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 주신글]
코코 샤넬의 블랙 드레스. 2
1971년 1월 11일 파리 리츠호텔에서 누군가가 쓸쓸하게 죽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블랙 스타일의 창시자 코코 샤넬이었다.
"식사는 뭘 드세요?" 하고 물으면 "아침에는 치자꽃을 먹고요, 저녁에는 장미꽃을 먹지요"라고 대답한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밤에는 샤넬 넘버5만 입고 잔다는 마르린 먼로의 말로 유명해진, 그 향수를 만든 코코 샤넬이 죽은 것이다.
검정색 패션
검정색은 죽음과 슬픔, 불행과 빈곤 그리고 노동자의 이미지인 우울한 색조다.
샤넬의 어린 시절은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래서 암울한 검은색을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샤넬은 어린 시절에 가수가 꿈이었다.
그리고 미적 감각도 뛰어나. 20대에는 검은색에서 블랙 패션을 찾아 아름다움을 입혔다.
상복이라면 모를까? 검은 천으로 옷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샤넬은 기존 관념을 과감하게 타파하고 검정색의 실용성과 활동성을 의복에 입혀 생명을 불어 넣었다
무더운 한낮의 햇볕은 여성들에게 노출을 강요한다. 그래서 여성들은 노출 패션을 만들었다. 그러나 노출하기 어려운 곳은 하얀 천으로 가려, 밤의 연회는 언제나 흰색 드레스뿐이었다.
한 여름 샤넬은 검은 비로드 드레스 차림으로 연회장에 나타났다.
모든 시선이 몸집이 아담한 이 여인에게 쏠렸다. 그리고 “블랙 드레스”는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흑장미 한 송이는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샤넬의 도전은 천박한 검정색을, 가치 있는 검은색으로 바꾼 신선한 시도였다.
패션잡지 보그는 샤넬의 “' 블랙 드레스”'를 포드 자동차의 탄생과 비견한 충격이라고 극찬했다.
샤넬의 패션
오랜 세월이 흐른 1909년 봄, 파리에서 자신이 만든 모자를 모아 전시회를 열었는데, 샤넬의 진가를 잘 보여주었다.
당시에는 화려한 방울이 달린 무거운 모자였다. 그걸 하늘하늘한 천으로 심플하게 만든 것이다. 파격적이었다.
당시에는 치렁치렁하게 길이가 길고 폭이 넓은 나팔바지가 유행이었는데 기장과 폭을 줄여 경쾌한 바지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패션에 눈 뜨기 시작했다.
샤넬은 여성 패션 전반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쉬는 것보다 피곤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고 할 정도로 샤넬은 열심히 일을 했다.
그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샤넬은 옷만 만든 게 아니라 여성의 꿈과 삶을 디자인하고, 꿈을 완성하는 일에 열정을 쏟았다.
그래서 죽어서도 영원히 살아있는 신화를 만들었다. 상처 입은 조개가 진주를 만드는 것처럼
코코샤넬 어록
오늘이야말로 운명을 가릴 상대와 만나는 날 일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건 대충하는 법은 없어야 한다.
날개가 없이 태어났으면 날개가 생기를 것을 막지 마라.
스무 살의 얼굴은 자연의 선물이고, 쉰 살의 얼굴은 노력의 결과다.
럭셔리는 빈곤의 반대말이 아니라, 천박의 반대말이다.
나는 누구와도 같지 않다. 내가 바로 스타일이다.
나는 친구가 없다. 오직 자신을 사랑하는 코코샤넬일 뿐이다.
계속
까꿍 아침산책 20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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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이야말로 운명을 가릴 상대와 만나는 날 일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건 대충하는 법은 없어야 한다.
날개가 없이 태어났으면 날개가 생기를 것을 막지 마라.
스무 살의 얼굴은 자연의 선물이고, 쉰 살의 얼굴은 노력의 결과다.
럭셔리는 빈곤의 반대말이 아니라, 천박의 반대말이다.
나는 누구와도 같지 않다. 내가 바로 스타일이다.
나는 친구가 없다. 오직 자신을 사랑하는 코코샤넬일 뿐이다.
계속
까꿍 아침산책 20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