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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정(井)
그림 9-1. 고구려 청동기의 #문양
작가 최인호는 ‘왕도의 비밀’이라는 책을 통해서, 고구려 청동기 및 토기에서 발견되는 샵(#)문양의 비밀을 캐기 위하여,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대장정을 거듭한 끝에 이것이 백두산 천지를 뜻하는 우물 정(井)자이며, 물의 신 하백의 후손임을 의미하는 광개토대왕의 상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다. 그러나 이 문양은 고구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유교 나 역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井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최인호는 유학에 관한 ‘유림’이라는 책을 지은 이로도 유명한 분인데 고구려 토기의 정(井)자를 유학에 연결시키지는 못하신 것 같다.
맹자는 등문공에게 치국의 방책으로서 정전제(井田制)를 이야기하였다.
정전제란 토지를 우물 ‘井’ 자로 9등분하여 8호의 농가가 각각 한 구역씩 경작하고, 가운데 있는 한 구역은 8호가 공동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물을 국가에 조세로 바치는 고대 요순시대의 토지제도를 의미하는 말인데, 그 내용의 핵심은 ‘균등분배’로서, 백성의 의식주 해결을 첫 번째로 생각하라는 뜻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만이 이 정전제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한단고기(삼성기 上)에도 “鑿子井女井於天坪(천평에 子井과 女井을 뚫었다)”와 “劃井地於靑邱(청구에 井地를 그었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 뜻은 자녀 씨족 혹은 부족집단의 분가를 의미하며 또한 청구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했다는 뜻이다.
유학의 필수 교재인 서경(書經)에는 주나라 무왕이 기자에게 선정의 방도를 물었을 때, 기자는 홍범구주(洪範九疇) 즉 널리 지켜야할 9개 조항의 법을 가르쳐 주었다. 9개 조항의 법은 각기 오행(五行), 오사(五事), 팔정(八政), 오기(五紀), 황극(皇極), 삼덕(三德), 계의(稽疑), 서징(庶徵), 오복(五福), 육극(六極)으로서 또 각각을 살펴보면 여러 개의 조항이 있다.
그러나 정약용은 홍범구주가 정전제(井田制)에 다름이 없다고 한마디로 일축하였다. 왜 그러한가? 간단하다. 주(疇)가 밭고랑을 의미하는 글자이기 때문이다. 사실 기자는 널리 지켜야할(?) 9개의 밭고랑에 담긴 철학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집요한 무왕의 추궁에 별의별 이야기를 다 붙인 셈이다. ;-)
그 뿐이 아니다. 역술에서 이야기하는 구궁방위(九宮方位) 역시 井을 긋고 이야기하는 게 기본이다.
여기서 방위와 색상, 간지 등등 별별 개념이 다 나온다. 그러니까, 井자는 고대 동아시아인의 관념세계를 형성하는 하나의 ‘우주관’이자 ‘세계관’이라는 이야기이며 치국의 근본이자 마음을 다스리는 도의 근본 등등 거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우물’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井자의 유래가 무엇일까?
구궁방위는 지난 칼럼에 이야기한 중심을 5로 하여 팔괘를 마방진으로 배치한 문왕의 낙서에서 유래한다.
또한 문왕의 낙서는 궁극적으로 복희와 여왜 그리고, 치우가 만든 태극과 팔괘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 최고의 경전이라는 천부경은 어떤가?
천부경은 1916년 계연수라는 분이 묘향산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탁본해 한단고기와 함께 대종교에 전한 경전으로, 역시 진위를 의심받던 글이다. 그러나 지난 장에서 설명한 출처가 다른 또 다른 갑골문 천부경의 발견은 더 이상의 진위논란이 있을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아무튼 필자가 해석해 본 천부경 역시 井이다. 별의별 해석이 난무하는 이 천부경 해석을 위해서, 계룡산 등지에서 지금도 열심히 수행 중인 도사님들, 그리고 별별 종교단체의 교인들께, 필자 같은 범부가 그냥 간단히 우물 井이다고 툭 뱉듯이 감히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나 죄송스럽기 짝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천부경을 정말로 신적인 존재인 환인이 환웅에게 구두로 전해준 것이라는 이야기를 굳게 믿는 듯하다. 그럼 환인께서 유창한 중국말을 쓰시는 중국인이었단 말인가? 어떤 이데올로기도 ‘역사’없이 형성되지 않는다. 천부경에는 한문으로 최종 본을 펴낸 단군왕검에 이르기까지의 지난한 역사가 담겨 있다.
