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18. 5
우리 동네 가로수는 플라타너스이다.여름 플라타너스는 잎이 크고 무성하여 그늘이 짙다.길 양쪽으로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서면 여름 한철엔 잎이 무성하여 아치형 터널을 이룬다.
내가 살던 지방 도시는 한때 플라타너스 터널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서울에서 두 시간 안쪽 거리이니 젊은 연인들이 데이트 장소로 인기가 있었다.우리 동네 플라타너스 길을 걷노라면 어릴 적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여름 한철, 크고 무성한 플라타너스 잎이지만 플라타너스 잎은 새싹이 늦다. 4월 무렵이면 늦은 플라타너스 잎들 때문에 애를 태운다.
다른 새싹보다 늦다는 걸 번연히 알고 있건만 푸릇푸릇 새싹이 돋아날 무렵에는 유난히 늦은 플라타너스 새싹에 안달이 난다.여름 내내 손가락 굵기만 한 잎들도 봄이 되면 다투어 새싹을 내미는데 플라타너스는 4월 중반이 되도록 늦장을 부린다.4월 말이 되어야 아기 손바닥같이 작은 잎이 돋아나기 시작한다.벚꽃이 한참 피고 지고 봄을 흔들어 놓고 난 다음이다
'올여름 플라타너스 그늘을 볼 수 없는 것 아니야?' 해마다 겪는 일이건만 봄이 되면 플라타너스 잎의 게으름에 조바심을 치고 만다
일단 싹이 돋기 시작하면 플라타너스 잎은 언제 늦장을 피웠냐는 듯 폭풍 성장을 한다.거인의 손바닥처럼 너른 잎을 자랑하며 플라타너스 터널을 만들어 낸다.플라타너스 그늘에 서면 여름이 두렵지 않다.헤어지기 싫어하는 젊은 연인처럼 플라타너스 그늘에 서성이게 된다
풍성한 나뭇 잎은 봄이 오듯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하루 이틀 늦은 새싹에 안달이 나기는 했지만 곧 터널을 이룰 만큼 성장할 것을 믿고 있었다.문득 잎을 바라보던 시선을 나무로 옮기다가 나무껍질이 얼룩덜룩함을 발견하였다.검게 딱지가 진 나무도 있었고 연두색으로 푸른빛이 도는 나무도 있었다
플라타너스 잎의 무성함도 그냥 되는 건 아니었다.독수리가 스스로 발톱을 뽑듯 플라타너스 나무는 껍질을 벗고 있었다.덕지덕지 거북이 등처럼 굳은 표피를 떨어내고 여린 초록색 피부를 드러내 보였다.4월의 플라타너스 잎처럼 여리고 여린 빛이었다.배롱나무꽃이 세 번 피고 지듯이 플라타너스 잎도 스스로 자신의 껍질을 벗겨내고 있었다.
독수리가 발톱을 뽑아내는 아픔이, 세 번 피고 지는 배롱나무꽃이,플라타너스 껍질이 벗겨지는 아픔과 다를 리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모두 성장통을 앓아야 하나보다.
나이는 그냥 먹는 게 아니다.껍질이 벗겨지는 아픔을 감당해야 한다. 젊은이의 성장통만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노후의 삶,자신이 껍질을 벗는 아픔을 감당해야 터득할 수 있는 지혜이다. 덕지덕지 때묻은 껍질을 벗겨 낼 일이다.벗겨내야 새살이 돋는 법이다, 노후의 삶, 스스로 껍질을 벗겨내는 아픔을 감당해야 한다. 행복한 노후는 그냥 오지 않는다.플라타너스처럼 덕지 덕지 묻은 세월의 때를 스스로 벗겨내야 한다
첫댓글 참으로 공감되는 글입니다 얼핏 무심히 보기엔 아름답기만하고 풍성해보이고 아무일 없어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니 ' 덕지덕지'
묻은 때를 벗겨내야하는 과제를 충실히 해야 얻어지는거군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