(顚倒)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서구에는 그래도 기독교 정신이 그 사회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이런 청소년들의 삶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런 정신적 지주가 전혀 없기 때문에 쉽게 악에 물들고 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요즈음 대중문화에 자리잡은 악마주의와 신비주의의 경향은 기독교적 입장에서 볼 때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흡혈귀가 등장하는 공포영화들은 악마에 대한 두려움 혹은 경배를 기반으로 합니다. 외계인이 등장하는 공상과학영화들과 뉴에이지 음악은 모두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신비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특이한 것은 이런 대중문화의 경향이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나라에서 열풍처럼 불고 있다는 점입니다. 귀신 쫓는 이야기인 소설 <퇴마록>은 대히트를 기록했고, 영화 <은행나무침대>, 드라마 <8월의 신부> 등 전 장르를 망라한 환생(還生)신드롬이 한바탕 물러간 후 TV에서는 "알고 보니 모두 귀신 때문이더라"는 식의 코미디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이 정규적으로 방송되기 시작했습니다. "만득이 시리즈"에서 귀신은 급기야 늘 붙어 다니는 친구처럼 등장하면서 코믹화했습니다.
이런 근거도 없는 귀신 이야기나 전생 이야기들은 종교적 심성을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어 주면서 공연한 공포심만을 조장할 뿐입니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저속한 대중문화에 노출되어 자란 Y세대들의 가치관은 무엇일까? 이들은 과연 올바로 이 사회를 책임질 수 있는 다음 세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염려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의 교회들 가운데 이런 대중문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을 생각하며 예배 자체를 대중화시키고, 복음송도 점점 더 일반 팝송을 따라 가고 있는 경향입니다. 97년 여름 미국 LA에 있는 새들백교회를 방문하여 예배를 드린 적이 있는데, 미국 침례교회로 최근 몇 년 사이에 크게 성장한 교회입니다. 예배가 완전히 열려 있었습니다. 정장을 하고 넥타이를 매고 간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습니다. 설교하는 목사도 티셔츠 차림이었습니다. 무대에는 경음악 밴드가 흥겨운 복음송을 연주하였고, 가수가 마이크를 붙잡고 그 노래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예배 참여자들은 모두 가벼운 옷차림이었습니다. 이런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미국에서는 점차 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영향을 받은 한국 교회들 가운데도 이런 실험적인 예배를 시도하는 교회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것이 옳은 선택인가'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아마도 미래의 교회는 지금의 X세대와 Y세대를 교회로 끌어드리기 위하여서는 대중화된 예배를 받아드리지 않을 수 없을는지 모릅니다. 장사꾼들에 의해 주도되는 대중문화를 교회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이런 현실을 오늘의 교회들이 그대로 내버려둔 채 구경만 하고 거기에 이끌려 가야만 할 것인가?
대중문화를 잠재울 수 있는 성령의 역사
이런 껍데기만 화려하고 알맹이가 없는 대중문화의 특성을 우리가 제대로 알고 여기에 대처하여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몰려간다 하여도 거기에 삶의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며, 그 결국에는 파멸만이 있을 뿐입니다. 넒은 길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그 넓은 길이 곧 진리의 길이 아니라는 사실과 그 끝에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젊은이들이 알아야 하며, 또 부모들은 위기 의식을 갖고 자녀들에게 이것을 열심히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너무 너그럽고, 그들을 너무 방치하므로 결국은 그 자녀들을 파멸이 있는 넓은 길로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들 자신이 대중문화에 길들여져 위기 의식을 갖지 못하고 자녀들을 급격하게 변하는 저속한 대중문화에 내어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 강단에서 수없이 역사의식을 강조하고 이 시대를 올바로 분별하여 그 속에 깃들인 악마성을 경계하면서 올바른 신앙의 길을 가도록 설교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중매체인 TV와 기타 영상물들의 너무 거센 물결에 우리 모두가 세뇌되어 떠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거센 대중문화의 탁류(濁流)를 거슬려 올라갈 용기가 우리에게 부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들은 이 물결을 거스르기보다는 차라리 같이 따라가면서 사람들을 교회로 모아들이려 합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결코 교회의 독립성을 지켜내지 못하며 결국은 대중문화의 아류(亞流)가 될 뿐입니다.
우리가 알 것은 아무리 물결이 거세다 할지라도 거대한 댐에 이르면 그 물결은 잠자고 잔잔하게 다스려지게 마련입니다. 성령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는 거대한 댐과 같아서 능히 오늘의 대중문화의 거센 물결을 잠재울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마적인 세력이 골리앗처럼 커 보여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는 무력할 뿐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신앙을 가졌기에 능히 오늘의 문화적 탁류를 잠재울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런 확신을 가지고 이런 대중문화와 근본적으로 다른 기독교 문화를 만들어 내며, 이 문화를 보급하며 확산시키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읽어 드린 에베소서 말씀에 권면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헛된 말에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이런 일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순종하지 않는 자식들에게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런 사람들과 짝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문제되는 대중문화에 대한 경고로 이 말씀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대중문화는 "헛된 말"이며, 거기에 속아넘어가지 말라고 하였으며, 그런 문화와 짝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그런 대중문화의 어둠 속에 묻혀 생각 없이 살았지만,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빛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산다는 것은 빛의 열매를 맺는 생활입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끼어 들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폭로"하는 생활이라 하겠습니다. 오늘의 지혜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며, 동시에 무엇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악마적인 것인가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런 지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빛 안에 있을 때 자연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이 바로 어둠을 몰아내어 악과 선을 분별할 수 있게 하며, 옳고 그름을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오늘의 대중 매체들은 하나님의 빛을 가리우는 어둠의 세력들입니다. 그것은 특히 장삿속과 연계되면서 장사되는 일이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과 폭력과 귀신과 허무주의 등을 마구 쏟아내는 것입니다. 이런 독소들이 순진한 10대들을 마구 오염시킬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타락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이런 무서운 악마성을 우리가 깨닫지 못한 채 그대로 받아 드리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이런 대중문화를 감시하고 비판하고 견제하는 세력으로 교회가 그 역할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빛의 자녀된 우리의 본분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무심히 접하는 대중문화 속에 무서운 악마가 깃들이고 있음을 인식하고 정신을 차려 그로부터 자신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지혜와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간구하여 여러분의 앞길을 올바로 선택하고 그 길을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에 도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가 악하다는 사실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므로 이 시대의 악마성을 고발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와 진리를 이 땅에 펼쳐 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혜를 따라,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는 넓은 길보다는 좁은 길을 택하여 생명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빛을 따라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고 빛의 열매인 선과 의와 진리의 삶을 이루어 가시기 바랍니다. 지혜로운 자녀, 빛의 자녀로 하나님과 늘 동행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