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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률이상 제30권
양 사문 승민ㆍ보창 등 편집
8. 국왕의 부인들[諸國王夫人部]
1) 아육왕(阿育王)의 부인이 8세 사미의 교화를 받다
옛날 아육왕이 아직 불법을 몰랐을 적에는 여러 개의 감옥을 만들어서 들어간 이는 반드시 혹독하게 여러 가지 벌로 다스렸으나, 뒤에 신심을 갖고부터 모든 그릇된 것을 버리고 정각(正覺)만을 받들어 섬겼다.
백성들에게 유행병이 퍼졌으므로 왕은 안팎을 단절하여 서로 왕래하지 못하게 하고 병이 궁중에 미칠까 두려워하면서 편지를 보내어 성인들에게 아뢰며 멀리서 주원(呪願)을 청하였다.
“한 비구를 보내어 궁중에 들어와 법을 보시하게 하여 천하가 편안하고 질병이 없어지게 하소서. 그것은 스님들만이 할 수 있사오니 알려 주소서.”
이 때 성인들은 나이 8세인 묘안(妙顔)이라는 사미를 보냈다. 이미 아라한이었고 신통을 두루 갖추었으므로 왕궁에 날아 들어가서 부인과 채녀들을 보고 널리 말하게 하였다.
“그보다 못한 이도 도덕을 나타내며 지극히 높으신 부처님을 알리거든, 하물며 제자이겠는가?”
묘안은 분부를 받고 왕궁으로 날아 들어가 왕후의 앞에 섰다.
왕후는 예배하고 손을 들어 안으려 하면서 말하였다.
“묘안이여, 그대가 어찌 스스로 뜻을 굽혀 그런 신족(神足)을 나타낼 수 있으셨소?”
묘안은 부인에게 말하였다.
“물러나시오, 물러나시오. 몸을 사문에게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
부인이 대답하였다.
“그대 어리고 나이 8세라, 사랑하는 마음이 마치 나의 아들과 같소. 몸을 가까이 댄다 한들 무엇이 안 될 것이 있습니까?”
사미는 대답하였다.
“가까운 정(情)으로 타이른다면 부인의 가르침과 같습니다마는, 정이란 작은 것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 마치 좁쌀만큼의 불이 만 리의 들판을 태울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비유하자면, 손가락만큼의 물방울이 옥과 돌을 뚫을 수 있고, 또한 그릇에 찰 수도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일이란 모두가 점차(漸次)가 있고, 적은 것에서 많은 것이 되고,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이룹니다. 이 때문에 지혜로운 이는 혐의를 멀리하고 피하면서 미연에 방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며 사미와 부인이 서로가 힐난이 오가면서 언성이 높아졌고, 그 소리는 정전(正殿)까지 들렸다.
왕이 곁의 사람에게 물었다.
“이는 누구의 말소리인가? 다투는 것 같구나.”
곁의 신하가 대답하였다.
“사미 묘안이 막 궁중에 이르러서 정후와 말을 하고 있는데, 음성이 높고 밝아서 여기까지 들립니다.”
왕은 곧 일어나 가서 그를 만나 예배하고 문안하고서 말하였다.
“무슨 일로 다툽니까?”
사미는 대답하였다.
“왕후께서 저를 보고 가엾이 여겨 와서 안으려고 하시는데, 도의 법에는 마땅치 않으므로 짐짓 힐난하며 물리쳤을 뿐입니다.”
아육왕이 말하였다.
“그대 나이 어려서 마치 나의 아들과 같소. 사랑하는 생각에서 안으려는 것인데, 무슨 혐의가 있겠소? 아니면 장부로서 거절하는 것입니까?”
사미가 대답하였다.
“왕다운 말씀이 아니십니다. 옛 성인이 의칙(儀則)을 제정하되, 그 아직 일이 일어나기 전[未萌]의 것을 예방하고, 또한 나중과 처음[終始]을 경계하셨습니다. 여자 나이 7세면 아버지 책상에서 놀지 아니하고, 남아 8세면 어머니 평상에 걸터앉지 아니하며, 과일 나무 아래서는 머리를 매만지지 않고, 외 밭에서는 발을 만지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혐의를 멀리하고 피하여 점차를 막고 싹을 없애기 위해서이며, 장래를 권하여 보이고 미연에 방지하는 것입니다. 저의 마음은 깨끗하여 조그마한 가리움도 없는 것이 마치 연꽃이 진흙 물에 더럽히지 않는 것과 같고, 마치 수정 유리(水精琉璃)로 된 그릇과 같습니다. 실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모자(母子)와 같다는 말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비록 허물이 없음을 알기는 하나 할 수 없는 이를 위하여서는 베푸셔야 합니다.”
