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채색된 연대기인, 1,360년 경의 러요시 대왕과 그의 신하들. 대헝가리 연대기는 14세기 중반의 중유럽 무구와 복식에 대한 필수적인 출처다. 러요시 대왕을 비롯한 전형적인 유럽 복장을 한 남성과, 왼쪽 기사들이 한 약간 이상한 서구식 무구 형태 그리고 오른쪽의 분명 스텝 지대 유목적 기원을 가진 전사들을 나타낸다. 여기에 묘사된 집단은 왕의 봉건 신하, 유목민 신하 들을 상징화한다.
1,526년 8월 하순에 벌어진 모하치 전투는 헝가리 역사에서 가장 큰 국가적 재앙이며, 많은 역사가가
외려 투르크적 '혼란‘이라 불공평하게 이르는 백여 년의 시기로 이어졌다.
오스만의 파디샤 술레이만이 1,526년에 치고 들어왔을 때, 헝가리의 러요시 2세는 화포 65문(실제 전투에서는 53문만 쓰였다.)과 인력 25,000명 정도를 소집했지만 다양한 이유로 트란실바니아와 크로아티아 부대들은 도착하지 못하였다.
오스만측은 수효가 헝가리측의 두 배를 넘었다고 전해지며-이 수치는 과장이지만-, 포는 최대 160문까지 보유했다. 헝가리인들은 압도적인 포화와 측면 공격이 가해지는 함정으로 진군했으며 그 결과는 재앙이었고, 이것은 후냐디 여노시가 오스만에 대해 자주 성공시켰던 바로 그 함정이었다.
국왕 러요시는 전사했지만, 오스만은 헝가리를 점유하지 않았다. 대신 헝가리는 1,568년 에디르네 조약으로 분할이 합의되기까지 맞수인 합스부르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이 겨루는 전장 역할을 하면서, 내전으로 갈기갈기 찢겨졌다.
합스부르크 황제 막시밀리안 2세 아래에서 북쪽과 서쪽에 괴뢰 헝가리 왕국이 살아남았던 반면, 헝가리 중앙부는 오스만의 속주들인 빌라예트들로 나뉘었으며 트란실바니아는 오스만의 종주권을 받드는 독립 공국으로 인정되었다.
합스부르크령 헝가리 절반은 슬라브족 지역인 슬로바키아로 구성되었다. 이 지역은 마자르족의 정복 이래로 중세 헝가리의 필수적 부분을 형성하긴 하였지만, 많은 면에서 여전히 다른 개별성을 유지했다.
슬로바키아는 군사적으로 보병으로 잘 알려졌고 다수는 독일의 세악스-Seax-비슷한 큰 대거로 무장했다. 전쟁에서 장궁은 이류급의 역할을 하였으나, 서구식 유형의 메일 아머와 곧은 검이 일반적이었다.
이웃한 루테니아의 아르메니아 상인 식민지를 통한 동구의 영향이 조금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 지역은 11세기 초반엔 폴란드령이었다. 마자르의 영향력은 물론 있었으며 이는 13~14세기에 쓰인 짧은 외날도인 테사크에서 드러나지만, 보헤미아와 독일의 영향이 더욱 강했다.
쇠뇌는 14세기에 일반적인 보병 무기가 되었지만, 슬로바키아 귀족들은 여전히 검과 창으로 하는 근접 전투에 의존했다.
첫댓글 헝가리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