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나무---잊을 수 없는 일
80년 9월, 육지로 나갔습니다. 14,000원을 갖고 출발했습니다. 안성호, 뱃길은 8시간, 뱃삯은 학생 할인 2,610원이었습니다.
추자도 가까이에서 배가 섰습니다. 작은 배가 다가왔고 사람이 내리고 여자가 옥수수를 팔았습니다. 두 개를 100원 정도에 샀습니다.
섬에서는 옥수수를 뭐라고 할까. 옥수수가 씨가 되어 말이 달라졌습니다. 저만 빼고 사람들은 모두 이중 언어자, 파도도 전라도 사투리로 말을 바꾼 것 같았습니다.
부표에 내렸을까, 목포 땅은 움직였습니다.
열차 있는 곳으로 걸었습니다. 모든 게 시작이고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요금이 싼 열차를 탔습니다. 통학 열차라 많이 붐볐습니다. 제 어깨 아래인 학생들이 끝도 없이 많았습니다. 전주까지는 가 보려고 했습니다. ‘같은 돈으로 멀리 갖다 오기’ 계산쟁이 망한다고 첫 발자국부터 난관이었습니다. 전주행 표는 없었습니다.
광주 가까이 다가가자 자리가 생겼습니다. 마주 보고 앉는 구조였습니다. 누가 말을 걸고, 고스톱을 알려주었고, 옥수수 값 정도를 땄습니다. 또 광주역에는 죽은 사람이 가득했다고, 슬픈 일이 있었다고 다른 남자가 말했습니다.
전주행은 아침 일찍부터 있다고 게시판이 말합니다. 밖으로 나오자 같이 온 승객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다른 세상에 왔구나, 친구를 찾아 전화를 하자 이사 갔다고 합니다. 큰 길을 처연히 걸었습니다. 통금과 숙박비가 눈에 밟혔습니다. 내일 돌아가야지 않을까. 삐끼가 나를 잡고 식당으로 가려고 합니다. 부릅뜬 눈이 무서웠습니다.
어떤 여자분이 나타나 제 팔을 낍니다. 삐끼와 싸움이 붙었습니다. 날카롭고 모르는 시골말로 ‘내꺼우다(내 겁니다)’ 하듯이 다퉜습니다.
제법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추석이 다가와 식당도 열지 않았습니다. 저는 굶는 일이 많아서 담장에 널어놓은 누룽지를 탐했습니다. 한 입 훔쳤는데, 너무 말라 사레가 들었습니다. 학교를 어렵게 찾아가 물을 마셨습니다. 남의 감을 따 먹었는데 목이 막혀서 또 물이 필요했습니다. 물 한 방울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친구에게 5,000원을 빌려서 돌아가는 길입니다. 어느 역전 근방, 평상에 앉은 여자가 치마 속으로 부채질을 하며 3,000원이라고 말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 몸은 얼마어치나 될까. 짬뽕 한 그릇 값은 받을 수 있을까. 그딴 생각을 했습니다.
대전 발 0시50분, 멀어져가는 도시의 불빛, 열차 안에서 물건이 지납니다. 대나무 광주리에 든 나주의 배를 샀습니다. 집에 가서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제주 서부두, 돌아왔습니다. 자취방에 가려고 택시를 잡았습니다. ‘이수궤 요 광양 요’ ‘요’자로 말을 끝냈습니다. 부듯했습니다. 며칠 사이의 진화, 표준말이 슬슬 나옵니다.
꽃잎을 둘둘 말은 꽃이 있습니다. 파도의 절정처럼 생긴 꽃입니다. 그 안에는 잊을 수 없는 일이 있고 잊힌 일이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섞이지 않게 합니다. 쓸데없는 아름다움입니다.
첫댓글 파도의 절정처럼 생긴 꽃
바람이 불어와도 섞이지 않게 하고
쓸데 없이 아름다운 꽃....
잊힌 일이야 돌아올 수 없지만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오랜 구전소설을 읽는 느낌입니다. 역시 야책 님의 특유한.....
맞아요. 생각은 비슷한가 봅니다.
구전소설... 몇 번을 읽고 또 읽고.
참 옛날 얘기지만 생생한 지금 얘기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