왕과 부인은 그가 말하는 바를 듣고 놀라고 기특하게 여기면서 묘안(妙顔)과 같다고 말하였다.
“나이 어린 8세에서도 오히려 여러 재난을 생각하거든, 하물며 나이 장대하고 3독(毒)이 아직 소멸되지 못한 이이겠는가?”
이에 사미가 그들을 위하여 경법을 해설하자, 부인과 채녀 5백여 명이 모두 도의 자취를 얻었고, 정후와 곁의 신하와 태자는 모두 도의 뜻을 내면서 바로 그 때 불퇴전지(不退轉地)에 서게 되었다.『팔세사미개해국왕경(八歲沙彌開解國王經)』에 나온다.
2) 왕후가 살덩이를 낳아서 물에다 버렸는데, 마침내 두 아이가 생겼고, 비사리인(毘舍離人)의 조상이 되다
옛날 바라내(波羅奈) 국왕의 부인이 아이를 배었다. 이 부인이 자신이 아이 밴 줄을 알고 왕에게 말하자, 왕은 이내 봉양과 간호를 모두 알맞게 하였다. 달이 차자 하나의 살덩이를 낳았는데 붉기가 근화(槿花)와 같았으므로, ‘딴 부인들이 아이를 낳으면 단정하였는데, 나는 살덩이를 낳았고 손발조차 없구나’ 하면서 마음에 부끄러워하며 ‘만약 왕께서 보시면 반드시 미워하고 천하게 여기리라’ 하고 그릇 속에다 담고 금을 두드려 얇게 만들어서 주사(朱沙)로 그 위에다 썼다.
“이는 바라내 국왕 부인의 소생이다.”
그리고는 그릇 뚜껑을 덮고 왕의 도장을 찍고 금박에 쓴 글을 그릇 바깥에다 놓아서 강물 속으로 떠내려 보냈다. 심부름꾼이 버린 뒤에는 여러 귀신들이 호위하면서 풍랑이 없게 하였다.
그 때에 한 도사(道士)가 소치는 사람에게 의지하여 강변에서 살았는데, 맑은 새벽에 세수를 하다가 멀리서 이 그릇을 보고 주워서 보니 금박에 글이 씌어 있고, 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보고서 곧 그릇을 열어 보았는데 살덩이뿐이었다.
그는 생각하기를 ‘만약 이것이 죽은 살이라면 오랫동안에 문드러지고 악취가 있어야 할 터인데, 반드시 이상한 조짐이 있겠구나’ 하고 가지고 처소로 돌아가서 한 곳에 잘 얹어 놓았더니, 반 달이 지나자 두 조각으로 되었다. 그로부터 다시 반 달을 지나자 두 조각은 저마다 다섯의 포(胞)가 생기더니, 그로부터 반 달 뒤에 한 조각은 사내아이가 되고, 한 조각은 계집아이가 되었는데, 남아의 빛깔은 황금과 같았고, 여아의 빛깔은 백은과 같았다.
도사는 그를 보고 애중(愛重)한 마음을 내며 자기가 둔 자식처럼 여겼는데, 양손 엄지손가락에서 저절로 젖이 나오므로 한 손가락의 것은 남아에게 먹이고, 한 손가락의 것은 여아에게 먹였다. 젖이 아이의 배에 들어가는 것이 마치 맑은 물이 마니주(摩尼珠)의 안팎에서 환히 비치는 것과 같았으므로, 도사는 아이들의 이름을 이차자(離車子)[양(梁)나라 말로 피박(皮薄) 또는 동피(同皮)라고 한다.]라고 지었다. 도사는 이 두 아이를 기르면서 몹시 고생하였다. 아침에 마을에 들어가 걸식을 할 때면 두 아이 것까지 챙기느라 늦어서야 돌아오곤 하였다. 이 때 소치는 사람은 도사가 이 두 아이 때문에 몹시 고생하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대덕이여, 출가한 사람은 바로 도를 닦으셔야 할 터인데, 왜 두 아이 때문에 도업을 폐지하십니까? 저희에게 주십시오. 우리들이 기르겠습니다.”
