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러분을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모임이 이익이 아니라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회를 아주 따끔하게 야단칩니다.
코린토 교회가 분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코린토 교회는 아주 분열적인 교회입니다.
오늘은 11장의 말씀인데 3장에서도 바오로는 코린토의 분열을 꾸짖었지요.
바오로파니 아폴로파니 하며 교회가 갈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차원에서 분열을 꾸짖고 있습니다.
3장이 파당적인 분열이라면 11장은 그런 분열이 아니라
부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일방적으로 소외시킨 분열입니다.
부자들은 먹을 것을 많이 가져와 자기들끼리 배부르게 먹고,
가난한 이들은 아무것도 가져온 것 없어 굶주리고 있었지요.
교회 안에서마저 부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소외시킨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가난한 이들을 부자들이 업신여긴 것입니까?
재물이 없다고 사람을 업신여긴 곧 ’없이 여긴‘ 것입니다.
분명히 자기들과 함께 있는데도 없는 사람인 양 여긴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가난한 이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든 것입니까?
그렇다면 세속과 무엇이 다릅니까?
이런 공동체를 교회 공동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행위는 가난한 이를 부끄럽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교회를 업신여기는 것이라고까지 바오로 사도는 꾸짖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사실 주님께서는 최후 심판 비유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한 것이 당신께 한 것이라고 하심으로
가난한 이들을 당신과 동일화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코린토 교회가 더 꾸지람 들어야 할 것은
자기의 만찬으로 주님의 만찬을 모독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데 모여서 먹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그것을 먹을 때, 저마다 먼저 자기 것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 때문에
어떤 이는 배가 고프고 어떤 이는 술에 취합니다.”
현재 우리 번역에서 ‘자기 것으로 저녁 식사’라고 된 것을 직역하면
‘식사 때 자기 만찬’이라는 뜻이고 따라서
주님의 만찬을 해야 할 공동체가 자기 만찬을 한다는 뜻입니다.
자기 만찬은 자기 집에서 먹어야 하고,
부자들의 만찬은 자기들끼리 먹어야 할 것을 굳이
교회 공동체 집회에서 함으로써 주님의 만찬 곧 성찬례를 모독한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몸과 피를 같이 나누어 모시는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자기가 싸 온 자기의 빵과 포도주를 마시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이러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겉으론 그렇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자기 만찬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같이 나누어 먹는다는 의식 없이 먹는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식사하고 싫어하는 사람하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찬례를 하면서 여전히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 사랑과 나눔에서 그를 배제하고 있다면 같이 주님의 만찬을 했어도
실은 자기 만찬을 한 것입니다.
주님의 만찬과 자기 만찬 가운데 나는 어떤 만찬을 하고 있습니까?
첫댓글 이 고운 손길에 축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