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을 뜨니 4시30분 쯤
우선 세수를 하고 마음을 정리 해본다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못 부르고
나는
자식을 자식이라고 못 부른다
지금 쯤 삼성동 으로 가면
너를 만날수 있을 텐데
그리고 너희들을 인천 공황 까지
바래다 주고 싶었는데
그리고 또 너희 처의 손을 잡고
"아가야!"
하고 꼭 한번 불러 보고 싶은데
꼭 껴안고 등을 토닥 토닥 두둘기며
"행복 하게 잘 살아야 된다"
라고 꼭 해주고 싶었는데
눈물이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머나먼 이국 땅에서 신접 살림을
떠나는 너희들 앞에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될것 같아
그냥 주저 앉아 버릴것 같아서
먼 이국 땅에서 돌아오는 날까지
몸건강히 잘 있다 오너라
다시 한번 더 아야기 하는 데
빵 쪼가리 라면 같은 인스턴드 음식
먹지 말고 반찬 없드래도 꼭 밥 해 먹고!
알았지!
다음 글은 나와 엄마 사이의 모든 사연이다
진실이야 어찌 되었든
또한 그 진실 이란것을 밝히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세월 같구나
진이 엄마를 만난 곳은 국일관 이였다
그 때가
우리 큰애 원정이가 자기 엄마 배속에서
한 8ㅡ9개월쯤이니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1978년 말이나 1979년 초 쯤 일거다
웨이터가 춤 한번 추라고 해서
한번 추고는 좌석에 데리고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몇 살이냐?
어디 사느냐? 학교는?
어? 홍대!
나도 홍대 인데!
언제 졸업 했냐? 학과는?
이러면서 선배님 후배님 하면서
부어라 마셔라 하며 알게 되었다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그렇게 둘이 죽이 맞어 한 동안 지난 후
어느 날
갑자기
“아들 하나 낳아 드릴 까요?”
하는 게 아닌가?
속으로 깜짝 놀라
아하 이 여자와의 관계도
더 이상 지속 하면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 했는데 이상 하게도
여자 쪽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 당시
나는 회사에서 사장님 이하
거의 모든 중역들에게도 신망 받고
다음 승진 때는 본사 경리부 차장 진급은
다 따 놓은 당상인데
아닌 밤중에 외간 여자와 스캔들이라니?
회사에서 여자관계로
좌천 되거나 불이익을 당 하는 것
어디 한 두 번 보았나?
그야 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런 여자가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사라 졌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리고 한 일 년 후
이 여자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배꼽 밑에 흉터가 있 길래
무슨 흉터냐고 물으니
복막염이 걸려 수술한 흉터라고 해서
그러러니 하고 말았다
그 이후로도 두 사람의 은밀한 만남은 계속 되었다
그러다가 회사가 부도가 났다
회사의 부도는
나에게서 순식간에 모든 희망을 빼앗아 갔으며
좌절의 구렁 텅이로 몰아넣고 있었다
어느 회사고 간에
부도가 나고 경영진이 바뀌면
경리부는 정리 대상 우선순위 이다
나 또한 별수 있겠는가?
그리고 세월은 흘러 아내와의 이혼
애들과의 힘겨운 생활
어깨를 짖 누르는 생활고에 옆눈 길
아니 한 눈 팔 여유가 도저히 없었다
그러한 와중 에도
그녀에게서는 주기적으로 전화가 왔다
“잘 있느냐?”
“아픈 데는 없느냐?”
뭐 특별한 내용도 없이
한 달에 한 두 번꼴로 고정적으로 전화가 왔다
그러기를 거의 10여년
조금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 하고 있었다
나에게도 어느 정도 생활이 여유가 생기고
나도 간혹 그녀 집에 전화도 하면서
이상한 것을 느꼈다
어떤 꼬마가 전화를 받는 데
처음에는 그녀가 홍대 미대를 나왔기에
이촌동 자기 집에서
미술 과외를 하고 있기에
과외 받으러 온 애들 인줄 알았다
어느 날 꼬마가
또 전화를 받길 래
선생님 계시냐?
하니 없다고 한다
그래서 너는
과외 받으러온 학생이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허면서 여기가 우리 집 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어디 계시며 뭐 하느냐고 하니
아버지는 미국 갔다고 한다
무언가 이상 했다
그동안 지나온 세월이 어딘데?
혼자 살면서?
또 저애와 그녀와의 관계는?
어느 날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십여 년 동안 줄 곳 내 주위를 맴 도는 냐고?”
“여자가 외간 남자를 만날 때는
그 남자의 재력이 좋던지?
아니면 속된 얘기로 정력이 넘쳐 나는
소위 변강쇠 같던지?
나는 그 둘 중에 하나도 아닌데
우리가 옛날처럼 소위 연애라는 것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내 주위를 맴도는 지?”
“또 집에서 전화를 받는 그 꼬마는 누구인지?”