도사는 말하였다.
“그렇게 하시오.”
이렇게 하여 이 소 치는 사람은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음 날 여러 벗들과 함께 도로를 평평하게 닦고 당기와 번기를 세우고 여러 빛깔의 꽃을 흩뿌리고 북을 울리면서 두 아이를 맞으려고 도사의 처소로 가서 도사에게 아뢰었다.
“이제 이 두 아이가 떠나갈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도사는 부탁하였다.
“이 두 아이는 큰 복덕이 있어서 헤아릴 수조차 없다. 그대들은 잘 키우되 젖과 락(酪)과 소(酥)와 생소(生酥)와 숙소(熟酥)의 다섯 가지로써 공양해야 한다. 이 두 아이가 성장하면 도로 함께 짝을 지어 주고 좋고 평평하고 넓은 곳을 찾아 편안하게 살게 하되, 남자는 왕으로 삼고, 여자는 부인으로 삼도록 하여라.”
소치는 사람들은 분부를 받고 떠나갔다. 두 아이가 열여섯 살이 되자, 세로와 너비 백 유순(由旬)이나 되는 편편하고 넓은 곳의 중앙에 집을 짓고 여자를 남자에게 시집보내 부부로 삼았다. 그 후에 한 번에 1남 1녀의 아이를 낳았는데, 이렇게 열다섯 번을 낳았다. 여러 소치는 사람들은 왕자들이 점점 많아짐을 보고 다시 여러 동산 땅에다 집을 지었는데, 모두 서른두 사람의 집이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세 번을 지으며 넓혔으므로, 이름을 비사리(毘舍離)라 하였다.『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沙)』 제10권에 나온다.
3) 구람니국(拘藍尼國) 왕후가 법을 깨치다
부처님께서 1,250명의 비구들과 함께 구람니국 미음정사(美音精舍)에 유행하실 때, 문지방을 밟으면 천지가 진동하였고, 구슬[珠璣]과 악기는 치지 않아도 절로 울렸으며, 고독(蠱毒)은 숨어 없어지고 길서(吉瑞)는 화청(和淸)하였으므로, 나라 안의 백성들은 간절하게 우러르지 아니함이 없었다.
왕의 이름은 우전(優塡)이었다. 굳세고 사납고 침략하고 아첨하는 말을 받아들이며, 여자와 음악에 지나치게 빠져서 좌우에 용모가 아주 절색인 두 왕후를 두고 있었다. 좌편 왕후 조당(照堂)은 오만하면서 남을 헐뜯고 시샘을 하였으나, 우편 왕후 현용(鉉容)은 언제나 인자하고 애정이 있었으므로 왕은 그 절조를 가상히 여겨 매사에 특히 치우치게 사랑하였다.
현용에게는 도승(度勝)이라는 늙은 하인이 있었다. 항상 베와 향을 베풀었고, 절약한 것을 모아서는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을 하였다. 부처님께서 그를 위하여 설법하면 마음을 다하여 잊지 않았으며, 보시가 끝나면 궁중으로 돌아왔다. 베와 향을 가지고 있는 공덕으로 다닐 적마다 향기가 멀리 퍼졌고, 향의 근량(斤兩)이 보통 향보다 갑절 더하였으므로 현용이 묻자, 자백하였다.
“절약한 향과 돈을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하고 있습니다. 그 법은 깊고 이치가 미묘하여 세간에서는 듣던 바가 아닙니다.”
현용은 부처님이라 함을 듣고 기뻐하면서 스스로 생각하여도 바른 법을 얻어들을 인연이 없었으므로 이내 도승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를 위하여 해설하여라.”
도승은 여쭈었다.
“몸이 천하고 입이 더러워서 감히 여래의 높으신 말씀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 나아가서 칙명을 받고 돌아오게 하소서.”
