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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달린 원숭이: 단군신화 써보기.
서문
인간개조프로젝트를 십년 넘게 이끌어온 하반하세계여행학교는 단군신화에 나올법한 이야기들을 매해, 매월, 매일 마다 창출해내는 곳이다. 인간으로 덜 진화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철부지들이 전국 곳곳에서부터 ”세계여행“ 타이틀이란 미끼로 유인되어 예상치 못한 80, 90년대의 군대생활에 못지않은 지옥훈련으로 10개월간 사람이 되는 과정을 밟게 되는 곳이다. 난 이 학교를 지금 2년째 다니고 있는 김민석이란 ‘꼬리 달린 원숭이’이다. 끊어지지 않고 오히려 길어지기만 하는 골치 아픈 꼬리를 난 달고 있고, 인간으로 아직 덜 진화한 원숭이처럼 친구들과 촐싹거리면서 시끄럽게 수다 떨기를 좋아한다. 그것 외의 것엔 흥미를 가지기 어려워하고, 조금만 힘든 것이 있으면 그냥 손을 놓아버린다. 꾸준함과 끈기를 요하는 일이 있으면 원숭이가 맹수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나무에 올라타듯이 난 내 정신 속의 ‘구름 뻐꾸기 나라’라는 곳으로 올라탄다. 이 모든 아리송한 말들은 독자가 이 서문 후에 나올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이해를 하게 될 것이다.
하반하세계여행학교라는 동굴 속에서 맵고 쓴 마늘을 매일 입에 쑤셔 넣으며, 또 강압적으로 먹게 되며 인간이 되어보려는 나의 끈질기고 답답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해본다.
I. “세월아 내월아” 증후근.
나의 매끈한 기럭지. 불끈불끈 말벅지. 보드를 타기 위한 만반의 준비. 드디어 출발했다. 비밀병기의 첫 목적지, 슬로바키아.
보드를 타기 위해선 S자로 내려오는 것이 중요시 된다. 보드 옆의 날카로운 날을 세워 반짝이는 눈 위를 가로지르며 내 양 옆으로 스치는 차가운 바람. 그 순간이 나에겐 바로 내 인생의 THE 만남이었다. 스노보드, 나의 겨울왕국 S라인 소울메이트.
그렇게 나의 겨울 낭만이 보드와 함께 달아오르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봄이 찾아 왔고, 마치 흑반점들이 생긴 것처럼 눈은 녹아 풀과 흙에게 다시 듬성듬성 자리를 양보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어느 날, 대장님께서는 눈이 많이 녹아서 스키나 보드는 못 탈 수도 있지만, 모두 사진을 예쁘게 찍고 오자고 준비하라고 하셨다. 스키장에 갈 때에는 늘 보드복을 입고 갔지만, 오늘은 사진을 찍는다기에, 청바지에 맨투맨 차림으로 예쁘게 입고 갔다. 그렇게 사진을 다 찍고, 돌아가려는 길에, 대장님께서 눈이 생각보다 많이 녹지 않았으니, 마지막으로 보드와 스키를 타고 가자고 하셨다. 나는 보드복도 장갑도 안 챙겨온 상태였다. 그래도 난 대여소에 가서 보드부츠를 빌리고 보드를 챙겨 리프트에 막 타려던 참이었다. 그때 써니 선생님께서 스키나 보드 복장을 안 입고 왔거나 장갑도 없는 아이들은 타지 말라고 하셨고, 난 그 말이 겨냥된 아이들과 함께 꾸중을 들었다. 눈 상태가 좋지 않아 넘어지면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기도 했고, 보아하니 대장님께선 공지를 내리셨을 때 탈 수도 있고 못 탈 수 도 있으니까 복장은 준비하라고 말씀을 주셨다고 모두들 그랬다. 난 마지막으로 보드를 탈 수 있는 기회도 놓치고 선생님들께 꾸중을 들어 기분이 완전 DOWN 이었다. 보드로 DOWN 한 것과 극과 극 차이의 기분이었다. 난 공지가 잘못되었다고 고집을 부렸고 일기장에 화풀이까지 했다.
