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기억될 이름 제80회
이헌 조미경 머리맡에 놓인 휴대폰이 어김없이 아침 7시면 일어나라고 재촉을 한다. 하품을 하며 이불을 살며시 걷고 일어나, 현관으로 달려가 새벽에 배달된 신문 기사를 훒어 보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습관처럼 화장실에 앉아 볼 일을 본다. 머리기사에 올라온 기사를 읽다 말고 화들짝 두 눈이 확 동공이 커졌다. '부고' 란에는 어느 유명인의 예상치 못한 죽음이 그의 생전 얼굴에 자연스레 눈길이 가고 다른 시시콜콜한 뉴스가 연우의 시선을 붙잡았다. 속으로는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일축을 하다 다시 잠시 생각해 보니 인생이 뭐 별거냐 하며 살아왔던 날들이 마치 자신에게 큰 보람이나, 성취감을 주지는 않은 것 같다. 화장실을 나와 거실에 앉아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아내가 차려 놓은 아침 식사를 몇 수저 뜨고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도로는 어제와 같이 오늘도 출근길 교통의 흐름이 좋지 않다. 이 길을 매일 자동차로 달려 출. 퇴근을 한 시간이 30년이 흘렀다. 그동안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니며 세상과 타협하고 자신하고 타협하며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앞으로는 나 자신을 위해 살고 싶다. 그동안 성실히 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해도 놀지 않고 근근이 버티며 살아온 회사 생활이 문득 지루하고, 새삼 지겨워진다. 나도 이젠 회사와 결별을 할 때가 온 것인가. 혼자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한강대교를 건너 회사가 있는 여의도로 향했다. 요즘 부쩍 회사 가는 길이 지루하고 힘이 든다. 나이 탓이라 말하면 손가락질을 당할 테지만, 그렇지만 지루하고 성과 없는 일이 이어지는 요즘이 괴롭다. 회사에서는 실적에 대해 딱 꼬집어 말하지는 않지만 본인은 알고 있다. 친한 친구들은 일찌감치 명예퇴직을 한 후 부부동반으로 해외에 나가서 골프를 즐기고 온다고 자랑하는데, 자신은 허구한 날 회사에 목줄에 묶인 강아지처럼 움쭉달싹을 할 수 없는 몸이다. 이번 기회에 과감하게 사표를 쓰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며 남은 한 세상을 유랑하고 싶은 젊은 시절의 객기가 자신의 온몸을 감싸는 것을 느끼는 연우다. 얼마 전 큰 아들 녀석이 재취업에 성공했다. 아들의 취업에 고무된 연우는 자신도 모르게, 답답한 울타리를 넘어 넓은 세상의 품으로 달려가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그날 점심시간 점심을 먹는 동안 노후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직장 생활만 30년 이상 한 인생이 선배들은 다른 부서 임원들의 경우에도 회사 퇴직 후 편안하게 취미생활을 하며 유유자적하는 청빈 낙토의 삶에 대해 늘어놓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다 보니 자신은 그들에 비해 가진 게 많았다. 당장 회사를 그만둔다 해도 임대 수입으로 그럭저럭 생활하며 쉬엄쉬엄 일해도 나쁘지 않을 수입원이 있어 다행이라 무릎을 쳤다 . 그리고 연우는 책상에 앉아 자신의 책상 서랍을 정리하면서 지나온 시간을 가만히 회상을 했다. 젊은 시절에는 연못을 벗어나 펄쩍 뛰어올라 먼 곳으로 달려가고 싶어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젠 인생의 제2 막을 열어 간다 생각하고 오롯이 자신만 생각하기로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니 홀가분하다. 이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작은 포부도 생겼다. 그날 저녁 컴퓨터에 앉아 한참을 끙끙거리며 겨우 몇 자 끄적이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사장실로 달려가 흰 봉투를 내밀었다. 사장이 어이없다는 듯 "김 이사 이게 뭔가?' 연우가 대답했다. 사직서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는 쉬고 싶습니다." "자네 정말 마음의 준비는 끝난 것인가?" 그러나 아쉬워서 연우를 붙잡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연우 자신은 알고 있었다. 사장실을 나온 연우는 오랜만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그리고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린 시절 꿈꾸었던 자신만의 세계에 한 발을 넣었다는 자부심에 자신도 모르게 크크크 하고 웃고 있다.
한편 연우는 천안의 변두리 지역인 외곽에 택지 사업 부지를 시찰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달려 현장에 도착하니 9시 전이다. 간단하게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지도를 펴 놓고 연구 중이다. 천안은 서울의 위성 도시로 KTX와 SRT 개통으로 출퇴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예전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던 참이었다. 땅값이 오를 호재가 보이면 지역의 지주들은 서로 담합을 하여, 아예 매물로 내놓지 않고, 애간장을 태웠다. 그런 것을 알기에 우진은 용인이나 수지 같은 아파트 분양에 유리한 조건임에도, 비용과 앞으로 건설 수요가 더 이상 좋아지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미리 시찰을 나온 것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아파트 땅을 파기 시작하면서 분양권을 내놓아도,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고 내 집 마련에 열을 냈지만, 현저하게 출산율이 나아지는 추세와, 일인 가구가 급격하게 늘면서 아파트는 더 이상 재테크의 수단이 되지도 않았고, 2030 젊은 층들은 과도한 대출로 인한 부담감 때문인지 아파트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젊은이들이 아파트를 무리하게 대출을 안으며 사던 시기는 지났다. 그 이유는 과도한 은행 대출 이자 부담에 세계적으로 경제적인 불황까지 겹치면서, 물가는 하루아침에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어, 서민들은 허리띠를 졸라 매기에 이르렀고, 그나마 여력이 있는 중산층마저도 지갑을 닿고 소비를 줄였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우진은 돌다리도 두드리면서 가라는 속담을 생각하면서, 신중하게 움직였다. 한발 잘못 옮기면 천 길 낭떠러지로 구르는 경우도 있으니 늘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코인이나 주식에는 관심도 없었다. 오로지 땅에 투자를 하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었다. 계열사를 여러 개 거느리는 회장들은 회사 규모가 커지면 우선 적으로 골프장을 인수하는 데 돈을 썼지만, 우진은 달랐다. 그는 항상 현실적인 일에 마음을 썼다. 만약 천안 가까운 곳에 우리나라의 대기업인 삼성이 반도체 공장을 세우겠다는 발표만 있어도, 금방 땅값이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시간과의 싸움에서 우진은 승리했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자제한다는 백악관의 말 한마디에 증시는 조금씩 상승세를 이어가고 우진의 회사 가치는 높게 뛰어올랐다. 처음 서울에 첫발을 딛고 좌절하던 그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치는데, 거울 속에는 희끗하게 서리가 내린 중년의 남자가 두 눈에 힘을 주고 서 있는 모습에서 결연함이 느껴졌다. 인생은 언제나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가면서 삶이라는 배낭을 짊어진 채로 높은 산을 오르는 여정인 것이다. 끝.
그리움으로 기억될 이름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학원 공부로 인해 소설 연재는 당분간 쉬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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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지막 장르 였군요
공부하시랴
글 쓰시랴
참 바뿌게 지내시니
한편 부럽기도 합니다
즐기는 자가 가장 센 적이라고
더 큰 적수를 만나서
열정 가득한 생활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아이구 잘 보고 갑니다
참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소설의 장르속에서 등장하는 인물을
보면서 또한 본 받아야 할 중요한 내용이기에
더욱 관심있게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