곧 궁에서 내보내면서 거듭 일렀다.
“자세히 의식(儀式)을 받아 오너라.”
도승이 아직 돌아오기도 전에 부인과 시녀들은 안뜰에 꽉 차 있었다.
부처님께서 도승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돌아가 설법을 하면 제도되는 이가 많이 있으리라. 설법할 때 의식은 먼저 높은 자리를 시설하라.”
도승이 부처님의 뜻을 자세히 전하자, 현용은 기뻐하면서 상자를 열어서 옷을 내 쌓아서 높은 자리를 만들어 주었는데, 부처님의 거룩한 신력을 이어받아 알맞게 설법하였으므로 부인 현용과 시녀들은 의심이 풀리면서 도를 얻었으며 도승은 총지(總持)를 얻었다.
조당은 시새워 떠들고 여러 번 참소하였으나 왕은 따르지 않았는데, 뒤에 또 말을 하자 왕의 마음에 의심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조당은 현용이 재(齋)지닐 때를 엿보다가 왕에게 주악(奏樂)을 권하면서 부인들을 부르라고 청하였다. 왕은 곧 널리 부르게 하자 명을 받고 모두가 모였으나 현용만은 재를 지내던 터라 홀로 명에 응하지 않았다. 세 번이나 되풀이하며 부르는데도 지조를 고집하며 꺾지 않자, 왕은 몹시 성을 내며 포박하여 정전 앞에다 끌어다 놓고 쏘아 죽이려 하였다. 현용은 마음을 부처님께만 귀의하고 있었다. 왕은 두 개의 화살을 쏘았는데도 모두가 자신을 향해 돌아오므로 두려워하면서 그를 풀어놓고 물었다.
“당신은 어떠한 술법이 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소?”
현용이 대답하였다.
“여래를 섬기며 3보(寶)께 귀의했을 뿐입니다. 아침에는 부처님의 재를 받들며 한낮이 지나면 먹지 않습니다. 여덟 가지 일을 더욱 행하고 장식하는 일에는 가까이하지 않았는데, 필시 세존께서 가엾이 여기셔서 그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장하도다, 어찌 말로 할 수 있겠는가?”
정사에 나아가 부처님을 뵈려고 하는데 마침 적국이 병사를 일으켜 국경을 침입하였으므로, 왕 스스로 출정(出征)하면서 범지(梵志) 길성(吉星)이라는 이에게 부탁하여 임시로 국정을 다스리게 하였다.
조당은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나의 아버님께서 국정을 다스리게 되셨으니, 너를 반드시 죽이리라.”
그리하여 딸과 아버지가 음모하여 마침내 현용과 그 시녀들을 태워 죽여버렸다. 그리고 거짓으로 불이 나서 죽었다고 숨겼는데 사후에 탄로가 났다.
왕은 몹시 성을 내어 길성을 멀리 옮겨다 국경 밖에서 없애고, 조당들의 무리는 땅굴에다 가두고, 삿된 도를 꺾어 쫓고 부처님의 교화를 널리 천명하였다.『중본기경(中本起經)』에 나온다.
4) 말리(末利) 부인이 재(齋)를 지니다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에 계셨는데, 국왕과 신하들은 귀의하며 우러르지 아니함이 없었다. 이 때 파리(波利)라는 장사꾼이 5백 명의 장사꾼과 함께 바다에 들어가서 보배를 구하였는데, 그 때에 해신(海神)이 두 손을 오목하게 하여 물을 떠서 나와 파리에게 물었다.
“바닷물이 많으냐, 이 한 움큼의 물이 많으냐?”
파리가 대답하였다.
“그 한 움큼의 물이 많습니다. 바닷물이 비록 많기는 하나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을 구제할 수는 없지만, 한 움큼의 물은 비록 적기는 하나 목마른 이의 생명을 구제할 수 있어서 세상마다 받는 복이야말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해신은 기뻐하면서 이내 몸 위의 여덟 가지 향기 있는 영락(瓔珞)을 벗어서 7보(寶)로 꾸미고서 파리에게 바쳤다. 파리가 나라로 돌아와서 이 향기 있는 영락을 바사닉왕(波斯匿王)에게 바치자, 왕은 매우 진기하게 여기면서 곧 모든 부인들을 줄지어 세우고서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 그 향기 있는 영락을 주려고 하였다. 6만의 부인들이 모두 잘 차리고 나오자, 왕은 물었다.