그런데 끝까지 고집을 부릴 수 없었던 것이 나 말고 다른 아이들은 대장님의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잘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에도 여러 번 공지를 잘 못 들어서, 가끔은 큰 신경을 안 쓰고 흘겨 들어서, 내 스스로에게 그리고 같이 일하는 팀원들에게도 피해를 준 적이 자주 있었다. 공동 집단에선 소통이 잘 되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어야 무슨 일이든 풀리고 협동이 잘 이루어지는 것인데, 난 수다를 떠는 것 외의 소통엔 귀가 저절로 닫히거나 아니면 반대로 너무 열려버려서 상대방의 말이 다른 귀로 흘러나오는 병을 가지고 있다. 그 병은 내가 삶에 기본적으로 임하는 태도의 병이다. 일명, “세월아 내월아“ 증후근. 작년 하반하 8기 초반부 때 선생님들한테서 생활 속 진단을 받아 알게 된 나의 뿌리 깊은 병이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고 얼마나 흐르든 난 항상 다른 곳에 있고, 시간에 그렇게 신경을 잘 안 쓰다 보니 무슨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주의를 잘 안 주는 것이다.
Ⅱ. 넌 가보았니? 구름 뻐꾸기 나라.
치키차카차카차카 초코초코초. 파도를 가르는 보드, 바람을 가르는 돛대. 슬로바키아에서 겨울왕국 드라마를 찍어보았으니, 이제 터키 바다의 손오공이 되어 볼까. 아니 그럴 수 없다. 난 ”세월아 내월아“ 증후근을 앓고 있는 김민석이니까. 귀차니즘의 암세포가 그의 정신과 신체 전역에 퍼져있다. 윈드서핑을 타기 위해선 보드에 큰 돛대를 끼워 맞추고 그 무거운 집합체를 바다로 끌고 가서 물에 척하고 붙어 뉘어진 돛대를 들어 올려야 하고, 바람을 읽어가며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귀차니즘 암세포의 화를 증폭시키어 ”세월아 내월아” 명상 상태를 불러온다.
슬로바키아에서의 스키와 달리 터키에서의 윈드서핑은 힘들었다. 날씨도 더워서 그랬는지 난 며칠 만에 원드서핑에 대한 흥미를 내 마음 속에서 퇴출시키게 되었다. 아침 일찍 서핑센터로 향하고 도착해서 준비하고 타고 하는 모든 과정 속에 나의 정신은 “구름 뻐꾸기 나라(Cloud cuckoo land)”에 있었다. 진성 샘이 예전 영어수업에서 언급하신 희한한 단어인데 내 정신 상태에 알맞은 단어여서 그런지 일 년 전 8기 때 한 번 들었는데도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정신이 다른 데 있다는 뜻을 가졌는데(구름 위와 같은 몽상적인 곳에서 다른 둥지에 알을 낳는 정신 나간 뻐꾸기처럼 날아다니는 것과 같은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추측), 오로지 내 몸의 기억만이 반복적으로 생각 없이 작동하던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은 재훈이와 준우와 함께 바다 한 가운데서 윈드서핑보드에 걸 터 누워서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수다를 떨고 있었다. 주제는 바로 얼굴도 몸매도 샤방샤방한 한국 걸그룹 A부터 Z. 나의 인생 넘버원 수다거리이다. 그런데 그렇게 수다를 떨고 있던 와중에 호근 형님이 윈드서핑을 하며 와서 써니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5달러 페널티를 주셨다고 말하며 지나가셨다. 그 때 그 말을 듣고 우리는 호근 형님을 무시하고 수다를 더 떨다가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 된 것을 보고 육지로 향했다. 그런데 육지로 가까워질수록 어떤 익숙한 살기가 느껴졌다. 도착해보니 써니 선생님께서 두 손을 허리춤에 얹히신 채 차갑고 살인적인 눈빛으로 내 심장에 긴장의 촉을 날카롭게 던져 꽂으셨다. 그리고 내려졌다. 페널티 5$, 일주일 서핑 금지령, 일주일 부엌 노동.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말씀하셨다. 지루할 때가 발전할 때라고. 마치 쇳덩이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 몸을 찌부시킨 느낌이었고, 난 비밀병기 왜 온 것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모든 것을 그냥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뙤약볕 아래 집으로 홀로 돌아오는 나의 매끄럽고 긴 기럭지의 발걸음. 그날따라 아주 고독했다. 내 다리의 길이가 길어서 인지, 나의 생각과 고민도 계속 길어져만 갔다. 어찌나 계속 길어지던지, 터키에서 내내 무기력하게 있었다. 내 무기력함의 꼬리가 그 곳 터키를 벗어나기 전까지도 끊어지지 않았다. 터키를 넘어 이집트를 가는데도, 공항 검색대를 넘어가는데도, 그 꼬리는 잘리지 않았다. 그 꼬리가 나라와 나라를 넘나드는 월드클래스가 된 것이었다. 운동도 어느 수준을 넘으면 귀찮아지고, 어떤 공동단체에서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귀찮아지고, 그냥 모든 것을 손 놓아버리고 싶었다. 왜 이런 것들을 꼭 해야 하지? 왜 꼭 잘 해야 하지? 삶! 넌 너무 힘들어! 힝!
