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라포드
- 이정원
어떤 격정이 길길이 파랑을 몰고 왔나
누군가에게 가닿아야 할 슬픔이
여기 와서 부딪혀 위로가 될 때
흰 거품을 물고 소스라치던 불량기 많은 바람은
너울성 울음으로 낮춘다
당신은 그 해변에 엎드린
테트라포드
모호한 시구처럼, 난해한 눈빛처럼
묵묵한 일탈의 부름켜로
조각달 같은 목선 한 척을 띄웠는데
난파된 낱말들의 잔해가
일몰의 장엄 속 수묵으로 번지는 것을 보았다
가는 게 세월인지
오는 게 세월인지
흐르는 게 세월인지
수평의 구도로 아득아득 저물다가
습관성 목마름으로 구겨져서
당신 앞에 서면
세월은 물굽이대로 이리저리 휘늘어지면서
이렇듯 발작적으로 부딪는 것이다
이끼 같은 내 마음의 더께를 더 부리지 못하고
철썩철썩 당신의 뺨만 파랗게 치다가
저물어가는 망상의 해변 저쪽으로
낡은 어제를 힘껏 구겨 던지는 것이다
당신의 어깨가 느릅나무처럼 견고해서
해변은 종일 술렁인다
파랑, 파랑
무작정 치닫는 소란이
그리움 낭자한 집어등을 켠다
ㅡ계간 《가히》(2024,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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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선에는 파도를 막기위한 방파제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배를 정박하려면 일렁이는 파도를 잠재워야 할 필요가 있을 테고,
주민의 생활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구조물로 엄청난 규모의 테트라포드를 쌓았습니다
그러나 테트라포드에서 낚시를 즐기던 이들이 구멍에 빠져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블럭처럼 짜맞출 수 없는 안전망이니 그 안전성에 구멍이 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이 어제같은 현실이라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성이 생길 수 있잖아요
걸핏하면 국가의 국민보호 정책에 시비를 거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만
테트라포드 처럼 똑같은 생김새로 짜여 있어도 사이 사이에 구멍이 있어서 파도가 드나들기에
결국 더 안전해질 수 있음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엄청난 자연재해인 해일을 막으려면 낡은 테트라포드 곁에 새 테트라포드를 겹쳐 쌓아야 합니다
이미 낡아버린 어제라할지라도 드러내고 치우기보다 새로움을 덧씌워서 고쳐나가야지요
바다가 늘 출렁이듯 인생도 그러하지만, 근해로 나간 어선은 그리움 가득한 집어등을 켠채 일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