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2940
서툰봄/立春
동봉
나는 왜 입춘을 '서툰봄'이라 했는가?
비록 봄의 문턱에 이르긴 했으나
완전한 봄이라 내세우기에는
뭔가 좀 모자란다고 느껴지기에
내가 붙인 순우리말 절기 이름이다
아주 잘 길든(?) 봄은 아니지만
절기로는 으레 봄이 맞으니까
서툰봄은 대체로 양력 2월 4일이다
지난해처럼 2월 3일일 수 있으나
태양력 역법에 따라 붙여진 절기는
제멋대로 왔다갔다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끔 쓰는 말이 있다
특히 시골에서 잘 쓰는 말이다
'절기는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고
24절기를 음력으로 들었다 하지만
이처럼 모두 양력으로 들어있으니까
'창호지가 두꺼운 유리보다 더 낫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한 말씀이다
50여 년 전 강원도 시골집들은
야산에서 통나무를 툭툭 잘라
성냥개비 쌓듯 척척 쌓은 뒤에
사이사이를 흙으로 맥질을 하고
소박한 한옥 문살문을 만들어 달았다
그리고는 창호지로 문을 발랐다
이제 더듬어 보니 합천 해인사도
요사를 모두 한지로 문을 발랐었네
얇은 창호지 한 장으로 겨울을 난다
겹으로 바르는 것도 아니고
달랑 한 장으로 말이다
어쩌다 저잣거리에 나가면
이발소도 중국집도 유리문이다
어렸을 때 나는 유리문이 부러웠다
뭔지 모르나 비까번쩍해 보였으니까
나중에 가서 느꼈지만 창호지가 좋다
한지 창호지는 생각보다 대단하다
복층유리Pair Glass 창보다도
창호지 한 장이 더 따숩다
한지가 지닌 특성이다
한지는 꼭 추위만이 아니라
습도를 조절하는 데도 뛰어나다
나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드나들 때
한지로 만든 부채로 선물을 하곤 했다
한지는 습도 조절에도 뛰어나기에
불국사 석가탑 안에서 발견된
불경 <무구정광대다라니>가
서기 750년경에 간행되었지만
여전히 경문을 다 알아볼 수가 있다
4세기경 불경과 함께 시작된 우리 한지
산성酸性을 띠지 않았기에 오래가며
촘촘한 섬유질의 중성을 띠고 있어
세균, 곰팡이, 벌레에게도 강한 편이다
서양의 종이에는 이러한 장점이 없다
중국의 화지華紙를 비롯하여
일본의 화지和紙까지도
우리나라 종이 한지韓紙만큼
부드럽거나 그다지 질기지가 않다
보통 종이 수명은 100년 안팎이나
한지 수명은 1,000년 이상이다
서툰봄, 곧 24절기 중에서
첫 절후인 입춘 때가 다가오면
나는 이렇게 창호지를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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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1/도서출판 도반/한지책
http://dobanbooks.co.kr/goods/catalog?page=1&searchMode=catalog&category=c00240002&per=40&sorting=ranking&filter_display=lattice
참고 자료 2/한지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D%95%9C%EC%A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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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본 금강반야바라밀경/사진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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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4/2023
서툰봄立春을 맞아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