Ⅲ. 이러다 사람도 죽이겠어.
슬로바키아에선 남의 말에 집중을 안 했고, 터키에선 학교활동에 흥미를 쉽게 잃었다. 모두 내 앞서 언급한 문제점과 엮인 일들이었다. 이집트로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8기 때 기본자격증을 따서 이번엔 한 단계 더 나아가 레스큐(rescue) 자격증을 딸 계획이었다. 응급상황 발생 시 그 상황을 처리하고 이끌어갈 자격이 생기는 자격증이다. 그래서 난 매일같이 산소통을 이고 물속으로 수심 15m에서 20m까지 들어가 구조작업훈련을 하였다.
장기간동안 수중압력을 버티고 질소를 호흡하여 발생한 깨질 듯한 머리의 두통은 나의 귀차니즘 암세포를 자극하는 것을 넘어 거센 화염을 일으켰다. 그렇게 난 타 부서지고 잿가루가 된 느낌이었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흩날리는 것처럼 스쿠버다이빙 강사님들 그리고 나와 과정을 같이 밟았던 대장님한테 정신없이 육지에서도 바다에서도 끌려나기만 했다.
그냥 포기해버리고 싶은 마음만이 내 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러면서 어느 날은 훈련공지를 제대로 못 들어 구조작업훈련에 필요한 장비를 못 챙기게 되었다. 사람을 구조해야 할 준비를 하는 연습생이 구조장비를 못 챙겼으니 참. 실전이었으면 구조대상은 죽었을 것이다. 대장님께선 그날 날 혼내시며 말씀하셨다. “첫 날은 열심히 하는 것 같더니 금세 그 마음이 다 식어버리면 어떡해? 나중엔 아무것도 못해!“ 그러시곤 비밀병기 때만이 아닌 8기 때부터 내가 꾸준히 하지 못한 것들은 조목조목 집어주셨다. 내 이미지가 선생님들뿐만이 아니라 친구들 사이에서도 꾸준함이 없고 어떤 일을 맡기거나 기댈 수 없는 녀석이란 이미지이고 난 그것이 정말 싫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대장님께서 말씀하셨다.
난 똑같은 마음가짐과 똑같은 실수를 한 나라 넘고 또 다른 나라를 넘어 반복하고 있었다. 평소 일상에 부주의하게 살면서 무엇도 꾸준하게 끝을 보지 못하고, 그러다 좀 힘들어지면 될 대로 되라 식의 태도를 보이며 손 놓아 버리고, 그런 태도로 어떤 일이나 활동에 협동을 잘 못해서 선생님들 또는 친구들과 사이가 안 좋아지면 내 자신의 무기력한 상태가 더 악화되는 일의 반복이 점차 나의 마음에 긴장감을 심어주었다. 정말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되고 신중하게 고칠 생각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아주 큰 문제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정말 난 내 인생에서 어떤 일에 끝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하반하에서 2년 동안 키만 컸지 다른 건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많은 노력을 하고 자신을 증명하면서 변하고 있는데 나만 한 곳에 고여 썩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가 너무 슬퍼진다. 힝!
