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온지 다섯 달이 지났다.
중동 사막지대만큼이나 무덥던 유월에 와서
넉 달 내내 찜통 속에서 살다가, 이제 가을냄새 나기 시작한지 한달,
아침과 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하다.
밤샘 근무하는 아파트 외곽 경비들은 방한모를 쓰고 일을 하는데,
아침 출근길에 목도리를 칭칭 감고 차를 기다리는 젊은 친구도 보였다.
겨우 20도의 날씨에도 이렇게 추워하니
한겨울 영상 5도에서는 얼어 죽는 사람도 많겠다.
이제 회사생활도 익숙해지고,
내가 온이래 신입사원도 8명이나 뽑으면서
조직도 정비하고, 교육도 하며 함께 동화되어 감을 느끼고
부서 밖의 임원들, 그리고, 관련 직원들과 교류하고,
관련 업체도 방문하고 방문객들을 만나면서
내 위치와 역할을 정리해간다.
신제품을 개발하면서 만나는 금형 업체들,
일반 부품을 만드는 업체 사람들을 만나면서
곳곳에 퍼져있는 한국사람들의 인맥과 능력에 놀라고
늘 함께 하는 구매부장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한국업체, 한국사람들의 능력에 자부심을 갖는다.
이렇게 저렇게 연결되는 한국사람들은 한결같이
혈혈단신 고군분투하는 나의 모습에 감사하며
나의 얼굴에 누가 안되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에서
진한 동포애와 미래의 희망을 엿본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을 빼면,
저녁시간과 주말, 그리고 휴일은 온전히 텅 빈 외로움.
긴 저녁시간, 길고 긴 이틀 휴일을 보내는 방법으로
새로 시작한 골프 연습에 몰입하며 거의 몸살로 잠자리에 들면서
차츰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지쳐갈 머나먼 타국 오지에서의 5개월을
조금은 보람으로, 희망으로, 그리고, 정신없이 바쁘게 보낸 것 같다.
물론, 그 5개월 동안 두 번이나 한국을 찾았고,
그 중간에 두 번이나 집사람이 다녀갔으니,
어쩌면 외로움도, 그리움도 덜 했는지 모르겠다.
인도는 축제의 나라이다.
거의 한 달에 한번씩 요란한 축제가 있고,
그때마다 전통을 지키려 노력하며 축제를 지킨다.
9월초엔 락샤반단이라고 해서 오누이간의 애정을 나누는 행사로 요란하더니
10월엔 두세라라는 열흘간의 축제로 시끄러웠다.
나브 라트라(=nine night)라 해서 9일 밤 동안 신을 경배하고
철저한 채식을 지키는데, 그 기간엔 회사 식당도 내내 채소뿐이다.
9일째 밤엔 온통 불꽃놀이하며 전쟁에서 승리하고 온 신을 경배하고
10일째 밤은 꼬박 밤을 새며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이달엔 디왈리 축제로 인도 전역이 명절분위기이다.
우리의 추석이라기보다는 설날 같은데,
인도의 음력으로 새해를 맞는 행사를 하는데,
흩어져 있는 형제, 가족들이 모두 모여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연하장도 보내고, 선물도 주고 받는다.
회사마다 100% 보너스와, 푸짐한 선물을 주고
마치 종무식/시무식 하듯이
부서단위로 제사를 지내고, 저녁에 모여 회사 전체 제사를 지낸다.
그저께 회사 여사원들이 우루루 사무실로 쳐들어 오더니
디왈리 축제때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한다.
허걱, 나보고, 회사직원들 앞에서 노래를 하라고?
지난 여름에 한국에 연수 다녀온 연구소 여직원이
한국의 노래방문화를 기억하며 강력 추천한 모양이다.
난, 반주 없이 못 부른다고 하니 저장된 MP3 파일을 가져와서 하란다.
밤이면 온 도시가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한 것처럼 휘황찬란하고
며칠전부터 여기저기 불꽃놀이가 끊이지 않더니
음력 그믐날이었던 어제 출근을 하니 온 회사가 알록달록 장식되어있다.
이번에 뽑은 사원 8명중 3명이 여자신입사원들인데,
이친구들이 주도하여 회사를 장식하니,
회사이래 처음으로 전통장식을 했다며, 온종일 회사가 들썩인다.
아가씨들 출근을 하더니,
디왈리 선물부터 가져오고, 그리고, 오늘의 복장으로 전통복도 가져온다.
통으로 되어 있어 입기가 좀 불편했지만,
입고나니 편하고, 내가 마치 인도사람이 된듯한 착각이 든다.
옷을 입고 연구소를 한 바퀴 도니 난리가 났다.
이방인이 자기네 옷을 입어준 것에 대한 놀라움과 기쁨이다.
서양인이 한복 입은 것 같을까 생각하는데,
한결 같은 반응은 스마트하게 보인다고 한다.
인도의 엘리트가 나처럼 생겼나?
오후 2시쯤 연구소 디왈리 행사를 먼저 했다.
1층 시험일 한구석에 늘 있는 신을 모신 함을 열어놓고
향불도 요란하게 켜놓고, 주문을 외고, 음식도 들어 보이고,
하나씩 돌아가며 향불에 손을 담근 후 그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는다.