그러나 환인이 환웅에게 구두로 전해준 사실을 필자는 부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천부경이 쓰이게 된 ‘역사’는 알타이어족이 신시배달국을 열었을 때부터 집요하게 추구해온 혼혈문화와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아마 추측컨대, 환인은 이렇게 이야기하였을 것이다. “이제 먹을 것도 떨어져 가는구나.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네가 가면 그 곳에는 짐승같이 무식해 보이는 인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하늘과 땅이 내린 고귀한 생명을 가진 인간들이며 우리와 같은 마고의 자손들이니 싸우지 말고 잘 가르치고 어울려 세세손손 잘 살기 바란다.” 마치 아버지가 길 떠나는 아들에게 들려주는 정겨운 교훈이 지난한 역사를 거치면서 복잡한 하나의 철학을 형성했다고 보면 될 듯하다.
9-2. 천부경의 해석
유호가 꾸짖은 음양오행설, 하문왕의 낙서가 왜 잘못되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천부경을 이해해야만 한다.
천부경은 9×9의 81문자를 가진 정형화된 틀을 가지고 있으며 띄어쓰기가 애매하여 어떻게 읽어야하는지 읽는 방법에 따라 천 갈래 만 갈래로 해석이 되고 있으며, 해석자에 따라서는 더하고 빼고 곱하여 정말로 복잡한 수학이 만들어지기조차 하였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천부경은 누구나 알기 쉽도록 제시하는 경전이어야 했을 것이다. 필자가 유심히 살펴본바 필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井자를 기본으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띄어쓰기를 참조하여 만 갈래 해석에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나 더 추가한다.
그림 9-2 천부경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하나의 시작은 시작이 없는 하나이다.
이 구절은 마지막구절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과 댓구를 이루는 구절로서, 시작도 없이 시작되고 끝남도 없이 끝남을 이야기한다. 무한이 반복되는 어떤 논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시작 없이 시작한 1에서 시작하여보자. 다만, 없음(0)과 있음(1)은 같다(1 = 0)는 것을 유념하자.
석삼극무진본(析三極無盡本) 3극으로 쪼개져도 그 근본은 다함이 없다.
하나에서 3으로 쪼개져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럼 4으로 쪼개지면? 뒤 구절 ‘용변부동본(用變不動本)’으로 부터, 적어도 용(用, 현상)은 변함을 암시하고 있다고 본다. 갑골문은 쪼갤 석(析)이 아니라, 새 신(新)이라 한다. 그러나 의미해석에 차이를 주지 않는다. 하나에서 새로운 3이 나오기 때문이다.
천일일지일이인일삼(天一一地一二人一三) 하늘은 1 하나, 땅은 1 둘, 사람은 1 셋.
한글 모음의 창제원리인 하늘(.), 땅(-), 사람(ㅣ)의 요소를 모두 합치면 정사각형의 口가 나올 수 있다. 필자는 이 口를 시작 없이 시작하는 첫 번째 하늘을 의미하는 도형이라 가정하여 보았다. 그것은 뒤 구절 함 궤(匱)에서 유추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위 구절을 도형으로 표시하면…….
口口口
인데, 각각에 천지인의 이름과 행렬순번의 좌표를 표시하면,
口 天(1,1) 口 地(1,2) 口 人(1,3)
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부터 네모 상자를 하늘 (1,1), 땅(1,2), 사람(1,3)이라 이름 한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생각하는 해석이다.
일적십거무궤화삼(一積十鉅無匱化三) 1을 쌓아 10으로 커지면 함은 없고 3으로 변한다.