Ⅳ. 1년을 마무리하며
시간은 흘러 인도로 넘어와 승마를 하였고, 다음으로 지금은 현재 문집을 쓰고 있는 인도네시아로 날아와 서핑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집트에서 대장님으로부터 쓴 소리를 듣고 내 자신을 전보다 더 진지하게 돌아보게 되었는데, 그러나 인도로 넘어가서도 난 내 병의 증상을 보였다. 말을 탈 때 말을 힘들게 하거나 내 자신을 위험하게 할 수도 있는 자세를 고치지 않고 그냥 계속 내가 편할 대로 탔었고, 시간은 대충 지나갈 것이란 생각으로 잘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또 혼났다. 그리고 혼날 때면 여느 때와 같이 내 자신을 되돌아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실 꾸중을 듣거나 크게 혼난 뒤엔, 스스로 생각을 하고 선생님들의 조언과 충고를 들으며 내 자신의 문제가 아주 잘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바꾸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러나 생각을 하고 다짐을 할 때와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 때 그 생각과 다짐이 실현되지 않고 무의식 속에 잠겨 있는 채로 난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 참 당혹스럽고 그런 내 자신이 싫증나기도 한다. 지금도 인도네시아에서 문집을 쓰며 다른 때보다 더 많이 내 스스로를 돌아보고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점에 난 또 다른 스포츠, 서핑을 하고 있다. 이번엔 마지막 스포츠 인 것만큼 정말 재밌게 하고 싶다. 어느 한 지점에서 쉽게 만족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고, 내 자신을 증명해보고, 꾸중도 듣지 않고,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다 함께 즐겨보고 싶다.
잠시 지금까지 비밀병기가 거친 운동의 목록을 살펴보자: 스키, 윈드서핑, 스쿠버다이빙, 승마, 그리고 서핑이다. 세계 곳곳을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며 각 나라마다 색다른 스포츠를 하고 추가로 다른 나라로 떠나기 전 친해진 지인들께 한국전통 북 공연을 보여주는 그런 특별한 경험담에 대해 생각을 해보니 1년이란 시간 안에 그렇게 큰 경험을 자신의 인생 이야기에 담을 수 있는 일의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난 지금 그 경험의 기회를 살고 있다. 그런데 과연 난 지금 이 경험을 내 속에 제대로 담고 있는 것일까? 난 이 경험을 바탕으로 무엇을 깨달았고 무엇을 얻었고 또 이 경험이 내 인생의 어떤 다른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게끔 노력을 하고 있을까?
지금 난 아주 중요한 시기에 처해져 있다. 지금까지 옆에서 나를 항상 찌르고, 부추기고, 질질 볶은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난 그나마 내 자신을 완전히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 홀로 일어서야 할 차례가 다가오고 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부모님을 힘들게 하지 않고, 또 그에 따르는 불화로 내 자신을 힘들게 하지 않을 수 있게 얼른 장치를 해놓아야 한다. 하반하에서 안 되는 것도 마찬가지지만, 가족 안에서도 안 되면, 난 정말 사회 어느 곳을 가든 안 될 것이다. 얼른 나의 이 긴 무기력함의 꼬리를 자르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그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난 좋은 부모님과, 선생님들, 그리고 좋은 환경을 거쳐 왔다. 난 지금부터, 어디에 있건, 열심히 할 것이다. 한국에 있어도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고, 내년에 하반하에 다시 복귀해도 열심히 살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내년에 한 번 더 오고 싶다. 여태까지 2년 보내주셔서 감사하고, 1년만 더 부탁드리고 싶다. 또한 모든 하반하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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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민석군 나를 찾아가는 비병으로써의 모습 마무리도 잘 하세요
한해동안 너무 수고 많았구
남은 기간 마물 ㅣ잘 하구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도록 하자
민석이가 하반하 2년 동안 생각의 변화가 많은게 느켜진다
가족안에서 변화가 없음 사회안에서도 똑같을것 같다는 글이 감동적이네
부모님도 민석이 글 읽고 참 감동하실듯^^
재훈맘ㅡ
민석이의 글은 감칠맛이 있다고 해야하나? 글이 많이 늘었음이 또하나의 성장이라고 봐~ 1년을 마무리하며 자신의 부족한 꼬리를 잘라내려고 애쓰는 민석이를 보면서 그또한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어~ 열심히 하겠다는 말 신뢰가 가는데? 공항에서 웃으면서 봅시다~♡
슬슬 발전될 모습을 담아낼 그릇을 빚어내기위한 민석이의 내면에서의 치열한 싸움이 느껴진다~
이제 그 열매를 맛볼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