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연마해야
마5:2을 보자.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왜 “말씀하시기를”라고 하지 않고 “가르쳐”라고 표현했을까? 마태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신6:4~9은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쉐마”다. 6~7절을 보자.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부지런히 가르치다”의 히브리어는 샤난(שָׁנַן)이다. “날카롭게 하다”는 뜻도 있는데 칼을 갈아 날을 세우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말씀을 열심히 연마해야 한다는 뜻이다.
산상수훈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연마한 결과물이었다. 마7:28~29을 보자.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의 “율법 연마” 능력은 율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서기관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탁월했다는 뜻이다. 40일을 금식한 예수님을 시험했던 마귀조차 예수님의 율법 연마 능력에 기겁하고 줄행랑쳤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마4:4)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마4:7)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