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왜 일본을 선교해야 하는가? なぜ日本を宣教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 1편) J.W.램버스는 고베에 미이미교회(고베에이코 교회)와 관세이가쿠인을 세운 월터 러셀 램버스의 아버지이다. 미국 남감리회 제1세대 중국선교사로서 상하이 지역에서 활동했다. 아들W.R.램버스는 중국상하이에서 태어나 자란 2세대 선교사였다. 한국 언더우드 가문의 원두우(1세)와 원한경(2세) 혹은 감리교의 아펜젤러 1,2세의 관계와 비숫하다. 중국 상하이에서 활약하던 당시에는 갑신정변으로 망명왔던 윤웅렬・윤치호 부자가 상하이 중서서원(中西書院)에서 3년간 머물 때, 같은 시기에 상하이에있었으므 로 이들을 돌보고 환대하여 윤치호가 남감리교 로 개종하는 데 영향을 미친 선교사들 가운데 한명일 것이다. 1892년 4월 28일 숨을 거둔 아버지 램버슨는 고베외국인묘지에 묻혀 있으므로 스크렌튼 영 선교사와 더블어 램버스 선교사를 기억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어쩨됐든 중국에서의 남감리회 선교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자 남감리회 선교본부는 일본 선교를 개척하기 위해 1886년에 램버스 부자를 일본 간사이 지역으로 파송하였다. 그 때 아들과 함께 아버지 제임스는 히로시마 큐슈 오이타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전도를 펼쳤다. 그 과정에서 아들은 교육사업에 집중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오사카 지역에 공을 들여 그 열매로서 히가시우메다교회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일본 도착 다음 해인1887년에 J.W.램버스는 오사카의 우메다 인근 거류지인 나카노시마의 세신칸 호텔에서 성서강의를 시작하여 이듬해에 훗날 저명한 신학자가 되는 노다 케이지에게 첫 세례식을 거행한다. 교인도 함께 늘어나자 1889년 2월 22일 남미이교회 오사카동부교회를 조직하였다. 1895년에는 현재 우치혼마치의 호텔 더 루터란이 세워져 있는 자리에 예배당과 목사관을 지었다. 1907년에 벽돌 건축물로 재건하여 4월 28일에 헌당식을 가졌다. 1942년에는 일본기독교단 오사카 오오테마에교회라고 개칭하였지만 1907년에 지어진 벽돌 예배당도 1945년 6월 15일의 오사카 대공습으로 전소되고 만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누가복음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