이 네모난 함(匱)을 쌓아 올리는데, 10에서 더 쌓을 상자는 없고, 3이 된다고 해석한다. 다음의 도형을 보면 이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즉 한 줄, 두 줄, 세 줄의 문자 모양 그대로 三이란 뜻이다. 갑골문은 될 화(化)가 아니라 따를 종(從)이라고 하는데, 3줄이 되는 거나 3줄이 따라 만들어지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口口口 : 3
口口口 : 2
口口口 : 1
다만 10번째는 추가된 상자가 아니라, 전체를 의미하며 도로 정방형인 口가 되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꼴임을 의미한다. 즉 무한히 반복되는 논리의 새로운 시작인 셈이다. 따라서 이 새로운 큰 口(囲)를 다시 위 그림처럼 쌓으면, 전체 상자의 수는 9×9 = 81개 즉 천부경의 81문자의 정방형꼴 배치와 똑같이 된다. 천부경의 글자 수와 배치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천이삼지이삼인이삼(天二三地二三人二三) 하늘은 2,3, 땅도 2,3, 사람도 2,3
이것은 1에서 시작한 하늘, 땅, 사람이 다음처럼 각기 1->2->3으로 커짐을 이야기한다.
口天3口地3口人3
口天2口地2口人2
口天1口地1口人1
대삼합육생칠팔구(大三合六生七八九) 큰 3을 합하면 6이 되고 이로 부터 7,8,9가 생긴다.
간단히 해석하자. 이 구절은 밑에서 부터 2번째 줄까지 도합 상자가 6개인데, 그 위에 7,8,9번째 상자가 생김을 이야기한다. 다음의 순서처럼..
7->8->9
6<-5<-4
1->2->3
천부경을 보면, 처음에 1로 시작해서 마지막도 1로 끝나는데, 맨 중간에 6이 있다.
따라서 위의 번호 배치가 맞을 것이다. 3-6-9로 변하는 이치를 알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대삼(大三)이란 둘 씩 묶어서 3번 변화하면 6이 된다고 해석한다.
1-2-3이 분열이면, 4-5-6은 수렴의 과정이며, 7-8-9는 새로운 단위의 성장을 준비하는 또 다른 분열이다.
지난 칼럼의 복희팔괘를 연상해보자. 복희팔괘는 9수가 아니라 8수 이었지만, 전체가 9수가 되어도 천부경의 숫자배치의 흐름은 마방진이 아니라 복희팔괘의 배치와 다름이 없다.
운삼사성환오칠일(運三四成環五七一) 3,4를 움직여 5, 7, 1를 돌려 이룬다.
앞서, 4번째에서 용이 변함을 이야기한 바 있다.
4번째 상자는 옆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고 방향을 틀어서 즉 돌려서 다시 쌓는다.
그리고 5를 이룬다고 해석된다. 7이란 숫자는? 4부터 6으로 가면 즉 다시 큰 3(각각 2개씩 1,2,3)이 돌면 이번에 다시 원래 방향으로 틀어서 7이 된다고 해석한다.
1이란 숫자는 다시 큰 3(각각 3개씩 1,2,3)을 돌면 마지막으로 9번째 상자에 이르게 되는데, 그 상태가 0이고 이것은 앞서 이야기 한데로 0 = 1이며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므로 1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대삼합육생칠팔구(大三合六生七八九)와 함께 변화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구절이다.
갑골문은 대삼(大三)의 석 삼(三)이 아니라 기(氣)라고 하는데, 필자는 삼(三)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3으로의 분열에서 6으로의 재수렴의 과정 자체도 자연스러운 기의 흐름 즉 만물 변화의 움직임이다. 또한 운전할 운(運)이 아니라, 속마음 충(衷)이라고 하는데, 글자를 바꾸어도 5,7,1을 돌려 이루는 핵심(核心 곧 衷)은 3->4 변화라는데 의미의 차이를 주지 않는다. 즉 6->7로의 변화도 둘씩 묶은 3번째에서 이루어지며, 9->1로의 변화도 셋씩 묶은 3번째에 이루어진다.
그 다음 구절은 고로 사람이 귀하니 사람을 귀하게 여겨라 이런 뜻으로 누구든지 쉽게 해석할 수 있다.