“말리 부인은 왜 나오지 않느냐?”
시종 하는 사람이 대답하였다.
“지금이 15일이라 부처님 법의 재(齋)를 지내시는데, 소복(素服) 차림으로 단장하지 않았사옵니다.”
왕은 말하였다.
“지금처럼 재를 낼 때는 왕명을 거역해야 마땅한가?”
이렇게 세 번이나 되풀이하므로 말리 부인은 소복으로 나왔다. 대중 가운데 서자 밝기가 마치 일월과 같았고 평상보다 갑절이나 더 아름다웠으므로, 왕은 뜻이 송연하여져서 더욱 공경하며 물었다.
“어떠한 도덕이 있기에 그렇게 환하며 특이합니까?”
부인은 왕에게 아뢰었다.
“스스로 생각해 보니, 복이 적어서 이런 여인의 형상을 받았고, 정태(情態)의 더러운 때가 밤낮 산처럼 쌓입니다. 사람의 생명이란 짧은 것인데 3도(塗)에 떨어질까 두려워서 이 때문에 매달 그날에는 부처님 법의 재를 받들면서 애정을 끊고 도를 좇아 세상마다 복을 받으려 합니다.”
왕은 듣고 기뻐하면서 이내 향기 있는 영락을 그에게 주려 하자, 부인은 사양하며 말하였다.
“저는 지금 재를 지내고 있으므로 이것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십시오.”
왕은 말하였다.
“내가 본래 뜻을 내기를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 주겠다’고 하였는데, 당신이 지금 가장 아름답습니다. 또 법의 재를 받들며 도의 뜻이 자못 높으니, 이 때문에 당신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받지 않으시면 나는 가져다 놓아두겠습니다.”
부인이 대답하였다.
“대왕께서는 근심하실 것 없으십니다. 왕은 뜻을 굽히시어 함께 부처님께로 가셔서 이 향기 있는 영락을 세존께 받들어 올리시고, 아울러 성인의 가르침과 오랜 겁(劫) 동안의 복을 받으시옵소서.”
왕은 곧 허락하고 즉시 수레 차릴 것을 명하여 부처님께 가서 아뢰었다.
“해신의 향기 있는 영락을 파리라는 장사꾼이 준 것이온데, 6만 부인들이 모두 탐내어 얻고자 하였으나 말리 부인은 주어도 받지 않으니, 부처님 법의 재를 지니어 마음에 탐욕이 없어 그러합니다. 삼가 부처님께 올리오니, 받아들이옵소서. 세존 제자의 고집스런 마음은 막기 어렵습니다. 믿음이 이렇게 우직한데 어찌 복이 있겠습니까?”
이 때 세존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향기 있는 영락을 받으시면서 이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배로운 꽃을 많이 만들어서
발에 매어 걸을 때마다 흔들리고 화려해도
널리 쌓은 덕(德)의 향기에서
나는 것이 더욱 좋으니라.
기이한 풀과 향기 좋은 꽃이
바람 거스르지 않고 자욱하며
길 가까이 두루 피었다 하여도
덕 있는 사람이 더 널리 향기롭다.
전단(栴檀)나무의 짙은 향기
청련(靑蓮)의 향그러운 꽃
비록 이것이 참되다고 말하나
계의 향기[戒香]보다 못하느니라.
꽃의 향기가 미묘하다 하여도
참된 것이라 말할 수 없으며
계를 지니는 향기야말로
하늘에 이르러서는 자못 훌륭하니라.
계율을 모두 성취하게 되고
행동에 방일이 없게 되며
정의 뜻[定意]으로 제도 해탈되면
길이 악마의 길에서 벗어나리라.『법구경(法句經)』 제2권에 나온다.
5) 우달나왕(優達那王)의 아내가 도를 배우고 하늘에 태어나다
반제국(槃提國) 왕의 이름은 우달(優達)이었는데, 가섭불(迦葉佛) 때에 출가하여 도를 닦았고, 석가(釋迦)를 만나서도 모두 도의 자취를 얻었다. 그 나라는 부유하였고 백성들은 강성하였는데, 왕에게는 2만의 부인이 있었다.