오후 5시엔 전 직원이 모여 회사제를 지낸다.
제사를 집전하는 전문가가 와서 주문을 계속 외우고
사장이 대표로 제주가 되어 절차도 복잡하게 진행을 한다.
우리의 제사랑 많이 비슷한데,
다만 우리처럼 상을 차려놓고 드시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바구니에 있는 각종음식들과 꽃 장식들을 계속 사진에 갖다 부으면서 주문을 왼다.
그렇게 한참을 하더니 노래를 시작한다.
마치 찬송가 부르듯이 끊임없이 함께 노래하며
사장을 위시하여 자발적으로 나와서 접시를 돌린다.
우리가 술잔을 들어 조상신주 앞에 돌리는 것하고 똑같다.
그렇게 삼십여 분을 제사를 지내고는
드디어 노래자랑시간이 되자, 제일먼저 나를 지목한다.
흐미, 난 마이크 없이 노래 못 부르는데…
인도온지 5개월밖에 안되어 인도노래는 못부르고,
이번엔 한국노래를 부르지만, 내년엔 인도노래를 부르겠노라 하고는
한국에서 부르던 18번을 불렀다.
마이크 에코도 없이 부르는 생음악은 아마도 20여 년 만일 텐데,
이국적인 멜로디에 모두 넋이 나갔다.
인도 전통복장에, 노래에, 나는 그날 정말로 용이 되었다.
한 시간을 넘게 흥겹게 노래 부르며 노는 동안,
사람들은 제사를 집전한 사람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이마에 빨간 점을 바르고(힌두상징),
제사에 썼던 음식을 한 접시씩 하사 받는다.
모두가 흥겨운 마음으로 돌아서며
뜨겁게 손잡고 인사를 한다, 해피 디왈리…
사장이 특별히 불러 고마움을 표시하고
연구소로 돌아오니 처녀들이 기다린다.
기념사진 찍으며 해피 디왈리!
외국에 혼자 나가 살 때 최대 고비가 6개월째라는데,
일단 여섯달째 시작은 기분좋게 한 셈이다.
이 여섯달째를 어떻게 넘길까.
친구들이 있는 카페를 통해서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래며, 늘 함께 하는 마음으로,
살아있음을 알리고, 그리고 위안을 받고 싶다.
첫댓글 항상 네글을 읽을때마다 마치 내가 인도 여행을 하는듯~~친구들을 위해 쨤을 내는 여유~~~고맙고 미안하다 난 뉴질랜드 생활을 나혼자만 즐기다 온것에 대한 미안함등등...외국 생활의 외로움은 해봐야 알것 같지? 매일 치는 골프도 그렇고...어쩌다 한번해야 소중하다고 느끼는데...어떻든 새로운 문화도 나름대로 즐기고 받아들이면 행복한거야 힘내고 건강하게 잘있다와.....
재분은 카페에 어쩌다 한번 들어와도 꼬박 인도얘기는 읽어본듯.....외국생활의 외로움을 똑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비슷하게 경험을 했을 뉴질랜드의 삶이 무척 궁금해.....이제, 돌아와 고향의 품같은 한국에서의 삶에도 적응을 하고 있겠다.....빨리 적응 잘하고,그리고 친구들도 만나서 그립던 정도 풀어놓고, 잘 지내....
대단히 미안하네 노환으로 생활하시기가 불편한 친정 엄니 수발하랴 한나 병원 쫓아다니라 강의하랴 전시회등 일인 몇역을 하구 다니는건지?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핑계로 카페에 자주 문안을 못해서 미안하네 6개월의 시작이 너무 근사하네 그렇타구 아예 인도 사내는 되면 안뎌? ㅎㅎㅎ 늘 고맙구 울칭구 외롭지 않고 건강한 생활이 되도록 기도 드리구 있어 ...
언제나 바쁜 수산나, 그래도 카페엔 누구못지않게 사랑과 관심을 보이는 수산나.....노인네들이 건강하셔야 자식들도 여유가 있는데, 그래도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자식이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것인지 어머니도 잘 아시고 늘 기도 하실것으로 믿습니다......6개월도 벌써 중반인데, 6개월고비는 잘 넘기겠지만, 그래도 인도 사내는 절대로 될일 없으니 걱정 붙들어 매시길....
용 된 모습을 그냥 대충 그리다 보니 웃음이 ㅎㅎㅎ.... 이뻤겠다. 하얗고 뽀얀 타국 사람이 즈네들 옷입고 뽐내주어서 모두 모두 감동의 도가니 속으로 빠졌을 그 현장.... 6개월이든 24개월이든 감히 누군데 어려운 고비라고 못넘기겠수... 우리의 대단한 친구 아이가??? 참, 대저택이든 사무실이든 목소릴 듣는 번호 알려줘봐봐유~~ 누가 아남 함박눈 펑펑 내릴 때 꿩 대신 닭 아니 뼝아리라도 돼 목소릴 들려줄 지... 안긋소? 요즘 쪼매 바빠 찬찬히 휘휘 둘러보지 못해 쫌 그렇지만 늘 잘 지내길 바란다우.... 안녕~~