묘연만왕만래용변부동본(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 (이처럼) 묘연하게 넘쳐 만물이 오고 가는데(생성소멸을 반복하는데), 모습은 바뀌어도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본심본태양앙명인중천지일(本心本太陽昻明人中天地一) 마음의 근본은 태양의 근본이니 사람마음에 천지가 하나임을 밝게 비추어 우러러 보라.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하나의 끝은 끝이 없는 하나이니라.
설혹 필자의 해석이 틀렸더라도 전체적으로 서두의 숫자 및 도형의 논리가 사람의 마음이 귀하다는 결론으로 이끌어지는 글임에는 틀림없다. 도대체 이 숫자이야기하고 사람이 귀한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9-3. 무속과 숫자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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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행 1,2,3은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탄생을 의미한다. 여기서 핵심인 3수의 의미는 인간의 탄생이다. 그 근원을 찾으면, 삼신할머니 즉 마고, 궁희, 소희를 의미하는 것으로 바로 인류의 조상이다. 과거 우리의 어머니들은 자식을 점지해달라고 삼신할미에게 치성을 드렸다. 마고할미가 주시던, 황새가 물고 날아오던, 다리 밑에서 주워 오던 그렇게 인간은 부모님의 지극 정성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행열로 방향 전환이 되는 3수와 4수는 사람의 수(열의 의미)로서 삼족오와 두꺼비의 다리 수에서 보는 바와 같이 태양과 달, 양과 음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두 문명 즉 인간집단의 만남을 의미한다. 환웅과 웅녀(견우와 직녀), 복희와 여왜, 단군과 하백녀, 해모수와 유화부인, 고주몽과 소서노, 박혁거세와 알영왕비, 김수로왕과 허황후, 고양부 삼성과 벽랑국의 3공주, 우리나라 건국신화는 모두 남녀의 결합이며 동시에 이질적인 두 문명의 결합이다.
두 번째 행 4,5,6은 그렇게 해서 맺어진 결실인 한 사람의 인간, 나아가 하나의 사회, 더 나아가 인류의 ‘성장’을 의미한다. 그 중에서 핵심 수는 5이다. 이 5수의 유래는 3수와 4수를 돌려 이루어낸 수(피타고라스의 정리?)로서 태극팔괘의 중심인 태극을 의미하며, 천부경의 구조로 볼 때 두 번 째 열인 땅에 속하는 수이다.
또한 지난 장에 서술했듯이 5수는 치우를 의미하며, 벽사를 상징한다. 역시 무속에서 그 근원을 찾으면 오방신장이다. 어머니들은 오방신장에게 무엇을 기원하였는가? 바로 자식들의 무탈한 ‘성장’을 기원하였다. 홍살문의 삼태극은 질병을 가져오는 귀신을 내쫒고 우리 귀한 아기가 곱게 자라라는 벽사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행, 7,8,9는 성숙과 완성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죽음’을 의미한다.
그 첫 번째는 하늘의 수인 7수이며 이는 북두칠성을 의미한다. 7수 역시 3수와 4수의 합이며 북두칠성의 모양 그대로 당연히 하늘의 수이다. “……정한수(정화수: 井華水) 떠놓고서 이 아들의 공비는 어머님의 흰 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 그 유명한 전선야곡의 2절의 가사처럼 어머니들은 다 큰 자식의 성공과 무병장수를 ‘칠성님’께 기원하였다.
또한 죽어서 편히 하늘나라, 즉 구천(九天)으로 가라고, 우리는 부모님의 시신을 ‘칠성판’위에 모신다.
인간의 지극정성에 하늘은 칠성으로 응답하며 거두어가는 셈이다. 정한수는 밤새도록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은 새벽물을 의미하며, 정화수의 우물 정(井)자는 북두칠성의 4별이 이루는 공간인 선기옥형(璇璣玉衡, 고대의 천체관측기구의 이름이기도 하다)에 대응한다. 우리나라 우물 모양 자체도 그냥 둥그렇지 않고 말 그대로 네모난 井자 모양이다.
그림 9-3 윷판
윷놀이에도 천부경의 진리가 담겨 있다고 한다.