첫 번째 부인 월명(月明)은 용모가 단정하여서 왕이 몹시 사랑하고 공경하던 터였는데, 반 년을 지나지 못해서 부인에게 죽게 될 상이 나타났으므로 왕은 매우 걱정을 하였더니, 월명이 그것을 물으므로 왕이 말하였다.
“당신의 수명이 다 되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근심하고 있습니다.”
월명은 대답하였다.
“태어났다가 죽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세간의 상도(常道)이거늘, 왜 유독 근심하십니까? 만약 그렇게 뒷일을 염려하신다면 내보내어 출가하게 하소서.”
왕은 도에 들 것을 허락하면서 말하였다.
“당신이 출가한다면 설령 도를 이루지 못한다 하여도 반드시 천상에 가 날 것입니다. 만약 천상에 태어나게 되면 나에게로 돌아오겠다고 하여야 당신의 출가를 허락하겠습니다.”
월명은 이내 그 서원을 허락하고 비구니를 불러서 즉시 5욕(欲)을 버렸는데, 많은 이가 와서 문안하고 공경 공양하면서 그 도업(道業)을 방해하였다. 이 때문에 여러 나라를 유행하고 다니면서 출가한 날로부터 여섯 달이 다 차도록 계율을 깨끗이 지니고 세간을 싫어하다가 아나함(阿那含)의 도를 얻고서야 어느 마을에서 죽었는데, 이내 색계의 하늘[色天]에 태어났다.
옛날 인연을 자세히 살펴보니 왕에게 약속한 것이 있었으므로 본래의 서원대로 나아가려고 왕을 살펴보니, 5욕(欲)에 빠져서 심술궂고 사나워 교화하기 어렵겠으므로 곧장 그대로 간다면 감동하여 분발하는 일이 없겠고, 두려움과 핍박으로 항복시켜야 되겠으므로 스스로 몸을 변화하여 큰 나찰(羅刹)이 되었다. 옷과 털을 떨쳐 세우고서 다섯 자 되는 칼을 잡고 왕이 잠을 자는 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왕이 몹시 두려워하고 있으므로 곧 왕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비록 병사들이 천만이 되지만 이제는 나에게 속하였을 뿐 어찌할 수 없다. 죽을 때가 이미 다가왔는데 어떤 인연으로 구제를 받겠는가?”
왕이 대답하였다.
“나에게 그런 인연은 없고 본래 착한 일을 하면서 마음을 깨끗이 닦았으므로 죽어서는 좋은 곳에 날 것이란 것만을 믿을 뿐입니다.”
하늘이 말하였다.
“그것이 가장 믿을 만한 것이요, 달리 도리가 없겠습니다.”
왕이 물었다.
“당신은 어떤 신(神)이기에 나를 두렵게 하십니까?”
하늘이 대답하였다.
“나는 바로 월명 부인입니다. 왕이 놓아주셔서 출가하여 사유(思惟)를 하다가 욕심을 떨치고 색계에 태어났습니다. 이제 약속대로 왔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그대가 비록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나는 아직 믿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본래 형상으로 회복되어야 비로소 믿을 수 있겠습니다.”
하늘은 이내 옛날의 모습으로 변하면서 의상과 복식을 예전과 같이하여 서 있자, 왕은 욕심을 내며 나아가 붙잡으려 하므로 월명은 이내 허공으로 올라가 왕을 위하여 설법을 하였다.
“이 몸은 무상하여 잠깐 동안도 보존할 수 없는 것이, 마치 아침 이슬이 해가 돋으면 없어져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무상을 생각하지도 않고 내 몸을 탐착하는구려. 왕은 보시지 않았습니까? 한창 나이의 꽃다운 빛깔도 늙음에는 삼켜 없어져서 모든 감관은 썩어 못쓰게 됩니다. 눈으로는 보되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귀로는 듣되 잘 들리지 않으며, 몸이 썩어져서 감당할 수 없음은, 마치 술을 빚어 놓았다가 좋은 것을 걸러내면 찌꺼기는 값어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 몸은 이미 늙어서 탐하여 즐길 것이 없고 죽음만이 있을 뿐이며, 몸은 났다가 죽어 없어지는 것이라 무상만이 함께하리라.
