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디에이터]로 할리우드의 확실한 흥행메이커로 자리 잡은 리들리 스콧 감독과 러셀 크로우가 다시 만난 [어느 멋진 순간](운제 A Good Year)은 흔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워커 홀릭인 한 남자가 대자연 속에서 진정한 인생의 멋과 아름다움, 사랑의 소중함 등을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이런 주제는 바쁘게 살고 있는 대도시의 현대인들에게 강력하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이어서, 앞으로도 자주 영화화 될 것이다.
피터 메일의 원작소설은 친구인 리들리 스콧 감독과의 사전조율에 따라 처음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집필되었기 때문에, 내러티브 전개는 아주 자연스럽다. 이런 주제가 갖는 일종의 공식, 즉 도시와 자연, 워커홀릭의 속도감과 대자연의 완만함을 강렬하게 대비시키는 기법이 이 영화에서도 예외없이 등장한다. 상투적 서사구조의 틀을 갖고 있지만 [어느 멋진 순간]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은 인위적이지 않고 디테일이 살아 있는 캐릭터 묘사, 그리고 도시에서 자연으로 회귀하는 과정의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이다.
도입부는 역시 런던의 증권가에서 잘 나가는 펀드 매니저 맥스(리들리 스콧 분)의 눈부신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다. 증권시장의 동향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과 두둑한 배짱으로 순식간에 거액을 벌어들이는 맥스, 낮에는 워커홀릭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일에 집중하지만, 밤에는 멋진 미녀들과 파티로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한 마디로 그에게는 부족할 것이 없는 인생이다. 그의 대도시 생할이 충분히 만족스럽게 펼쳐져야만 이후에 전개되는 대자연과의 충돌이 빚어내는 효과가 극대화된다. 따라서 도입부에서 맥스는 멋진 양복을 걸치고 다른 사람의 시샘과 부러움을 받는 최고의 펀드 매니저로 그려져 있다. 그가 이런 생활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주가조작 혐으로 일주일간 직장을 쉬게 되는 찰라, 프랑스의 와인지대인 프로방스에 살고 있는 삼촌 헨리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날아온다. 문제는 후손없이 죽은 헨리의 거대한 와인농장이 맥스에게 유산으로 상속된 것이다. 경제원리를 충실히 익히고 있는 맥스는 거액을 받을 수 있는 삼촌의 와인농장을 팔아치우기 위해 프로방스로 날아간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척박한 땅에 뿌리 박고 있는 와인농장과 낡은 2층 집, 그리고 헨리 삼 촌을 도와 오랫동안 포도를 재배해 온 관리인 등이다.
비싼 값을 받고 팔기 위해 집을 수선하고 풀장을 청소하면서 맥스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자연 속의 삶을 체험한다. 그렇다고 비싼 값에 와인농장을 팔려는 그의 마음이 흔들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헨리 삼촌과 이곳에서 보냈던 유년시절의 추억이 조금씩 떠오르면서 그는 깊은 향수에 젖는다. 그때 이혼하고 근처 시내에서 카페를 경영하며 살고 있는 한 여자를 만난다. 맥스는 그 여자에게 필이 꽂힌다. 여자의 등장은 작가와 감독이 맥스를 자연 속에 붙잡기 위해 설치한 일종의 덫이다. 그가 단순히 대자연에 반하여 개과천선하듯 런던의 화려한 생활을 벗어던지고 이곳에 정착한다는 것은 관객들을 납득시키지 못할 수가 있다. 그래서 그를 붙잡는 또 하나의 안전장치로 여자, 사랑이라는 함전을 설치한 것이다.
그러나 여자 역시 호락호락 맥스에게 다가오면 재미가 없다. 맥스가 그녀에게 접근하여 그녀의 마음을 얻기까지 힘든 과정이 펼쳐진다. 그리고 또 하나의 돌발변수로 죽은 헨리 삼촌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캐나다에서 날아온다. 이런 우연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떨어트릴 수도 있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은 효과적으로 갈등구조를 배치하면서도 작품의 기본 골격을 무너뜨릴 정도로 오버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뻔한 내러티브 구조를 갖고 있는 이 영화의 미덕이다.
러셀 크로우의 연기는 좋다. 그의 상대역으로 둥장하는 프랑스 여배우의 연기도 눈부시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프로방스의 와인농장 자체다. 실제로 와인농장을 갖고 있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 프로방스 와인지대에서 고른 촬영 농장은, 작품의 주제를 표현하는 데 매우 적합한 또 하나의 등장인물이다. 비록 뻔한 구조를 갖고 있지만 우리가 이 영화에 공감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대도시의 바븐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