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년 엽서 - 이해인
하늘에서
별똥별 한 개 떨어지듯
나뭇잎에 바람 한번 스쳐가듯
빨리 왔던 시간들은
빨리도 떠나가지요
나이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간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어서 잊을 것은 잊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야겠습니다
목숨까지도 떨어지기 전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일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눈길은 고요하게
마음은 뜨겁게
아름다운 삶을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충실히 살다보면
첫새벽의 기쁨이
새해에도 항상
우리 길을 밝혀 주겠지요
* 송년의 시 - 윤보영
이제 그만 훌훌 털고 보내주어야 하지만
마지막 남은 하루를 매만지며
안타까운 기억 속에서 서성이고 있다
징검다리 아래 물처럼
세월은 태연하게 지나가는데
시간을 부정한 채 지난날만 되돌아보는 아쉬움
내일을 위해 모여든 어둠이 걷히고
아픔과 기쁨으로 수놓인 창살에 햇빛이 들면
사람들은 덕담을 전하면서 또 한 해를 열겠지
새해에는 멀어졌던 사람들을 다시 찾고
낯설게 다가서는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올해보다 더 부드러운 삶을 살아야겠다
산을 옮기고 강을 막지는 못하지만
하늘의 별을 보고 가슴 여는
아름다운 감정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 섯달 그믐날 - 김남조
새해 와서 앉으라고
의자를 비워주고 떠나는
허리 아픈 섣달 그믐날을
당신이라 부르련다
제야의 고갯마루에서
당신이 가물가물 사라져가는 길
뚫어서 구멍내는 눈짓으로
나는 바라봐야겠어
세상은
새해맞이 흥분으로 출렁이는데
당신은 눈 침침, 귀도 멍멍하니
나와 잘 어울리는
내 사랑 어찌 아니겠는가
마지막이란
심오한 사상이다
누구라도 그의 생의
섣달 그믐날을 향해 달려가거늘
이야말로
평등의 완성이다
조금 남은 시간을
금처럼 귀하게 나누어주고
여윈 몸 훠이훠이 가고 있는 당신은
가장 정직한 청빈이다
하여 나는
가난한 예배를 바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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