왕은 보시지 않았습니까? 태 안에서도 죽고 어리거나 젊거나 모두가 죽습니다. 이 육신이란 것은 위태하고 나약하여 죽음의 도둑이 항상 따르며, 몸과 마음은 불에 타서 이것이야말로 뭇 괴로움일 뿐입니다. 마음에는 3독(毒)이 있고 몸에도 추위ㆍ더위ㆍ배고픔과 목마름이 있거늘, 싫증내지도 않고 나의 몸을 탐착하는구려. 궁인과 기녀의 꽃다운 빛깔과 5욕(欲)과 나라 재물과 처자들은 모두가 나의 소유가 아니어서 죽어 떠나는 때에는 하나도 따라가는 것이 없습니다. 몸도 오히려 스스로 버리는데 하물며 딴 물건이겠습니까? 헷갈려 5욕에 빠져 생사에 헤매며 벗어날 길을 모르는구려. 왕은 지혜로운 사람인데, 왜 싫증내어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구하지 않습니까? 왕께서는 착한 마음으로 저의 출가를 허락하셨습니다.”
월명은 거듭 교화하며 말하였다.
“우리는 출가하여 미묘한 법을 구하고 받아서 수행하며 밤낮 힘써 나아가 부지런히 하여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말을 마치자마자 홀연히 없어져 버렸다. 왕은 이내 태자에게 선위(禪位)하고 5욕을 버리고 떠나 가전연(迦旃延)에게 나아가 출가하여 도를 닦았다. 이 때의 사람들은, 그가 중한 영화와 이익을 버리고 바르고 참된 도를 구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많은 신하와 백성들이 와서 공양을 하고 공경하며 문안을 드리면서 수도의 업을 방해하므로 이에 떠돌아다니다가 마갈국(摩竭國)에 이르렀다. 부처님께서 그를 위하여 설법을 하시자, 아라한의 도를 얻었으며, 흙 발우를 가지고 왕사성(王舍城)에 들어가 묵은 밥을 얻어서 숲으로 돌아와 앉아서 먹었다. 병사왕(甁沙王)이 유람을 나왔다가 숲으로 와서 문안하며 말하였다.
“당신은 본래 왕이어서 출입에는 호위가 따랐는데, 지금은 거지가 되어서 혼자 다니며 걸식을 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즐거울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도를 그만두시고 제가 나라의 반을 나누어 줄 터이니 다스리십시오.”
도인은 대답하였다.
“저는 큰 나라의 왕으로서 마을이 매우 많았습니다마는, 이제 다시 무슨 일로 큰 것을 버리고 작은 것에 나아가겠습니까? 나로서 마땅하지 않습니다.”
병사왕은 말하였다.
“당신은 본래 제일 좋은 음식을 잡수셨고 보배 그릇에다 담아 드셨는데, 이제는 흙 발우를 가지고 묵은 밥을 걸식하시니,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본래 왕으로서 용사들이 좌우에서 모셨는데, 오늘날에는 혼자뿐이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본래 깊은 궁전에 계시면서 왕비 기녀의 아름다운 빛깔에 눈과 귀를 기쁘게 하셨고, 보배 평상에 앉아 가늘고 화려한 것을 펴셨는데, 오늘날에는 혼자 숲과 들에서 자고, 자리는 풀잎뿐이니, 어찌 괴롭지 않겠습니까?”
왕이 대답하였다.
“저는 지금에 만족하여 탐내거나 즐기는 것이 없습니다.”
병사왕은 말하였다.
“당신은 지금 가련하십니다.”
왕이 대답하였다.
“당신이야말로 가련하시며 제가 아닙니다. 왜냐 하면 당신은 5욕에 얽혀 있고 은혜와 애정에 몰려서 자재할 수 없지만, 저는 지금 쾌락을 누리며 마음에 걸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병사왕은 다 듣고 나서 이내 돌아가 버렸다.『잡장경(雜藏經)』에 나온다.
6) 국왕의 대부인이 한 어진 이와 왕과 함께 절을 짓다
옛날 어떤 한 사람이 절을 보고 짓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돈과 베가 부족하여 원을 세웠다.
