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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이 2000억달러가 넘는 미국 16위 은행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채권 매각 손실과 예금 인출 사태 탓에 하루아침에 파산했다. 사진은 11일(현지 시각) 영업이 정지된 SVB 본사 정문을 보안 요원이 지키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IT 기업들의 주거래 은행 역할을 해온 실리콘밸리뱅크(SVB)가 예금 인출 사태(뱅크런)로 자금난에 빠진 지 이틀 만에 파산해 글로벌 금융시장이 충격에 휩싸였다. 자산 2000억달러(약 265조원)로, 예금 은행 기준으로 미국 역대 2위 규모 은행의 파산이다. 이 은행은 IT 기업들의 호황 덕에 대량 유치된 예금을 미 국채 등에 투자했는데, 가파른 금리 인상에 따른 채권 값 폭락으로 거액 손실을 보았고 이를 알게 된 예금자들의 예금 인출이 쇄도하면서 자금난에 빠졌다.
미 정부가 SVB발(發) 충격의 전이를 차단하기 위한 전방위 개입에 나섰지만 미 4대 은행 시가총액이 하루에 524억달러(약 69조원) 증발하는 등 ‘제2의 리먼 브러더스 사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미 연준의 금리 인상이 실물경제뿐 아니라 금융 시스템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건이다. 급속한 금리 인상으로 채권 값이 폭락한 탓에 현재 미국 은행들이 보유한 채권의 평가 손실이 6200억달러(약 820조원)에 달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주택 대출 채권의 부실로 미국의 4대 투자은행이던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촉발됐다. 복잡한 금융 파생상품으로 얽힌 세계 금융 시스템이 연쇄적으로 무너졌던 2008년 사태와 달리 이번 SVB 사태는 한 은행의 단순한 투자 손실이어서 글로벌 위기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금융 긴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제2, 제3의 SVB 사태가 발생하지 말란 보장은 없다.
우리도 SVB 사태 같은 돌발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미분양 아파트가 급증하는 속에서, 보험·증권·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규모가 110조원에 이른다. 저축은행은 고위험 사업장 대출 비율이 30%나 된다. 정부는 SVB 사태가 촉발할 글로벌 금융 불안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한편 국내발 위기 요소를 사전에 파악해 대응 방안을 미리 강구해놓아야 한다. 미국발 금리 인상 여파로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에서 언제라도 금융 위기의 도화선에 불이 댕겨질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