그녀의 대답은
그냥 자기 아들이라고만 하며 더 이상의
대답은 없었다
드디어 그 꼬마를 볼 수 있었다
무슨 일 때문인가
이촌동 사는 그녀의 아파트를 갈 기회가 있어서
도착 하여 차 한 잔 마시고 있는데
문제의 그 꼬마가 밖에서 놀다 들어오면서
나에게 두 손을 들고
양쪽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짠”하면서
그 아이는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그녀의 비밀 일부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녀의 집에서 목제소를 운영 하였으며
대부분의 관리는 엄마가 경영 하였다고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그녀의 가정교사가 있었는데
그녀의 큰오빠 친구로서
대학교 다니면서 목재소의 장부 정리 등 그곳 일을 보았다
그녀의 엄마는
그 남자를 점찍어 놓은 상태에서
딸을 낳게 되고 그 딸을 어느 정도 키워놓은
다음 대학교에 진학하여 졸업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그리 평탄 한 것은 않은 모양으로
나를 만나던 시기가
두 사람이 별거 비슷하게 시작된 시기였다
그 후 그 남자는 다른 여자와 동거 하며
이혼을 요구 하였으나 계속 이혼을 하지 않고 있다가
내가 진이를 만난 후 얼마 있지 않아서 합의 이혼 하고
이촌동의 살던 집을 정리하고
방위 동으로 이사하고 근처에 미술 학원을 차렸다
진이와 우리 애들이 만나는 회수가 많아지고
또한 진이가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가는 경우도 많아 졌다
신기한 것은 4명이 같이 놀고 있는 것을 보면
“누나”
“진아”
하면서 노는 것이 하나도
어색 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애들과 같이 외식이라도
갈라 치면 음식점 종업원이
“애와 애는 똑같이 생겼다”하면서
우리 막내 진주와 진이를 가르키면
큰애 원정이는 천연스럽게
“둘이 쌍둥이 예요”하면
“아하 그렇구나” 하면서
두 사람을 다시 한 번 처다 본다
실제로 둘이는 중학교 다닐 때 까지는
신기 하게도 많이 닳았으며
둘이 쌍둥이라고 해도 다들 믿었다
그렇지만은 진이 엄마로부터
진이가 정확히 누구의 아들이라는
대답은 없었다
그렇다고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아니 한다
다만 자기 아들이라고만 한다
진이는 전남편 호적에 올라 있으며
진이 본인 자신도 자신에 출생에 관하여
궁금해 하는 부분이다
그도 쉽지 않은 게 혈액형이
나도 O형 그 남자도 O형이며
전에 진이 외할머니 돌아 가셨을 때
그 남자를 한번 본적 있는데
외모나 분위기도 나와 비슷했다
전에 진이가 중국으로 유학 가기 전에
나에게 물었다
“아빠가 내 진짜 아빠죠?”
“나도 몰라 엄마한테 물어봐
그리고 네가 생각하기에
누가 더 너와 닮았는지 생각 해봐”
진이는 엄마도 모른다고
나한테 물어 보라고 했다며
내가 더 진짜 아빠 같다고 했다
진이 엄마 하고는
그 일만 아니면 함께 살았을 런지도 몰랐다
큰 애와 막내가 한참 말썽을 피울 때
큰 아이를 이천에 있는
정신 병원에 입원 시키고 오던 날
나의마음은
그야 말로 참담하고 억장이 무너져서
소주 한 병 사와서 혼자 먹고 있는데
진이 엄마한테서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오늘 성남에 있는 용한 점쟁이가 그러는데
내가 어떤 여자를
그것도 북쪽에 숨겨 놓고 있다고 했다며
그 여자가 누구냐고 그런다
너무나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었다
“그 점쟁이 어디 사는 놈이야
내가 그냥 안 둬!
당장 쫓아가서 도끼로
그놈 머리통을 깨 죽여 버릴 거야
그 점쟁이 집
어디야!”
나는 거의 이성을 잃어 가고 있었으며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전화를 끊어 버렸다
얼마 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내어다
보니 진이엄마가 문 열어 달라고 하였으나
문을 안 열어 주자
갖은 악담을 하며 행패를 부리기에
파출소에 신고하여 돌려보내 버렸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행동 이였다
그 일이 생긴 후 생각해보니
내가 애들과 같이 남은여생을 같이 할 사람은
이 여자가 아닌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 인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후 진이를 불러내어 말했다
“아빠가 당분간은 너희 집에
안 갈 거고 엄마도 당분간 안 만날 거야
어른들이란
간혹 자기가 생각하는 의견들이 틀릴 수가 있어
그것 때문에 싸우기도 하니까
우리도 지금 그런 거니까
네가 이해하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그때
그 일로 말미암아 한 순간적으로
그렇게 그녀와 나 사이에 정이
뚝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 어느 정도의 간격을 유지 하며 살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렸다
애들도 이제 성년이 되었다
우리 막내 놈은 간혹 나를 당황 하게 만들 때가 많다
“아빠 이리와”
“거기 어딘데?”
“여기 진이네 집”
“임마 네가 왜 거기 가있어?”
“노후를 생각해서 빨리 오는 게 좋을 거야”
어쩌면 진주의 말이 백번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진이 엄마는 진이 엄마 일 뿐
아직은 부부는 아니다
나의 생각은
부부란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고
또한 어려울 때 같이 고생하고
괴로울 때 같이 울어 줄 수 있는 사이
그런 사이 안 일까?
허지만 나에게 아직은
그런 사람은 없다
첫댓글 그런 사람이라면 사랑을 해야 되지; 않을까.....
구구절절 애잔한 내용에 무슨 말을 드려야 위로가 될지---?
애들을 위한길이 최선이 아닐까? 앞날의 행복을 기원 합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만들어 논 내 자식이 어디 가겠습니까 지금 형편상 몸은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아빠에 대한 그리움 아들에 대한 그리움은 서로 내심 늘 마음안에 있지요
그래도 그시절 그런 날들이 있어 지금에 아들이 존재 한다는 것은 마음에 큰 희열이고 행복 이지요 남은 인생은 모쪼록 건강해서 늦게 나마 남다른 부성애와 자식에 효심을 만끽 하소서
동연아 아프지 말구 건강해 잘 지내고
절절한 사연 슬프게 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