“바다에 들어가 금 보배를 더 얻고서 나라 안에서 제일가는 절을 짓겠다.”
뒤에 금과 은을 얻고 돌아와서 다시 곰곰이 생각하였다.
‘누가 뜻을 같이하여 함께 절을 지을까? 국왕이 항상 말하기를 ≺나는 절과 탑을 지으려 한다≻고 하였는데, 지금 아직은 짓지 않았으니 주보(珠寶)와 수정[瑛]을 왕에게 바쳐야겠구나.’
왕은 얻게 되자 기뻐하면서 물었다.
“어디서 이것을 얻었는고?”
어진 이가 말하였다.
“저의 소원은 절을 짓는 것이었는데 혼자 지어낼 수 없어서 바다에 들어가 보배를 얻어다 절을 짓겠다고 했었습니다. 이제 편안하게 돌아오게 되었으니 이것이 저의 첫 번째의 이익이요, 금 보배를 얻게 되었으니 이것이 저의 두 번째의 이익이요, 탐착하지 않고 절을 지으려 하니 이것이 저의 세 번째의 이익입니다. 저는 세 가지 이익되는 공덕으로서 이제 절을 짓고자 하나 인력(人力)과 공부(工夫)가 없을 뿐입니다. 이 때문에 왕에게 알린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나도 세 가지 이익이 있도다. 절과 탑을 지으려는데 임금으로서 백성들의 위가 되어 있으니 이것이 나의 첫 번째의 이익이요, 재보와 사람과 병사들이 넉넉하니 이것이 나의 두 번째의 이익이요, 사방이 모두 굴복하니 이것이 나의 세 번째의 이익이로다. 장차 그대와 함께 절을 지으리라.”
왕이 5백의 부인을 불러서 주보를 주려 하자, 5백 부인들이 모두 장식하고서도 저마다 주보를 얻으려 하는데, 대부인(大夫人)만이 홀로 장식과 빗질을 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왕이 물었다.
“무슨 까닭이시오?”
대부인이 대답하였다.
“역시 세 가지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왕의 부인이 되어서 온 궁중이 공경하는 바이니 이것이 저의 첫 번째의 이익이며, 아들을 낳아 태자로 삼았으니 이것이 저의 두 번째의 이익이며, 항상 경전의 도를 즐기고 부처님의 절을 지으려 하니 이것이 저의 세 번째의 이익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장하십니다. 주보를 그대에게 드리겠습니다.”
그리하여 대부인은 백천 냥의 금으로써 왕을 도와 절을 지었으며, 왕과 나라 안의 어진 이와 함께 지은 절은 너비 천 보(步)에다 모두 금과 은으로써 조각하였다.
왕이 말하였다.
“우리 세 사람에게만 이런 복이 있고, 우리 나라 안의 백성들은 이것을 받지 않을 것인가?”
사자(使者)를 거리와 마을에다 보내어 널리 알렸다.
“누가 착한 뜻이 많이 있고 복을 한량없이 얻을 것인가?”
어느 가난한 여인이 있는데 조그마한 집이 한 채 있을 뿐 옷과 밥은 빌어다 입고 먹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자신을 책망하면서 전생에 보시를 하지 않아서 이제 가난하게 살고 있다 하면서 몸의 치마를 벗어 가운데를 향하여 사자에게 던져 주면서 말하였다.
“치마로써 왕을 돕습니다. 저는 몸을 발가벗었으며 입고 나갈 만한 옷이 없습니다.”
왕이 듣고 놀라 두려워하면서 말하였다.
“이야말로 착한 마음이 있어서이구나.”
이내 칙명을 내려 데려오게 하자 사자는 말하였다.
“이 여인에겐 입을 만한 옷이 없습니다.”
왕은 5백 명의 부인들에게 칙명하여 저마다 한 벌 옷을 가져다 주게 하고서 빨리 가서 맞아 오게 하였다. 왕은 그를 보고서 즉시 임명하여 둘째가는 부인으로 삼고, 그에게 궁중 안 사람을 가르쳐 주게 하였다.『비유경(譬喩經)』 제4권에 나온다.
『경율이상』 30권(ABC, K1050 v30, p.1044a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