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양에는 2좌의 철비가 있으며, 하나는 양양 작은 산인 현산에 있는데
부사나 현감을 지낸 선정비 중 하나가 철비이다.
양양의 지명은 중국의 지명과 같으며 현산이라는 것도 같아서
신라시대 때 당나라 지명의 영향으로 한반도 곳곳에 중국의 지명이
남아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양양이다.
양양은 중국의 진나라 때 동오와 대치 중인 지역으로 그 곳의 조그마한 산이
현산이다.
양양의 금석문 중 철비는 2좌 이지만 현산에 1좌 있고 다른 1좌는 대로 옆
식당 뒷편에 있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아래의 설명은 이광식부사의 철비인데 이 철비의 가장 큰 특징은
부사의 개명이 된 것인데 그러한 내용은 없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이광식 부사의 개명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전면: 府使李公光埴永世不忘碑 부사이공광식영세불망비
뒷면: 崇禎 紀元後 四 戊寅 七月 日 숭정 기원후 사 무인 칠월 일
1818년 7월에 세움
해설; 양양군 현산 공원에 있는 선정비 군에 있는 이광식의 철비로, 상부는 둥근 형태에 가깝게 만들고 톱니의 형태가 보인다.
비수는 꽃을 새기고 그 아래로는 마름모 모양을 일렬로 새겼다.
앞뒤의 명문은 양각으로 되어 있고 찬시가 있지만 일부의 글자만 보여 판독이 되지 않는다.
이 비는 남궁 억 선생이 교장으로 재직 할 때 교정에 있었으나, 이광식의 후손인 이종성씨와 이건주씨가 손양면 상양혈리 7번 국도에 옮겨졌으나, 현산 공원에는 1995년~1999년 사이에 이건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 할 일은 이광식의 名이다.
승정원일기에는 1812년 9월에 英埴에서 光埴으로 개명을 한 기록이 보이고, 1809년에 양양부사를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선정비는 양양부사로 재임 할 때는 이영식이었고 1812년에 이광식으로 개명 한 후에
세운 것으로 생각된다.
이광식(이영식)李光埴 (1749년~1812년)
자(字) 화여(華如) (號) 청리(淸里) 본관 함평(咸平)
조선후기 관리로 병조좌랑, 사헌부지평, 양양부사, 사간원헌납
사후에 이조참판, 홍문관제학에 받았다.
부사로 재임 할 때 언행이 신중하고 선치(善治)함으로 관민(官民)이 열복(悅服)하고, 원만히 행정을 실시하여 관내가 안태(安泰)하였다고 전한다.
양양부사로 재임 할 때는 이영식이었고 개명은 이광식 이다.
양양군에서 보내 온자료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군행리 현산공원 소재 이영식(李英植,1749∼1812년)부사는 언행이 신중하고 선치(善治)함으로 관민(官民)이 열복(悅服)하고 원만히 행정을 실시하여 관내가 안태(安泰)하여 불망비를 세웠는데, 조선시대 양양부의 수령들의 선정비 중에서 유일한 양각철비(陽刻鐵碑)이다.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화여(華如), 호는 청리(淸里)이다.
정조 7년(1783년) 증광시에서 진사 2등으로 합격한 후, 정조 21년(1797년)부터 선전관(宣傳官)ㆍ액외장용위(額外壯勇衛)ㆍ가주서(假注書)를 지내고, 순조 3년(1803년) 문과에 급제 종부주부(宗簿主簿)ㆍ도총도사(都摠都事)ㆍ감찰(監察)ㆍ병조좌랑(兵曹佐郞)을 지낸 후, 1805년 훈련부정(訓練副正)으로 승차하였다. 1806년 사헌부 지평(持平)으로 있다가 같은 해 7월 18일 함평현감(咸平縣監)으로 제수 되었지만 7월 26일 이조좌랑(吏曹佐郞)으로 임명되었고, 1808년 사헌부 장령(掌令)으로 승차하였다.
순조 8년(1808년) 6월 21일 襄陽府使로 제수 받고 부임하였으며 순조 10년(1810년) 훈련첨정(訓練僉正)으로 이임하였다. 같은 해 장진부사(長進府使)로 제수되었다가 약 한 달 후에 우림장(羽林將)으로 임명된 후 사간원 헌납(獻納)이 되었다.
1811년 부산첨사(釜山僉使)와 곽산군수(郭山郡守)를 역임하고, 1812년 헌납으로 제 기용되었다가 같은 해인 1812년 6월 용천부사에 임명되었다. 이 후 관직이 종2품 이조참판(吏曹參判)과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에 이르렀는데, 卒年이 1812년으로 되어 있어 추증(追贈)된 벼슬로 보여 진다.
《參考事項》
불망비에는 이영식(李英植)이 이광식(李光植)으로 양각(陽刻)되어 있으며, 이영식은 초명[初名: 처음에 붙인 이름으로 아이 때의 이름을 이른다]이며 족보에는 이광식으로 되어 있다.
또한 이 불망비는 당초 남궁억선생님이 양양초등학교장으로 재직할 당시인 일제강점기에 양양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져 있었던 것을 李光植 府使의 후손인 양양군 양양읍 임천리 이종성씨와, 양양군 손양면 주리 이건주씨 집에 보관되었다가, 1960년 이후 양양군 손양면 상양혈리 7번국도 도로변에 세워져있었으며, 1995년에서 1999년경에 현산공원으로 이건(移建) 하였다고 이광식 부사의 6세손인 이건주(1938년생)씨가 증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