윷판의 중심은 북두칠성의 첫 별 천추성을, 그리고 나머지 28개의 점은 북두칠성이 관장하는 사방 28수의 별자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북두칠성에 대한 신앙은 알타이어족이 수렵생활을 할 때부터 있어 온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동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의 별자리였고, 북두칠성은 ‘위치정보’와 ‘시간정보’를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윷놀이의 도, 개, 걸, 윷, 모는 각기 달리는 속도대로 나열한 유목민의 가축인 돼지, 개, 양, 소, 말을 가리킨다.
왜 북극성이 아니라 천추성(天樞星 하늘의 주축이 되는 별이라는 뜻)일까? 한 가지 과감한 추정을 해본다면, 1만 년 전에 벌어진 빙하기의 후퇴는 천지개벽과 같은 현상이었을 것이며, 그 원인은 지구 세차운동에 있을 것이기에 수렵민이 시베리아 벌판과 남북아메리카를 내달리던 빙하기의 환인(실은 황궁, 유인씨)시절에는 지축은 천추성을 가리키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수메르의 도시배치도 북두칠성의 모양이다. 그들의 일곱신도 북두칠성의 각 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이 수렵생활을 했으며, 고대 알타이어의 환인제국과 밀접한 관련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이다. 왜냐하면, 서양에서의 북두칠성은 큰곰자리의 등과 꼬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동생활을 하는 어로 민족에게서도 하늘의 별자리는 중요하다. 고인돌의 성혈은 그 어로민족의 천문관을 가르쳐주는 또 하나의 유적이다. 북아메리카의 바위에서 발견된 성혈은 어로 민족만의 순수한 천문지식을 알려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윷판모양의 성혈은 어로민족과 수렵민족의 혼혈화 과정을 설명하는 단서이다.
전체의 윷판 모양은 밭 전(田)의 형태이다. 그러나 이는 (혼혈이 이루어지기전 수렵민이었던) ‘환웅의 천부경’이다. ‘복희’와 ‘여왜’의 두 밭 전(田)을 합치면, 가운데 열 십(十)은 우물 정(井)으로 바뀐다. 그것이 바로 ‘단군왕검의 천부경’이다.
마지막 9수는 죽은 사람이 가야할 구천(九天, 불교에서는 九泉의 저승을 이야기하지만, 무속과 불교의 상호 문화 침투현상으로 생각함)이며, 산사람에게는 이러한 생노병사의 과정으로 이루어진 민족 집단 나아가 온 인류를 의미하는 것이다. 구리(九夷), 구한(九韓)이 가진 추상적 의미가 바로 이 뜻이다. 새로운 시작으로서의 1이자 하부 시스템의 성장결과로서의 완성인 9수를 이야기하며 이 또한 3과 4위에 세워진 인간의 수이다.
전반적으로 1, 3, 5, 7, 9의 홀수 시스템을 의미하며, 만물의 극히 자연스러운 생장곡선인 태극문양의 시그모이드 커브를 아홉 등분하면, 각 곡선의 변곡점이 바로 이들 홀수임을 알 수 있으며 이들 홀수는 ‘통합과 생성’의 의미를 내포한다. 그 사이를 메우는 2, 4, 6, 8의 짝수는 그 변곡점의 연장으로서의 ‘분열과 성장’의 의미가 있다.
보충하면 짝수에도 의미가 있다.
6수 역시 천부경의 구조상, 하늘의 수로 남두육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행으로 보면 2번째 성장의 행이다.
중국고사에 의하면 19 (十九)세에 죽을 운명을 가진 한 아이의 아버지인 농부가 장기를 두는 두 신선(북두칠성과 남두육성)에게 술을 올린다. 무심결에 실수로 술을 받아먹은 남두육성은 북두칠성의 호통을 달래어, 아이의 수명을 거꾸로 적어 90 (九十)으로 바꾼다.
이 고사에 의하면 남두육성은 삶을 관장하며, 북두칠성은 죽음을 관장하는 신을 뜻한다고 한다.
천부경의 행의 의미와 상통한다. 인간이 자신의 할 바(개인의 공명보다는 자식의 탄생, 성장을 의미)를 다한 후, ‘인명은 재천’이라는 뜻은 바로 6수와 7수의 운에 달린 것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고인돌의 성혈에도 남두육성과 북두칠성의 표현이 있다.
8수는 팔월한가위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것 같다. 8수는 땅의 수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하늘이 도와 맺어진 결실(농작물)을 의미하기도 하며, 또한 인간집단으로서는 새로운 생명인 자손의 번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 (죽은 이에게는 구천으로 가는 징검다리일까?) 팔신제는 중국 산동성의 제나라의 왕실인 강태공 후손들의 풍속으로 도교의 근원이 되는데, 천주(天主), 지주(地主), 음주(陰主), 양주(陽主), 일주(日主), 월주(月主), 병주(兵主, 치우), 사시주(四時主)의 팔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강태공이 오래된 문화의 유습을 복원한 것이라고 하며 이러한 개념 및 유습들은 문화를 공유했던,
치우의 청구배달국 이후, 중국과 한국(고조선) 모두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도교의 기원은 연나라, 제나라의 산천제, 팔신제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우리의 고유 신앙인 무속마저도 중국의 도교에서 전래되어 온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고구려시대에 중국에서 전래된 ‘오두미교’를 무속의 기원으로 풀이하는 것이 교과서 및 백과사전의 공통된 해설이다. 마고신앙 역시 고대 한나라 때 채경이란 사람의 집에 들러 하도 오래 살아 상전벽해를 3번 보았다는 여자 신선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삼신산은 진시황제가 찾았다는 전설의 불로초가 있는 산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들도 칠성신앙이 있고, 일본도 칠성신앙이 있다. 하물며 오방신장마저도 육시를 당한 치우에서 유래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는데 더 말해 무엇 하랴. 중국의 전설은 기원이 되고, 한국의 민간신앙과 전설은 조작된 것이라는 게 우리의 교과서이다. 왜…… 너무나도 닮은 몽고의 샤머니즘이 무속의 기원이라 하지 않는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교과서마저도 단군시대를 제정일치사회라고 하며 단군은 최고의 무당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음주가무를 즐긴다는 제천행사는 동이족(고대 부여, 읍루, 동예 등 한국, 말갈의 고대국가나 선비족에도 공통)의 고유 행사라고 쓰여 있다. 도교의 기원이 된 연,제 두 나라의 위치를 볼 때, 모두 하나라 및 은나라의 후발 국가이다. 하나 은이나 고대 중국의 초기 국가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구성원은 배달국의 문화를 공유했던 고대 동이족의 일원이었고 곰을 토템으로 한 민족의 나라였다.
서쪽의 호랑이 토템인의 후예인 주나라의 침략으로 은나라의 일부세력(기자)은 홍범구주를 전승하고 고조선으로 망명하며, 백이, 숙제는 절개를 지키며 동쪽 바닷가에서 살았다고 한다. 백이와 숙제 모두 장유를 뜻하는 백(伯)과 숙(叔), 그리고 동이족임을 뜻하는 이(夷)와 제(齊 산동성의 제나라와 같은 한자임)를 이름으로 하고 있으며 이는 개인보다는 절개를 지킨 부족집단임을 암시한다. 어찌 보면 강태공은 매국노인 셈이다. 고조선을 괴롭힌 연나라는 주무왕의 동생이 봉작을 받은 나라이지만, 그 주민 대부분은 은나라의 유민으로서 고대 동이족으로 볼 수 있다. 이 연나라에서 소위 상투를 틀었다는 위만이 번조선으로 망명하여 왕권을 탈취한 것이다. 그러나 연, 제 지방의 풍습에서 유래된 도교는 이후 황로사상 즉 황제와 노자를 주신으로 섬기며 빠르게 중국화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신비주의, 자연주의로 바뀌어 나간 것임을 알아야 한다.
9-4. 인간의 존엄성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것임에 분명한 천부경이 주는 진짜 의미는 이렇듯 숫자를 신비화한 장난이 아니었다. 인간이 귀한 이유를 하나의 도형 또는 숫자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
한 인간이 귀한 이유는 그 부모가 탄생에서 성장, 죽음에 이르기까지 삼신할미, 오방신장, 칠성님께 지극한 치성을 드리며 키워낸 존재이기 때문에 귀한 것이라는 사실을 천부경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를 확대하면, 하나의 민족 집단 그리고 인류 집단 역시 그 조상이 치성을 드려 키워낸 존재이기 때문에 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 식으로 진화의 사슬을 올라 나아가면, 궁극적으로 인류와 만물은 하늘과 땅이 ‘치성’을 다해 키웠기 때문에 귀한 존재임을 알게 되며 따라서, 이 세상 무엇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에게 존재함을 주었고, 그 존재함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모와 조상님의 마음 자체가 바로 하늘과 땅의 뜻이었다란 이야기이다. 그 태양처럼 눈부신 마음을 어찌 안 우러러 볼 수 있는가?
정전제의 개념에는 인위(人爲)가 있다. 마방진 역시 아름다운 숫자의 배열이다.
사방팔방 모자람이 없이 공평하게 인위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마방진의 개념이다. 그러나 이 인위는 곧 다스림이 된다. 이 다스림은 권위를 낳고 강제를 낳으며, 계급을 낳는다. 이것이 수천 년 동안 유학이 걸어온 길이다. 반면에 도가는 무위(無爲)를 강조한다. 도대체 무위자연(無爲自然)이란 무엇인가? 선한 것인가? 악한 것인가? 도가의 애매모호함은 전혀 현실을 해석하고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유가와 도가의 양대 흐름은 태극팔괘의 단일 사상에서 비롯되었지만, 이후 불교의 ‘교종과 선종’, 성리학의 ‘이기논쟁’으로 이어지며, 현재도 여전히 이 갈등의 양대 철학을 해소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태극팔괘 이념의 정통성을 잇는 천부경은 현실도피의 무위(無爲)가 아니라 적극적인 인위(人爲)의 철학이다. 하지만 그 인위는 유학의 ‘훈시’처럼 억지가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위이다. 그러나 그 자연스러움은 또한 ‘약육강식’의 자연계가 아니다. 천부경이 강조하는 자연스러운 인위란 바로 ‘부모님의 마음’이었다. 이것이 제세이화(濟世理化), 홍익인간(洪益人間)의 진정한 뜻이다.
과거 중세유럽의 기독교식 사고방식에 의하면 사람이 귀한 이유는 지극히 높은 존재인 ‘신’이 ‘인간’에게 그 귀함을 주었다는 선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는 지구도 우주의 중심이었다. 그야말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그 누군가에 의하여 ‘선택’받았기 때문에, 그 외부인(신)에 의하여, 다른 존재와 ‘차별’을 받기 때문에 귀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헌법에도 규정되어 있는 소위 ‘천부인권설’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이 개념을 뒤집어보면, 선택받지 않은 그 누군가는 또는 그 무엇인가는 귀하지 않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오만한 철학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문명과 야만을 나누었고 자연파괴를 낳았다. 필자는 크로마뇽인의 후예임을 주장하는 현재의 영국 과학자들에게도 여전히 그 오만한 생각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은 더 이상 인간이 선택받은 존재임을 부정하고 있다. 필자 역시 과학도로서 신을 믿지 아니한다. 진화론은 인간이 원숭이와 다를 바 없음을 밝혀내었다. 천문학의 발달은 더 이상 지구가 우주의 중심임을 부정한다. 아무리 천부인권설을 외친다고 하더라도, 결국 인간 자체는 단지 하나의 개체, 노동력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과학이란 이데올로기’가 준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제 종교가 아닌 과학적으로 인간은 소중한 존재여야만 한다. 필자는 그 당위성을 천부경에서 찾았을 뿐이다. 천부경은 종교가 아니라 우리가 찾는 바로 그 과학이며 동시에 찾아야할 민족 문화이다. 천부경을 잃어버린 대신 우리는 인내천(人乃天)의 동학사상이 나오기까지 지난한 세월을 억눌리며 살아왔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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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앞에 올린 글의 일부분이 이 원문글의 요약인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